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언 칼럼> 3·1운동 100주년을 보내는 소회

<김주언 칼럼> 3·1운동 100주년을 보내는 소회

  • 기자명 김주언 논설주간
  • 입력 2019.12.26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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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3·1운동 100주년을 보내는 시점에서 3·1정신을 되새긴다. 100년 전 그날의 함성을 떠올리며 자주독립, 자유민주, 평화적 인류공영을 꿈꾸던 이상을 가슴에 담는다. 대한민국은 100년동안 많은 굴곡을 겪었다. 독립운동은 이념과 노선갈등으로 분열됐다. 2차세계대전의 종결로 해방을 맞았으나 외세의 개입으로 남북이 분단됐다. 한국전쟁은 민족 최대의 비극을 초래했다. 엄청난 인명손실과 이산가족 양산은 커다란 상흔으로 남아 있다. 분단고착과 대결은 심각한 인권유린과 무고한 희생을 강요했다. 3·1정신과는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진 것이다.
남한 단독정부를 수립한 이승만정권은 친일파를 기용해 국민염원인 친일청산을 무산시켰다. 게다가 반공을 기치로 내세워 제주도 등지에서 양민을 학살했다. 서북청년단이 앞장섰다. 한국전쟁은 현대사 최대의 비극으로 남았다. 이승만정권에 이어 등장한 박정희정권은 장기독재를 꿈구며 인권탄압에 앞장섰다. 반공을 ‘국시’로 내세워 비판세력을 용공으로 매도해  탄압했다. 광주학살을 통해 정권을 장악한 전두환정권 역시 혹독한 인권유린을 통해 철권통치를 이어갔다. 남북은 무한대결과 적대적 공생관계를 유지해오고 있다.
다행히 남한은 수많은 희생과 의로운 항쟁으로 민주공화국 체제를 정립할 수 있었다. 이승만은 4·19혁명으로 하야한 뒤 미국 하와이로 망명해야 했다. 박정희독재체제 하에서는 민청학련사건과 부마항쟁 등으로 수많은 학생과 재야인사들이 민주화운동에 나섰다. 수많은 사람들이 무고하게 사형당하거나 투옥 고문 등으로 신산한 삶을 이어가야 했다. 박정희사망 이후에는 광주에서 민중항쟁이 일어났으나 수많은 인사들이 학살됐다. 한국 현대사를 관통하는 항쟁은 촛불혁명으로 이어졌다. 수많은 항쟁 속에는 ‘3·1정신’의 혈맥이 면면히 흐르고 있는 것이다.
3·1운동 100주년 이전에 친일파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다큐멘터리가 있다. 2012년 공개된 ‘백년전쟁’이다. 이명박근혜정권의 퇴행적 역사관에 정면 도전한 작품이다. 일제강점기부터 2011년까지 100년의 역사를 담은 4부작이다. “왜 윤봉길 안중근 등 독립운동가를 다룰 때 친일파를 제외할까”라는 질문에서 출발한다. 같은 시간과 공간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와 친일파를 함께 보여주자는 의도였다. 이승만의 행적을 다룬 ‘두 얼굴의 이승만’, 박정희를 조명한 ‘프레이저 보고서’ 등 4부작으로 구성됐다. 인혁당 유족이 출연한 4.9재단이 제작비를 댔다.
‘두 얼굴의 이승만’은 1948년 CIA문서 등에 나타난 내용을 담았다. “사적 권력을 채우기 위해 독립운동을 했고, 자신의 출세를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한인학교에서 반일사상을 가르친다는 것을 부인했다.” “테러까지 동원해 국민회를 장악하고 현란하게 부동산 재테크에 착수했다.” “스물두 살짜리 여대생과 여행하고, 틈만 나면 최고급 레스토랑에서 식사하고 최고급 호텔에서 잠을 잤다.” “‘맥아더 장군에게 한국을 단독으로 점령해달라는 편지를 보냈다.” 이승만의 기행이 각종 문서를 통해 적나라하게 인용됐다. 
‘프레이저 보고서’는 1978년 미국 의회에 보고된 프레이저 보고서 등을 토대로 제작됐다.  “한국의 중장년층은 수출주도형 전략을 제시해 한강의 기적을 만들었다고 믿고 있지만, 박 전대통령은 수출주도형 전략을 제시한 적이 없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박정희 찬양세력이 내세우는 경제성장의 업적조차 부정한 내용이다. “일제 때 친일파였다가 해방후에는 공산주의자로 활동하다 체포됐다. 하지만 동료들을 밀고하고 자신의 목숨을 건졌다”는 미국 기밀보고서도 소개됐다. 그동안 역사학계에서만 알려져 있던 사실이 만천하에 공개된 것이다.  
‘백년전쟁’은 2013년 시청자제작 TV인 시민방송에서 20회 이상 방영됐다. 유튜브 등에도 올라오자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고 대박을 쳤다. 2014년 5월까지 누적 관람객이 500만명(민족문제연구소 추산)을 넘어섰다. ‘정치심의’를 남발했던 방송통신위원회가 바라만 보고 있지는 않았다. 방통위는 공정성과 객관성, 명예훼손금지 규정을 위반했다며 관계자들을 징계 경고 조치하고 관련 사실을 방송을 통해 고지하라고 명령했다. 시민방송은 방통위를 상대로 재심을 청구했지만 기각되자 소송을 냈다. 감독과 프로듀서는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됐다.
1심과 항소심 재판부는 잇따라 방통위 편을 들었다. 1심 재판부는 “특정 입장에 유리하게 하거나 사실을 오인하도록 조장하고 두 전직 대통령을 희화화했다”고 판단했다. 항소심도 1심판단을 유지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상고했다. 대법원은 6년만인 11월 하급심 판단을 물리치고 제작진의 손을 들어 주었다. 전원합의체는 “객관성 공정성 균형성 유지 의무와 사자명예존중 의무를 위반하였다고 볼 수 없다”며 제재가 부당하다고 결론내렸다. 앞서 감독과 프로듀서는 1심과 항소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았고 대법원에서 그대로 확정됐다.
대법원은 “표현이 다소 거칠고 과장된 면이 있지만 외국정부 공식문서와 신문기사 등 객관적 사료에 근거하고 있다. 중요한 부분들이 대부분 객관적 사실과 합치된다”고 판단했다. “진실을 왜곡하거나 객관적 사실을 위반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제작자의 관점과 다른 관점을 가진 의견을 모두 반영한 역사 다큐멘터리만 방송해야 한다면, 주류적 통념에 대한 의문이나 의혹을 제기하는 다큐멘터리는 다루기 힘들 뿐만 아니라 자칫 단순나열에 그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대법원이 친일청산에 손을 들어준 것일까.
조선일보는 이에 대해 ‘좌파 사관’이라며 “독이 든 사관을 대법원이 인정해준 것”이라고 비난을 퍼부었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의 지적대로 “반공 군사독재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한 반응”인 셈이다. 친일을 미화하고 위안부 동원과 강제 징용을 부정하는 뉴라이트세력도 기승을 부리고 있다. ‘반일 종족주의’라는 책이 한때 베스트셀러에 오른 것만 보아도 그렇다. 박근혜정권의 건국절 추진과 국사교과서 국정화는 국민여론의 반발로 무산됐다. 하지만 일부 보수기독교 세력은 청와대 앞에 똬리를 틀고 국회에서 난동을 부리기도 했다.
오늘날 한국사회는 아직도 100년 동안의 굴곡진 역사에 짓눌려 있다. 기득권 유지를 위해 친일에서 반공으로 말을 갈아탄 ‘냉전좀비’들의 준동이 내부문제라면 외부문제도 만만치 않다. 한일관계는 진전되기보다 첨예한 갈등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남북의 헤게모니 갈등도 극대화하여 동북아 평화를 위협하고 있다. 엄중한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은 폭력적 언사와 행동을 일삼고 있다. 심지어 황교안 한국당 대표 등 정치인들은 이들과 연대하여 갈등을 부추긴다. 
이러한 상황에서 뜻있는 기독교인들의 성탄선언은 한줄기 햇살을 던져준다. 김영주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장 등 330명의 기독교인이 참여했다. 성탄선언은 우선 “한반도의 분단과 전쟁의 아픔을 방기한 죄책을 범했다”며 “교회의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이 폭력적 언사를 되풀이함으로써 기독교인들의 명예를 실추시키고 한국사회 갈등의 단초를 제공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양극화 해소와 평화세계 구축, 동북아의 평화와 자주성 확립, 부와 권력의 견제와 균형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3·1정신을 되새기는 풍성한 기념행사가 열렸다. 그러나 친일잔재의 완전청산은 아직 미완의 과제로 남아 있다. 일부 반동세력의 거센 반발로 오히려 한국사회의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진 것 같은 느낌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기독교인의 성탄선언에 나타난 것처럼 끊임없는 자기성찰과 공동체의 연대의식이 절실함을 깨달은 한해이기도 했다. 마침 내년 경자년(庚子年)에는 국민이 주권을 행사하는 총선이 기다린다. 우리 모두 3·1정신의 의미가 담겨있는 한 표를 행사할 때이다.  

김주언(논설주간ㆍ전 한국기자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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