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 G-14] 동계올림픽 도전 70년, 얼음도 녹인 열정 있었다

[평창 G-14] 동계올림픽 도전 70년, 얼음도 녹인 열정 있었다

  • 기자명 박상현 기자
  • 입력 2018.01.26 08:25
  • 수정 2018.01.26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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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공=평창 동계올림픽 조직위>
<제공=평창 동계올림픽 조직위>

[데일리스포츠한국 박상현 기자] 평창동계올림픽이 정확하게 2주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2018년은 대한민국 스포츠 역사에 큰 의미가 있다. 고(故) 손기정이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종목에서 금메달을 따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일제 치하에서 일어났던 일이다. 그렇기에 한국 스포츠의 첫 올림픽 금메달은 손기정이 아닌 1976년 몬트리올 대회 레슬링 종목에서 따낸 양정모의 기록이다.

다시 말하면 한국 스포츠의 올림픽 도전사는 정확하게 1948년부터 시작한다고 봐야 옳을 것이다. 서울 올림픽이 열렸던 1988년이 올림픽 도전 40년이었기에 올해는 70년이 되는 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한국이 태극기를 들고 올림픽에 첫 출전한 것이 런던올림픽이라고 오해한다. 한국의 최초 올림피언은 런던올림픽이 아닌 1948년 생모리츠 동계올림픽에서 탄생했다. 당시 최용진, 이종국, 이효창 선생이 스피드스케이팅 종목에 출전하면서 태극마크를 단 올림피언이 됐다.

1948년 스위스 생모리츠 동계올림픽 참가하는 선수단. <출처=연합뉴스>
1948년 스위스 생모리츠 동계올림픽 참가하는 선수단. <출처=연합뉴스>

◆ 일제 치하에서도 동계올림픽에 나간 한국인은 있었다

한국의 동계 스포츠 도전사는 스피드스케이팅이다. 조선 말기에 스피드스케이팅이 도입됐기 때문에 동계 스포츠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동계올림픽 주력 종목이 빙상인 것은 나름 이유가 있는 셈이다.

동계올림픽 도전사 역시 스피드스케이팅에서 출발한다. 손기정이 일제치하에서 마라톤 금메달을 따냈듯 동계올림픽에서도 일제치하에서 출전한 기록이 있다. 1936년 독일 갈미슈파르텐케르헨 동계올림픽에서 장우식, 김정연, 이성덕 선생이 출전한 것이 첫 역사였다.

당시 우리나라의 스피드스케이팅 실력은 세계 수준에 근접해있었다. 당시 스피드스케이팅은 장우식, 김정연, 이성덕과 함께 아쉽게 컨디션 저하로 1936년 올림픽에 출전하지 못했지만 역시 세계적인 수준이었던 최용진 선생이 이끌어가고 있었다. 그만큼 선수층이 두꺼웠다. 이들은 전일본선수권에서도 두각을 나타내며 당당하게 올림픽 출전권을 따냈다.

이 가운데 이성덕은 1936년 올림픽 남자 500m에서 45초9의 기록으로 16위에 그쳤다. 그러나 일본의 이시하라 쇼조가 44초1의 기록으로 동메달 선수에 0.1초 뒤져 4위를 차지한 것에서 보듯 충분히 기량만 발휘했다면 톱10 진입도 무난했을 실력이었다. 이성덕은 남자 5000m에도 출전, 9분8초7로 장우식과 함께 27위를 차지했다. 남자 1만m에서는 18분50초3으로 25위를 기록했다.

이와 함께 김정연은 남자 1500m에서 2분25초0으로 15위, 5000m에서 8분55초9로 21위, 1만m에서 18분2초7로 13위에 올랐다. 장우식은 남자 1만m에서 19분00초1로 26위를 차지했다.

나쁘지 않은 성적을 거두고 돌아온 때문인지 당시 빙상계는 더욱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는 계획을 짰다. 청량리에 정규 규격의 빙상장까지 지으며 훈련에 매진했을 정도였다. 만약 세계 2차 대전이 일어나지 않아 1940년과 1944년에 정상적으로 대회가 열렸다면 분명 메달권 선수가 탄생했을 것이다.

이런 밑바탕이 1948년 첫 한국인 올림피언으로 이어졌다. 태극기를 앞세우고 참가한 최초의 올림픽에는 최용진, 이종국, 이효창이 출전했다. 이효창은 남자 5000m와 1만m에서 메달권 진입이 기대됐지만 컨디션 저하와 현지 적응 실패로 중위권에 그쳤다. 그럼에도 이들은 분명 세계 정상권에 가까이 있던 선수였다.

2010년 밴쿠버 동계 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500m에서 금메달을 딴 이상화가 힘찬 레이스를 펼치고 있다. <출처=대한체육회>
2010년 밴쿠버 동계 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500m에서 금메달을 딴 이상화가 힘찬 레이스를 펼치고 있다. <출처=대한체육회>

◆ 설상종목-여자선수 첫 출전한 1960년 올림픽

한국전쟁으로 1952년 대회를 건너뛴 한국 동계스포츠는 1960년 미국 스쿼밸리에서 열린 대회에서 또 다른 역사를 쓴다. 스피드스케이팅에만 출전했던 한국이 설상종목까지 분야를 넓힌 것이다. 임경순이 알파인 스키에 출전했고 김하윤이 크로스컨트리에 나섰다.

또 다른 역사도 있다. 바로 여자선수의 출전이었다. 김경희와 한혜자 등 2명의 선수가 여자스피드스케이팅 종목 500m, 1000m, 1500m, 3000m 등에 출전했다. 물론 모두 20위권에 머물렸지만 여자 선수들이 동계올림픽에 함께 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분명 한국 동계스포츠의 새로운 페이지였다.

1968년 프랑스 그레노블에서 열린 대회에서는 또 하나의 종목이 추가됐다. 바로 피겨스케이팅이었다. 남자의 이광영과 여자의 이현주, 김혜경이 나란히 출전했다. 한국 피겨의 에이스였던 장명수는 1972년 일본 삿포로 대회에 출전, 19위에 오르며 미래를 기약했다. 김연아를 지도했고 현역 코치로도 활약하고 있는 신혜숙은 1980년 미국 레이크 플래시드 대회에 출전, 20위에 올랐다.

수많은 한국인들이 동계올림픽에 도전했지만 세계 정상권과는 거리가 있었다. 그러나 불세출의 스타 배기태가 일을 냈다. 배기태는 1988년 캐나다 캘거리 대회 남자 스피드스케이팅 500m에서 36초90의 기록으로 5위에 올랐다. 이는 한국 선수가 동계올림픽에서 가장 메달권에 근접한 기록이기도 했다. 배기태는 1000m에서도 9위에 오르며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졌다.

여기에 시범종목으로 치러진 쇼트트랙에서 미래를 봤다. 김기훈과 이준호가 각각 남자 1500와 3000m 종목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시범종목이어서 공식 집계로 잡히지 않았지만 당시 선전을 계기로 쇼트트랙이 전략 종목으로 자리잡게 된다.

결국 김기훈은 1992년 프랑스 알베르빌 대회에서 남자 1000m 금메달을 따내며 첫 한국인 금메달리스트가 된다. 또 김기훈, 이준호, 모지수, 송재근은 남자 5000m 계주에서 금메달을 합작했다. 여기에 김윤만이 남자 스피드스케이팅 1000m에서 은메달을 따내며 한국 동계스포츠가 비약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2014 소치 동계올림픽 피켜 스케이팅에서 은메달을 수상한 김연아. <출처=연합뉴스>
2014 소치 동계올림픽 피켜 스케이팅에서 은메달을 수상한 김연아. <출처=연합뉴스>

◆ 불세출 스타 배기태에서 이상화·김연아까지

쇼트트랙이 '골드 종목'이 되면서 한국은 2006년 이탈리아 토리노 대회까지 금메달 2개 이상을 계속 따냈다. 그러나 쇼트트랙 외에는 좀처럼 금메달이 나오지 않았다. 이강석이 토리노 대회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500m에서 동메달을 따내 김윤만에 이어 쇼트트랙이 아닌 종목에서 두번째 메달리스트가 됐지만 쇼트트랙 편중은 여전했다.

하지만 2010년 캐나다 밴쿠버 대회에서 한국 동계스포츠는 새로운 장을 열었다. 쇼트트랙에서는 금메달 2개에 그쳤지만 모태범이 남자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500m에서 정상에 오르며 한국 스피드스케이팅 첫 금메달리스트가 된다. 이어 이상화도 여자 500m 금메달을 따냈고 이승훈이 남자 1만m 우승을 차지했다.

또 김연아가 여자 피겨스케이팅에서 여왕 자리에 오르며 무려 6개의 금메달을 가져왔다. 이상화는 소치동계올림픽에서도 여자 500m 우승을 차지하며 2연패에 성공한다.

이제 한국 동계스포츠는 평창 대회에서 새로운 기록에 도전한다. 일단 첫 남녀 아이스하키 출전이 이뤄졌다. 여기에 윤성빈은 스켈레톤 정상을 노린다. 윤성빈이 금메달 아니 메달을 획득하기만 해도 한국은 물론 아시아 최초 썰매종목 메달리스트가 된다. 봅슬레이도 메달을 노린다. 평창이 자신이 은퇴무대로 장식할 이상화는 올림픽 3연패를 바라본다.

이밖에 컬링과 일부 설상종목에서도 메달권 진입을 노리고 있다. 한국 동계스포츠는 평창에서 새로운 역사를 쓸 준비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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