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스포츠한국
HOME 칼럼 오진곤의 달빛칼럼
상생(相生)의 미학
  • 오진곤 교수 machmj55@naver.com
  • 승인 2023.01.19 09:56
  • 댓글 0

오늘도 바닷물이 밀려 들어온다. 만주 벌판 같은 갯벌을 어김없이 채우고 다시 빠져나간다. 바닷물이 들어오고 나가는 시간과 양은 매일 조금씩 변할지라도, 밀물과 썰물은 하루에 두 번, 동쪽에서 해가 뜨고 서쪽으로 해가 지는 것만큼이나 변함없이 들어오고 나간다. 마치 들숨과 날숨처럼. 바닷물이 들어오는 시간이면 긴 물길을 따라 갯벌에 생기가 돈다. 생명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가장 먼저 내 마음에 기운이 넘친다. 에너지가 몸 마음이 충만해지며 엔돌핀이 돈다. 눈도 환해지고 영혼도 맑아진다. 환해진 눈으로 물길을 따라가면 수많은 바다 새떼가 물길을 따라 모여든다. 귀항하는 만선 주위에 갈매기 떼가 모여드는 것처럼. 밀물과 썰물의 양은 달의 크기와도 정확히 일치한다. 음력 보름이 가까워질수록 들어오는 물이 양이 많아져서 바닷물 수위가 많이 올라가고, 초승달이나 하현달이 뜨는 날은 조수 간만의 차가 커져 들어오고 나가는 물이 양이 적다. 달이 물을 끌어당기고 밀어낸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해군들은 양력보다 음력을 더 많이 사용하고 신뢰한다. 미해군도 동양의 음력을 사용한다.

영국의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가 쓴 ‘이기적 유전자(The Selfish Gene)’라는 책이 있다. 이 책에서 도킨스는 모든 생명체의 진화 주체는 개체나 종이 아니라 유전자이며, 인간 역시 유전자 보존을 위해 맹목적으로 프로그램화된 생존 기계에 불과하다고 주장하여 생물학계의 큰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이 책의 중요한 이론은 밈(meme)이라는 개념이다. 인간은 다른 생명체와는 달리 유일하게 유전자의 폭정에 반역할 수 있다고 도킨스는 주장한다. 유전자가 아무리 개인주의 성향인 강한 이기적 유전자라 할지라도 우리 인간은 그것을 거부할 수 있고, 이타적으로 남을 도울 수 있으며, 선함과 아름다움을 추구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에 화답이라도 하듯이 영국의 동물학자 매트 리들리(Matt Ridley)는 ‘이타적 유전자 The Origins of Virtue’라는 책을 쓴다. 매트 리들리는 이기적 유전자를 바탕으로 한 이타주의를 말한다. 그는 우리 인간의 유전자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만인의 만인을 위한 투쟁보다는 다른 개체들과의 협동을 통해 진화하는 방식을 택한다고 한다. ‘이타적 유전자’는 인간들이 추구하는 합리성이 이기심의 발현이라는 점을 지적하지만, 그 이기심과 더불어 호혜성과 협동이라는 ‘상호배려’를 유전자처럼 지니고 태어났다는 점에 주목한다.

영화 윈윈(Win Win)은 토마스 매카시(Thomas McCarthy)가 시나리오를 쓰고 감독한, 2011년 미국의 스포츠 코미디 영화다. 83회 미국 비평가협회 상을 수상한 작품으로 폴 지아마티(Paul Giamatti), 에이미 라이언(Amy Ryan), 바비 카나베일(Babby Canavale) 등이 출연한다. ‘윈윈’의 주인공 마이크 플래허티(폴 지아마티)는 두 딸아이의 아빠이자 변호사이다. 퇴근 후에는 고등학교 레슬링 코치로도 일하며 자신의 취미를 살려 나간다. 그런데 변호사 일이 계속 줄어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을 겪게 된다. 사무실 복사기를 살 돈마저 없다. 그런 마이크에게 경제적 위기를 모면할 기회가 마침 주어진다. 마이크는 치매를 앓는 이웃집 할아버지 레오의 후견인 등록을 하면, 매달 1508달러의 비용을 받을 수 있다. 조기 치매를 앓고 있는 레오 할아버지를 돌볼 수 있는 친인척이 없는 것으로 드러나자, 법관을 설득해 후견인으로 지명되지만 마이크는 레오를 잘 돌볼 생각은 없다. 그가 계속 후견 비용을 받는 동안 레오를 노인요양시설로 옮긴다는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결국 비리를 저지른다. 할아버지의 손자 카일이 나타나지만 않았어도 그 일은 그냥 그렇게 지나갈 수 있었다. 카일은 마이크가 보기에 레슬링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다. 마이크는 카일의 재능을 키워주고 싶은 진심 어린 마음도 있다. 레오 할아버지의 후견 비용을 몰래 빼돌리고 있다는 사실도 모른 채 카일은 마이크와 그의 가족들을 신뢰하게 되고, 절망 가운데 삶의 희망을 지니게 된다. 마이크의 가족들조차 마이크가 카일을 위해 훌륭한 일을 하고 있다고 여기며, 그와 카일을 응원하고 있다. 마이크는 갈등한다. 신뢰인가 돈인가? 신뢰를 선택하면 돈을 잃고, 돈을 선택하면 신뢰를 잃는다. 보통 가장들은 가족을 위해 돈을 선택한다. 영화 ‘윈윈’은 주인공 마이크에게 가족과 카일의 신뢰를 위해 돈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을 던져줌으로써, 인간관계의 신뢰가 돈보다 먼저라는 영화의 메시지를 전한다.

우리들 역시 살아가면서 수많은 갈등에 봉착한다. 정의인가 불의인가? 이상인가 현실인가? 정의나 이상을 선택하노라면 나와 내 가족을 희생해야 한다. 나 아닌, 내 가족이 아닌 이웃을 희생시켜야 나와 내 가족의 이익을 챙길 수 있다. 그 순간 우리는 다시 한번 자연을, 인간과의 관계를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바닷물이 거대한 갯벌을 덮음으로 수많은 생명들이 되살아나고, 인간관계의 신뢰를 회복함으로 마이크와 카일처럼 더불어 사는 세상이 이루어진다. 그러한 보편적 진리를 가슴에 품고 눈앞의 자신만의 이익을 포기하고 지금의 불편함을 감수할 수 있는 마음의 넉넉함과 인내심을 가져야 한다.

달이 찰수록 밀물이 더 가득히 갯벌을 감싸 안듯이, 마음의 넉넉함이 채워질수록 더 많은 사랑과 서로 간의 배려가 세상을 보듬어 안는다. 우리는 이미 3년이라는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코로나19 세상을 통해 이런 진리들을 직접 깨닫고 있다. 나 혼자 코로나19에 걸리지 않는다고 영원히 걸리지 않는 것이 아니고, 우리나라만 안전하다고 우리나라가 영원히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2023년 새해에는 매트 리들리가 말하는 ‘이타적 유전자’를 서로가 잘 개발하여, 너도 행복해지고 나도 행복해지고 우리 모두가 행복해지는 달빛 같은 상생(相生)의 아름다운 세상이 되기를 소망해 본다.

오진곤(서울여대 명예교수)

<저작권자 © 데일리스포츠한국,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상생#미학#오진곤

오진곤 교수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