챗GPT 시대, 기자의 기본 소양은 ‘질문력’

챗GPT 시대, 기자의 기본 소양은 ‘질문력’

  • 기자명 김위근 언론학박사
  • 입력 2023.03.09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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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조직이 그렇지만, 특히 언론사는 사업을 영위하는 데 있어 인적 구성의 영향력이 절대적이다. 특정 언론사의 뉴스 품질은 해당 언론사 종사자 수준이 결정한다. 그리고 특정 언론사 종사자들은 개인이 아니라 해당 언론사 브랜드로 통칭되는 집단 정체성을 가진다고 본다. 현재 뉴스가 생산되고 유통되는 현실을 살펴보면, 전반적으로 우리 언론산업을 자본집약형 산업 또는 기술집약형 산업으로 일컫기 어렵다. 오히려 노동집약형 산업의 전형에 가깝다. 자본이나 기술보다는 종사자 노동의 질과 양이 뉴스 품질과 언론사 경쟁력에 미치는 영향이 훨씬 크다. 또한 사실을 확인하고 진실을 찾는 언론 행위의 각 단계에서 최종 판단과 결정은 언제나 인간의 몫이다.

현재 우리 언론계의 큰 이슈 중 하나는 기자들의 언론사 탈주다. 다른 언론사로의 이동은 이제 얘깃거리조차 되지 않는다. 유관 산업으로 옮기는 사례는 셀 수 없이 많으며, 최근에는 언론과 거리가 먼 아예 다른 산업으로의 전직이 눈에 띄게 늘고 있다. 이직이나 전직을 고려하는 것이 아니라 일단 언론계를 떠나겠다는 기자도 여럿이다. 이러한 추세는 고참 기자보다 되레 저연차 기자에서 흔하다. 이름 있는 신문, 방송 등 전통 언론매체의 기자직은 여전히 선망의 대상이다. 하지만 여러 내외부 요인으로 이른바 언론고시를 뚫은 지 얼마 되지 않은 기자들을 중심으로 저널리즘 엑소더스가 벌어지고 있다. 이는 언론 신뢰 위기의 결과이면서 원인이기도 하다.

기자는 누구인가?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은 “신문, 잡지, 방송 따위에 실을 기사를 취재하여 쓰거나 편집하는 사람”으로 정의한다. 이처럼 일반적으로 기자는 언론매체에서 기사 작성 업무에 직접 수행하는 직군으로 인식된다. 한국언론진흥재단에 따르면 2020년 말 현재 종이신문, 방송, 인터넷신문, 뉴스통신 등 우리나라 언론산업의 전체 종사자는 62,806명이었다. 이들 중 기자는 34,335명으로 전체 종사자의 약 55%에 해당했다. 물론 언론매체의 유형이나 규모에 따라 기자 수나 비율은 천차만별이다. 당시 정상 운영되고 있다고 파악된 언론매체 수는 6,807개였다. 기자에 대한 위 정의는 신문, 방송, 잡지 등 전통 언론매체만 존재하던 시기에 적합했던 것으로 단순히 보자면 이슈에 대한 알림과 정리에 초점을 맞춘다. 과거에는 이러한 알림과 정리만으로도 저널리즘 가치를 충분히 확인할 수 있었다.

최근 시민이 갖춰야할 기초 능력으로 강조되는 것이 있다. 바로 문해력(文解力)으로 번역되는 리터러시(literacy)다. 글자 그대로 단순히 문장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이 아니라, 대상에게서 정보와 지식을 획득하고 이해하는 능력으로 의미가 확장된 리터러시는 활용도가 매우 높은 용어다. 미디어 리터러시, 뉴스 리터러시, 정보 리터러시, 디지털 리터러시, 데이터 리터러시, AI 리터러시 등 용례가 무궁하다. 사실 문해력은 기자의 기본 소양 중 하나였다고 볼 수 있다. 당연히 취재와 보도 과정에서 상당한 수준의 문해력을 요구했다. 전문 정보 및 지식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취재한 후 시민이 잘 이해할 수 있도록 기사를 작성해 보도하는 것이 기자의 업무였다. 기술 혁명으로 저널리즘 대전환이 이뤄지는 지금, 이어지는 기자들의 언론사 탈주에는 기술적으로 대체 가능한 이 같은 전통적 기자 업무에 대한 미래 불안도 있을 것이다.

수년 전 로봇기자, 정확하게는 기사 자동 생산 소프트웨어의 보급이 저널리즘 현장에 던지는 울림은 굉장했다. 머지않아 인간기자가 로봇기자로 대체될 수밖에 없다는 비관, 로봇기자 덕에 인간기자가 저널리즘에 더 충실할 수 있다는 낙관, 기자 정체성에 대한 의문, 장차 언론산업이 몰락할 수밖에 없다는 두려움 등이 뒤섞였다. 다행히 시간이 지남에 따라 언론 현장에서 로봇기자는 인간기자를 보좌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것으로 정리됐다. 물론 기술적 한계 때문이었다. 그런데 최근 언론이 주목하는 생성형 초거대 AI는 다르다. 오픈AI의 챗GPT가 던진 돌 하나가 구글 바드, 마이크로소프트 검색엔진 빙, 네이버 하이퍼클로바 등의 수많은 쓰나미를 일으켜 언론산업 전반을 덮치는 모양새다.

생성형 초거대 AI의 가장 큰 특징은 인간과의 대화형 상호작용을 통해 인간이 원하는 콘텐츠를 완성된 형태로 직접 작성해 주는 데 있다. 연속적 대화가 가능해 결과물을 실시간으로 얼마든지 수정하고 보완할 수도 있다. 잘 알려진 바대로 최종 결과물의 수준은 인간이 하는 질문의 깊이와 전문성에 의해 결정된다. 언론산업 관점에서 전망하자면, 생성형 초거대 AI는 특정 정보 및 지식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단순히 이슈를 정리하는 수준의 기자 역할을 사라지게 할 것이다. 반면 전문적이고 깊이 있는 질문이 가능한 기자는 탐사보도나 심층보도에 생성형 초거대 AI를 활용함으로써 저널리즘의 새로운 전기를 경험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이제 기자의 기본 소양은 문해력보다는 질문력(質問力)이다. 기자는 원래 정리하기보다는 질문하는 사람이다. 취재의 시작은 이슈에 대한 질문이다. 각종 권력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이야말로 시민의 알 권리를 대리함으로써 누리는 언론의 자유 중 핵심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질문하는 기자를 쉽게 볼 수 없다는 시민의 일갈이 점점 잦아지는 것이 현실이다. 기자에 대한 불신, 뉴스에 대한 불만, 언론매체에 대한 거부 등 시민 냉소의 주요 원인을 질문하지 않는 기자에서 찾을 수 있다. 기자의 정체성 혼란, 직업의식 상실, 언론사 탈주 등도 마찬가지다. 이런 가운데 언론 현장에서 생성형 초거대 AI의 활용으로 기대할 수 있는 바는 기자 질문력의 회복이다.

물론 생성형 초거대 AI의 언론 활용에 대한 여러 비판이 있다. 데이터나 프로그래밍의 한계로 인해 부정확한 뉴스가 제공되거나 심지어 페이크뉴스가 만연해질 것이라는 우려가 존재한다. 빅테크의 정보 장악력이 더욱 심화돼 언론산업이 붕괴될 수밖에 없다는 암울한 숙명론도 고개를 들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생성형 초거대 AI 역시 기자의 질문 대상이다. 본질을 꿰뚫는 질문만이 생성형 초거대 AI의 한계와 문제점을 여실히 밝히고, 언론산업에서 올바른 활용 방안을 제시하게 만든다.

김위근(퍼블리시 최고연구책임자․언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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