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5월 10일 제20대 대통령에 취임했다. 대통령의 취임사는 임기동안 국정의 비전과 당면과제 그리고 자신의 철학이 담기기 때문에 내외의 관심이 모아진다. 윤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반지성주의를 비판하고 서로의 입장을 조정하는 합리주의와 지성주의를 강조 했다. 자유ㆍ인권ㆍ공정ㆍ연대를 통해 국민이 주인이 되는 사회를 다짐, 북한이 핵개발을 중단하면 주민의 삶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담대한 계획을 준비하겠다고 밝혔다.대통령의 취임사는 당선인 주변의 내노라하는 글쟁이들을 모으고, 또 사계의 명사들의 자문을 거쳐 초고가 마련
오는 29일은 25세의 대한 청년이 상하이 홍커우공원(현 뤼순공원)에서 열린 이른바 천장절 겸 전승 축하 기념식장에 폭탄을 던져 시라카와 대장을 비롯 일제 고위 장성 등 여럿이 죽거나 부상을 당하게 한 의거 90주년이다.의거의 주인공은 바로 윤봉길의사이다. 이 의거는 독립운동가들은 물론 우리 국민에게 커다란 용기와 희망을 주고, 특히 중국 정부가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한국의 독립운동가들을 지원하는 계기가 되었다. 장제스 총통이 “5억 중국 인민이 하지 못한 일을 조선 청년이 해냈다”고 칭송할 정도였다.윤봉길 의거가 없었다면 중국 내의
차기 정부의 국무총리 후보자를 비롯하여 주요 관직 예상자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국민의 눈높이에 맞지 않거나 비리 혐의자들도 적지 않다. ‘인사가 만사’라는데, 글쎄다.공자가 노나라 재상일 때, 당대의 실력자인 소정묘(少正卯)를 처형했다. 덕치와 인(仁)을 주장하면서 그러느냐는 제자들에게 공자는 단호히 말했다. “사람에게는 절대로 용서할 수 없는 5악(惡)이 있다. 소정묘는 그 5악을 골고루 갖춘 인물이다. 그래서 덕치와 어짐에 어긋나는 것을 알지만 바른 사회를 위해 어쩔 수 없이 그를 참하게 된 것”이라면서 5악에 대해 설명했다
‘여성가족부 폐지’라는 윤석열후보의 일곱 글자 공약이 대선판에 이어 인수위의 핵심 키워드가 되었다. 우리 정치의 후진성 또는 저급성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국민의 절반이 여성이고, 정부에 성평등 정책 전담기구가 있는 나라는 194개, 독립부처 형태로 있는 나라는 160개인데 마치 한국에만 여성가족부가 있는 것처럼 호도한다.여가부의 올해 예산은 1조 4560억원으로 정부 전체 예산의 0.24%에 불과하며 18개 정부부처 중 가장 적다. 그나마 타 부처의 용도에 많이 쓰이고 순수하게 ‘여성과 가족’을 위한 예산은 소액에 불과하다.대한민국
임정 수립 103년만인 지난 삼일절에서울 서대문형무소 건너편에 문열어27년 동안 항일민족해방투쟁 지휘한‘대한민국의 뿌리’ 중요한 사료 전시 국립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이 지난 3월 1일 해방 77주년, 임시정부가 수립된 지 103년 만에 개관하였다. 대통령선거와 코로나19 확산으로 사회가 어수선할 때 개관하여 일반 국민에게는 비교적 덜 알려진 상태이다.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통일로 구 서대문구 구의회 건물 터이고 서대문형무소역사관 건너편에 세워진 기념관은 2020년 4월에 착공하여 2년여 만에 준공하였다. 대한민국 임시정
정부(정권)가 있고 정당이 존재하고 국회가 활동하는데 정치가 없었다. 그 자리에 정파 간의 날선 공방이 오갈 뿐이었다. 다행히 지난 28일 저녁 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당선인의 만찬회동으로 신구 권력 간의 막혔던 물꼬가 트였다.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는 ‘예상된 비상사건’이고, 러시아의 침공으로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은 자칫 불똥이 타이완으로 번질 개연성이 없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국제정세는 이제 어김없이 다시 신냉전 구조로 굳어져 가고 있다. 미국과 중국(과 러시아)이 큰 축을 이루지만 미국 쪽에는 한국과 일본
지난 100여 년 동안 우리 민족은 안중근의사께 큰 빚을 지고 살아왔습니다. 일제강점기 35년은 어찌할 수 없었다 치더라도, 광복 77년 동안 입으로는 안 의사를 칭송하고, 빈 무덤에 회칠하는 식의 거창한 추념 행사를 하는 등 형식에 치우치고, 정작 의사의 정신과 행동을 기리는 일은 소홀했습니다. 친일세력과 불의한 자들에게 정의의 총탄, 즉 ‘의거’의 재현이 두려웠기 때문일 것입니다. 안중근의사는 조선의 장부로서 우리 동포는 물론 중국ㆍ러시아 인민과 지도자들의 우러름을 받고, 국경과 이념을 초월하여 사표가 되셨습니다. 중국의 국가주
윤석열 당선자는 이같은 양극화된 국민의 정서를 안고 승자가 되었다. 따라서 그의 두 어깨에는 코로나 극복, 한반도의 평화유지, 지구온난화, 지구적 신냉전, 청년실업 등 많은 과제가 얹혀있다. 선거 과정에서 수많은 공약을 제시하여 기대치도 높다. 민주주의 기본가치와 틀을 지키면서 국민통합의 길을 찾아야 한다. “국가의 배를 조타하는 예술은 모든 예술 중에서 가장 어려운 예술이다.”독일 철학자 랑캐의 말이다. 향후 5년간 대한민국을 이끌 선장이 결정되었다. 상대 후보와의 표 차이가 불과 0.73% 포인트(24만 700여 표)였다. 단
동양에서는 오래 전부터 ‘이름을 바르게’하는 정명사상(正名思想)이 전한다. 공자가 자로(子路)에게 밝힌, “이름을 바르게 한다”(必也正名乎)는 정명사상의 본질은 “이름이 바르지 않으면 말씀이 옳지 않고, 말씀이 옳지 않으면 일이 이루어지지 않으며, 일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예악이 흥하지 않고, 예악이 흥하지 않으면 형벌이 정당함을 잃으며, 형벌이 정당함을 잃으면 백성이 어찌할지를 모른다.”는 것이다.해방 77주년이 되는 지금까지 여전히 상당수의 역사용어가 분별없이 사용되고 있다. 일제가 한국침략과 지배를 정당화하고자 관학자들을 동원하
선진국이 되어 처음으로 치르는 대선이다. 많은 나라들이 선거 과정과 결과를 지켜보고 있다. 실제로 어느 후보가 당선되느냐에 따라 국제사회의 평가가 다르고 나라의 진운에도 크게 영향을 받게 될 것이다. 우리는 국제사회가 먼저 공식적으로 인정해준 선진국이 되었다. 2021년 7월 195개국이 가입한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가 한국의 지위를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격상시켰다. 후진국→개발도상국→중진국→선진국의 대열에 이르렀다. 제2차 세계대전 후 독립한 나라 140개 국가 중 유일한 케이스다. 분단ㆍ동족
“큰 선거를 앞두거나 정치적 변혁이 있을 때 변절자가 줄을 선다. 대선을 앞두고 다시 변절자들이 나타난다…일신의 안일과 이익만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변절은 하나의 삶의 방편이다. 시류에 빌붙는 부류에게 변절은 철 따라 바꿔입는 의복보다 더 편리한 행위” 큰 선거를 앞두거나 정치적으로 변혁이 있을 때는 변절자가 줄을 선다. 대선을 앞두고 다시 변신(절)자들의 모습이 나타난다. 변절이란 무엇인가. 사전에서는 “사상이나 인간관계에 있어서 절개를 지키지 않고 바꾸는 행위”라고 풀이한다. ‘절개’란 신념을 굽히거나
우리 역사에는 시대마다 걸출한 개혁주도 인물이 나타났다. 단 한 번만이라도 이 개혁주도 인물이 성공하였다면 우리 역사의 전개는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이들 개혁주도자들은 그때마다 부패무능한 국정의 개혁과 만민평등을 주창하고 대외적인 민족자주성의 확립과 혁신정치를 시도하였다.그러나 개혁주도 인물들은 대부분이 보수기득세력의 두꺼운 장벽을 넘지 못하거나 외세의 개입으로 그 시도가 좌절되고 말았다. 우리 국민성 역시 전통적으로 보수와 개혁의 두 흐름으로 교직된다. 기마민족과 농경민족의 혈통을 갖고 있는 한민족은 원시 고대사회의 기마민족적
대선 정국과 코로나 역병 악화, 이상기후까지 겹쳐 온통 세상이 어지럽다. 대선 후보들의 가벼운 언행은 여전하고 사회 지도층 인사들의 부패 카르텔도 여전하다. 이런 때일수록 주권자인 국민은 차분하고 이성적인 선택으로 ‘비 동시성의 동시성’을 극복해나갔으면 한다. 그런 의미에서 선학들의 중천금(重千金) 같은 말과 글을 골라본다.생각은 담백해야 하나니, 담백하지 않음이 있다면 얼른 생각을 맑게 할 일이다. 낯빛은 엄숙해야 하나니, 엄숙하지 않음이 있다면 얼른 낯빛을 단정히 할 일이다. 입은 과묵해야 하나니, 과묵하지 않음이 있다면 얼른
대한제국을 병탄한 일제는 가혹한 무단통치를 통해 민족문화의 말살, 경제적 지배와 수탈로 한민족은 고사 상태에 빠졌다. 일제에 항거하는 의병ㆍ열사들이 각지에서 독립운동을 벌였다. 일제의 폭압적인 탄압에도 불구하고 독립운동가들은 중국ㆍ만주ㆍ노령ㆍ미주 등 해외로 망명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하거나, 혹은 지하로 숨어서 비밀리에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1918년 1월 윌슨 미국 대통령의 민족자결주의원칙이 발표되었다. 윌슨의 민족자결주의 구상은 연합국과 대결하였던 독일ㆍ오스트리아ㆍ터키 등에 속해있던 식민지에 적용하려던 제1차 세계대전의 전후처리 원
우리 독립운동의 무대는 중국ㆍ미국ㆍ러시아ㆍ프랑스 등 세계 각지에 이르렀다. 국제회의가 열리는 곳이면 대표를 참석시켜 독립의 기회를 얻고자 시도하였다. 모스크바에서 열린 극동민족대회에는 가장 많은 대표가 참석하기도 했다.1917년 볼셰비키혁명에 성공한 러시아는 미국 등이 주도한 태평양회의에 맞대응하여 1922년 1월 21일부터 2월 2일까지 모스크바에서 코민테른 집행위원회가 주최하는 극동민족대회(원동약소민족대회, 제1차 극동피압박인민대회, 근로자대회, 제1회 극동공산주의 단체 및 혁명단체대회로도 불렸다. 여기서는 극동민족대회로 표기한
압제와 규제, 인습과 관습, 법률과 도덕률, 타성과 습성…. 이런 것들에서 벗어나 살 수는 없을까. 루소는 자유롭게 태어난 인간이 도처에서 압제와 사슬에 묶여있다고 주장했다. 루소가 말한 압제는 정치적인 내용이 중심을 이룬다. 하지만 인간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은 정치적인 압제가 전부는 아니었다. 오히려 인습이나 전통에 의해 더욱 심한 규제를 당하는 경우도 많은 것이다. 선천적으로 자유롭게 태어난 인간이 후천적으로 규제에 묶인다는 것은 인간의 자기모순이다. 반인간의 올가미에 묶인 것이다. 그러나 압제와 인습에도 불구하고
우리 민족의 고유사상인 풍류(風流)는 신라말에 불교와 유교가 들어와 토착화되면서 점차 퇴화하여 고려의 국교가 된 불교와 조선조의 역시 국교처럼 굳어진 주자학체제, 이어서 일제 식민지배와 해방 후 전쟁과 냉전을 거치는 과정에서 거의 소멸되다시피하였다.남한의 자본주의체제나 북한의 공산주의체제는 풍류사상과 풍류인물이 ‘등장’하기에는 대단히 척박한 풍토가 되었다. 특히 19세기말 이래 서양문물이 들어오면서 정신보다는 물질, 인격보다는 능력이 우선시되고, 예스러운 것이나 심미적 취향보다 실용성과 획일성이 강조되면서 우리 전통적인 풍류사상과
꼭 90년 전인 1932년 1월 8일이다. 한인애국단원 이봉창(李奉昌) 의사는 이날 오전 11시 44분경, 일왕 히로히토가 만주국 괴뢰황제 부의(溥儀)와 도쿄 요요기(代代木) 연병장에서 관병식을 거행하고 경시청 앞을 지날 때 수류탄을 던졌다. 이봉창은 일왕이 두 번째 마차에 탔을 것으로 짐작하고 폭탄을 던졌으나 일왕은 폭사하지 않았다. 수류탄의 성능이 별로 좋지 않았던 것이다.국치 22년 만에 대한제국 병탄의 수괴인 일왕을 적의 수도 왕궁 근처에서 폭살하고자 한 대담한 의거는 비록 실패하기는 했으나 한민족으로서는 대단한 쾌거가 아닐
1910년 12월 30일 한밤중에 꽁꽁 얼어붙은 압록강을 건너는 무리가 있었다. 남자들은 무거운 짐을 지게에 지고 여자들은 머리에 인 그야말로 남부여대의 행렬이었다.일본군 국방수비대의 검사가 있었지만 워낙 추운 날씨이고 초라한 행렬이라 그대로 보냈다. 당시 빚을 진 조선 농민들의 야반도주로 보았던 것 같다. 일제가 두고두고 개탄했던 삼한갑족 우당 이회영 일가의 망명길이다흔히 지식인의 유약성이 논의되지만, 우당은 조선 선비의 신분으로서 해외로 망명하여 신흥무관학교를 창설하고 이후 줄곧 신채호ㆍ박용만 등 무장투쟁론자들과 함께하였다. 죽
높은 자리는 그 위치에 걸맞는 책임과 도덕성 그리고 정의의 실현이 요구된다. 절대군주 시대에도 가뭄이 들면 임금이 하늘에 부덕함을 빌면서 기우제를 지냈다. 전통적으로 우리나라의 위정자와 특권층은 권력만 행사했지 책임감과 도덕성ㆍ정의구현을 외면했다. 결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조선시대 선조는 왜군이 쳐들어오자 한양을 버리고 의주로 도망쳤다. 이를 지켜본 백성들이 몰려가 임금의 거처 경복궁을 불질렀다. 한양으로 돌아와서는 왜적과 싸운 장수들은 제쳐두고 자신의 측근들에게 관직과 훈작을 나눠주었다. 뒤를 이은 인조는 병자호란이 일어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