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을 치유하는 길, 아픔과 희망의 메신저

내 마음을 치유하는 길, 아픔과 희망의 메신저

  • 기자명 박상건 기자
  • 입력 2019.11.19 16:58
  • 0
  • 본문 글씨 키우기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박상건 시인의 섬과 등대여행] <63> 부산광역시 가덕도등대

[데일리스포츠한국 박상건 기자] 가덕도는 진해시 용원동에서 4㎞, 거제도에서 10㎞, 대마도와 48km 떨어져 있다. 가덕도는 보개산이 바다에 침몰됐다가 솟았다는 전설이 깃든 곳으로 부산에서 가장 큰 섬이다. 부산 신항만이 건설되면서 해안도로를 따라 승용차로도 오갈 수 있다.

대항마을과 연대봉 가는 길
대항마을과 연대봉 가는 길

가덕도의 주봉인 연대봉은 459.4m 높이로 해금강과 거제도 앞 바다의 올망졸망한 섬들을 한 눈에 조망 할 수 있다. 부산시가 추천하는 갈맷길 5코스이다. 통통대는 고깃배와 유유히 미끄러져 가는 여객선 등 다양한 선박들의 항해 장면은 한 편의 자연다큐를 보는 듯하다.

가덕도등대는 부산시 강서구 대항동 산 13-2 번지에 있다. 등대 아래는 강태공들의 쉼터로 입질을 즐길 수 있는 포인트다.

부산에서 배를 탈 경우 가덕도 첫 섬마을이 장항마을이다. 용원에서 장항~두문~천성~대항~외항포에 이르는 가덕도 정기여객선이 처음 닿는 곳이다. 마을 뒤로 독뫼산이 있고, 몽돌마당이 있는 백옥포, 코바위, 처녀총각바위, 입도, 호남도, 토도 등 낚시터로 유명하다. 아직도 해녀들의 물질을 볼 수 있다. 그만큼 해산물이 풍부한 섬이다.

두 번째 마을이 두문마을. 몽돌해변이 장관이다. 응주봉에서 뻗어 내린 홍착골 계곡 또한 일품이다. 홍착골 계곡은 섬 안의 숲속에서 삼림욕을 즐길 수 있는 특별한 곳이다. 앞바다에는 병산열도로 일컫는 갈미섬이 출렁인다. 낚시 포인트로도 유명하다.

등대로 가는 길
등대로 가는 길

세 번째 포구마을이 천성마을. 연대봉의 중심 마을이면서 바다가 동그랗게 호수처럼 퍼진 고요한 어촌이다. 가덕도와 거제대교 구간이 지나는 지점이다. 천성진성, 천성산 국군묘지, 일본군 고사포 진지 등 가덕도의 아픈 역사를 고스란히 전해주는 유적이 있는 곳이다. 낚시터로도 유명한 마을이라서 낚시가게와 민박집 간판을 많이 볼 수 있다. 앞 바다는 숭어 반 물 반일 정도로 숭어천국이다. 재래식 숭어잡이 방식을 200년째 이어오고 있는 마을이다. 실제로 여행가서 이곳에서 3명이 30분 동안 숭어 배낚시를 했는데 70여 마리를 잡았다.

대항마을은 가덕도 마지막 능선인 국수봉과 그 끝자락 남산의 가덕도 등대로 가는 길목이다. 가덕도 끝자락 어촌마을인 외양포는 정기여객선으로도 종착지이다. 해송과 몽돌이 어우러지고 패총과 선사시대 유물이 산재한다.

외양포
외양포

외양포에서 등대로 가기 위해서는 269m 국수봉 숲길을 타다가 마지막 남산 아래줄기까지 40분 정도 걸어야 한다. 나뭇잎 흔들어대는 소리와 새 소리 가득한 숲길을 걷다가 지치면 숨을 고르며 뒤안길을 돌아보라. 바로 푸른 바다가 펼쳐지고 해안가 절경과 함께 낮게 엎드려 고요한 어촌과 들판의 평화로운 풍경이 아름답기 그지없다.

등대로 가기 위해서는 두 번에 걸쳐 초소를 거친다. 절차가 좀 번거롭지만 반대로 그만큼 안전하고 조용하게 여정을 보낼 수 있는 곳이다. 가덕도등대 앞바다는 말 그대로 선박박물관이다. 국내외 화물선, 여객선, 컨테이너선, 군함들이 모두 이 길목을 지난다. 세상에 선박의 종류가 이렇게도 많은가 싶어진다.

가덕도 일출
가덕도 일출

기원전 55,000년경 소나무를 파내어 만든 카누를 이용해 호주대륙으로 건너갔던 뉴기니 원주민들로부터 시작된 선박의 역사가 떠올렸다. 본디 선박은 물건을 실어 나르는 데 사용됐다. 그러나 배는 점차 군사적 경제적으로 전쟁의 대상이 되고 수단이 되었다.

대서양을 가로질러야만 했던 스페인, 태평양을 가로질러야 했던 미국 등은 장기간 항해 부담 탓에 제일 먼저 보급선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적기에 보급선이 올 수 있느냐는 문제는 곧 군사들 사기 문제와 직결됐다. 그러자 보급선을 노린 해적들이 생겨나 카리브해를 중심으로 충돌이 잦아졌고, 포클랜드 해전에서는 독일과 영국 간에 보급선 방어와 탈취작전이 반복됐다. 이러한 보급선의 역할 탓에 미국은 모든 함선에 한 달 이상 식량을 적재토록 했고 이라크전쟁 때도 보급선 문제를 가장 먼저 고려한 후 작전을 시도했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 역시 적군의 보급선이 상륙할 수 없도록 막아 굶주린 왜군들의 사기를 땅에 떨어지게 했다.

이처럼 등대에서는 지난날의 역사를 읽을 수 있다. 힘없는 민족문화는 내일 당장 사멸한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는 내일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일본의 끊임없는 대륙진출 야망으로 인해 한반도 요충지에 등대를 세워지게 됐다. 1891년 경기만 풍도에서 청나라와 교전을 벌일 때 뱃길을 못 찾아 함선 통행에 어려움을 겪자 우리 정부에 등대설비를 위한 측량조사를 요청했다. 가덕도등대는 일본이 우리나라를 상륙하기 전 고려, 조선을 정탐하던 곳이었다.

가덕도 옛등대
가덕도 옛등대

가덕도 옛 등대는 팔각 백색콘크리트 건물로 건물의 내구력을 높이려고 붉은 벽돌의 외벽 위에 흰색 페인트칠을 했다. 출입구 위에는 조선왕실의 문장인 오얏꽃 문양이 새겨져 있다. 건물 지붕과 처마에 해당하는 사각의 테두리 장식들도 이국적이다. 건물은 작지만 단아하고 기품이 있다. 2003년 9월 6일 부산시 유형문화재 제50로 지정됐다.

등대 전시실
등대 전시실

가덕도등대는 등대 불을 밝힌 지 100주년이 되던 2010년에 등대 100년 역사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기념관을 개관했다. 3층짜리 건물로 제1전시설에는 가덕도등대 유물 20여 점이 전시돼 있다. 제2전시실에는 가덕도 민속자료 250여 점이 눈길을 끈다. 각종 농기구와 그릇, 수납장, 가마솥, 제기, 탈곡기, 맷돌, 지게 등 생활용품, 각종 어구가 전시돼 있었고 제주도와 가덕도에서만 생산된 것으로 전해져오는 탕건(宕巾)이 선보였다. 이곳에는 등대체험을 하는 일반인에게 개방하는 숙소도 마련돼 있다.

가덕도 등대 불빛
가덕도 등대 불빛

현재 새 등대는 울산 화암추등대(41m)에 이어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높은 40.5미터에 이른다. 등탑 내부는 나선형으로 된 198개의 계단을 돌고 돌면서 올라가야 한다. 등롱은 순수 국산품으로 70밀리미터 KRB-37호이다. 불빛은 12초마다 한 번씩 불빛이 반짝이고 자그마치 48km거리 까지 비춘다.

가덕수로에는 국내외 화물선, 여객선, 컨테이너선, 군함들이 모두 이 길목을 지난다. 안전한 항해를 위해 곳곳에 등부표가 설치돼 있다. 가독도 등대에서 관리하는 이런 항로표지는 365일 마도로스와 선박의 안전한 항해를 돕는 이정표이다.

가덕도 등대는 거가대교 야경을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는 포인트다. 등대에서 하루 정도 머물면서 이런 선박들의 눈과 귀가 되는 등대사랑, 등대불빛처럼 사랑의 가교역할을 등대원의 참 사랑을 일깨우는 일은 살면서 마주하기 쉽지 않은 아주 값진 추억이고 기쁨이며 행복이리라.    글・사진: 박상건(시인. 섬문화연구소 소장)

박상건(시인. 섬문화연구소 소장)
박상건(시인. 섬문화연구소 소장)

 

저작권자 © 데일리스포츠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