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언 칼럼> ‘코로나19’ 정략적 악용은 공중보건의 적

<김주언 칼럼> ‘코로나19’ 정략적 악용은 공중보건의 적

  • 기자명 김주언 논설주간
  • 입력 2020.02.13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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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서아프리카에서 에볼라가 유행했을 때의 일이다. 미국에도 ‘에볼라 공포’가 불어 닥쳤다. 당시 오바마 정부는 미국에서의 발병 가능성을 매우 낮게 평가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에볼라 생존자를 백악관으로 불러 포옹하며 불안을 잠재우려 했다. 에볼라 바이러스를 근절하기 위해 군대를 파견하기도 했다. 반면 정적인 도널드 트럼프는 트위터를 통해 비난글을 날렸다. 서아프리카 여행제한과 비행기 운항금지를 주장하기도 했다. “나는 오바마 대통령에게 서아프리카에서 오는 비행기운항을 금지하라고 말해왔다. 그는 거절했다. 완전히 무능하다!”
다행히 에볼라는 미국에서 별다른 유행없이 마무리됐다. 과학적으로, 그리고 국제적으로 접근한 오바마 대통령이 옳았다. 그러나 트럼프는 오바마의 뒤를 이어 대통령에 당선됐다. 위기상황을 통제불능으로 몰아붙이며 단순하고 즉각적 대응을 요구한 포퓰리즘이 미국 대선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에볼라 감염국에서 온 외국인과 무능한 정부 때문에 대중의 건강이 위협받고 있다는 선동이 힘을 얻은 것이다. 대통령이 된 뒤에는 멕시코 국경에 장벽을 설치하고 이주민을 추방하는 인종주의적 행태가 이어졌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의 정략적 행동이 국내에서도 재연되는가. 중국 전역에서의 국내입국을 금지시켜야 한다는 한국당 황교안대표의 주장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황대표는 트럼프 대통령의 선례를 따르면 차기에 집권할 것으로 여기는가. 공중보건의 위기는 고통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불러온다. 일부 정치인들은 이러한 잠재적 불안을 정치적으로 악용한다. 복잡한 공중보건 상황을 단순하고 직접적 방식으로 정치화시켜 대중에게 파고든다. 과학이나 의학은 관심이 없다. 위기상황을 정략적으로 악용하는 행태는 공중보건의 적일 뿐이다
야당은 정부를 견제하고 감시하는 것이 본연의 역할이다. 공중보건 위기상황에서 방역의 빈틈이나 정책부실을 지적하여 바로잡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한국당은 중국인에 대한 혐오를 조장하고 방역체제에 대한 신뢰를 흔드는 행태를 노골적으로 일삼고 있다. 이를 위해 시중에 떠도는 가짜뉴스를 퍼 나르거나 사실을 왜곡하기도 한다. 시스템 잘못으로 인한 희생자가 없다면 가상의 피해자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국민의 건강에 대한 원초적 불안을 정치적 이득으로 치환하려는 의도가 훤히 드러난다. 
정치권은 “초당적 협조”를 강조하지만 정작 감염병 대책법안은 국회에서 잠자고 있을 뿐이다. 사스 메르스 신종플루에 이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까지 새로운 감염병이 유행하는 데도 국회는 뒷북조차 치지 않았다. 변화하는 검역환경에 대응한다며 상임위를 통과한 검역법 전부 개정안은 법사위에 멈춰서 있다. 선박과 화물 중심의 검역체계를 항공기와 승객으로 바꾸는 내용이 골자이다. 모든 출입국자 검역, 감염병 발생상황 등 정보제공, 격리시 피해보상 등도 규정했다. 1954년 제정된 이후 처음 제시된 전면 개정안이다.
공공백신의 개발과 안정적 공급을 위한 공공백신개발지원센터 설립에 관한 법률은 상임위 논의조차 하지 않았다. 질병관리본부를 ‘처’로 확대 개편하는 법안도 2년반이 넘도록 논의를 위한 회의를 한번도 열지 않았다. 의료취약지역에 근무하는 약사인력의 양성과 배치를 위한 공중보건위기 대응책도 마찬가지이다. 수요가 급증하는 마스크를 부가세 제외대상으로 하거나, 생명안전업무 종사자의 처우개선을 위한 법안도 같은 운명이다. 2015년 메르스사태를 겪으면서 여야가 앞다퉈 법안들을 발의했으나 20대국회 마무리와 함께 폐기될 위기에 처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확산에 대처하는 역학조사관 등 공공의료인력 부족에 대한 우려도 크다. 특히 지역사회로 확산될 경우 의료인력이 부족한 농어촌에서는 적절하게 대처하기 어렵다. 지역공공병원과 보건의료원의 부족한 의사가 300명을 넘는다는 통계도 나왔다. 정부는 공공의료인력을 양성하기 위해 공공의대 설립을 위한 법안을 내놓았다. 그러나 국회 법안소위를 넘지 못했다. 민주당과 정의당은 2월 임시국회에서 처리한다는 목표를 정했으나 한국당은 반대한다. “10년 이후의 일”이기 때문에 긴급하지 않다는 이유이다.
검역예산을 대폭 삭감한 것도 국회였다. 부족한 검역인력을 확충하기 위해 문재인정부는 검역인력증원 예산을 국회에 올렸다. 하지만 국회는 공무원증원 반대를 이유로 계속 삭감했다. 2017~2019년 3년동안 현장 검역인력 55명증원 예산을 깎았다. 감염병 유입을 차단하기 위해 검역하는 해외입국자는 2014년 3122만명에서 2019년 4788만명으로 증가했다. 반면 검역인력은 453명(2019년 기준)에 불과하다. 검역요원 1명이 약 10만5000명의 검역을 책임지는 셈이다. 자칫 검역이 소홀해질 우려도 크다. 
정치권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의 방역대처를 놓고 정쟁만 일삼는다. 한국당은 방역에 구멍이 뚫렸다며 정부를 몰아부친다. 중국전역에서의 입국금지를 주장하며
“정부의 무능”을 탓한다. 중국눈치만 보느라 무능한 정부라며 국민의 불안을 부추기고 중국인에 대한 혐오를 부추긴다. 일선에서 밤을 새우며 바이러스와 싸우는 검역요원들과 의료진의 노고에 감사하는 따뜻한 한마디 말조차 없다. 감염병 확산을 예방하기 위한 법률을 방치하고 예산마저 삭감해놓고 남탓만 해대는 모습은 뻔뻔하기조차 하다.    
2015년 메르스사태는 황대표에게 트라우마로 남아 있을 것이다. 당시 첫 확진환자가 나온지 6일후에야 대통령 대면보고가 이뤄졌다. 국민이 불안해 한다며 메르스감염 병원을 공개하지 않다가 일부 언론이 보도한 이후에야 마지못해 환자의 동선을 알렸다. 박근혜정부의 늑장대처로 186명이 감염돼 38명이 사망했다. 황대표는 당시 총리였다. 당시 그는 “초동단계에서 한두 명의 환자가 생겼다고 장관이나 총리가 나설 수는 없다”고 말해 국민의 분노를 샀다. ‘쇼맨십’이니 ‘굴욕적 중국 눈치보기’라고 현정부를 비난하는 그의 이중성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단지 정치권만의 문제는 아니다. 일부 언론은 ‘신종 코로나사태’를 정쟁으로 몰고 간다. 우한교민 수용시설이 총선 때문에(?) “야당 지역구로 바뀌었다”는 주장은 정치선동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한 신문은 “감염병사태가 총선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주판알만 굴린다”고 쓰기도 했다. “구멍난 방역망 탓에 연일 감염자가 늘어난다”고 단정하기도 한다. 박원순 서울시장의 “메르스 때보다 잘한다”는 발언에 “감염병을 앞에 두고 정치한다”고 비난을 퍼부었다. 박시장은 “누가 더 감염병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싶은 것인가”라고 반박했다. 촌철살인이다. 
“불안과 공포를 자극해 혐오를 부추기고 정쟁에만 관심을 쏟는 일부 야당과 언론의 태도는 사회를 분열시킬 뿐이다.” 박시장은 “감염병 확산 방지에 진보와 보수, 중앙과 지방정부가 따로 있겠나”라고 지적했다. 아무리 일부 정당과 언론이 정략적 의도로 사회를 혼란스럽게 만들더라도 성숙한 시민의식으로 극복할 수 있다. “과장되거나 왜곡된 정보로 인해 부적절하게 초래되는 사회적 공포는 방역당국의 신속한 대응과 위기극복을 위한 공동체의 협력과 노력을 힘들게 만든다.” 대한감염학회 등 9개 감염관련 학회의 담화문이 이를 잘 말해준다.
‘에볼라 공포’로 위기를 조장했던 도널드 트럼프가 현재의 미국 대통령이다. 트럼프는 일부 백인들의 인종주의가 낳은 ‘괴물’일 수도 있다. 인종주의적 포퓰리즘에 환호한 이들이 그를 대통령으로 만들었다. 한국은 미국과 다르다. 황대표가 혐오하는 중국인들은 한국인이 아니다.  중국인을 혐오하는 그의 발언에 동의하는 국민도 많지 않다. 황대표가 트럼프처럼 되기를 바라면서 ‘트럼프 따라하기’에 나섰다면 오산이다. 시민의 건강을 위협하는 적은 다름 아닌 바로 당신일 수 있기 때문이다.

김주언(논설주간ㆍ전 한국기자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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