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언 칼럼> 세계의 ‘툰베리들’ “우리 집이 불탄다”

<김주언 칼럼> 세계의 ‘툰베리들’ “우리 집이 불탄다”

  • 기자명 김주언 논설주간
  • 입력 2019.10.10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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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의 16살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가 불러온 10대들의 기후변화예방 목소리가 세계 곳곳에서 울려 퍼진다. 툰베리는 최근 미국 뉴욕에서 열린 유엔 기후행동정상회의에서 격정적 연설로 열띤 호응을 얻었다. 그는 세계정상들을 면전에서 꾸짖었다. “당신들이 어떻게 감히 그럴 수 있냐. 대멸종의 시작점에 있는데 여러분들은 오로지 돈과 영구적 경제성장에 관한 동화를 이야기할 뿐이다.” 그는 미국 의회에서도 연설했다. 파리 기후협약에서 탈퇴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연설을 듣지도 않고 퇴장한 뒤 ‘어린 소녀’라고 조롱했다.
‘당돌한 소녀’ 툰베리는 고등학생이다. 지난해 8월 스톡홀롬 의사당 앞에서 기후변화를 막기 위한 정책을 요구하며 1인시위를 벌였다. 청소년들의 열띤 호응에 힘입어 ‘미래를 위한 금요일’이라는 기후파업운동으로 전환됐다. 이 운동은 세계로 확산해 3월에는 세계 110개국에서 140만명이 동맹휴업에 나섰다. 그는 4월 유럽의회에 초청받아 ‘지금 집에 불이 났어요’란 주제로 연설했다. ‘차세대 리더’로 선정돼 타임지 표지를 장식하기도 했다. 그의 1인시위로 촉발된 지구온난화 각성현상은 ‘툰베리 효과’로 불린다.
툰베리는 강박장애와 선택적 무언증을 동반하는 아스퍼거 증후군을 앓고 있다. 하지만 이를 극복하고 환경운동에 나섰다. 부모에게 채식과 비행기탑승 자제를 권유한다. 이번에 뉴욕에 가면서 비행기를 이용하지 않고 8월의 뜨거운 태양 아래 친환경 태양광 요트를 타고 항해했다. 국제 앰네스티는 ‘미래를 위한 금요일’에 양심 대상을 수여했다. 툰베리는 노르망디 자유상도  받았다. 그는 최연소 노벨평화상 후보에도 올라 트럼프 대통령의 유력한 경쟁자로 떠올랐다. 툰베리의 메시지는 명확하다. 하나뿐인 지구를 지키길 원한다면 당장 행동을 취하라는 것이다. 그의 메시지는 유럽은 물론, 아프리카 아시아까지 커다란 반향을 몰고 왔다. 국내에서도 청소년들의 연대운동이 벌어졌으나 여론의 관심을 덜 한 편이다. 이제 세계에서 제2의 툰베리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10대 청소년은 물론, 어린 초등학생까지 환경보호를 위한 즉각적 정책대응을 요구하며 시위에 나섰다. 자신들이 살아갈 미래를 위해 어론들의 각성을 촉구한 것이다.
툰베리의 메시지는 세계로 확산되고 있다. 지난 달 하순 유엔기후행동정상회의를 앞두고 세계 160여개국에서 400만명의 청소년들이 수천개의 도시를 뒤덮었다. 미국 영국 호주 등 부유한 나라들로부터 필리핀 케냐 우간다 등 제3세계 청소년들까지 거리로 몰려 나왔다. 이들은 “우리집이 불탄다”고 외쳤다. 지구온난화로 인한 위기를 경고한 것이다. “당신들에겐 미래가 있었다. 우리도 그래야 한다.” 정치권과 기성세대를 향한 항의의 목소리가 지구촌 곳곳에서 울려 퍼졌다. 기후변화를 막을 긴급조치를 정치권에 요구한 것이다.
나라마다 내세운 목표는 달랐다. 녹아내리는 빙하로 국토가 가라앉는 솔로몬제도와 바누아투는 해수면 상승이 최우선 과제였다. 세계에서 공기질이 가장 나쁜 인도의 청소년들은 대기오염의 해결을 촉구하고 나섰다. 세계 최대 석탄 생산국인 호주는 석탄폐지 구호가 나왔다. 구호도 각양각색이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겨냥한 미국 청소년들의 ‘지구를 위대하게’나 태평양 섬나라의 ‘우리는 침몰하지 않는다‘는 구호가 눈길을 끈다. ’이 행성은 상상 속의 남자친구보다 더 뜨거워지고 있다‘라는 웃음짓게 하는 플래카드도 눈에 띄었다. 
“내가 툰베리다”라고 외치는 ‘제2의 툰베리’들도 속속 등장했다. 툰베리에게 영감을 받은 10대들이 “우리의 미래를 빼앗지 말라”며 기후변화 위기에 무감각한 정치권을 꾸짖고 근본대책을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이들은 투표권이 없지만 1인시위 등을 통해 사회적 관심과 노조 등 기성세대의 동참을 이끌어냈다. 특히 이들의 활동으로 해당 지역 단체장이나 지역의회 수장들로부터 기후변화대책을 논의하겠다는 약속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글로벌 연대를 통해 정치적 성과를 거둔 진정한 영웅들이다. 
미국 콜로라도주 덴버의 하벤 콜멘은 13살이다. 열살이던 초등학교 5학년 수업시간에 자신이  좋아하던 나무늘보가 잦은 산불로 멸종할 수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콜멘은 숲의 황폐화를 막을 대책을 묻는 서한을 지역 관료들에게 보냈다. 지난 1월부터 매주 금요일 콜로라도 주의회 앞에서 등교거부 시위를 벌인다. 3월에는 미국 전역에서 열린 청소년들의 기후변화파업을 주도했다. 그는 친구와 부모 이웃학교 학생들에게 강연하면서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알리고 있다.
뉴욕 유엔본부 앞 등교거부 시위로 유명해진 미국의 알렉산드리아 비야세노르는 14살이다.  지난해 고향인 캘리포니아주를 덮친 산불로 천식을 앓게 되면서 환경문제에 관심을 가졌다. 뉴욕으로 터전을 옮긴 그는 환경단체 ‘어스 업라이징(Earth Uprising)’을 만들어 활동했다. 지난달 23일 유엔기후행동정상회의 직후 툰베리 등과 함께 “아동권리조약 의무사항을 지키지 않았다”며 독일 프랑스 브라질 아르헨티나 터키 정부를 유엔에 제소했다. 30년전 합의한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지 않아 아동건강권을 침해한다는 이유에서다.
태국의 릴리 사티탄사른(12살)은 일회용 비닐봉지사용 금지운동에 앞장서고 있다. 릴리는 4년 전 태국 해변에 너무 많은 비닐봉지 쓰레기가 있는 것을 보고 놀랐다. 지방 관료들에게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서한을 꾸준히 보냈다. 6월에는 쁘라윳 짠오차 총리에게 면담을 요청하기도 했다. 현재 일회용 비닐봉지사용 금지를 촉구하는 온라인 청원운동을 벌이고 있다. 릴리의 당돌한 운동으로 태국 유통 대기업 센트럴그룹이 6월 비닐봉지 자동지급을 철회하기도 했다.
캐나다의 엠마 림(18살)은 소셜미디어에 “미래 없이는 아이도 없다”는 해시태그를 퍼뜨리며 지지를 이끌어내고 있다. 그는 “나 자신도 안전할지 알 수 없는 세상에서 아이를 키울 수는 없다”고 말했다. 우간다의 바네사 나카테(22)는 기후변화가 얼마나 심각한 피해를 입히는지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해 단식투쟁에 들어갔다. 그는 “대통령이 기후비상사태를 선포할 때까지 투쟁을 이어 나가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한국에는 17살의 김유진양이 있다. 김양은 ‘청소년 기후소송단’이라고 적힌 파란색 티셔츠를 입고 뉴욕에서 열린 기후를 위한 등교거부 시위에 참여했다. 세계 각국에서 모인 청소년들의 행진대열 앞줄에서 “기후와 생태계의 위기는 인류가 직면한 가장 큰 위기”라고 외쳤다. 김양은 유엔본부에서 열린 청년기후행동 정상회의에도 참석했다. 청소년 기후소송단은 지난해 8월 기후위기에 대한 정부의 적극적 대응을 요구하기 위해 꾸려졌다. 세계의 청소년들과 발맞춰 서울에서 등교거부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들의 시위는 큰 관심을 끌지는 못했다.
10대 청소년들은 더 이상 외롭게 행진하지 않아도 된다. 세계 각국의 노동조합이나 기성 환경운동단체들이 동참을 선언했기 때문이다. 스코틀랜드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등에서 정부의 기후변화위기 선언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이들의 운동은 일시적 유행이 아니다. 기후변화는 미래를 살아가야 할 이들에게 매우 중요한 문제로 떠올랐다. 10대 소녀들의 목소리를 너무 순진하다며 실현불가능한 일에 매달린다고 치부하기는 어렵다. 이상적이고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떨쳐 일어난 젊은이들이 세상을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김주언(논설주간ㆍ전 한국기자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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