<김주언 칼럼> 듣도보도 못한 ‘비례용 정당’ 표심은 어디로?

<김주언 칼럼> 듣도보도 못한 ‘비례용 정당’ 표심은 어디로?

  • 기자명 김주언
  • 입력 2020.03.19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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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사태’ 와중에도 총선이 한달도 남지 않았다. 각 정당들은 공천을 마무리지으면서 본격 선거국면에 들어섰다. 이번 총선은 선거제도 개편으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처음 적용되는 선거이다. 통합당은 개편된 선거제도의 허점을 파고 들어 비례대표용 위성정당인 미래한국당을 만들었다. 민주당도 시민사회 주도로 구성된 플랫폼정당인 비례연합당 참여를 결정했다. 이에 따라 이번 총선은 ‘촛불 대 반촛불’, 다시 말해 ‘개혁 대 반개혁’의 구도로 짜여졌다. 진보세력은 ‘발목잡는 야당’ 심판, 보수세력은 ‘무능한 정권’ 심판을 내세운다.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는 득표율과 의석간 차이가 크다는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도입됐다. 20대 총선에서 7.2%를 득표한 정의당은 득표율로는 전체 300석중 21~22석이 돌아간다. 하지만 실제 의석수는 6석에 그쳤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지역구 의석을 많이 얻은 정당에게는 비례의석을 적게 배분하도록 개선한 것이다. 통합당은 이를 무력화시키기 위해 비례대표 후보만 내는 한국당을 만들었다. 비례대표 의석은 한국당에서 얻고 지역구 의석은 통합당에서 가져가 선거이후 합치는 전략이다. 듣도 보도 못한 비례대표용 정당이 탄생한 것이다.

급기야 시민사회가 나섰다. 시민단체들이 비례연합당 창당을 주도하며 범여권 정당들에게 참여를 제안했다. 위성정당의 등장으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취지가 훼손됐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선거연합은 플랫폼정당을 표방한다. 위성정당은 선거가 끝나면 본체에 흡수되지만 연합정당은 선거때 연합하고 이후에는 자기정당 활동을 하는 연합체이다. 하승수 변호사는 “정책을 중심으로 정당들이 연합명부를 작성해 유권자들의 평가를 받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민주당은 시민사회가 추진중인 3개의 연합정당 중 ‘시민을 위하여’를 선택했다.

위성정당은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꼼수정당이다. 반면 플랫폼정당은 해외에서도 여러차례 시도된 적이 있다. 1996년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한 뉴질랜드에서는 5개 정당이 연합한 얼라이언스(Alliance) 정당이 결성돼 선거에 참여했다. 스페인의 온라인정당 포데모스(Podemos)도 2016년 총선에서 다른 정당들과 함께 우니다스 포데모스(Unidas Podemos)라는 선거연합을 구성해 21.1%를 득표했다. 우루과이는 광역전선(Broad Front)이라는 12개 정당의 선거연합 정당이 활동하고 있다.

하 변호사는 “한국당의 꼼수시도가 성공하면 40%도 안되는 정당지지율로 비례의석의 60% 가까이 가져간다”고 지적했다. 준연동형 비례의석 30석 중 21석을 가져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한국당의 꼼수 때문에 비례반영 취지가 오히려 더 깨져버렸다”며 비례연합정당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위성정당인 한국당은 헌법질서를 왜곡할 뿐 아니라 선거과정을 희화화시킬 우려가 크다. 유권자의 표심이 과잉 대표될 수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시민사회의 제안에 화답했다. 당원투표를 거쳐 비례연합당 참여를 결정했다. 한국당은 통합당이 차린 밥상이지만, 비례연합정당은 시민사회가 차려놓은 밥상에 민주당이 숟가락을 얻는 상황인 셈이다. 민주당은 “한국당이 군소정당의 의석을 뺏는 정당이라면, 비례연합정당은 군소정당의 의석을 지켜주는 정당”이라고 주장한다. “대기업(통합당)이 편법으로 골목상권에 침임해 영세업자들(군소정당)의 먹거리를 빼앗으려고 하니, 다른 대기업(민주당)이 영세업자들과 함께 골목상권을 지키겠다.” 민주당이 내세운 비유이다.

민주당 이해찬 대표는 “통합당은 위성정당이라는 반칙과 편법으로 의석을 도둑질하려 한다”며 “도둑질로 의석을 확보한 뒤 공수처법 등 개혁법안을 퇴행시키고 보복탄핵을 추진하려 하고 있다”고 참여이유를 밝혔다. 통합당 심재철 원내대표는 여러 차례 총선에서 승리하면 문재인대통령의 탄핵을 추진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촛불혁명으로 어렵사리 얻어낸 검찰개혁 등 개혁정책이 물거품이 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왔다. 74.1%라는 압도적 다수의 당원들이 비례연합정당 참여에 찬성한 것도 이를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비례대표 정당들의 후보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비례연합당은 참여할 정당들을 모으고 있다.비례연합당에는 정의당을 제외한 개혁진보진영 소수정당들이 참여하는 흐름을 보인다. 민주당과 민생당 녹색당 미래당 기본소득당 등이 참여하기로 했다. 정의당은 불참하기로 결정했다. 앞으로 참여정당들은 당명제정과 당별 후보배정 등을 본격 논의할 전망이다. 민주당은 비례후보 7명을 후순위에 배치하겠다고 밝혔다.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의 취지를 살려 군소정당들의 의석수를 지켜주겠다는 약속인 셈이다.

반면 통합당 위성정당인 한국당은 공천내홍에 휩싸였다. 한국당이 비례대표 후보 40명에 대한 추천명단을 독자적으로 발표하면서 ‘위성정당의 반란’이라는 논란이 들끓고 있다. 한국당이 발표한 후보명단에 통합당이 영입한 인재들이 당선 안정권 밖으로 밀려나 배치됐기 때문이다.

염동열 인재영입위원장은 “한국당이 자가당착 공천으로 영입인사들의 헌신을 헌신짝처럼 내팽개쳤다”고 반발했다. 최고위원들이 불참하면서 공천은 보류됐다. 한국당 한선교 대표는 ‘큰 집’ 통합당 황교안대표의 제안을 받아들여 재논의하기로 했다.

한국당이 공개한 비례대표 후보들의 면면을 보면 당의 성격이 그대로 드러난다. 비례대표 1번으로 결정됐던 조수진 전 동아일보 논설위원은 “대깨문”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킨 전력이 있다. 그는 채널A ‘정치데스크’에 출연해 ‘대깨문’(대가리가 깨져도 문재인), ‘대깨조’(대가리가 깨져도 조국)라는 막말로 문대통령 지지자들을 폄훼했다. 결국 선거방송심의위는 행정지도인 권고 처분을 내렸다. 그는 SNS에 “대깨문을 대깨문이라 부르지 말라고? 대깨문은 그들이 자랑스러워하는 용어이지 않은가”라고 반박하기도 했다.

2번에 배정된 신원식 전 육군수도방위사령관도 논란의 인물이다. 그는 남북한의 ‘9.19 군사합의’가 북한에 유리하다고 주장하며 국방부장관을 고발한 바 있다. 신동호 전 MBC 아나운서 국장은 14번에 배정됐다. 그는 박근혜정권 당시 ‘MBC 사내 블랙리스트’에 따라 아나운서들에게 인사 불이익을 주었다는 이유로 2018년 정직 6개월 징계를 받았다. 이후에는 법인카드사용 문제로 재차 정직 6개월 처분을 받았다. 그는 MBC를 상대로 징계무효 확인소송을 제기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변호를 담당, 최근 박 전대통령 ‘옥중서신’을 들고 나온 유영하 변호사는 후보 명단에서 빠졌다. 길환영 전 KBS사장과 김재철 전 MBC사장 등도 공천을 신청했으나 명단에서 빠졌다. 길 전 사장은 세월호참사 당시 보도에 개입한 사실이 밝혀져 중도하차하는 불명예를 안았다. 김 전 사장은 자신에 비판적인 기자와 PD를 해고하거나 징계하면서 MBC를 망친 인물로 평가된다. 이들은 일찌감치 통합당에서 활동해왔으나 후보에 오르지는 못했다.

비례대표 정당들에 대한 유권자의 표심은 아직 가름하기 어렵다. 응답자의 22.6%가 한국당, 19.9%가 비례연합당을 선택했다(정의당 7.5%, 열린민주당 6.5%, 국민의당 3.0%, 유보 36.6%)는 여론조사가 있지만 한국당의 공천파열음이 나오기 전에 실시된 것이다. 비례연합당과 열린민주당 지지율을 합하면 한국당에 다소 앞선다. 뉴스1이 엠브레인 퍼블릭에 의뢰해 13일 전국 만18세이상 남녀 1,005명을 상대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이다.(무선전화 조사 100%. 표본오차 95% 신뢰수준 ±3.1%p, 응답률 24.0%). 후보들의 면면을 보고 정당을 선택하는 유권자들의 합리성이 무엇보다도 중요해졌다.

김주언(논설주간ㆍ전 한국기자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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