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스포츠한국] 탈진으로 인해 주인공이 잠의 나락 속에 빠져들려고 하자 그의 혀는 점점 더 아파오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이승을 떠나는 수도녀를 위해 그의 “혀 끝을 이빨로 물어끊어, 피와 함께 그 죽음의 깊은 목구멍에다, 깊이깊이 밀어넣어”주었기 때문이었다. ( 213쪽)갑자기 그에게 분노나 증오가 도발되지 않는 한 대상을 향한 살육의 욕구가 되살아났다. 그는 누구랄 것도 없이, “그렇지 이라도 드륵드륵 갈아붙여볼까? 그렇지, 다시 한 번 돌을 들어, 저 살아 있는 것이 모질게 꿈틀거리는 것을
[데일리스포츠한국] 주인공이 유리로 들어온 지 27일째가 되는 날이었다. 그는 밤새도록, 그의 아낙이었던 것이 누운 구덩이에다, 모래를 조금씩 조금씩 밀어넣어 혼백을 잃고 폐허인 것을 묻어버렸다. ( 239쪽)이 대목에서 나는 2000년 초가을의 금요일, 독일 유학 중 진행되었던 지인의 장례식에 참석했을 때의 한 장면을 떠올렸다. 장례 미사를 집전했던 신부가 성서의 한 구절을 낭독한 후 마지막에 꽃삽으로 흙을 한 줌 퍼서 관 위로 던지며, “흙이었던 것은 다시 흙으로, 재는 다시 재로, 티끌은 다시 티끌로 돌
[데일리스포츠한국] 주인공은 자신이 충고한 바와 같이, 수도녀의 영혼이 그녀가 원하는 모태의 자궁을 갈망하는 즉시 태속에 들기를 바랐다. 그렇게 하여 그녀의 영혼이 선택하여 잠입한 자궁에 파문이 일어나 그것이 그녀의 ‘천상적 저택’이 되기만을 간절히 바랐다.동시에 주인공은 원하는 태문의 선택에도 불구하고 간혹 잘못되는 경우를 우려했다. 그것은 업의 작용을 통하여 좋은 자궁들이 나쁘게 나타나 보일 수도 있으며, 좋지 않은 자궁들이 선하게 나타나 보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 237쪽)그녀의 영혼이 이러한 과오를
[데일리스포츠한국] 주인공이 수도녀의 영혼을 위해 의식을 진행하는 중에도, 수도녀의 육신은 썩어 모든 구멍들마다에선 황천이 흐르고, 그 구멍에선 쉬가 실려, 작은 구더기들이 바글거리기 시작했다. 무덤 전에는 까마귀들이 우짖으며, 더러운 낯짝으로 와 앉아 그녀의 죽음을 내려다보곤 했다.주인공이 수도녀를 잃은 후 경험하고 있는 이처럼 황량한 풍경의 이미지와 ‘검은 고양이’의 작가인 에드거 앨런 포(Edger A. Poe: 1809-1849)의 ‘까마귀(the raven)‘란
[데일리스포츠한국] 주인공은 정처 없는 속집(俗執)의 고혼이 된 수도녀의 영혼이 들어가 닫을 자궁을 찾아야 하는, 시급한 상황에서도 당황하지 않고 다시 그녀의 영혼을 향해 다음과 같이 주문했다.“자. 나의 여인이여, 그러면 이것을 명심하라. 명심하라. 당황하거나 약하지 마라.선업의 고리에 끼어들어 나를 지속시킬 하나의 확고부동한 마음을 견지하고, 자궁의 문으로 다가가자, 그리고 대우(對偶: 둘이 서로 짝을 지음)를 명심하자. 지금은 진지한 마음가짐과 순수한 애정이 필요한 그 시각이 아닌가 질투를 버리고, 아버지-어머니 위에서 명상하
[데일리스포츠한국] 수도녀가 세상을 하직한 지 이틀째 저녁, 주인공은 그녀의 친구들이 망인과 생인을 위해 젯밥을 지어와 한바탕 곡을 하고 떠난 자리에 홀로 남아 다시 그녀와 마주하고 있었다. 그는 목젖까지 치밀어 오르는 허기 때문에 별빛 아래서 젯밥을 혀가 태워지는 아픔으로 꾸역꾸역 밀어 넣었다. 그리고 그는 어둠 속에서도 희게 돋아올라왔던, 그 얼굴을 잃은 얼굴을 내려다보기만 했다. 그녀는 이 세상에 단 하나 뿐이었던 그의 엄니의 역할을 대신했던 여인이었다. 그런 그녀를 여읜 그에게 끝없는 절망의 밤이 되풀이 되었다. (
[데일리스포츠한국] 주인공이 유리로 들어온 지 24일째 날, 그는 죽은 수도녀의 구릿 빛으로 살아서 밝던 얼굴이, 가짓빛으로 어두워진 모습으로 보면서 홀로 중얼거린다. “정말 세월도 너무 흘러싼다. 정말 너무 흘러싼다. 그런데 흘러싼다. 이 모진 여인아. 네가 이렇게 변했구나” ( 223쪽)그는 흙 위를 걷던 그녀의 정도 많고 눈물도 많은 아름다움을 다시 한 번 상기해 보았다. 그는 대답 없는 그녀에게, “슬프지만 깊은 노래이거늘”, “네가 못다 부르고 가져간 노래는 언제 다 잠깨워 이승으로 불러 보내려 하느
[데일리스포츠한국] 주인공은 살아오는 동안 혼도에서 머물렀던 수도녀에게 바르도의 지혜를 일깨우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했다.“그렇게 하라. 그러면 바르도를 인식하게 되리라. 그 순간, 이승 살았던 모든 경험이 되살아나 그대를 혼도시키려(정신이 어지러워 쓰러지게 하다.) 하리라. 그러면 그대는, 광휘(환하고 아름답게 눈부신 빛)와 신위(감히 범접할 수 없는 거룩한 위엄)들을 보게 될 것인바, 그것은 자연 현상의 나타남일레라. 저 전체의 하늘이 우선 깊은 청색으로 나타날 것이다.( 221쪽)(중략)모든 집합의 질료
[데일리스포츠한국] 박상륭은 216쪽에 감각능력의 집약체인 바르도에 처한 몸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술하였다.“그대는 죽었으나, 그대의 눈은 형체들을 볼 것이고, 그대의 귀는 소리들을 들을 것이며, 그리고 그대 감각의 모든 기관은 조금도 약화되어 있지 않을 것이고, 대단히 예민하며, 완전무결한 채일 것이다. 그런 이유로 바르도에 처한 몸은 모든 감각 능력의 집단이라고 말 되어지는 것이다”같은 맥락에서 갤럽연구소를 설립, 운영했던 조지 갤럽(George H. Gallup: 1901-1984)은
[데일리스포츠한국] 주인공이 유리에 첫 발을 붙인지 23일 째였다. 그는 그녀의 동무들이 떠난 자리에 홀로 남아 이승을 하직한 그녀의 새 생명을 준비하기 위해 여섯 개의 바르도(Bardo: 둘 사이를 의미하며, 낮과 밤사이, 황혼 때의 어스름한 시간, 이승과 저승의 사이, 사람이 죽은 다음 또 다른 다음 세상에 환생하기까지의 머무는 중간 시기의 49일간)를 위한 의식을 진행했다."오, 고매하게 태어났었던 여인이여, 이제 그대의 숨이 멈췄으니, 지금부터 진실로 그대의 나
[데일리스포츠한국] 주인공은 이승을 떠나는 수도녀에게 “혀 끝을 이빨로 물어끊어, 피와 함께 그 죽음의 깊은 목구멍에다, 깊이깊이 밀어넣어주었다.” 이 또한 꺼져버린 생명을 다시 일깨우려는 처절한 몸짓이기에 앞서 “나 워처키든 말여라우, 쪼꿈이리도우, 시님 좀 띄어각고 가고 싶어라우”라고 했던 그녀의 염원에 화답하는 것일 것이다. ( 213쪽)그것은 그가 서른 세 해를 살아오는 동안 유일하게 “애착하였던 것의 죽음에 바친 산 희생, 산 제물”이었다. (214쪽)석양이 비껴간 자리에, 그는 저 싸늘한 것을, 수
[데일리스포츠한국] 수도녀는 자신의 삶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감지하고 있는지, “시님, 쪼꿈만 지다려줴기라우이? 참말이제, 내가 월매 남덜 안헝 것맹여라우”라고 말했다. ( 211쪽)그가 잠자코 그녀의 말을 듣고 있자니, “글씨 나는 쪼꿈 전에도 내가 죽어서라우, 저싱 같던 꿈을 꿨구만라우, (중략) 그라장개 추운 생객이 듬선 울고자파도요, 그라고 있응개 누가 와각고 나를 품에다 품어줘라우. 시님이라고 생각히었구만이요이”라고 하면서 그녀는 방금 전에 저승에 다녀왔던 꿈 이야기를 그에게 했다.바로 그 때
[데일리스포츠한국] 주인공의 계집은 그러나, 말을 잇지 않고, 몸이 아니라 마음이 불편한 듯 눈을 지그시 감았다. 그 감은 눈꼬리에로 그런데 눈물이 계속해서 번져나고, 그것은 나중에 걷잡을 수 없는 오열로 변했다. 그녀는 뭔지를 자꾸 용서해 달라고, 누구에겐지 빌고 있었다. ( 208쪽-209쪽)그는 그녀가 떠듬떠듬 전한 토막들을 바로 이해할 수 없어 찬찬히 퍼즐을 맞춰보았다. 촛불중이 읍내에서 돌아온 날 그녀에게로 왔던 모양이었다. 그녀는 그를 기다리며 ‘눈물이나 빠뜨리면서’, 그의 토굴을 수리하기 위해 삽
[데일리스포츠한국] 주인공은 잠시 침묵하며 “너무 늦었다는 이유만으로 한 생명이 경각에 달해 있는 것을, 그냥 내려다보고만 있는 일은 옳을 것인가?”하고 자신에게 반문했다. 아마도 이것은 그로서도 “종내 이해할 수 없는 아집일 터. ( 205쪽)그 순간 그는 그녀의 생명이 고통당하고 있는 것이나 지켜보려고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고작 그녀의 바짝 마른 입술에다 짠 눈물이나 떨어뜨려주고 있었다.그는 간신히 오열이 넘어가는 입을 열어 “임자, 내가 왔소. 자 보구려. 내가 왔잖소. 자
[데일리스포츠한국] 주인공이 다시 돌아온 유리는 여태도 내리는 ’는개(안개비보다는 조금 굵고 이슬비보다는 가는 비)’인지, 아니면 그냥 새벽의 안개인지 모를 것이 흩뿌리고 있었다. 지척을 분간하기도 힘든 안개 속에 뒤 덮인 유리의 어귀는 마치 헤르만 헤세의 ‘안개 속에서(Im Nebel)‘란 시를 떠올리게 했다.“기이하기도 하지, 안개 속을 거니는 것은!삶은 홀로 존재한다는 것.어떤 인간도 타인을 알지 못하느니각자는 혼자이런가“(유명옥 번역) 201쪽의 유리의 안개 속 풍경은 주인공에게 무엇 하나 제대로 보이
[데일리스포츠한국] 195쪽에서 주인공이 유리로 들어온 지 22일 째가 되는 밤이 되었다. 예의 벙어리 마부가 모는 짐수레가 그를 태우고 한밤중에 떠났다. 통하는 대화라고는 나눌 수 없었 던 고독한 두 명의 인간은 수레를 타고 한 밤중을 통과해 나갔 다. 그 때 읍은 그들의 눈 속으로 쑴먹쑴먹 투영되고 있었다. 그 나마 “수레채에 묶어 쇠머리 앞쪽으로 뻗쳐낸, 긴 장대 끝에 매 달려” 흔들거리는 하나의 흐린 등이 그들이 나아가는 컴컴한 밤 길을 비추는 길잡이가 되어 주었다. 그 등은 주인공의 “안막에 서 자
[데일리스포츠한국] 주인공은 침모로부터 읍청에 다녀온 장로가 자신을 기다린다는 전갈을 전해 듣고는 얼른 사랑채로 나왔다가, 젖은 옷을 말아들고, 다시 안채로 들어갔다.장로는 187쪽에서 그에게 “그 애 가야금 솜씨가 거의 뭐 변변찮지요?”하고 물었다. 그는 “저 숙녀의 가야금을 듣고 소승은, 한번 몹시 앓고 난 느낌이오니, 숙녀분께서는 가히 명인이 아닌가 여겨집니다.”라고 대답했다. 그의 이 대답은 장로를 몹시 흡족하게 했다. 점심상을 물린 자리에서 장로는 그에게 유리로 돌아가기 전에 한 번 더 집회에서 강
[데일리스포츠한국] 박상륭은 186쪽에서 주인공의 입을 통해 “생명이 고통이라면 죽음도 고통이다. 그러므로, 나지 마라. 죽는 것이 고통이다. 죽지 마라, 나는 것이 고통이다”라고 독백한다.연이어 그는 “낳고 죽음이 끊긴, 서역 어디라는데, 극락에나 가서 번데기라도 되자는 것인가? 삶이 고통이라고 전제했을 때, 극락정토가 어떤 고장인지는 모르되, 죽을 수도 날 수도 없는 삶 또한 고통이라는 결론은 저절로 따르는 것이다.”라고 탄식한다.우리 속담에 “개똥 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라는 말이 있다. ‘아무리 천
[데일리스포츠한국] 박상륭은 그의 책 185쪽 말미와 186쪽 첫머리에 “덧없음은 어디서 오는가? 그것은 비실재적 환영으로부터가 아니라, 실재의 현상으로부터 오는 것, 그러므로 누가 만약 그 덧없음을 실제로서 포착하길 원한다면, 그 현상을 체험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오온(五蘊, 五陰: panca khandha: 불교 용어로, 개인 존재를 구성하는 5개의 집합, 색(色), 수(受), 상(想), 행(行), 식(識)을 뜻함.)을 황폐로이 했을 때, 무상도 비무상도 비비무상도 없을 것이지만, 벼락 맞고 죽은
[데일리스포츠한국] 182쪽에서 그녀는 주인공에게 자신이 그를 오래오래 전부터 알아왔었다고 말했다. 그녀는 그의 괴팍하고 늙은 스승이 장로의 집에 들러 틈만 나면 그에 관해 이야기를 했었다고 전했다. 그녀는 그의 어깨에 얼굴을 기대며 그래서 그녀는 마치 그를 아주 어렸을 때 헤어진 오라버니처럼 생각했었다고 했다.그런데, ‘구름이 넋 빠뜨리고 가는 호수’에서 일어난 일로 인해 그녀가 그를 만나기 전부터 지녀왔던 두 가지 영상이 여지없이 깨져버렸다고 했다. 두 가지 영상 중 하나는 그가 ‘그저 오라버니거니’ 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