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언 칼럼> 노무현의 언론개혁과 문재인의 ‘자유방임’

<김주언 칼럼> 노무현의 언론개혁과 문재인의 ‘자유방임’

  • 기자명 김주언 논설주간
  • 입력 2019.05.23 1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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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날의 기득권세력은 수구언론과 결탁해 끊임없이 개혁을 반대하고 진보를 가로막고 있다.··· 지난날 독재권력의 앞잡이가 되어 국민의 눈과 귀를 가리고 민주시민을 폭도로 매도해왔던 수구언론들은 그들 스스로 권력으로 등장해 민주세력을 흔들고 수구의 가치를 수호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7년 6월항쟁 20주년 기념식에서 한 말이다. 그로부터 12년이 되어가지만, 오늘날에도 딱 들어맞는 말이다. 2년전 촛불항쟁 과정에서 ‘기레기’란 지탄을 받았던 일부 언론은 아직도 권력기관 행세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 노 전 대통령의 생가이자 묘역이 있는 경남 김해 봉하마을에서 10주기 추도식이 열린다. 그동안 전국에서 열린 문화행사는 추도식을 끝으로 마무리된다. 추모와 애도를 넘어 노 전 대통령의 신념과 가치를 기억하고 실현해나가는, ‘새로운 노무현’을 추구하는 시발점이기도 하다. 그의 삶은 조국의 민주화와 직결돼 있었다. 재임기간에는 정경유착 단절, 권위주의 청산을 실천했고 검찰과 언론의 개혁을 추진했다. 이와 함께 지방분권과 한반도평화, 과거사청산 등을 통해 민주국가 건설에 나섰다.

노 전 대통령은 언론개혁을 내세웠던 유일한 대통령이었다. 취임초부터 임기말까지 언론개혁의 끈을 놓지 않았다. 노 전 대통령은 집권초부터 언론과의 건전한 긴장관계를 표방했다. 그는 “언론사주와의 비공식적 만남이나 기사를 둘러싼 노골적 협박과 회유, 정보기관을 동원한 압력이나 탄압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정부가 비상식적 방법으로 언론을 압박하는 일도 없지만, 언론에 예외적 특권이 용납되어서도 안된다는 것이 언론관의 핵심이었다. “정부는 정부의 길을. 언론은 언론의 길을 가야한다”는 게 핵심철학이었다.

노 전 대통령은 “정치권력이든 언론권력이든 모든 권력은 상호견제를 통해 반드시 절제되어야 하며, 언론과 정치권력이 결탁하고 야합할 때마다 시대정신이 후퇴했고 선량한 국민만 피해를 봤다”며 정언관계 개조론을 설파했다. 그는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시대’에 접어들어 국가운영방식이 정부중심의 통치에서 시민단체 및 민간기구 등과 협의하여 운영하는 거버넌스 시대로 전환되고 있기 때문에 언론정책도 변화해야 한다고 믿었다. 임기 마지막까지 언론개혁을 추진한 이유이다.

취임초 기자실 개방과 가판구독 중단으로 시작된 언론정책은 신문법과 언론중재법 제정, 오보대응 시스템의 구축, 대국민 직접 커뮤니케이션 창구 마련 등으로 이어졌다. 신문시장의 정상화를 위해 신문고시를 개정해 신고포상금제를 도입했다. 공정거래위원회의 신문사에 대한 직권조사도 실시했다. 신문발전위원회와 신문유통원을 설립하여 경영투명성 및 여론다양성 확보를 위해 노력했으며 신문공동배달망 구축에도 들어갔다. 임기말에는 선진국의 취재시스템을 도입한 ‘취재지원 선진화 방안’을 전 언론계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밀어붙였다.

참여정부의 개혁정책은 야당과 보수언론에 발목이 잡혔다. 이에 따라 정부출범 2년여만인 2004년 헌정사상 초유로 탄핵위기에 몰렸다. 촛불국민의 힘과 헌재의 기각으로 대통령직에 복귀할 수 있었다. 그래선가. 해양수산부장관 시절 “언론과의 전쟁을 불사하겠다”는 선언은 끝까지 이어졌다. ‘선언’이 말로만 끝나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보수언론의 공격은 집요했다. 퇴임 이후에는 정치검찰의 여론플레이와 언론의 인격살인에 시달려야 했다. 보수언론은 물론, 진보언론까지 그에게 비난과 조롱, 막말, 저주를 퍼부었다.

이후 이명박·박근혜정권 9년여동안 민주정부가 다져놓은 민주 평화 공정의 초석이 허물어졌다. 정권과 언론은 다시 유착하고 언론자유는 후퇴했다. 과거 군사독재정권의 보도지침이 등장하고 언론인에 대한 사찰과 해고, 무더기 징계가 이어졌다. 정권에 우호적 보수신문에는 종편이라는 방송이 선물로 주어졌다. 종편은 정권을 옹위하며 비판세력에는 막말과 저주를 퍼부었다. 비판글을 인터넷에 올린 누리꾼은 감옥에 가야 했다. 언론자유와 언론신뢰도는 끝없이 추락했다.

그렇다면 2년전 촛불혁명으로 등장한 문재인정부의 언론정책은 어떨까. 시민사회와 언론계는 한마디로 ‘자유방임형 불간섭 무정책’이라고 평가한다. 권력기관의 언론간섭은 사라져 누구나 폭넓은 언론자유를 향유한다. 그러나 촛불시민이 조롱했던 ‘기레기’라는 비난언어는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 사사건건 비틀고 비난만 일삼는 일부 언론의 헐뜯기 보도는 참여정부 시절 못지않다. 심지어 언론이 ‘가짜뉴스’를 양산한다는 비난마저 나온다. 언론정책 공약이 거의 이행되지 않았고 언론개혁은 사라졌다는 비판을 듣는 이유이다.

문재인정부는 언론공약으로 이용자 중심의 미디어복지 구현, 균형발전을 위한 지역방송 활성화, 신문진흥과 지역신문 지원, 건강한 미디어 생태계 구축 등을 내세웠다. 이들 공약중 이행되거나 진행중인 공약은 별로 없다. 뉴스톱이 운영하는 대선공약평가 사이트 ‘문재인 미터’는 완료된 언론공약은 없다고 평가했다. 미디어정책에 대한 컨트롤타워가 있느냐는 비판도 나온다. 권혁남 전북대교수는 “언론들이 정권 물어뜯기에 혈안이 된 환경에서 언론의 횡포가 국민에게 비수가 되어 돌아오는 역기능이 있다”며 개혁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언론에 대한 자유방임형 정책은 “참여정부의 전철을 밟지 않겠다”는 문재인정부의 뜻으로 읽을 수 있다. 공연히 벌집을 건드리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참여정부이후 언론환경은 급격히 변화했다. ‘가짜뉴스의 온상’으로 일컬어지는 유튜브와 넷플릭스 등 외국의 미디어플랫폼이 국내 정보통신시장을 점령하기 시작했다. 더구나 신문과 방송의 경영난 등 기존매체의 위기는 미디어정책 새 판짜기에 힘을 보태주고 있다. 참여정부가 신문 등 주류매체의 개혁에 방점을 찍었다면, 이제는 미디어전반의 개혁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다.

급기야 시민사회가 나섰다. 전국언론노조, 민주언론시민연합, 언론개혁시민연대 등은 미디어개혁위원회의 설립을 추진하고 나섰다. 달라진 미디어환경에 대응하기 위한 범사회적 논의기구가 긴요하다는 취지에서다. 산업논리나 매체중심이 아닌 시민을 중심에 두고 미디어의 공공성을 강화해나가야 한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방송통신위원회,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문화체육관광부 등 관련부처가 분산돼 있기 때문에 종합적 미디어정책을 총괄할 주무부처가 없다는 현실도 미디어개혁위원회의 필요성으로 거론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언론개혁은 미완의 과제로 그쳤다. 노 전 대통령은 “언론 앞에서 비굴하지 않은 당당한 대통령이고자 했다. 그뿐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언론개혁 의지는 아직도 가슴에 와닿는다. “가장 막강한 권력은 언론이다. 선출되지도 않고 책임지지도 않으며 교체될 수도 없다. 언론은 국민의 생각을 지배하며 여론을 만들어낸다. 그들이 아니라고 하면 진실도 거짓이 된다. 아무리 좋은 일도 언론이 틀렸다고 하면 틀린 것이 된다.”(자서전 ‘운명이다’에서)

노 전 대통령의 말처럼 “대통령에게는 언론을 개혁할 수단이 없다.” 그렇다고 해서 미디어개혁이 필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미디어는 권력과 언론의 관계로만 끝나지 않기 때문이다. 일부 미디어의 횡포는 국민의 올바른 의식을 갉아먹는다. 외국 미디어의 점령은 국내산업 위축은 물론, 문화침탈을 가져올 수도 있다. 따라서 미디어개혁은 모든 분야 개혁의 우선 순위이다. 미디어개혁을 미룰 수 없는 이유이다. 문재인정부는 ‘자유방임’만으로 미디어의 셀프개혁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김주언(논설주간ㆍ전한국기자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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