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백 숲 거문도 등대와 망망대해 백도에서 삶을 읽다

동백 숲 거문도 등대와 망망대해 백도에서 삶을 읽다

  • 기자명 박상건 기자
  • 입력 2019.12.11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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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건 시인의 섬과 등대여행] <66> 여수시 삼산면 거문도등대

[데일리스포츠한국 박상건 기자] 여수항에서 117㎞ 해상에 거문도가 있다. 여수시 삼산면에 속한 거문도는 여수와 제주도 중간에 위치한 다도해 최남단 섬이다. 거문도는 서도, 동도, 고도 3개 섬으로 이뤄져 있는데 지리적 여건으로 열강의 침입을 받았다.

거문도 녹산무인등대
거문도 녹산무인등대
거문도 등대로 가는 해변
거문도 등대로 가는 해변

거문도 양 끄트머리에 등대가 있다. 거문도 관문 서쪽 음달산 끝자락에 녹산 무인등대, 동쪽 끄트머리 수월산 절벽 위에 유인등대가 있다. 거문도 등대로 가는 길은 ‘목넘어’, ‘무넘이’로 불리는 섬모퉁이에서 일단 발길을 멈춘다. 육지의 끝이고 다시 바닷길을 건너 등대로 간다.

거문도 동백터널
거문도 동백터널

등대로 가는 길에는 환상의 동백터널이 있다. 형형색색의 야생화와 풍란이 자생한다. 동백 사이사이 잣나무와 밤나무, 시누대 숲도 함께 한다. 등대에는 집배원이 오지 않아서 여객터미널에서 우편물을 가져온다. 동행한 등대원은 동백꽃 절정기에 붉게 떨어진 동백꽃을 밟지 않기 위해 비켜 걷고 있었다. 자연과 한 호흡으로 사는 등대원의 삶의 한 대목을 읽을 수 있었다.

동행한 등대원은 여수에서 뱃길로 6시간 걸리던 소리도 등대원 시절에는 지게에 배터리를 짊어지고 등대로 가는 산길에서 배터리 수은이 터져 독성으로 런닝구가 펑크 나고 피부가 다 벗겨지기도 했단다. 피곤에 지쳐 잠들었는데 그 독성 탓에 이불도 불에 탄 듯 구멍이 났더란다.

주의보에 보급선이 오지 않으면 나무를 베어 군불을 지피고 집배원이 섬에 올 수 없는 탓에 전보가 늦어 집안 대소사를 놓치기가 일쑤였다. 초도라는 외딴 섬에서는 사람의 시체를 가마니에 싸서 바람에 썩히는 소위 ‘초분’ 탓에 도깨비 혼령에 떨어 머리끝까지 땀이 범벅이 되어 줄행랑을 치기도 했던 것이 이런 산길의 추억이란다.

거문도 등대로 가는 길은 오른편 절벽을 탄다. 절벽 아래 바다에는 노을이 지고 있었다. 어선도 어부도 노을에 젖어든다. 그 노을 속에는 보이는 섬들은 모는 각도에 따라 부처 같기도 하고 남성의 상징으로 도드라지는 선바위 모습이 이채롭기도 했다.

거문도 서도 선바위노을
거문도 서도 선바위노을

수월산 동백 숲 길이는 4㎞. 중간지대에 지친 나그네에게 쉬었다 가라는 듯, 바다 쪽으로 나무벤치가 마련돼 있었다. “한 사람이 와도 괜찮소~ 두 사람이 와도 괜찮소~”라며 넉넉하게 빈자리를 내어줬다. 그렇게 도착한 거문도등대 앞에서 일몰은 절정에 이르렀다.

그 바다로 어선들이 돌아온다. 노을바다에 깃발을 나부끼며 돌아오는 어선의 모습이 참으로 정겹고 평화롭다. “어기영차 노저어가세/어기영차 노저어가세/남해바다가 어디메냐/서해바다가 어디메냐/이 바다를 건너면은 고기 바탕이 나온다네/어야디야 어야디야/어야디야 어야디야 어야디야 노저어가세” ‘거문도 뱃노래’는 전라남도 무형문화재 제1호이다.

거문도 등대 팔각정
거문도 등대 팔각정
거문도항
거문도항

거문도 등대는 1905년 4월에 처음 불을 밝혔다. 긴 역사를 지닌 남해안 최초의 등대로 숙소, 사무실 등 전체 규모로는 동양 최대 규모이다. 등대는 연와조로 만든 하얀 색상이다. 높이는 6.4m, 해수면으로부터는 69m에 이르는 절해의 고도에 서 있다.

3명의 등대원이 근무하는 거문도 등대는 15초마다 한 번씩 불빛을 깜박인다. 23마일(42km)까지 불을 밝힌다. 거문도 는 1885년부터 2년 동안 영국해군의 점령을 받았다. 이후 1988년 강대국과 왜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등대가 설치됐다. 현재 거문도등대는 오륙도, 영도등대, 대마도 앞까지 연락이 가능한 위성항법장치 GPS가 설치돼 있다.

등대 옆에는 ‘관백정’이라는 팔각정 쉼터가 있다. 두 연인이 끝없이 펼쳐진 해원을 바라다보며 침묵한다. 그들의 손짓은 저 바다를 향해 있다. 이 광활한 바다에서 무슨 말이 필요하랴. 날 좋은 날에는 한라산과 절대고독의 상징인 백도가 훤히 보이는 전망 포인트다.

백도는 거문도 동쪽으로 28㎞ 떨어진 해상에 떠있다. 지도를 펼쳐 놓고 보면 백도 아래 남쪽 해역에는 더 이상 섬이 없다. 망망대해다. 그렇게 백도는 절대 고독의 섬이다. 섬은 39개의 바위섬으로 이뤄져 있다. 섬들은 군도를 이루어 상백도와 하백도로 구분한다. 특히 하백도 작은 섬들은 해상의 조각공원을 방불케 할 정도로 기암괴석들의 전시장이다. 그 섬을 비집고 들어가니 궁궐에 들어와 있을 정도로 웅장한 바위섬과 태고의 신비로움에 전율했다.

하백도 기암괴석 위 하늘
하백도 기암괴석 위 하늘

백도는 원래 일백 개의 섬이라는 뜻에서 유래했다. 일백 백자를 써서 ‘百島’라고 부르다가 다시 섬을 헤아려보니 일백 개에서 하나가 모자란 아흔 아홉 개더라는 것. 그래서 ‘한일(ㅡ)’자 한 획을 뺀 ‘흰 백(白)’자의 백도(白島)라고 불렀단다. 실제로 섬은 온통 하얗다. 지금은 39개의 섬이 바다에 떠있다. 그러니 하얀 섬임으로 ‘백도’라고 부른다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검푸른 망망대해 기암괴석과 초목들은 깊고 깊은 고독과 끈끈한 인내가 빚은 것이다. 일본은 민족정기를 끊겠다면서 우리 영토 곳곳에 쇠말뚝을 박았다. 이 섬도 예외는 아니어서 문화재 전문가로 이뤄진 학술답사팀이 이를 발견하고 뽑아냈다. 그 하얀 절벽에는 지금도 붉은 녹물이 흘러내린 흔적들이 많다.

그런데 그 말뚝을 뺀 그 자리에 새들이 둥지를 틀었다. 풀들은 둥지의 새똥을 먹고 자랐고 풀씨들이 날아가 섬 끝자락마다 온통 푸르고 붉은 야생화 군락지를 형성했다. 참으로 위대한 생명력이 아닌가. 섬 정상에서 야생화 꽃망울이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을 바라보노라니, 참으로 신비롭기 그지없었다. 저것은 우리 민족을 상징하는 생명력의 기호가 아니고 무엇이랴.

바위틈에는 원추리, 나리, 찔레, 동백나무, 후박나무, 곰솔 등 아열대식물과 350여종의 식물들이 살고 있다. 섬은 멀리서 바라보았을 때는 조그만 바윗돌 같았다. 풍란이나 바위꽃을 심어 놓은 분재 같았다. 그러나 가까이 가서 바라본 백도의 절경 앞에서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바위틈에는 천연기념물 흑비둘기를 비롯해 가마우지, 휘파람새, 팔색조 등 30여종의 희귀 조류가 서식한다. 새들은 바위 구멍마다에 집을 짓고 알을 낳는다. 어떻게 이 망망대해에서 비바람을 그으면서 작은 생물들을 키울 수 있었을까나. 무엇 하나 버릴 것 없이 서로의 희망이 되고 의지가 되며 삶의 보금자리를 꾸리는 저 모습...하얀 섬, 백도에 푸른 생명을 이식하는 저 자연의 위대함과 조화로움 앞에서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백도 앞 바다는 연평균 수온이 16.3도다. 붉은 산호 등 170여종의 해양생물이 서식하기에 좋다. 풍부한 어류가 살기에 거문도 어부들은 이곳을 즐겨 찾는다. 물은 유리처럼 맑다. 이런 해양식물들의 생생한 모습을 감상할 있는 것만으로 감사하고 행복한 일이다.

백도 석불바위
백도 석불바위

기암괴석들은 각시바위, 형제바위, 왕관바위, 궁성바위, 바둑판 바위, 비행기 바위, 수덕사 입구에 서 있는 거대한 불상을 그대로 빼 닮은 석불바위, 성모마리아상 바위, 피아노를 치는 모습을 그대로 조각한 듯 피아노를 치는 여인상 바위 등 그야말로 제 생김새에 맞는 명찰을 달고 백도 해상조각공원을 연출했다.

마치 지구촌 예술가들이 모여 다듬어 전시한 것처럼 바다 위 조각품들은 천의 얼굴로 웅장하고 기이한 풍경을 연출했다. 망망대해 그 무인도, 백도에 가면, 우리가 살아온 날과 역사의 뒤안길을 반추하며 그저 무념무상에 빠질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글・사진: 박상건(시인. 섬문화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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