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옥의 샤머니즘 이야기] 강렬한 유혹 ‘선악과’

[유명옥의 샤머니즘 이야기] 강렬한 유혹 ‘선악과’

  • 기자명 데일리스포츠한국
  • 입력 2019.09.23 09:23
  • 수정 2019.09.24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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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스포츠한국] 주인공은 장로 댁 집회에서 강연할 때 잠시 선악과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피력했다. 다음은 박상륭의 <죽음에 관한 한 연구(하)> 30쪽에 기록되어 있는 내용이다.

“아담이란 그리고 사람이란 뜻이라고 하니, 사람이야말로 그 가장 비극적인 존재였던 것입니다. 이 비극은 그리고 저 실과 맛으로 하여, 사람의 눈이 밝아져, 신처럼 되어졌던 그때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박상륭은 주인공의 입을 빌어 아담이 선악과를 취함으로써 자기의 필멸성과, 생명의 한계”를 깨달았고, 이로 인해 그가 ‘정신적으로 고양’됨에 따라 죽음에 대한 공포가 싹텄으며, 자기 은혜의 본능을 불러일으키게 되었다고 보았다.

야훼는 인류의 조상인 아담과 이브에게 에덴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라고 경고했다.

하지만, 인류 최초의 조상은 이를 무시하고 금단의 열매를 취함으로써 ‘쾌와 불쾌에의 분별력’을 얻게 되었다. 이 행위로 인해 그들에게 선악을 분별하는 능력이 싹트게 되었고, 선악 개념에 의해 양심이라는 쓸개주머니도 같이 생겨났다. 바로 그 순간 그들에게는 ‘영악한 지혜와 수치심’이 싹텄으니, 에덴동산에서 인간의 순진무구한 삶은 이제 종말을 가져오게 된 것이다.

이승우 작가는 그의 책 <생의 이면> 33쪽에 금령과 유혹, 징벌의 공포에 관해 아래의 글을 썼다.

“모든 금령이 신성한 것은, 그것이 징벌의 공포로 포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두려움을 유발하지 않는 법은 신성으로부터 멀다. 신성은 어디에 있는가. 두려움 속에 있다. 아니, 두려움에 대한 예감 속에 있다. 그런데 그것은 왜 두려운가. 금지된 것은 사람을 끈다. 그것이 이유이다. 금령은 권고가 아니라 유혹이다”

같은 맥락에서 박상륭은 주인공의 입을 통해 창세기 3장 1절에서 7절까지의 기록 중 야훼가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라고 했던 경고가 표면적으로는 “일견 친절하고, 인자스런 아버지처럼 충고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아이의 심리 속에 불어넣은 어버이의 이 이상스런 유혹으로 ‘하나의 간계‘였으며, 그것은 “여호아가 하나의 유혹자로 자기를 둔갑”시킨 것과 같다고 해석했다. (계속)

※ 여기 연재되는 글은 필자 개인의 체험과 학술적 자료를 바탕으로 집필한 개인적 견해이며 특정 종교와 종교인 등과 논쟁이나 본지 편집방향과는 무관함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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