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언 칼럼>> ‘공명지조(共命之鳥)’로 풀어낸 양극화 갈등

<김주언 칼럼>> ‘공명지조(共命之鳥)’로 풀어낸 양극화 갈등

  • 기자명 김주언 논설주간
  • 입력 2019.12.23 1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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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불자들이 염불할 때 되뇌이는 말이다. 정작 정확한 의미를 아는 사람은 드물다. “아미타불과 관세음보살에게 귀의한다”는 뜻이라고 해도 그렇다. 아미타불은 현실세계의 고통이 사라지고 평화가 가득한 극락세계를 관장하는 부처이다. 관세음보살은 사람들의 고통을 자비로 보살피는 보살이다. 한마디로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말이다. 아미타불은 중생제도를 위해 오랫동안 수행해 10겁 전에 부처가 되어 극락세계에 머물고 있다. 아미타불의 수행과정과 말씀을 기록한 경전이 아미타경이다.
아미타경에는 하나의 몸에 두 개의 머리를 가진 새가 등장한다. 공명조(共命鳥)이다. 글자 그대로 목숨을 공유하는 새이다. 히말라야 산맥 설산에 산다는 상상 속의 동물이다. 6세기에 ‘동으로 간 푸른 눈의 승려’ 쿠마라지바가 불교를 알기 쉽게 해석한 개념 중 하나이다. 쿠마라지바는 반야심경 등 불경을 중국어로 번역한 선사이다. 선사는 구자국에서 태어나 수행을 하다가 중국에 잡혀갔다. 인근 타클라마칸 사막에서 공명조 조각상이 출토했다. 인도의 벽화에는 머리가 두개인 독수리로 그려져 있다.
공명조가 가진 두개의 머리는 가루다와 우파가루다로 불린다. 이들은 교대로 잠을 잤다. 가루다가 잠을 자는 동안 우파가루다는 향기 좋은 열매를 발견했다. “혼자 먹어도 뱃속에 들어가면 함께 배부를 것 아닌가.” 우파가루다는 열매를 먹었다. 잠에서 깨어난 가루다는 자초지종을 듣고 원한을 품었다. 가루다는 복수하기 위해 독이 든 열매를 먹었다. 결국 두 머리는 죽고 말았다. 공명조는 한 쪽이 없어지면 자기만 살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결국 공멸하는 운명공동체라는 가르침을 준다.  
공명지조(共命之鳥)가 교수신문이 선정한 올해의 사자성어에 올랐다. 1,046명의 교수중 347명(33% 복수응답)이 선택했다. 이를 추천한 최재목 영남대 교수의 말이다. “한국의 현재 상황은 상징적으로 마치 공명조를 바라보는 것만 같다. 서로를 이기려고 하고, 자기만 살려고 하지만 어느 한쪽이 사라지면 죽게 되는 것을 모르는 한국사회에 대한 안타까움이 들었다.” 독행기시(獨行其是)를 뽑은 교수도 200명을 넘었다. ‘다른 사람의 의견은 들을 생각도 하지 않고 오직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처신한다’는 뜻이다.
공명지조는 교수들이 한국사회를 대하는 방관자적 시각을 드러냈다. 어지러운 정쟁과 이념갈등으로 양분화한 한국사회의 치유방법으로 ‘부처님 말씀’을 선택한 것도 그렇다. 한마디로 ‘싸우지 말고 화합하라’는 말씀이기 때문이다. ‘조국사태’에 대한 교수사회의 시각을 보여준 어목혼주(魚目混珠)가 두 번째로 꼽힌 것도 이를 잘 말해준다. 조국 전 법무부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 중 누가 어목(물고기눈)이고 진주인지를 아직 판단하기 어렵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올해 한국사회를 관통하는 사자성어는 ‘독행기시’가 어울릴지도 모른다. 200명이 넘는 교수들이 동의했으니 개인만의 의견은 아닌 것 같다. 연말까지 정국을 뜨겁게 달구며 정치적 이해에 따라 난마처럼 얽혀 있는 선거법 개정만 보아도 그렇다. 막바지에 올라 있는 검찰개혁법과 유치원법 등 ‘패스트트랙 4법’ 처리를 두고 마치 적을 대하듯 막말을 쏟아내는 정치권의 퇴행은 국민을 우롱할 뿐이다. 심지어 황교안 한국당 대표는 국회 본청을 기습 점거한 집회 참가자들에게 “우리는 승리했다”고 격려하지 않았는가.   
그동안 교수신문이 선정한 사자성어는 한국사회의 변화를 잘 담아냈다. 최순실 국정농단에 분노한 수백만개의 촛불이 광화문 광장을 뒤덮었던 2016년의 사자성어는 ‘군주민수(君舟民水)’였다. ‘강물이 화가 나면 배를 뒤집을 수 있다’는 뜻으로 촛불시민의 항쟁을 함축적으로 담아냈다. 2017년엔 ‘사악하고 그릇된 것을 깨고 바른 것을 드러낸다’는 의미의 ‘파사현정(破邪顯正)’이 선정됐다. 지난해에는 ‘임중도원(任重道遠)’이었다. ‘짐은 무겁고 갈 길은 멀다’는 뜻으로 당시의 상황을 잘 드러냈다.  
촛불혁명의 정신을 이어받은 문재인정부는 검찰과 선거제도 개혁을 위한 입법을 추진해왔다.  검찰의 권력을 분산시키기 위한 공수처 설치와 검찰과 경찰의 수사권 조정이 검찰개혁법의 핵심이다.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골자로 하는 선거법 개정은 표의 등가성을 높이는 방안이다. 그러나 한국당은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폭력까지 동원하여 개혁 입법을 막았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서둘러 선거법 개정안을 처리해야 하지만, 극한대립으로 본회의조차 열지 못한다. 정치적 이해만을 고려한 행동으로 보인다.
황교안 대표가 들어선 이후 여야는 극한대립으로 치닫고 있다. 황대표는 툭 하면 장외로 나가 보수집회를 주도하거나 국회 청와대 앞 광화문광장에서 농성을 벌였다. 심지어 단호한 의지를 보인다며 삭발까지 했다. 청와대 앞에서 단식투쟁을 하다가 병원에 실려 가기도 했다. 독재정권시절 민주인사들의 투쟁방식을 30여년 만에 소환한 것이다. 공안검사였던 황대표는 당시 이들의 투쟁방식을 극도로 혐오했을 것이다. 어쩌면 생애 처음으로 삭발과 단식, 농성을 경험했을지도 모른다.
한국당은 문재인정부의 모든 정책에 반대한다. 소득주도성장 등 경제정책은 물론, 한반도 평화를 위한 대북정책, 검찰개혁, 선거개혁 등에 모두 반대로 일관한다. 이처럼 대화와 타협이 아닌 거부와 반대만 일삼는 정치를 비토크라시(vetocracy)로 일컫는다. ‘거부(veto)정치’라고나 할까. 그래서 문희상 국회의장의 한탄은 가슴에 와 닿는다. “한국정치에 데모크라시는 온데간데 없고, 비토크라시만 난무하고 있다. 상대를 경쟁자, 라이벌이 아닌 에너미, 적으로 여기는 극단의 정치만 이뤄지는 상황에 자괴감을 느낀다.”
그렇다고 해서 문재인정부가 한국사회 개혁에 제대로 나서고 있다고는 보기 어렵다. 임기 반환점을 돌아섰는데도 뚜렷한 성과가 별로 없다. 국회 때문이라는 말은 변명처럼 들릴 수도 있다. 경제개혁은 실종됐다. 국민을 들뜨게 했던 남북대화도 중단된 상태다. 여기에 조국 전 법무부장관을 둘러싼 의혹과 공방은 지지자들조차 양분시키지 않았던가. 날로 치열해지는 청와대와 검찰의 갈등은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경제성적표가 좋은 것만도 아니다. 고강도 대책에도 불구하고 집값은 계속 올라 서민의 허탈감을 불러온다. 경제성장도 제자리를 맴돈다.
한국사회의 양극화는 해소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진영논리가 더욱 극성을 부려  갈등만 깊어지고 있다. ‘조국사태’ 당시 광화문 광장과 검찰청이 있는 서초동, 국회가 있는 여의도에서의 대규모 집회가 보여준 것처럼 갈가리 찢겨져 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자기만이 옳다며 남의 얘기는 듣지 않으려는 독행기시의 태도는 정치권에 국한되지 않는다. 이념적 갈등도 마찬가지이다. 오히려 정치권이 특정진영의 환심을 사기 위해 애쓰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황대표가 전광훈목사의 집회에 동참한 것도 그렇다.            
정치권은 물론 국민까지 편을 갈라 싸우는 현실 빗댄 ‘공명지조’는 교수들의 안타까움을 담은 표현일 것이다. 그러나 현실을 방관하고 경고하는 것만이 지식인의 태도는 아니다. 옳고 그름을 가려 행동하는 양심이 바람직한 태도이다. ‘나무 아미타불’이라며 염불만 되뇌일 만큼 한국사회가 한가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해를 보내며 다가올 내년에 해야 할 일을 구상하는 자기성찰이 필요한 때이다. 올해가 3·1운동 100주년을 맞는 해라면 내년은 광주민주화운동 40주년이 되는 해이다. ‘광주정신’을 다시금 새겨본다.
김주언(논설주간ㆍ전 한국기자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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