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소음이 되지 않으려면

언론, 소음이 되지 않으려면

  • 기자명 김위근 언론학박사
  • 입력 2023.02.23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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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부터 헤드폰 및 이어폰 시장에서는 노이즈 캔슬링(noise canceling) 기능이 대세다. 주변 소음을 차단하거나 상쇄시켜 잡음 없는 소리가 들리게 하는 기술을 상용화한 것이다. 다른 제품과의 차별점으로 강조했던 이 기능은 어느새 헤드폰이나 이어폰의 선택에서 기본이 되고 있다. 막아야 하는 소음만 있는 것은 아니다. 잘 알려진 것처럼 백색소음은 공해에 해당하지 않은 소음이다. 음폭이 넓어 거의 일정한 주파수를 갖기에 일상생활을 방해하지 않는다고 한다. 백색소음은 집중력 향상에 도움을 준다고 해 한동안 크게 회자됐다. 최근 뉴스는 소음 취급을 받고 있다. 당연히 백색소음보다는 차단해야 하는 시끄럽고 불쾌한 소리라는 의미의 소음이다. 이제 뉴스라는 독을 해독한다는 ‘뉴스 딕톡스’라는 말까지 생겼다.

문화체육관광부에 따르면, 2022년 말 현재 우리나라에 등록된 전체 정기간행물은 24,766개다. 이 중 인터넷신문은 11,038개로 전체 정기간행물의 44.6%에 해당한다. 5년 전으로 시계를 돌려보면 2017년 말 전체 등록 정기간행물은 19,607개, 여기에서 인터넷신문은 6,885개였다. 이 비율은 35.1%로, 5년 만에 등록 인터넷신문 비율이 9.5%p 늘었다. 이 기간 동안 전체 정기간행물 등록은 26.3%나 증가했다. 하지만 더욱 놀라운 사실이 하나 있다. 5년 사이에 인터넷신문 등록이 무려 60.3% 급증한 것이다. 인터넷신문이 전체 정기간행물 등록의 최근 증가를 견인했다, 물론 등록된 모든 정기간행물이 제대로 운영되고 있다고 볼 수는 없다. 여러 사정으로 등록만 한 채 정상 영업을 못하고 있는 정기간행물이 상당히 많다. 이를 감안하더라도 꺾일 줄 모르는 인터넷신문 등록 증가세다.

인터넷이 모든 언론 문제의 해결책이 아니듯, 언론의 모든 문제가 인터넷 때문만은 아니다. 하지만 개연성은 있다. 생각해 보자. 지금 운영되고 있는 수많은 언론사 중 내가 신뢰하는 것이 몇 개나 되는지, 그리고 10년 전에는 몇 개였는지. 아마도 그 수가 인터넷신문 등록만큼 극적으로 증가하진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줄었을 가능성도 있다. 그만큼 언론사가 신뢰를 얻고 유지하는 것은 어렵고도 고단한 일이다. 극단적이지만 가정해 보자. 전체 언론사가 10개였던 시절 내가 신뢰하는 언론사가 5개였다면, 나머지 5개는 소음에 불과했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 언론사 총합이 100개로 급증했는데도 언론 환경이 개선되지 않고 신뢰하는 언론사 수가 같다면, 내게 소음에 해당하는 언론매체는 95개나 된다. 언론사가 많아질수록 소음은 점점 늘어나는 구조다. 이것이 현실이라면 언론에 대한 시민의 비난과 거부를 단지 힐난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온당할까?

대의민주주의에서 언론사나 언론인은 헌법에서 보장하는 언론의 자유를 누린다. 천부권이라고 할 수 있는 시민의 알 권리를 위임받아 대리하기 때문이다. 시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키고 민주주의를 유지하기 위해 언론사와 언론인은 각종 권력에 대한 접근권과 취재권을 갖는다. 이것이 언론 권력의 실체다. 각종 권력의 기반이 되는 것은 역시 정보다. 정보에 대한 접근권과 취재권은 언론을 제4부로 불리게 한다. 시민의 알 권리를 대리하고 권력을 감시하는 언론사와 언론인은 과거 출입처 제도, 기자실, 기자 브리핑 등을 통해 시민이 도달하지 못하는 정보를 손에 쥘 수 있었다. 간단한 보도자료조차 접근이 불가능했던 시민에게 이에 대한 짧은 기사는 언론 권력을 제대로 실감하게 했다.

지금은 다르다. 보도자료뿐만 아니라 거의 접근이 불가능했던 각종 정보가 인터넷에서 공개돼 있다. 언론사를 매개하지 않고도 시민이 정보의 실체를 확인하는 데 별다른 어려움이 없다. 일부 분야를 제외하고 언론인과 시민의 정보 접근권 차이가 사라지고 있다. 웬만한 언론인보다 나은 전문지식을 가진 시민은 기존 정보를 분석해 새로운 정보를 만들어 유통하기도 한다. 보도자료를 전재하거나 요약하는 수준이라면 이제 누구나 얼마든지 가능하다. 새로운 정책이 발표될 때 해당 부처의 홈페이지 방문자가 크게 증가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과거 취재방식을 고집하는 언론사나 언론인은 시민 입장에서 보면 소음 유발자일 수 있다.

몇 년 전 로봇기자, 즉 기사 자동 생성 소프트웨어가 언론계에서 큰 화제가 됐다. 기사를 작성하는 속도와 완성도에서 딱히 나무랄 데가 없어서였다. 특히 로봇기자가 쓴 기사와 인간 기자가 작성한 기사에 대한 인간의 평가에서 로봇기자가 앞섰다는 소식에 언론인은 경악했다. 언론인이라는 직업의 종말을 예단하는 시각도 있었다. 그나마 스포츠, 날씨, 증권 등 수량화된 데이터를 기반으로 하는 기사에 한정된 패배라는 데 안도했다. 현재는 로봇기자 운용이 보편화돼 기사 생산의 상당 부분을 차지할 뿐만 아니라, 그 양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언론에 대해 비판적 시각을 가진 사람에게는 로봇기자를 활용한 단순 스트레이트 기사의 대량 생산과 유통은 그 자체로 소음이 될 수 있다.

지난 12월 오픈AI가 공개한 대화형 AI인 챗GPT로 국내외가 떠들썩하다. 디스토피아적 미래의 신호탄이라는 시각에서부터 인간이 단순노동에서 해방되는 기념비적 사건이라 시각까지 그 함의의 스펙트럼이 매우 넓다. 언론계에서는 인간 수준의 논리적 글쓰기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그 파장에 촉각을 세우고 있다. 맥락적 기사 작성에도 도입될 것으로 전망된다. 뉴스 스토리텔링도 가능하다는 얘기다. 이미 대화형 AI가 작성한 기사의 도입을 검토하는 언론사도 있다. 하지만 대화형 AI가 내어놓는 기사가 통계적 학습의 결과기에, 사실을 넘어 진실에 얼마나 가까운지는 여전히 인간 기자가 판단해야 할 영역이다. 그렇지 않고 대화형 AI를 활용한 기사 생산의 양적 측면만 강조한다면 언론이라는 소음은 걷잡을 수 없이 확산할 것이 분명하다.

기술 발전이 언론산업에 반드시 긍정적으로 작동하지는 않는다. 최신 기술이 언론에 접목되면서 차단해야 할 소음이 많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백색소음으로서 언론의 가능성은 언제나 그 방향이 선명했다. 바로 탐사보도 확대와 진실 추구다. 저널리즘 현장에서 아무리 기술이 발전한다고 한들 뉴스 생산 알고리즘이 저널리즘 원칙보다 우선될 수는 없는 일이다. 로봇기자, 대화형 AI 등 최신 기술의 역습에도 저널리즘 가치의 실현은 언제나 인간 기자에게 달려 있다.

김위근(퍼블리시 최고연구책임자․언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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