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리뷰] 자유는 무엇일까? 안도현 시인의 어른동화

[북 리뷰] 자유는 무엇일까? 안도현 시인의 어른동화

  • 기자명 박상건 기자
  • 입력 2019.05.03 0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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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어’ 이후 23년 만의 ‘남방큰돌고래’ 출간

[데일리스포츠한국 박상건 기자] 안도현 시인이 오랜 침묵을 깨고 어른을 위한 동화, ‘남방큰돌고래’라는 제목의 신간을 선보였다. 남방큰돌고래는 인도양과 서태평양의 열대 및 온대 해역 연안에 주로 서식하는 돌고래이다. 제주연안에 사는 남방큰돌고래는 다른 남방큰돌고래와는 독립된 집단으로 현재 120여 마리가 관찰되고 있다.

시골 집필실에서 안도현 시인
시골 집필실에서 안도현 시인

1996년 안도현 시인의 ‘연어’는 142쇄, 106만부 판매를 기록 중이고 15개국 언어로 해외에 번역된 스테디셀러이다. 이번 작품도 이에 견주는 수작이다. 다사다난한 세월을 꾹꾹 눌러온 시인, 실천적 지식인 안도현 교수가 신작으로 동화를 택했다는 점부터 예사롭지 않다.

다행인 것은 독자들이 시인의 깊고 농익은 문장에 매력을 느껴왔다는 점에서 이번 신간도 그런 갈증을 풀어주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시인은 즐겨 사용하는 문장은 그 어휘와 비유가 짧고 명료하면서 철학적 사유가 문맥의 힘줄이 되고 물비늘처럼 여울지게 하는 게 특징이다.

2013년 ‘제돌이’ 사건 모티브

책장마다 능수능란한 문체 출렁

‘남방큰돌고래’는 사람들에 의해 불법으로 포획되었다가 자유를 찾은 한 소년기의 남방큰돌고래를 주인공으로 삼았다. 돌고래의 이름은 ‘체체’. 시인의 성향을 잘 아는 사람들이라면 작명 솜씨에 웃고 그 의도에 고개를 끄덕일 게다. ‘체체’는 그물에 포획되어 길들여져 ‘쇼 돌고래’로 전락했다가 특별한 사람들의 노력으로 제주 바다로 돌아간다. 이 대목은 2013년 서울대공원에서 제주바다로 야생 방사된 남방큰돌고래 ‘제돌이’의 사건에서 모티브를 가져왔다.

신간 남방큰돌고래 표지
신간 남방큰돌고래 표지

이 모티브를 물고 주인공 ‘남방큰돌고래’는 안도현 시인의 무한한 상상력의 확장 공간에서 의미 있는 메시지를 물고 유영하거나 전해주는 역할을 한다. 고난을 겪고 훨씬 성숙해진 우리의 ‘체체’는 야생의 제주바다에 적응하며 여러 사건을 겪는다.

남태평양까지 모험을 통해 ‘체체’는 한 차원 높은 정신의 자유를 찾아 나선다. 동화책이지만 책장마다 능수능란한 문체가 변화무쌍하게가 출렁인다. 시인의 스토리텔링이 그러하듯 은유와 잠언이 적절히 어우러져 동화의 무게 추를 조절하고 독자들에게는 순간순간 무엇인가를 되새김질시키는 기회를 제공한다.

데일리스포츠한국 19면 BOOK페이지(2019.5.3)
데일리스포츠한국 19면 BOOK페이지(2019.5.3)

이 동화는 리얼리즘 시각으로 읽을 경우 환경보호, 전쟁반대, 평등, 페미니즘, 동물의 권리, 동물해방, 해양쓰레기투기 반대 같은 사회적 화두를 만난다. 그러나 시인은 그런 구호성 의미보다는 지구라는 자연 공간에서 살아가는 모든 생명에게 자유는 무엇일까, 모든 존재는 그 자체로 존중받을 가치가 있다는 열린 정신을 주인공 ‘체체’를 통해 은유하고 음미케 하고 싶은 것이다.

젊은 날에 시인은 ‘연어’를 통해 모천으로 회귀하는 그 강렬한 생명력에 주목했다. 지금은 중년의 고갯마루에서 우리가 진정으로 중요하고 고귀하게 여겨야 할 생명과 정신의 자유는 무엇인가? 그것을 얻어가는 과정은 어떤 것인가, 그런 문제를 특유의 자연과 합일되는 몰아일체 동양적 사유를 통해 은유적으로 들려준다. 결국 ‘연어’가 열지 못했던 시기의 깊은 철학적 사유의 세계를 ‘체체’에서 더 깊고 넓게 활짝 열어젖힌 셈이다.

체체는 우리 모두에게 질문을 던진다.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정신의 자유를 찾을 수 있는가?”,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더불어 행복할 수 있는가?” 뒤안길을 돌아보는 어른이든, 내일을 향해 달리는 미래 세대이든 꼭 한번쯤 반문케 하는 삶과 지혜의 메시지들이다. 시인은 많은 질문을 던지지만, 자유로운 사유 폭을 제공하지만, 궁극적으로 우리가 사는 지구와 자연과 사람세상은 하나의 공동체라는 대원칙을 제시한다.

책 속에서 마주한 감동적인 몇 장면과 문장을 간추리면 이렇다.

“육지의 끝에 바다가 펼쳐져 있는 게 아니다. 바다가 끝나는 지점에 육지가 있다. 바다가 숨을 멈추는 곳, 바다의 숨소리가 들리지 않기 시작하면 거기가 바로 육지다.”, “고귀함을 모르는 자들은 사랑도 슬픔도 모르지.”, “커다란 것은 작은 것들에게 겸손해야 해. 우리에게는 그게 일상이지만 작은 것들에겐 착취이거나 폭력일수도 있어.”

“이 세상을 넘어 무한의 세계로 가라, 한 끼의 밥을 굶을지라도 한 걸음이 천 걸음이 되는 그 길을 찾아가라, 한순간이 영원인 것을 여기 머무르지 말고 주저하지 말고 너를 이끄는 힘은 너에게 있으니”, “사랑하는 당신, 돌아올 거지? 멋진 등지느러미를 곧추세우며 돌아올 거지? 돌아와 내 비뚤어진 입에 따듯하게 입맞춤해 줄 거지? 언젠가 당신이 했던 말이 생각나네. 마음의 야생지대, 생명의 근원을 찾아서 떠날 거라던 말. 나는 당신이 반드시 그곳을 찾을 거라고 믿어. 당신은 내가 사랑하는 당신이니까.”

저자는 1961년 경북 예천에서 태어나 198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저서로 ‘서울로 가는 전봉준’, ‘모닥불’, ‘그대에게 가고 싶다’, ‘외롭고 높고 쓸쓸한’, ‘그리운 여우’, ‘아무것도 아닌 것에 대하여’, ‘바닷가 우체국’, ‘연어’, ‘백석평전’ 등이 있다. 소월시문학상, 윤동주문학상, 백석문학상, 임화문학예술상 등을 수상했다. 현재 단국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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