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면 젓고 펄에 발목이 빠지면 젓는 게 낚시죠”

“비오면 젓고 펄에 발목이 빠지면 젓는 게 낚시죠”

  • 기자명 박상건 기자
  • 입력 2018.08.20 09:54
  • 수정 2018.08.20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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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이춘근 서울시낚시협회장-민통선 최초 낚시대회, 낚시는 자연으로 돌아가는 길

[데일리스포츠한국 박상건 기자] 낚시인구 770만. 최근 급속도로 증가 추세를 보인 점을 감안하면 낚시인구 1천만 시대도 멀지 않았다. 이 같은 현상은 <리빙TV> ‘형제꽝조사’ 등 다양한 낚시 예능프로그램이 한 몫을 했다. 낚시는 다른 스포츠에 비해 많은 힘을 들이지 않고서도 자연을 벗 삼아 여유로움과 정서적 치유까지 가능한 힐링 레포츠이다.

기계처럼 반복되는 도시의 일상을 훌훌 털고 언제든지 바다와 호수와 계류로 떠나 만나는 이 맑디맑은 자연과 호흡의 순간. 수면 아래 물고기와 교감을 통해 전율하는 입질의 손맛. 낚싯줄에서 울리는 짜릿함을 신호로 쉼 없는 감아올리는 순간. 이런 과정은 직접 체험해본 사람만이 아는 낚시의 즐거움이요 행복이다.

서울시민낚시시민학교 수업장면
서울시민낚시시민학교 수업장면

이러한 낚시를 누구나 쉽게 접하고 체험할 수 있도록 낚시문화 대중화에 앞장서고 있는 주인공이 이춘근 서울시낚시협회장이다. 본지가 그를 인터뷰한 이유이다. 서울은 낚시터가 드물다. 그러나 그는 2010년부터 전 국민을 대상으로 낚시 초보자들에게 이론과 실무를 무료로 가르쳐주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물론 전국 어디에든 개인교습의 낚시 유료강좌는 많다. 그러나 정부 공공장소에 대규모 수강생을 모집해 체계적으로 무료 낚시강좌를 운영하는 곳은 서울시낚시협회가 주도하는 서울시민낚시학교가 대표적이다(관련기사 7.30.15면).

이춘근 회장은 부산에서 태어나 통영에서 성장기를 보냈다. 어릴 적부터 바다와 예술적 무대를 겸비한 해양공간에서 생활한 그에게 낚시는 운명처럼 삶의 그 자체가 되었다. 상경 후에도 35년 동안 프로 낚시인으로 살아왔으니 평생을 낚시인으로 살아온 셈이다. 낚시용품 1만 여종을 갖춘 서강낚시 백화점 CEO이기도 하다. 이곳의 대부분 손님은 낚시광인 단골들이고 낚시인의 사랑방 역할을 한다. 외국 낚시인들이 즐겨 찾는 명소이기도 하다.

선상낚시를 즐기며 갈치를 낚아 올린 이춘근회장
선상낚시를 즐기며 갈치를 낚아 올린 이춘근회장

낚시인구가 늘어나면서 몇 가지 문제점도 불거져 기자가 가거도 낚시 갔다가 목격한 생계형 낚시인들의 문제에 대한 견해를 물었다. 그는 “낚시는 본래 인류 상에 출현할 때 먹고 살기 위해 생긴 것”이라는 짤막한 어조지만 긴 여운의 답변을 남겼다.

그의 답변에 스포츠 역사의 함의가 있었다. 사실 산업화 과정 속에서 스포츠는 미디어와 공생하게 되었다. 배고프고 가난한 사람들이 찾는 영역으로 치부되던 스포츠가 산업화와 과학화를 거치면서 그 바탕에서 오히려 가장 빠르게 산업화와 과학화의 상징이 되었다. 그 이전에는 살기 위해 수렵활동을 했고 그 과정에서 의사소통 방식이 진화했다. 언론학에서는 그 과정을 미디어 스포츠커뮤니케이션 역사로 본다. 결국 낚시는 살기 위한 여정 중 하나였다.

생활이 윤택해지면서 스포츠로서 낚시는 향유양식의 대상, 즉 즐기는 스포츠 중 하나가 됐다. 또 다른 측면에서 낚시는 생산양식 즉 새로운 가치창출 분야로도 자리 잡았다. 또 다른 측면에서는 낚시는 상품양식으로서 다양한 낚시방식과 문화를 양산했다. 이를테면 맥도날드, 코카콜라, 나이키 등이 월드컵 등을 활용해 스포츠의 또 다른 양식을 만들어 낸 것처럼 낚시 역시 다양한 메이커들이 시장을 형성하면서 레저시장이라는 자본주의 한 축을 형성한 것이다.

낚시대회에서 인사말 하는 이춘근 회장. 그는 민통선에서 최초로 낚시대회를 개최했다
낚시대회에서 인사말 하는 이춘근 회장. 그는 민통선에서 최초로 낚시대회를 개최했다

한편, 이춘근 회장은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민통선에서 낚시대회를 열었던 주인공이기도 하다. 지구촌 유일한 분단 현장, 그 청정지역에서 맑은 공기를 호흡하면서 통일과 평화의 중요성을 되새기고 이곳에서 서식하는 동식물들과 호흡하는 일은 인간과 자연의 만남, 분단국가 후손으로서 의미 있는 작업이었다. 대회를 준비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마음고생이 심했다. 군부대, 국방부, 유엔사령부 등을 찾아다니며 복잡한 절차를 다 거쳤다. 환경단체 반발도 거셌다. 두루미 독수리 등 철새들이 오는 곳인데 사람들이 오면 방해가 된다는 것.

그는 15년간 줄기차게 설득하여 친환경 친자연적인 낚시대회를 성공리에 마쳤다. 참가자 1,000명을 예상했는데 1,300명이 참여했다. 낚시대회 사상 언론인 참여가 가장 많은 행사일 정도로 언론인 참여가 많았다.

낚시대회를 치르면서 감명 깊은 한 장면도 목격했다. “진도에서 온 할아버지였는데 북한이 고향이라 낚시대회에 참가했어요. 낚시를 하면서 낚싯대 저 편의 고향 땅을 조금이라도 가까운데 많이 보고 싶어서 참여했다는 것입니다. 낚시로 그리움을 달래자는 것이죠.”

그렇게 낚시는 인내와 여백, 비움 그리고 고향에 대한 그리움까지 달래주는 것이다. 그렇게 낚시는 강하면서 부드러운 정서적 힘을 가진 레포츠이다. 이춘근 회장은 최근 평화선언 등 남북관계가 호전되면서 다시 한번 온 국민들이 더불어 통일의지를 다지고 실향민의 그리움을 달래주는 그런 의미 있는 민통선 낚시대회를 기획 중이라고 귀띔했다.

생활낚시 전도사, 청소년들과 운동장에서 낚시하고 싶은 사람

되돌아보면, 80~90년대 스포츠신문은 어탁을 보도하는 등 낚시를 비중 있게 취급했었다. 그 시절에 이춘근 회장은 지면에서 유명한 프로 낚시인으로 통했다. 어느 날 그 많던 낚시보도가 사라지는 것을 바라보면서 안타까움을 달래며 묵묵히 낚시터로 향했다. 세상과 언론은 변해도 낚시인 이춘근은 늘 한길을 걸었다. 다시 낚시 붐이 일고 있지만 연예인 유명인 중심의 시청률 지상주의의 미디어 스포츠시대와는 달리 그는 시민이 주인인 생활낚시의 대중화를 주창하고 있다. 그가 오래도록 낚시장인으로 인정받고 지금도 돋보인 이유다.

그가 주도하는 서울시민낚시학교 수강생인 초등생들이 최근 한강에서 생활낚시 체험 프로그램 참가 중에 숭어 70cm 이상의 대물을 7마리씩이나 낚았다. 지난 16일 서강주민센터에서 열린 낚시학교 이론수업 수강생 중에는 초등학생도 눈에 띄었다. 생활낚시의 희망이 보였다.

해외 낚시업계 관계자와 함께
해외 낚시업계 관계자와 함께

이춘근 회장은 차제에 서울시교육청과 논의해 방과 후 생활낚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자 한다. 청소년들에게 교실 밖 자연친화적인 낚시문화를 익혀서 폭력적 인터넷 게임피해도 줄이고 어릴 적부터 자연과 함께 하는 인문학적 소양도 높여주고 싶다. 기자가 “서울에서 특히 학교에서 어떻게 낚시 체험학습을 할 수 있느냐?”고 묻자, 그는 “운동장에 풀장을 만들면 된다.”라고 말했다. 그만이 생각할 수 있는 기발한 발상이다. 맨손물고기잡기 대회에서 자주 보던 그런 야외 물 풀장을 만든다는 것이다.

그렇게 교실 밖으로 아이들이 뛰쳐나와 운동장에서 물고기를 잡는 풍경이 너무 행복하게 그려진다. 그런 일이 벌어지는 진풍경은 대한민국 교육이 제대로 변했다는 증거이고, 그런 현장학습 광경은 대한민국 열린교육 현장이자 생활 속에서 전 국민이 레저를 향유하는 상징적인 장면으로 기록될 것이다.

참돔을 낚은 후 포즈를 취한 이춘근회장
참돔을 낚은 후 포즈를 취한 이춘근회장

이춘근 회장은 낚시와 인간은 운명적이라는 확고한 철학을 갖고 있었다. “우리인체의 70%가 수분이지 않습니까? 우리 인체는 물과 어우러지는 구조를 가졌어요. 그래서 자연과 함께 하는 일은 당연한 일이고 낚시는 그런 인간의 삶의 한 과정이죠.”

그렇다. 생각해보면 인간이 낚싯줄을 당기는 모습과 습성은 지극히 오래된 태초 인간역사의 재현이다. 수렵이 있었기에 물 아래 물고기를 쉽게 그려보고 자연스럽게 교감할 수 있지 않을까? 물 위로 스치는 바람결에도 스트레스를 날리는 감각적이고 정서적 교감은 사계절 자연의 특성을 알고 함께 호흡하는 자세가 아니라면 불가능한 일이다. 큰 물고기를 잡아 행복에 겨워하는 사람의 표정은 포획근성의 단면이다. 인류는 수렵으로부터 말미암았고, 서로 밀고 당기는 기술은 현대의 가장 필요한 경영 리더십으로 진화했다.

이춘근 회장은 낚시를 낭만적으로 대하면서 매우 철학적이고 논리적이며 과학적이었다. 그런 점에서 낚시 역사와 함께 궤를 하는 사람임에 분명하다. 그는 마지막 인사말도 타고난 낚시도사답게 툭, 던졌다. “비 오면 젖고 펄에 발목이 빠지면 젖는 게 낚시잖아요?” 그렇다. 낚시도 삶도 예술도 젖고 젖어, 다 젖어 잦아들어갈 때 진정한 기쁨이요 사랑이요 행복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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