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언 칼럼> 부동산투기와의 전쟁, ‘케첩논쟁’ 넘어설까

<김주언 칼럼> 부동산투기와의 전쟁, ‘케첩논쟁’ 넘어설까

  • 기자명 김주언 논설주간
  • 입력 2020.01.29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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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벽두의 화두는 부동산투기 근절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신년사를 통해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문대통령은 “부동산시장의 안정, 실수요자 보호, 투기 억제에 대한 정부의 의지는 확고하다”며 “부동산투기와의 전쟁에서 결코 지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통령이 ‘전쟁’이라는 단어까지 쓴 것은 노무현 전 대통령 이후 처음이다. 그만큼 부동산 문제를 심각하게 보고 있다는 방증이다.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서울을 중심으로 아파트 가격이 가파르게 상승했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에서도 부동산투기 근절 의지를 다시 한번 강조했다. “부동산투기를 잡고 부동산가격을 안정시키겠다는 정부의 의지는 확고하다”고 다짐했다. 12·16대책에 따른 풍선효과에 적극 대처할 방침도 밝혔다. 9억원 이하의 주택가격이 오르거나 전세값 상승 등에 따른 보완대책을 강구해나가겠다는 것이다. 보유세 강화나 거래세 완화는 부동산 가격의 추이를 보아가면서 신중하게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양도소득세는 부동산매매에서 발생한 ‘불로소득’이므로 세율인하는 국민정서에 맞지 않는다는 꼼꼼함도 보였다.
청와대 관계자들도 후속조치와 관련해 추가대출 규제, 공시지가 상향은 물론 부동산매매 허가제까지 거론하고 나섰다. 김상조 정책실장은 “강남의 가격을 안정시키는 것이 1차 목표”라며 세금뿐만 아니라 대출규제, 거래질서 확립, 전세제도와 공급대책까지 필요할 때 전격 시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강기정 정무수석은 ”부동산매매를 투기수단으로 삼는 사람들에게는 매매허가제까지 도입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사유재산의 활용을 제한하겠다는 발상까지 동원한 것이다. 부동산투기를 잡기 위해서는 모든 수단을 도입하겠다는 예고편인 셈이다.  정부는 그동안 대출규제와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 확대, 종부세 강화 및 공시지가 현실화 등 18번의 대책을 발표했다. 부동산투기를 잡겠다는 의지의 발현이었다. 그러나 찔끔 대책으로 번번이 약발이 먹히지 못했다는 지적도 받아왔다. 부동산 대책이 발표될 때마다 일부 언론은 ‘세금 폭탄론’을 꺼내들고
“시장을 역주행하는 규제만으로 집값을 잡겠다는 발상은 실현 가능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투기탓만 하는 부동산대책으론 집값 급등 못 막는다’는 주장이었다. 경제논리에 맡겨 시장의 흐름대로 가게 나둬야 한다는 지적이다.
시장에 맡기면 집값 폭등과 부동산 투기를 잡을 수 있을까. 부동산시장이 수요와 공급이라는 경제기초원리에 따라 정상적으로 작동한다면 가능할 수도 있다. 보유세 인상과 대출 규제로 수요를 줄이고, 재건축 규제완화와 주택 건설 등을 통해 공급을 늘리면 가격이 떨어진다는 것이 전통 경제논리이다. 여기에 분양가 상한제로 집값을 묶어 놓는다. 그러나 부동산 등 자산시장은 이를 따르지 않는다. 더 오를 것이라는 기대심리가 집값을 떠받치는 것만은 아니다. 가격을 결정하는 요인이 다르기 때문이다.
자산시장의 가격결정에 대한 현대경제학의 가장 커다란 논란이 ‘케첩논쟁’이다. 케첩의 적정가격 결정과정을 두고 벌어진 논란이다. 전통경제학자들은 토마토 생산비용과 대체재 가격, 소비자 소득 등 수요와 공급에 미치는 다양한 요소들을 검토한다. 이들은 다양한 데이터를 살펴서 케첩가격의 변동성을 설명한다. 반면 금융경제학자들은 다른 케첩들과의 가격비교를 통해 결정된다고 믿는다. 생산비용은 회사마다 다르기 때문에 정확하지 않고 거래가격만 확실한 데이터라고 생각한다. 이들은 자산가격의 상호관계만 중시하고 나머지는 무시한다. 
미국 시카고대 유진 파머 교수는 후자에 속한다. 파머교수는 ‘효율적 시장가설(Efficient Market Hypothesis)’을 내세웠다. 이 가설은 ‘시장의 모든 정보는 가격에 반영된다’로 요약된다. 가격만이 믿을 수 있는 견실한 데이터일 뿐 나머지는 무시해도 된다는 뜻이다. 따라서 ‘두병들이 케첩 값은 한 병의 값으로 결정할 수 있다’는 명제가 나온다. 그는 2007년 미국 주택시장에 대해 이렇게 분석했다. “사람들이 집을 살 때 전반적 주택시세에 따른 잠재가격을 보고 결정한다. 미국 주택시장의 가격은 합리적이고 거품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
파머 교수의 주장 이후 금융위기가 터졌다. 미국의 집값은 순식간에 폭락했다. 파머 교수는 비난에 직면할 수밖에 없었다. 예일대 로버트 실러 교수는 “파머의 주장, 그것은 전형적 ‘케첩 경제학’이다”라고 비난했다. 미국 재무장관과 하버드대 총장을 지낸 로렌스 서머스의 논문을 인용한 비판이었다. 서머스 전 총장은 “금융경제학자들은 여러 케첩들 사이의 수익률 차이에 더 관심을 둔다”고 지적했다. 자산가격이 경제기초여건과 동떨어진 현상을 비판한 것이다. 그는 파머 교수와 같은 주장을 펼치는 학자들을 '케첩 경제학자’로 비꼬았다.   
‘케첩경제학’은 서울 부동산시장을 설명하는 데 매우 유용하다. “1개월 전 분양한 옆 동네 아파트 분양가가 5억원이면 우리 동네도 최소 5억원은 되어야 한다. 분당이 8억원을 호가하니 새 집인 우리 동네는 10억원은 받아야 한다.” 건축비용 등 분양원가는 고려 대상이 아니다. 주변 집값과의 비교가 가장 중요한 가격결정 요인이다. 아파트를 짓는 데 들어간 자재나 금융비용 등 본질가치는 따지지 않는다. 주변에 값싼 임대아파트가 들어서지 못하게 시위를 벌이는 주민의 목소리나 부동산 중개업소가 무조건 높여 부르는 호가도 이를 반영한 것이다. 
서울의 아파트가격은 본질가치와 비용요소는 고려 대상이 아니다. 신규분양 아파트가격의 결정과정을 보자. 토지보상이나 아파트가격은 인근 지역의 값과 비교해 결정된다. 시행시공사들 역시 마찬가지이다. 물가상승에 따라 자재비용이 올라갔고, 마감재가 좋아졌고, 금융비용이 늘었고, 온갖 핑계를 동원해 분양가를 올리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다. 재건축조합도 조합원의 이익을 위해 일반분양가를 높이지 못해 안달이다. 미분양이 발생해도 상관없다. 일단 높게 책정된 가격은 잘 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케첩경제학에 따른 집값 폭등이 합리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경제원리를 따르지 않는 지나치게 높은 가격에는 거품이 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자칫 시장에만 맡겨 두었다가는 거품만 잔뜩 끼어 경제위기를 불러오는 시한폭탄이 될 가능성도 높다. 파머 교수의 주장이 힘을 잃은 것도 같은 이유이다. 집값 폭락은 싼 이자로 부동산 담보대출을 해준 금융기관의 파산을 불러올 수 있다. 세계 금융위기를 불러온 리먼 브러더스의 파산이 대표적이다. 금융기관을 살리기 위해 공적자금이라는 이름의 대규모 국민혈세가 투입될 수밖에 없다.   
서울 집값에 낀 거품은 어느 정도일까. 주택 중위가격은 7억원이 넘는다. 가구 중간소득을 연 5,000만원대로 보면 소득대비 집값은 14배 가까이 된다. 14년 가까이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아야 서울에서 집을 구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는 미국 뉴욕(5.5배) 영국 런던(8.3배) 보다 훨씬 높다. 소득에 비해 서울 집값이 지나치게 높은 것이다. 이처럼 높은 집값은 청년의 결혼포기와 저출산의 원인이 된다. 집값 상승에 따른 불로소득을 불러와 사회적 양극화의 씨앗이 되기도 한다.  
서울 아파트값은 문대통령 임기절반 동안 11.6% 올랐고 강남권 아파트 중위가격은 11억원대로 진입했다. 문대통령이 부동산투기와의 전쟁을 선포한 이유는 총선에 대비한 민심잡기만은 아니다. 부동산 양극화로 상대적 박탈감에 빠진 서민의 민심이반을 예방하고 국민을 다독이기위한 정책일 수도 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집값 거품이 빠지면서 경제위기를 겪지 않도록 예방하기 위한 조치이다. 자칫 부동산시장을 시장원리에만 맡겨두었다가는 어떤 상황과 맞닥뜨릴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케첩경제학이 알려준 교훈이다.  

김주언(논설주간ㆍ전 한국기자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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