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고위공직자와 조선시대의 선비

오늘의 고위공직자와 조선시대의 선비

  • 기자명 김삼웅 논설고문
  • 입력 2022.12.15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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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시대나 권력투쟁은 있게 마련이다. 그래서 알베르 카뮈는 “자신 속에 위대함을 지닌 사람은 정치를 하지 않는다”고 했는지도 모른다.

중국 전국시대의 영웅 조조의 가문에서도 권력투쟁은 어김없이 일어났다. ‘난세의 간웅’이라는 멸칭을 듣던 조조의 후계자를 두고 뒷날 위문제(魏文帝)가 된 아들 조비(曹丕)와 둘째아들 조식(曺植) 사이에 피의 권력쟁탈전이 벌어졌다.

이들의 왕위 승계를 둘러싼 권력투쟁이 일반의 경우와 다른 것은 이들 삼부자가 이른바 ‘삼조(三曹)’로 불릴만큼 모두 뛰어난 문인이었다는 점이다. 그 중에서도 조비가 가장 탁월했다고 한다.

마침내 제위에 오른 조비는 ‘당연한 수순’처럼 경쟁자에 대한 정치보복을 시작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우 조식의 숙청 차례가 되었다. 이미 황제가 된 형은 아우에게 ‘자비’를 베푸는 마음으로 일곱 걸음을 걷기 전에 시를 짓지 않으면 죽이겠다고 협박했다. 이것은 마치 로마 황제가 기독교인들을 굶주린 사자와 싸우게 하고 이기면 살려주겠다는 ‘자비’와 비슷한 양상이었다. 그러나 조식은 조금도 위축되지 않고 천고에 남을 시를 지었다. 아직까지 골육상쟁의 비극을 이만큼 절실하게 표현한 글을 보지 못했다.

콩을 삶아 국을 만들고

메주를 걸러 간장을 만드네

콩대는 솥 아래에서 타고

콩은 솥 안에서 우네

본래 같은 뿌리에서 났으면서

서로 닦달함이 어찌 그리 급한가.

‘콩대로 콩 삶는다’는 비극의 싯구는 여기서 기원한다. 조식은 골육상쟁, 동족상잔의 비극을 짧은 순간에 짧은 시로 써서 만대에 전했다.

조선시대에는 그래도 오늘의 이태원 참사에서 나타난 고위공직자들에 비해 ‘품(品)’과 ‘격(格)’을 갖춘 선비가 많았다. 선비뿐만이 아니다. ‘말하는 꽃’이라 불리던 기생 중에도 문ㆍ사ㆍ철은 몰라도 시ㆍ서ㆍ화를 갖춘 기생들이 있었다. 황진이와 부안기생 매창은 시시한 선비들은 명함도 내밀기 어려운 ‘선비기생’이었다.

그래서인지 진짜 선비와 가짜선비의 논쟁이 치열했고, 선비의 조건도 까다로웠다. 정도전이 제시한 진짜 선비(眞儒)의 자질론은 무엇보다 치열한 조건을 제시한다.

1. 음양오행에 입각한 천문ㆍ역학ㆍ지리학 등 자연과학적 지식에 소양이 깊어야 한다.

2. 역사가이어야 한다.

3. 윤리도덕의 실천가여야 한다.

4. 계몽적 성리철학자여야 한다.

5. 교육자 문필가여야 한다.

6. 순도자(順道者)여야 한다.

진짜 유학자 바꿔말해 선비의 길이란 이렇게 까다로웠다. 하여, 진유(眞儒)와 위유(僞儒)가 섞이게 되고, 진짜와 가짜의 싸움이 잦아서 각종 사화(士禍ㆍ史禍)가 벌어졌다. ‘밀림의 법칙’ 때문인지 ‘현장’의 싸움에서는 진유가 번번히 패했다.

오늘의 교수ㆍ문인ㆍ언론인을 ‘현대판 선비’라 한다면 그들에게서 ‘서권기’와 ‘문자향’의 문격(文格)을 얼마나 찾을 수 있을지 옛 선비들과 비교하게 되는 경우가 가끔 있다. 교수ㆍ 언론인 출신으로 고위 공직자 즉 국회의원ㆍ장관ㆍ각급 기관장이 된 인물들의 탈선을 지켜보면서, 같은 물을 마시고도 소는 우유를 만들고 뱀은 독을 만든다는 말이 떠오른다. 마찬가지로 같은 책을 읽고도 어떤 이는 참 선비가 되고 어떤 이는 썩은 선비가 된다. 같은 언론매체에서 일하고도 기레기와 정론자로 갈린다. 같은 스승 밑에서 글공부를 하고도 어떤 학생은 모범생이 되고 어떤 학생은 악동이 되는 이치와 같다고 할 것인가. 같은 땅이 산삼도 키우고 독초도 키우는 조물주와 대지의 조화에는 대체 무슨 뜻이 담겼을까.

우리나라 선비 중에는 특정 부류를 국가의 좀벌레라고 질타한 사람들이 있었다. 박제가는 놀고먹는 유생들을 좀벌레라 했고, 정약용은 탐관오리를 ‘자벌레’라고 불렀다. 자벌레는 먹을 것이 보여야 기어가고, 겁을 주면 움츠리고만 있어 부패관리에 비유되는 좀벌레의 일종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선비들만 ‘벌레’를 자처하거나 ‘인간벌레’를 비판한 것이 아니다. 소크라테스(기원전 469~399)는 고대 그리스의 저명한 철학자로서 시민들에게 지식과 도덕을 가르치고 있었다. 그의 주위에는 청년귀족들이 모여들었다. 그는 40세 무렵부터 일신의 안락과 가정의 빈곤을 돌보지 않고 아테네의 ‘등에(gadfly)’ 역할을 하고자 했다.

등에는 소나 말에 붙어서 따끔하게 쏘는 벌레다. 등에의 몸빛은 대체로 누런 갈색으로 온 몸에 털이 많으며 투명하다. 그리고 한 쌍의 날개가 있다. 또 입은 바늘 모양으로 뾰족하고 겹눈이 매우 크다. ‘망충’ 또는 ‘목충’이라고도 부른다. 아테네 시민들의 부패하고 마비된 양심을 깨우는 데는 등에처럼 따끔하게 쏘는, 영혼의 각성운동이 필요했다.

내일(12월 16일)은 용산 이태원 희생자들의 49일 즉 사십구재(四十九齋)가 된다. 칠칠일(七七日) 또는 칠칠재(七七祭)라고도 한다. 사람이 죽은 지 49일 만에 지내는 법사(法事)를 일컫는다. 그러니까 이 49일 동안을 중유(中有)ㆍ중음(中陰)이라 하며, 죽은 뒤에 다음 생(生)을 받을 때까지의 동안, 이 동안에 다음 생을 받을 연(緣)이 정하여 진다고 한다.

선진국에 들어섰다는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의 거리를 걷다가 떼죽음(죽임)을 당한 원통하고 분통한 가신 이들의 한이 풀리고 다음 생에는 영생복락하도록, 직무유기의 책임 있는 고위공직자들의 달라진 모습을 촉구한다. 아울러 정부와 국회는 이 세상사에서 가장 아픔이 크고 짙다는 참척(慘慽), ‘자식 앞세운 어버이들’의 마음을 헤아려 하루속히 진상을 밝혀 유가족의 설움과 그리움을 조금이나마 달래고 도왔으면 한다.

김삼웅(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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