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라운드 포청천' 심판학교의 여의사 등 이색 지원자들

'그라운드 포청천' 심판학교의 여의사 등 이색 지원자들

  • 기자명 고유라 기자
  • 입력 2013.11.25 0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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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SEN=고유라 기자] 늦가을 칼바람에도 운동장에서 구슬땀을 흘리며 훈련하는 사람들. 언뜻 들으면 선수들 이야기 같지만 남다르게 야구를 배워나가는 이들이 있다.

지난 8일 명지전문대학에서 개강한 제5기 야구 심판 양성 과정은 매주 금요일~일요일 수업으로 10주간 160시간의 교육이 이뤄지는 일반 과정과 5주간 64시간으로 구성된 전문 과정으로 나뉘어 진행되고 있다. 일반 과정 수료자 가운데 성적 우수자에게는 한국야구위원회(KBO)와 대한야구협회(KBA) 산하 단체 및 야구연합회 소속 심판으로 지원할 수 있는 자격을 준다.

17일 찾아간 명지전문대학. 전문 과정에는 사회인 리그에서 심판을 보던 준 전문가들도 많지만 그야말로 초보들이 모여 있는 일반인 과정은 한창 야구의 상세 이론과 심판들의 기초 동작 등을 배우고 있었다. 야구가 좋아 야구를 보기 시작했고 더 자세히 알고 싶어서, 혹은 남들과 다른 시선에서 야구를 보고 싶어 심판 교육을 받고 있는 이들 가운데는 재미있는 사연을 가진 이들이 많았다.

김남성(41) 씨는 직업이 두 가지다. 하나는 성당 신부님, 또 하나는 성동청소년수련관 관장이다. 프로야구 원년부터 야구팬이었던 그는 얼마 전부터 수련관에서 직원들과 함께 팀을 꾸려 야구를 직접 하기 시작했다. 이왕 하는 김에 더 잘 알고 싶어 심판에 지원했다는 그는 "아직 2주차라 정신이 없지만 순간 판단력을 요하는 심판들이 얼마나 힘든지 이제 조금은 알 것 같다"고 말했다.

김 씨는 "남자 직원들과 가까워지는 방법이 많지 않았는데 야구를 하면서 우리끼리 뭉칠 수 있는 또 하나의 방법이 생겼다. 특히 그 가족들도 구경와서 하나가 되는 것이 정말 좋다"고 야구의 매력을 꼽았다. 그는 일요일 수업을 위해 새벽 6시 미사를 집전하고 야구학교로 매주 달려오고 있다.

올해 심판학교의 여학생은 모두 24명. 그중 2명은 초반에 힘들어 하차했다. 힘든 과정을 이겨내고 있는 가운데 현재 프로야구 19년차 베테랑 심판위원인 강광회 심판의 딸 강수아(22) 씨도 있다. 경희대에서 스포츠의학을 전공하고 있는 강 씨는 "얼마 전 공모전을 준비하면서 야구를 전문적으로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심판의 딸, 선수의 누나인데 잘알아야 하지 않을까 했다"고 입문 계기를 밝혔다.

강 씨는 "지금 3학년이라 이번 기회가 아니면 못할 것 같아서 신청을 했다. 힘들기는 하지만 아버지와 공통 관심사가 생겨서 질문도 많이 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일이 늘었다. 아버지도 딸이 자신과 같은 일을 배운다는 것이 신기하신 것 같다"며 웃었다. 심판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김풍기, 최규순 심판 등은 "아버지 대신 네가 뛰라"며 농담도 건네준다고 했다.



전숙하(37) 씨는 심판학교 최초의 여의사다. 국립의료원에서 정형외과 전문의로 일하는 전 씨는 사회인 야구를 하다 다친 환자들을 보면서 '야구인이 많다'는 것을 느꼈다고 했다. 롯데팬인 그는 "애매한 상황들을 알기 위해 책도 사보고 그랬는데 명확하지 않아 심판 일을 배우기로 마음먹고 왔다. 앞으로는 야구를 볼 때 심판을 더 많이 볼 것 같다"며 웃었다.

'선생님' 심판들이 에이스로 꼽은 윤은정(30) 씨는 남자 사회인 야구팀에서도 뛰었던 '선수 출신'이다. 야구에 빠진 남편을 따라다니다 직접 유니폼을 입었다는 윤 씨는 사회인야구 심판을 보고 있는 남편과 함께 '부부 심판'을 꿈꾸고 있다. 결혼하고 아기를 낳느라 집에만 있었다는 그는 "주말에 나를 위해 시간을 내고 밖으로 외출을 하는 것이 좋다"고 색다른 행복의 이유를 수줍게 꺼내놨다.

이번 심판학교 과정에 참여한 210여 명의 학생들은 저마다 다른 꿈과 다른 이유를 가지고 학교를 찾아왔다. 사회인야구 심판이 되고 싶어 찾아온 학생들도 있지만 호기심으로 온 이곳에서 심판에 대한 꿈을 새로 찾은 이들도 있다. 모두 하나같이 "찰나의 순간에 대한 판단"을 심판의 보람이자 어려운 점으로 꼽은 이들은 '그라운드 위의 포청천'을 위해 오늘도 큰 소리로 '아웃'을 외치고 있다.

autumnbb@osen.co.kr

<사진> 김남성 씨(위)-강수아 씨(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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