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언 칼럼>20·30세대는 왜 펭수에 열광할까

<김주언 칼럼>20·30세대는 왜 펭수에 열광할까

  • 기자명 김주언 논설주간
  • 입력 2019.12.12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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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를 뜨겁게 달군 인물은 아무래도 펭수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아니 펭수는 펭귄이니까, 인물이 아니라 동물이다. 살아있는 동물도 아닌 캐릭터일 뿐이다. 그런데도 ‘올해의 인물’에 뽑혔다. 취업포털 인크루트의 조사 결과이다. 방송연예분야에서 송가인 BTS 등 스타들을 누르고 1위에 올랐다. 성인 2,333명의 투표결과 20.9%를 얻었다. 사회문화 스포츠 경제기업 등 다른 분야의 유명인들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20·30세대가 가장 좋아하는 펭수의 인기비결은 무엇일까. 그들은 왜 펭수에 열광하는 것일까.  
펭수는 EBS가 낳은 캐릭터이다. 남극 ‘펭’씨에 빼어날 ‘수’를 쓴다. 키 210㎝의 자이언트 펭귄이다. 뽀로로 같은 스타가 되기를 꿈꾸며 남극에서 인천 앞바다까지 헤엄쳐왔다. 나이는 열 살이다. 오디션을 거쳐 연습생으로 발탁됐다. 펭수는 인간세계의 규칙을 따르지 않는다. 그래서 성별 이분법을 거부한다. 남자인지 여자인지 묻는 질문에 열 살짜리 펭귄이라고만 말한다. 성역할 고정관념을 거부한다. “남자 친구도, 여자 친구도 없다.” 따라서 태어날 때부터 주어진 성별에 따른 성역할을 수행하도록 요구하는 가부장적 질서를 부정한다. 
고정된 성역할은 교육에 의해 길들여진 것일 뿐이다. 여자아이들이 축구하는 걸 ‘선머슴 같다’고 말하거나 남자아이들이 소꿉장난하는 걸 ‘계집애 같다’고 가르치는 고정관념이 그것이다. 여자아이가 여자아이를 좋아하고 남자아이가 남자아이를 좋아하면 자연의 섭리를 거스리는 일이라고 가르치는 것 역시 마찬가지이다. ‘활동적 남성과 가정적 여성’으로 편가름하거나 여성의 우상을 ‘현모양처’로 포장하던 가부장제 역시 남성들이 만들어낸 질서가 아니었던가. 펭수를 좋아하는 20·30세대의 달라진 성역할에 대한 의식을 잘 보여준다.
펭수는 인간세계의 규칙을 따르지 않는다. 한국 특유의 상하 위계관계에 신경쓸 필요도 없다. 소속사 사장을 경칭없이 부르며 “밥 한 끼 합시다”라고 외친다. 돈이 필요할 때는 망설임 없이 사장에게 요구한다. 후배 군기를 잡겠다고 전화하는 선배의 전화는 무시한다. 매니저와의 내기에서 이긴 뒤 삭발공약을 지키지 않았다며 소송을 걸기도 한다. 재판을 맡은 어린이들은 ‘약속 지키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조연출인 매니저는 ‘을’로서 ‘갑’인 선배들 앞에서 거부의사를 밝힐 수 없었다고 호소한다. 아이와 어른이 함께 공감할만한 내용이다.  
펭수는 당돌하면서도 선을 넘는 듯 넘지 않는다. 어떤 상황에서도 당당하다. 황당한 일이 벌어지면 주저하지 않고 말한다. 가슴이 뻥 뚫리는 사이다 발언이다. 펭수의 어록을 보면 꼰대식 사고방식을 뒤집는 ‘안티꼰대’가 주류를 이룬다. 나이나 권위, 편견을 앞세운 기성세대에 주눅들지 않고 자기 말을 하는 펭수의 ‘꼰대퇴치 신공’이 20·30세대의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사장이 편해야 회사가 잘 된다”는 통념을 확실하게 무너뜨리며 사회부조리의 핵심을 꿰뚫기 때문이다. 일종의 대리만족인 셈이다.
이러한 현상은 90년대생의 의식과 맞닿아 있다. 네 달새 직장을 두 번이나 갈아치운 92년생 A씨. 꼰대같은 분위기를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그는 다른 사람의 이해를 바라지 않았다. 성급하고 참을성 없는 사람으로 비쳐져도 괜찮았다. “내버려만 달라”고 덧붙였다. 자신에 대한 평가는 유보해 달라고. 그는 이렇게 주장한다. “우린 이렇습니다. 이해는 바라지 않겠습니다. 내버려만 두세요. 우리도 그러하겠습니다. 모두의 행동엔 필연적 이유가 있는 법입니다. 방임의 방식으로 각자를 존중합시다.”(임홍택 ‘90년생이 온다’)
안티꼰대 운동은 세계적 현상이기도  하다. 16살짜리 스웨덴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의 당돌함이 잘 말해준다. 지난 9월 미국 뉴욕에서 열린 유엔총회에서 툰베리는 지구온난화를 방치해온 기성세대를 향해 맹공을 퍼부었다. 세계 정상들의 면전에서 “어떻게 당신들이 그럴 수 있는가?”라고 꾸짖은 것이다. 툰베리는 세계 최고 권력자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향한 ‘레이저 눈빛’으로 화제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당돌한 그의 행동은 ‘툰베리 효과’로 불리며 전 세계로 확산됐다.  
펭수를 바라보는 기성세대의 눈은 여전히 꼰대스럽다. JTBC 뉴스룸이 펭수의 성별을 알아냈다고 보도한 것도 그렇다. 한 신문은 펭수가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 홍보를 위해 외교부 청사를 찾았을 때 신원확인 절차가 없었다고 보도했다. 논란이 일자 신원을 확인한 외교부 관계자에 따르면 주민등록번호 앞자리가 남성이라는 것이 기자의 설명이었다. 장난스러운 보도일 수도 있다. 하지만 대다수 팬들은 우호적이지 않았다. 펭수가 남자도 여자도 아니라고 말하는데 굳이 성별을 확인하는 이유가 뭐냐는 것이다.
보건복지부 유튜브 계정은 남극에 두고온 가족을 보고 싶다는 펭수에게 가족사진 일러스트를 선물했다. 성 중립적 외모를 가진 펭수와 달리 일러스트의 가족은 외모부터 구성까지 전형적이었다. 수염자국이 거뭇거뭇 난 아빠와 뒷머리 쪽을 찐 엄마, 공갈젖꼭지를 물고 있는 동생까지 있었다. 전통적 성역할에 따른 4명의 ‘정상가정’으로 구성된 가족사진 일러스트였다. 펭수는 고맙다는 말 대신 이를 단호하게 거부했다. “저 동생 없는데요” 펭수를 있는 그대로 존중해 달라는 이유였을 것이다. 팬들은 이러한 펭수에게 환호한다.
 ‘특별해서 외로운 별’ 펭수. 유달리 큰 덩치 때문에 남극에서 따돌림을 당했던 기억이 있다. 지구온난화로 삶의 터전은 허물어져 가고 있다. 낮은 목소리를 가졌지만 걸그룹 오디션에 참가하고 공룡알을 품어 부화시키기도 할 만큼 자신만의 꿈을 꾼다. 젠더에 구애받지 않고 무엇이든 할 수 있다. 달리기를 못해서 고민이라는 친구에게는 “너무 속상해하지 마세요. 잘하는 게 분명 있을 겁니다. 그걸 더 잘하면 돼요”라고 말해준다. 펭수는 소수이자 약자, 그리고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청춘으로서 존재한다. 
20·30세대는 N포세대로 불린다. 취업 결혼 출산 주택마련 등 많은 것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세대라는 뜻이다. 그러나 청년세대에게 이러한 잘못된 현상을 물려준 기성세대는 자신들의 잘못을 고치려 하기보다는 이들을 탓하기만 한다.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질서에 편입되도록 강요한다. 가정에는 아직도 가부장제가 또아리를 틀고 있다. 취업난을 뚫고 간신히 들어간 직장은 상명하복 문화로 군대처럼 답답할 뿐이다. 직장 상사의 갑질은 이들을 숨 막히게 한다. 펭수의 행동은 숨 막히는 공간에 해방감과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한다.
요즈음 청년들을 바라보며 기성세대는 많은 혼란을 느낀다. 특히 90년대생들은 기성세대에게 미지의 영역이자 탐구의 대상이기도 하다. 문재인대통령이 청와대 직원들에게 선물한 책 ‘90년생이 온다’에서 이들의 특성을 엿볼 수 있다. 간단함, 재미지향, 솔직함이 그것이다. 이들은 특히 ‘꼰대’를 거부한다. 자신에게 ‘꼰대질’하는 기성세대와 자신을 ‘호갱’ 취급하는 기업은 가차없이 외면하고 배제한다. 심지어 잔소리해대는 엄마 아빠에게도 “꼰대”라며 서슴없이 반발한다. 
이른바 ‘꼰대근성’은 틈만 나면 가르치려 드는 데 있다. 결혼을 강요하고 아이를 낳으라고 충고한다. “노력하면 무엇이든 이룰 수 있다”는 게 슬로건이기도 하다. 이들에게는 ‘노오력’이란 조롱섞인 말이 돌아올 뿐이다. 황교안 한국당대표가 서울대 특강에서 한 말도 마찬가지이다. “대한민국은 좀 더 일해야 하는 나라이다.” 이 말은 청년들의 상처에 소금을 뿌린 격이다. 그러니 ’꼰대스럽다‘는 말밖에 들을 수 없다. 펭수는 나를 포함한 꼰대들에게 교훈을 준다. 고정관념과 편견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날 수 있는 기회를 주었으니까. “펭~하”   

김주언(논설주간ㆍ전 한국기자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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