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옥의 샤머니즘 이야기] 형장에 다다르다

[유명옥의 샤머니즘 이야기] 형장에 다다르다

  • 기자명 데일리스포츠한국
  • 입력 2020.02.19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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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스포츠한국] 주인공은 형장으로 가기 위해 촛불중이 이끄는 대로 따랐더니, 어느 새 그들은 숲의 가운데로 난 오솔길로 접어들었다. 주인공은 문득 나무들이 잠의 언저리에서 쑤군대는 소리를 들었는데, 그 때 연전의 낙엽이 썩고 있는 냄새, 송진 냄새, 천년 묵은 고적의 냄새, 야음의 냄새가 일시에 그의 콧구멍 속으로 몰려들었다. (<죽음의 한 연구(하)> 314쪽)

그는 그 가운데로 그의 죽음으로의 귀향길이 놓여 있을 것이란 것을 상상도 못했었다. 그는 속으로 ”그래, 죽음은 저 쌓인 정적, 저 음침한 대기, 저 음습한 어두움, 그런 오싹함 속에서 투덜거리는 망령들의 소리로 하여 더 숨막히게 소조한 세계로의 잠입하는 것이지!”라고 되뇌었다.

그 때 촛불중이 침묵을 깨고 그의 귓바퀴 언저리의 겨울 저녁처럼 깊은 바람 같은 소리로 이야기를 꺼냈다. (315쪽)

“그랬었습지, 소승은 촛불을 꺼뜨려버렸댔지. 그날, 그러니까 말입지, 대사의 실명이 이뤄져버린 그 저녁엡지. 별로 꺼뜨려본 적 없던 그 불을 꺼뜨려버렸습지. 무엇 때문에 그 불을 그렇게 아꼈던지는 소승 자신도 모릅지. (중략) 그러나 말입지, 그것이 소승으로 하여금, 저 사막을 얼마동안 살게 하였었던 것이라는 것만은 알고 있습지. 아 그러구 보니입지, 다 왔군입지, 다 왔군입지. 왔군입지”

그러고도 촛불중은 아주 한참이나 더 걸어가다 멈춰서기에, 그도 멈춰섰다. 주인공의 느낌에는 그들의 앞엔, 높은 담벽이라도 가로막아 있는 듯해 답답함이 치밀어 올랐다.

주인공의 귀에도 취한 목소리로 떠드는 몇 음성이 확실하게 들리자, 촛불중은 한참을 머뭇거리다 마음을 작정하고, 줄을 잡아당겨, 안에다 기별을 보낸 것 같았다. (316쪽)

주인공은 드디어 형장에 도착한 것이다. 이 여행은 그에게 외롭고 길고 팍팍했었다. 그에게“이제는 신발끈을 풀고, 아주 잠시라곤 할지라도, 푹 쉬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안도감이 몰려들었다. 사람은 심신이 너무 고달프다 보면, 죽기도 살기도 다 싫어져버리는 것이다. (계속)

※ 여기 연재되는 글은 필자 개인의 체험과 학술적 자료를 바탕으로 집필한 개인적 견해이며 특정 종교와 종교인 등과 논쟁이나 본지 편집방향과는 무관함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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