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리더십

아름다운 리더십

  • 기자명 오진곤 교수
  • 입력 2023.03.02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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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철새들이 이제 돌아갈 채비를 서두르고 있다. 서산의 천수만 철새들도 태안 법산리의 철새들도 이제 다시 어디론가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동네 어느 집에서는 닭 40여 마리와 기러기 40여 마리를 사육하고 있다. 각각의 사육장에 들어가 있던 닭들과 기러기들은 확연히 다른 모습으로 사육장을 드나든다. 닭들이 나올 때는 한꺼번에 무질서하게 몰려나오지만, 기러기들은 질서 있게 한 줄로 나온다. 들판을 산책하며 날아가는 철새 떼들을 보면 금방 구분이 된다. 천둥오리는 무질서 속에 무리지어 날아가지만, 기러기는 일(一)자든 브이(V)자든 어떤 형태로든 질서를 유지한다.

캐럴 밸러드 감독의 <아름다운 비행 Fly Away Home, 1996년, 미국>이라는 영화가 있다. 교통사고로 엄마를 잃은 에이미 올던(Amy Alden, 애나 패퀸 분)이라는 소녀와 기러기와의 감동적인 작품이다. 어느 날 난개발로 훤히 드러난 늪 주위에서 우연히 기러기 알을 발견한 에이미가 알을 가지고 집으로 온다. 에이미의 따뜻한 보살핌으로 새끼 기러기는 부화된다. 처음 본 것을 무엇이든 어미 새로 각인하는 이 새끼 기러기들이 처음 본 것은 에이미이다. 새끼 기러기들은 에이미가 가는 곳이면 어디든 따라 다닌다. 서로 엄마가 없는 처지에서 에이미는 16마리 새끼 기러기의 소중한 엄마가 된다. 야생 기러기를 집에서 키우는 것은 불법이라며 경관이 찾아온다. 에이미와 아빠는 기러기들에게 나는 법을 가르치기로 한다.

조각가이자 발명가인 아빠(토머스 올던(Thomas Alden: 제프 대니얼스 분)는 에이미와 기러기들을 위한 경비행기를 만들고 매일 어려운 날기 연습을 반복한다. 플로리다의 철새 서식지의 개발 공사가 발표되자 에이미와 아빠는 서둘러 비행을 준비한다. 악천후와 비행기 고장, 사람들의 무관심 등 수많은 어려움을 극복하고, 에이미와 기러기들은 겨울을 지낼 수 있는 서식지까지 비행하는데 성공한다. 이 비행으로 철새들의 중요성이 제기되어 개발은 취소되고, 기러기들 또한 서식지에서 겨울을 지낼 수 있게 된다. 다음 해 봄이 되어 16마리의 기러기들은 자신들이 어린 시절을 보낸 올던 가의 농장으로 다시 날아온다. 에이미와 기러기의 반가운 해후가 이루어진다.

기러기는 먼 거리를 이동하기 위해 누군가의 리더십(leadership)이 필요하다. 톰 워삼(Tom Worsham)이 쓴 기러기 이야기(The Story of Goose)라는 책이 있다. 기러기는 먹이와 따뜻한 땅을 찾아 4만km의 머나먼 길을 날아간다. 리더를 맨 앞으로 V자 대형을 유지하며 머나먼 여정을 시작한다. 가장 앞에서 날아가는 리더의 날갯짓은 기류에 양력을 만들어야 하므로 많은 에너지가 소모된다. 맨 앞의 리더는 뒤에 따라오는 동료 기러기들이 70% 정도의 에너지만 쓰면 날 수 있도록, 온몸으로 바람과 마주하며 싸워야 한다. 이들은 먼 길을 날아가는 동안 끊임없이 울음소리를 낸다. 이 울음소리는 앞에서 거센 바람을 가르며 힘겹게 날아가는 리더에게 보내는 응원의 소리이다. 리더 기러기는 뒤에서 날갯짓을 하며 함께 소리를 지르는 동료와 서로 의지하며 머나먼 길을 날아간다.

구약성서에 나오는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 21세기 지금 지구촌에서 벌어지고 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이다. 나라의 규모로 보나 인구수로 보나 병력의 규모로 보나 비교가 되지 않는다. 이 두 나라의 전쟁이 1년을 지났다. 두 나라의 과거 역사는 둘째 치고 러시아 대통령 푸틴은 19세기에나 있을법한 이런 전쟁을 왜 시작했는가? 수많은 양국 국민들이 생명을 잃고 얼마나 엄청난 고통 속에 살고 있는가? 세계의 전쟁 전문가들도 이 전쟁은 길어야 한달이면 끝날거라 했지만 벌써 1년을 지나고 있다. 서방 국가들의 우크라이나에 대한 전쟁물자 지원이라는 큰 변수도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젤렌스키라는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리더십이 우크라이나가 러시아라는 괴물을 맞서게 하는 큰 동력이 되고 있다. 한 나라의 운명은 그 나라의 대통령의 리더십에 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전 국민이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칠 각오를 지니게 하는 솔선수범의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다. 반면 푸틴 대통령은 많은 국민들의 원성을 사고 있다. 국력의 엄청난 차이에도 불구하고 그 승패는 누구라도 충분히 예측할 수 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국민과 전쟁 승리라는 목표를 서로 공유하고, 서로 간의 신뢰 가운데 대통령이 국민을 섬기는 서번트 리더십(servant leadership)을 발휘하고 있다.

영화 <아름다운 비행>은 에이미가 기러기와 함께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는 과정에서 서로를 의지하고 격려하고 함께 목표를 이루어내는 감동을 준다. 작품의 내용에 모티브를 준 실화가 있다. 캐나다의 화가이자 발명가인 빌 리슈먼은 1993년 자신이 제작한 초경량 항공기를 타고 캐나다에서 미국 버지니아 주까지 기러기들을 이주시켰다. 이 영화에서의 리더는 에이미이다. 아빠와 함께 새끼 기러기들을 키우고 또 날아갈 수 있도록 함께 했다. 그러한 에이미의 기러기에 대한 사랑과 열정과 헌신이 없었다면 기러기들은 땅 위의 거위로 남았을 것이다.

영화 속 에이미의 헌신적 사랑이 어미를 잃은 기러기들을 날게 하였다. 4만km를 이동하는 기러기 떼의 리더는 자신이 맨 앞에서 매서운 바람과 싸운다. 다윗과 골리앗의 전쟁에서 지금껏 우크라이나가 거대한 러시아를 상대할 수 있는 동력은 젤렌스키 대통령의 섬김의 리더십이다. 그가 제작한 정치 시트콤의 타이틀도 정당의 이름도 국민의 일꾼(Servant of the People)이었다. 2022년 미정부가 젤렌스키에게 우크라이나를 떠날 수 있도록 돕겠다고 했다. 그때 그는 “이곳에서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 내겐 (탈출하기 위해 필요한) 탈 것이 아니라 탄약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우리는 이 위기의 시대에 에이미와 기러기와 젤렌스키의 섬김의 리더십을 기억해야 한다. 보다 더 아름다운 달빛 아래의 세상을 위해.

오진곤(서울여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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