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고집이 된 신념과 사라진 플랜B 경쟁력

[기자수첩] 고집이 된 신념과 사라진 플랜B 경쟁력

  • 기자명 우봉철 기자
  • 입력 2022.08.04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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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요코하마 참사’에 이어 또 한 번 한국 축구에 굴욕을 안겨준 ‘도요타 참사.’ 벤투 감독의 신념이 고집으로 바뀐 졸전이었다.

파울루 벤투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대표팀은 지난달 27일 일본 아이치현 도요타시 도요타 스타디움에서 열린 일본과 2022 동아시아축구연맹(EAFF) E-1 챔피언십 3차전서 0-3으로 졌다.

지난해 3월 일본 요코하마에서 열린 원정 평가전(0-3 패)에 이은 2연패. 2011년 삿포로 원정 0-3 패배 이후 10년 만의 무득점 세 골 차 패배를 겪은지 불과 1년 만에 재현된 치욕이다.

요코하마 평가전 패배 후 수많은 비판이 쏟아졌다. 다만, 당시 손흥민과 김민재 등 대표팀 핵심 멤버들이 코로나19로 합류하지 못한 점, 이로 인해 이강인이 최전방에 나서는 등 변칙적인 전술 운용이 불가피했던 점 등이 정상 참작돼 벤투 감독을 옹호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그러나 이번 동아시안컵 한일전 패배는 작년과 상황이 완전히 다르다.

이번 대회는 FIFA가 정한 A매치 기간이 아니기에 해외파 의무 차출이 불가하다. 때문에 권경원(감바 오사카)을 제외한 대표팀 전원이 국내파로 구성됐다.

여기서 벤투 감독의 고집이 드러난다. 명단 발표 당시 K리그에서 최고의 폼을 보여주고 있던 선수들이 대거 낙마했다. 지난 시즌 K리그1 MVP 수상자로 좋은 폼을 유지 중인 수비수 홍정호, 소속팀 내 최다 공격포인트를 올리고 있는 공격수 이승우와 김대원 등이 그렇다. 토종 선수 득점 1위를 달리고 있는 주민규의 미발탁 관련 이야기는 지겨울 정도다. 지난 6월 네 번의 평가전에서 숙제로 떠오른 수비형 미드필더 자리 역시 리그에서 활약 중인 신진호와 이창민 등의 이름을 찾아볼 수 없었다.

이처럼 벤투 감독은 K리그에서 실력으로 검증된 선수들을 외면하고, 자신의 축구 철학에 맞는 선수들을 뽑았다. 대표팀에 소집된 선수들이 K리그에서 검증받지 못했다는 말이 아니다. 당시 경기력이 앞서 언급한 선수들보다 더 좋았는가 묻는다면, 누구도 곧장 ‘그렇다’라고 답하지 못했을 것이란 이야기다.

자신이 원하는 선수들을 뽑았으면, 하고자 하는 축구를 제대로 보여줘야 했다. 하지만 고집의 결과는 졸전이었다. 특히, 벤투 감독이 보여준 실험 정신은 한일전의 특수성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중앙 수비수인 권경원을 수비형 미드필더 자리에 배치했는데, 이는 분명 최대 패착이었다. 수비진 위 1차 저지선 역할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고, 일본은 한국의 페널티 박스 근처에서 자유롭게 움직였다.

전술 운용에서도 고집스러운 부분이 있었다. 일본의 전방 압박에 우리 수비진이 허둥대는 모습을 보고도 후방 빌드업을 포기하지 않았다. 두 골을 내주고 나서야 포백으로 변화를 꾀했다. 뒤늦은 실험 실패 인정이었다.

결국 이번 한일전으로 한국은 해외파 위주의 플랜A에 더욱 의존하는 꼴이 됐다. 뽑는 선수만 뽑는 고집으로 인해 경쟁 구도는 사실상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오매불망 손흥민, 김민재만 기다릴 뿐이다.

얼마 남지 않은 기간, 벤투 감독은 그의 고집이 확고한 신념이었음을 증명할 수 있을까. 그러기 위해선 플랜B에 대한 확실한 답을 찾아야 할 것이다.

우봉철 기자 wbcmail@dailysports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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