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언 칼럼> ‘방학썬사건’이 한몸인 이유

<김주언 칼럼> ‘방학썬사건’이 한몸인 이유

  • 기자명 김주언 논설주간
  • 입력 2019.04.12 09:56
  • 수정 2019.04.23 16:15
  • 0
  • 본문 글씨 키우기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배우 고(故) 장자연 씨를 둘러싼 성접대 강요 사건에 대한 증언을 이어가고 있는 동료 배우 윤지오 씨(흰색 상의)가 지난 8일 오전 국회 본청에서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의원 등과 간담회를 하기에 앞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배우 고(故) 장자연 씨를 둘러싼 성접대 강요 사건에 대한 증언을 이어가고 있는 동료 배우 윤지오 씨(흰색 상의)가 지난 8일 오전 국회 본청에서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의원 등과 간담회를 하기에 앞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이번 사건은 상위1% 남성중심의 뿌리깊은 ‘강간문화’에서 비롯된 것이다. 한국사회의 속살과 민낯을 보여주는 창이기도 하다. 한국사회 이너서클은 뿌리깊은 강간문화가 있다. 여성들을 하위에 배치시키면서 남성들만의 연대력을 증가시킨다.” 박노자 오슬로대한 한국학과 교수의 이른바 ‘방학썬사건’에 대한 진단이다. 박교수는 “강간은 범죄이지만 범죄문화가 습관화하면서 강간문화가 됐다”고 지적했다. 젊은 시절 비도덕적 성정체성이 재력 및 권력과 맞물리면서 왜곡된 성문화로 이어졌다는 뜻이다.

박교수는 ‘장자연 사건’에 대해 피해자 이름을 붙이는 것은 억울한 일이라고 말했다. 조선일보사 방사장 일가가 가해자로 의심받기 때문에 ‘방사장사건’이라고 부를만하다. 최근 사회적 이목이 쏠린 ‘김학의사건’ ‘버닝썬사건’과 비슷하기 때문에 ‘방학썬사건’으로 불린다. 인터넷에는 널리 쓰이는 용어이기도 하다. 세 사건은 한몸이나 다름없다. 한국사회 기득권이 권력을 공고히 하기 위해 벌인 유착구조와 남성 기득권자들이 여성을 한낱 성적 도구로 대해 왔다는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다.

강남 클럽 버닝썬과 경찰의 유착의혹을 비롯해 김학의 전 법무부차관의 특수강간 의혹, 고 장자연씨 성접대강요 의혹까지 일련의 사건은 수사와 진상규명이 이어질수록 공통점이 두드러진다. 유명 연예인과 권력기관 관계자, 언론계 인사 등 사회특권층이 연루돼 있을 뿐더러 이들의 유착으로 인한 부실수사 때문에 진상이 감춰진 의혹이 짙다. 검찰과 경찰이 고의로 부실수사를 하거나 적극적으로 진실규명을 가로막고 비호하거나 은폐한 정황들도 드러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인식도 이를 뒷받침한다. “이들 사건은 실체적 진실과 함께 검찰 경찰 국세청 등의 고의적 부실수사 및 조직적 비호, 그리고 은폐 특혜 의혹 등이 핵심이다. 힘있고 빽있는 사람들에게는 온갖 불법과 악행에도 진실을 숨겨 면죄부를 주고, 힘없는 국민은 억울한 피해자가 되어도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오히려 두려움에 떨어야 했다.” 문대통령은 엄중한 조사와 수사를 당부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공소시효가 끝나 처벌이 어렵더라도 사건의 실체를 밝혀 같은 유형의 범죄가 재발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단순 폭행사건에서 비롯된 버닝썬사건은 마약흡입 등 범죄가 이뤄진 클럽의 운영에 유명 연예인이 관여했고, 이를 단속할 경찰이 업소와 유착됐다는 의혹이 골자다. 김학의사건도 사회 고위층의 엽기적 성범죄의혹 사건을 두고 검찰과 경찰이 증거를 은폐 축소하거나, 피의자에게 무리하게 면죄부를 줬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박근혜정권 청와대의 수사방해 의혹에 대해서도 수사가 진행중이다. 방사장사건 또한 언론사와 연예기획사의 기형적 유착관계 속에서 여성연예인의 인권유린이 문제가 됐는데도 수사과정에서 진실이 묻혔다는 의혹을 받는다.

김학의사건 수사가 가장 빠른 진척을 보인다. 검찰은 대규모 수사단을 꾸려 본격수사에 나섰다. 수사방해와 김 전차관의 뇌물수수 및 특수강간 의혹이 수사대상이다. 김 전차관의 국외도피 기도가 맞물리면서 의혹이 증폭됐다. 김 전차관은 검찰로부터 두차례에 걸쳐 무혐의처분을 받았다. 게다가 김 전차관과 박근혜 전대통령의 친분관계가 드러나면서 청와대의 수사방해 의혹도 불거져 나왔다.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이었던 곽상도 자유한국당 의원에 대한 수사가 불가피한 이유이다.

육군대령으로 베트남전에 참전해 무공훈장을 받은 김학의 전차관의 아버지는 박정희 전대통령의 부관 출신이라고 한다. 박정희정권 등장 이전에 두 집안의 인연이 형성돼 박근혜와 김학의의 친분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박 전대통령과 김 전차관이 어릴 적 청와대 동산에서 함께 뛰어 놀던 사이”라는 진술도 나왔다. “김 전차관의 6촌 누나와 박 전대통령은 목욕탕도 같이 다닐 정도로 친하다”는 언급도 있다. 박 전대통령이 무리해서라도 그를 검찰총장이나 법무부차관에 임명하려고 한 이유가 드러난 셈이다.

당시 법무부장관이었던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에도 불똥이 튀고 있다. 장관후보 인사청문회에서 박영선 후보가 당시 황장관에게 김학의 동영상이 담간 CD를 보여주었다고 폭로하고 이를 뒷받침하는 박지원의원의 증언까지 나왔다. 황대표는 적극 부인하고 있다. ‘진실게임’의 진상은 검찰이 수사에서 밝혀내야 할 부분이다. 민갑룡 경찰청장도 “당시 여러 곳에서 전화가 와 수사팀이 곤혹스러워했다”고 폭로해 박근혜 청와대의 외압을 시사했다. 민청장은 “피해자들이 합동강간을 당했고 이를 윤중천씨가 촬영했다는 진술도 있었다”고 밝혔다.

사건발생 10년을 맞은 ‘방사장사건’은 고장자연씨 동료배우였던 윤지오씨의 증언으로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윤씨는 2008년 장씨의 술자리에 함께 있으면서 성추행을 목격한 증인이다. 윤씨는 경찰과 검찰 법원에 출석해 16차례나 증언했다. 그는 이른바 ‘장자연 리스트’는 유서가 아니라고 밝혀 타살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장씨는 2009년 3월 기업인과 유력 언론사, 연예기획사 관계자 등에게 성접대를 했다는 문건을 남긴 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장씨가 지목한 이들은 모두 무혐의로 결론났다. 윤씨는 최근 국회의원들을 만나 진실규명을 호소했다.

검찰 과거사진상조사단 조사에서 새로운 사실도 드러났다. 조선일보 방상훈사장이 기자가 배석한 가운데 회사 사무실에서 ‘황제조사’를 받았다는 점과 방사장의 아들 방정오씨가 장씨와 자주 전화하고 만났다는 증언이 보도됐다. 방씨측은 부인하고 있다. 게다가 윤씨에 대한 경찰의 신변보호가 소홀하다는 점이 부각되기도 했다. 시민단체 정의연대는 윤씨의 신변보호를 담당했던 경찰관들을 검찰에 고발했다.

시민단체들은 최근 조선일보사 앞에서 윤씨 보호 및 ‘방학썬’ 특검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정의연대는 “결정적 증인인 윤씨가 신변에 위협을 느껴 신고했음에도 경찰은 10시간가량이나 출동하지 않았다”며 “국민청원에 동의한 국민이 윤씨를 구했다”고 지적했다. 김형남 변호사는 “주민번호와 지장이 찍힌 장씨 문건은 유서가 아닌 고발장”이라며 “장씨의 죽음도 타살일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특검을 통해 사건에 연루된 권력층과 범죄은폐를 도운 이들에 대한 재수사가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수사나 재조사가 진실에 얼마나 다가설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많은 증거가 유실됐을뿐더러 ‘셀프수사’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검찰과 경찰이 가지치기 수사로 끝낸다면 국민의 분노는 극에 달할 것이다. 검경은 ‘방학썬사건’의 수사와 조사에 조직명운을 걸고 있다. 또한 수사권 조정과 공수처 설치 등 사법개혁의 향방에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들 사건이 권력기관의 명운에 그칠 문제는 아니다.

피해자들은 여성 성착취로 연결된 남성카르텔을 고발하고 여성들이 당한 인권침해를 알렸다. 그러나 검경은 가해자들을 엄호하기에 바빴다. 가해자로 지목된 권력자들은 법망을 빠져나갔다. 처벌을 원했던 여성들의 희망은 절망으로 바뀌었다. ‘방학썬사건’은 여성의 몸을 남성의 유흥거리로, 향응 뇌물과 상납도구로, 남성간의 연대를 공고하게 하는 수단으로 이용하고 착취하여 이득을 취하는 한국사회의 적폐이다. ‘상위1% 남성 중심의 뿌리깊은 강간문화’가 이번에는 사라질 수 있을까.

김주언(논설주간ㆍ전 한국기자협회장)

저작권자 © 데일리스포츠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