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언 칼럼> 가짜뉴스는 ‘기계적 중립’이 만든 함정

<김주언 칼럼> 가짜뉴스는 ‘기계적 중립’이 만든 함정

  • 기자명 김주언 논설주간
  • 입력 2019.07.18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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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뉴스의 역사는 커뮤니케이션 역사만큼이나 길다. 백제 무왕이 지은 ‘서동요’는 선화공주와 결혼하기 위해 거짓정보를 노래로 만든 가짜뉴스였다. 1923년 관동대지진이 났을 때 일본 내무성은 조선인에 대해 악의적 허위정보를 퍼뜨려 잔인한 학살로 이어졌다. 해방직후인 1945년 12월27일자 동아일보의 신탁통치방안에 대한 가짜뉴스는 역사를 바꿀 만큼 충격적이었다. ‘소련은 신탁통치 주장, 소련의 구실은 삼팔선 분할 점령. 미국은 즉시독립 주장’이란 기사는 남북분단을 초래한 원인의 하나였다. 그만큼 가짜뉴스는 엄청난 힘을 발휘한다.

가짜뉴스의 폐해는 최근 들어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문재인대통령이 고성 산불때 언론사 사장들과 술을 마시고 있었다.’ ‘광주5.18은 북한군 600명이 침투해 일으킨 폭동이다.’ 최순실 태블릿PC는 조작됐다.‘ ’노회찬의원은 타살됐다.‘ 인터넷을 통해 널리 퍼진 대표적 가짜뉴스들이다. 지난해 예멘 난민의 제주상륙때도 “난민을 받아들인 국가는 성범죄가 급격히 증가했다”는 등의 가짜뉴스가 난민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강화시켜 이들을 배척하게 만들기도 했다. 사실확인 없이 감정적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가짜뉴스는 비단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2016년 미국 대선 당시 가짜뉴스가 보여준 파급력은 전세계를 놀라게 했다. 페이스북에 가장 많이 공유된 기사 5개중 4개가 가짜뉴스였다. ‘프란체스코 교황이 트럼프를 지지한다’(1위)거나 ‘힐러리가 테러단체 이슬람국가(IS)에 무기를 팔았다’(3위) 등의 기사는 삽시간에 전세계로 퍼졌다. 진실은 중요하지 않았다. 페이스북 이용자들은 자극적 내용을 접하자마자 ‘공유’ 버튼을 눌렀다. 가짜뉴스에 대한 공유나 댓글은 각각 96만건, 79만건에 달했다.

‘일본소녀 2명 강간 한국인 무죄판결.’ ‘한국 좌파단체가 미국 국적의 남녀 두명 살해. 증오범죄인가.’ 한때 제목만으로도 SNS를 충격에 빠뜨린 기사다. ‘한국신문’이라는 사이트에 올라온 가짜뉴스였다. 이 기사는 해당사이트에서만 7만8,000여회가 조회됐고 SNS에서는 1만8,700여회이상 공유되며 혐한 감정에 불을 지폈다. 또다른 가짜뉴스는 독일 메르켈 총리를 테러리스트 옹호자로 둔갑시키고, 오바마를 국민의례를 금지한 친이슬람 또는 반기독교 인사로 낙인찍기도 했다.

가짜뉴스는 무엇일까. 가짜뉴스는 동일한 실체를 갖고 있을까. 그것이 만들어지는 이유는 무엇인가. 문제가 있다면 어떻게 다루는 것이 타당할까. 미국의 저술가 리 매킨타이어는 저서 ‘포스트 트루스’(PostTruth)에서 거짓정보의 양과 속도를 빠르게 확산시키고 쉽게 현혹시키는 근원을 찾아 나섰다. 매킨타이어는 탈진실은 사실에 의문을 던지는 과학부인주의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았다. 이미 과학적으로 증명된 담배의 위해성이라는 ‘사실’에 대해 “과학적으로 완전히 증명된 것이 아니다”라는 메시지를 퍼뜨려 ‘논란’으로 바꿔놓는 방식이다. 담배회사 수장들의 대책회의 결과였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대통령은 자신의 책 ‘거래의 기술’에서 “미디어는 진실보다 논란을 더 좋아한다”고 적었다. 트럼프대통령은 대선기간 ‘힐러리 가짜뉴스’의 최대수혜자였다. 매킨타이어는 “균형잡힌 보도를 해야 한다는 압력에 굴복한 언론이 열성당원들이 제공하는 정보마저 모두 받아들여 극단적 의견에도 지나친 신뢰성을 부여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기계적 중립을 ‘공정’으로 받아들이는 한국언론의 현실과 닮았다.

트럼프 대통령의 전략은 이렇다. 1.뜬금없는 문제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라. “사람들이 그렇다고 하더라”라거나 “신문에서 읽은 내용 그대로 말하는 거다”라고 밀어붙이면 된다. 2.자신의 확신 외에는 아무 증거도 제시하지 말라. 3.언론이 편향돼 있으니 믿을 수 없다고 말하라. 4. 5.불확실함에 직면하면 사람들은 선입견에 들어맞는 내용만 믿으려다가 점점 확증편향에 빠져든다. 6.이제 가짜뉴스를 퍼뜨리기에 훌륭한 환경이 조성됐다. 7.결국 사람들은 내가 말했다는 이유만으로 진실이라고 믿는다.

1996년 미국에서 등장한 폭스뉴스는 당파적 뉴스를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올렸다. 폭스뉴스에서 객관적 뉴스와 당파적 의견 사이의 경계는 모호해졌다. “폭스뉴스는 다른 언론이 진보쪽으로 편향되어 있으니 보수편향적 보도로 균형을 잡겠다고 했다. 전통미디어는 진보편향적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에 공정하고 균형잡힌 보도를 추구했다. 어떤 논점을 다루더라도 양쪽입장을 모두 보도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보도의 객관성이 높아지기는커녕 정확한 뉴스 보도에 집중하기가 더욱 힘들어졌다.” 매킨타이어의 분석이다.

언론은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사람들이 꾸며낸 거짓도 ‘논란이 많은 이슈’로 착각하면서 양쪽 입장을 모두 보도했다. 예를 들어 석유회사들은 특정연구를 지원하여 미디어가 지구온난화문제를 ‘논란’으로 보도하게 만들었다. 이에 따라 에너지문제는 ‘당파적’ 사안이 됐다. 지구온난화 때문에 재생에너지 중심으로의 에너지전환에 동의하면 민주당 지지자가 되는 식이었다. 국내에서 탈원전을 놓고 벌이는 논란이 정파별 편가름으로 전환된 것과 같은 이치이다.

“객관성이 필요한 이유는 진실과 거짓에 균등한 시간을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진실 자체를 전달하기 위해서 아닌가. 언론은 자신들이 편향되지 않았다고 주장하면서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둔다. 이에 따라 정작 ‘진실을 전달하는 일’은 도외시하게 되었다. 조작된 의혹으로 진실에 대한 혼란을 퍼뜨리고자 했던 자들의 손에 놀아난 것이다.” 이른바 ‘기계적 중립’을 내세우는 객관주의가 진실이 무엇인지 헷갈리게 만든 셈이다.

소셜미디어가 떠오르면서 사실과 의견의 경계는 더욱 흐려졌다. 가짜뉴스는 디지털 미디어 플랫폼에 ‘정식기사’의 얼굴을 하고 나타난다. 감쪽같이 변장한 가짜뉴스들은 사람들의 입맛에 맞으면 쉽게 확산된다. 뉴스를 접하는 채널이 신문 방송에서 포털 SNS 등으로 옮겨가면서 구글과 페이스북은 가짜뉴스의 온상이 됐다. 매킨타이어는 “정치적 이념을 내세우려는 자들이 사람들의 무지와 편향을 이용하기에 너무나 적절한 환경이 갖추어졌다”고 진단한다.

국내에서도 내년 총선을 앞두고 카카오톡과 트위터, 유튜브 등 SNS에 무차별적으로 유포되는 가짜뉴스를 몰아내는 작업에 착수했다. 국회 입법조사처는 부처별 가짜뉴스 피해사례를 모아 분석에 나섰다. 가짜뉴스의 유형과 피해규모 등을 파악해 입법과정에 참고할 계획이다. 국회에는 가짜뉴스 규제법안이 24개나 발의돼 있다. 그러나 규제법안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소지를 안고 있어 입법이 쉽지 않다. 방송통신위원회도 학계와 시민사회단체 등으로 구성된 협의체를 통해 가짜뉴스 자율규제에 나섰다. 이마저 한국당이 언론통제라고 반발하고 나서 순탄치 않을 전망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매킨타이어는 “기계적 중립은 속이려는 자들이 원하는 것이란 사실을 기억하자”며 “진짜뉴스로 가짜뉴스를 덮어버리자”고 주장한다. 이를 위해 진실보도를 추구하는 언론사에 재정적 후원을 하고 언론사간 협업을 통해 가짜뉴스를 몰아내야 한다는 것이다. “진실을 찾고자 하는 사람은 비판적으로 생각하고 충분히 의심하며 다른 사람의 검토를 받은 때 최상의 결과를 얻을 수 있다.” 그는 무엇보다 비판적 사고능력을 향상시키는 것이 최상의 방책이라고 지적했다.

김주언(논설주간ㆍ전 한국기자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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