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몰랐던 영화 흔적] ②1인분의 삶

[우리가 몰랐던 영화 흔적] ②1인분의 삶

  • 기자명 박영선 기자
  • 입력 2022.07.28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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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혼자 사는 사람들’, ‘스틸 라이프’

[데일리스포츠한국 박영선 기자] 코로나 19로 한동안 극장 문이 닫혔다. 이제 극장 관람의 시대는 가고, OTT의 시대가 떠오른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러나 극장 관람 체계에 의지했던 영화 생태계는 큰 혼란을 피할 수 없었다. 엄청난 흥행이 기대됐던 상업영화들은 무기한 개봉을 미뤘고, 독립영화는 더 험난한 시간을 견뎌야 했다. 일상을 환기할 짜릿한 쾌감과 재미를 선사하는 것 못지않게, 우리가 구태여 들여다보지 않은 현실을 스토리와 영상으로 풀이해 감동시키는 것 또한 영화의 힘이다. 이번 특집에서는 이 사회에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크고 작은 이야기를 담아낸 국내외 독립·예술 영화를 소개한다. (편집자주)

1인 가구가 계속 늘어나고 있다. KOSIS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1인 가구 비율은 꾸준히 상승세를 보이며 2020년 기준 664만 가구를 기록, 전년 대비 50만 가구 증가한 것으로 드러났다. 젊은층부터 노년층까지 1인 가구의 연령대 또한 다양하다. 이렇듯 혼자 사는 사람들이 늘어나며 각종 사회문제도 자연스럽게 두각을 드러냈다. 혼자 죽음을 맞이하거나, 집안에서 일어난 작은 사고에도 주변인의 도움을 받지 못해 치명적인 사고로 이어지는 경우도 다수 나타나고 있다.

이번 특집에서는 혼자이지만 혼자이지 않은, 스스로 고독하기를 택했지만 끝내 함께 하는 법을 배운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바로 영화 ‘혼자 사는 사람들’(2021)과 ‘스틸 라이프’(2014)다.

영화 '혼자 사는 사람들' 스틸컷 (사진=(주)더쿱 제공)
영화 '혼자 사는 사람들' 스틸컷 (사진=(주)더쿱 제공)

영화 ‘혼자 사는 사람들’

방이 여러 개 딸린 집에 사는 진아는 하루종일 티비를 틀고 산다. 기계적으로 업무를 처리하고 밥은 편의점 도시락을 사서 먹는다. 집과 직장을 오가는 지루한 루틴을 성실히 지키는 그는 콜센터에서 근무하고 있다. 여느 때와 같은 하루를 보내던 어느 날, 진아는 옆집 남자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영화 ‘혼자 사는 사람들’은 홍성은 감독의 작품으로 제22회 전주국제영화제 배우상, 제42회 청룡영화상 신인여우상을 수상했다. 한 작품으로 배우상을 휩쓴 공승연은 인물의 그늘과 외로움을 선연하게 끌어올렸다. 혼자 살고있는 한 여성이 어떤 사건을 마주하며 상처를 통과하는지, 그 과정을 담담한 시선으로 풀어낸 영화다. 작품은 비단 영화의 주인공 ‘진아’의 일상 외에도 우리 주변부에 혼자 살고있는 이들이 어떤 모습으로 세상을 살아가고 있을지 가만히 바라보고 있다.

영화 '혼자 사는 사람들' 스틸컷 (사진=(주)더쿱 제공)
영화 '혼자 사는 사람들' 스틸컷 (사진=(주)더쿱 제공)

진아는 고슴도치 같은 인물이다. 엄마를 떠나보낸 진아는 의도적으로 다른 사람이 삶에 들어오는 것을 거부한다. 온종일 티비 혹은 핸드폰 영상을 틀어놓고 밥도 혼자, 일도 혼자 업무에 문제가 생겨도 모두 ‘혼자’ 처리한다. 그런 진아의 일상은 콜센터에 새로 입사한 수진으로 인해 작은 파동이 생긴다. 수진은 진아와 정반대다. 진아에게 밥도 같이 먹자고 하고, 온갖 욕설이 난무하는 무례한 콜센터 고객의 요구에 마냥 순응하지 않는다. 진아는 그런 수진을 밀어내지만, 종종 수진의 얼굴을 골똘히 들여다본다.

매사에 메뉴얼대로 행동하는 인물일 것 같지만, 진아 또한 자기 나름의 불안이 있다. 가정을 버리고 뒤늦게 돌아온 아버지가 엄마의 재산을 물려받자 그의 집에 씨씨티비를 설치한다. 엄마의 죽음에 아빠가 께름칙한 영향을 미쳤으리라 믿으며 아버지의 번호를 ‘엄마’라 저장하며 의도적으로 거부한다. 현실을 부정하는 행동일 뿐이지만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진아는 타인을 거부하는 방식으로 자신을 방어한다. 영화는 진아의 정면샷을 꾸준히 비추면서, 시종일관 긴장을 유지하는 진아의 얼굴을 섬세히 담았다.

영화 '혼자 사는 사람들' 스틸컷 (사진=(주)더쿱 제공)
영화 '혼자 사는 사람들' 스틸컷 (사진=(주)더쿱 제공)

옆집 남자가 죽고, 새로운 사람이 이사 오며 진아의 일상은 또 다른 변화를 맞이한다. 이사 온 남자 ‘성훈’은 진아보다 수진에 가까운 인물이다. 그는 집값이 싼 이유를 듣고 홀로 죽은 전 세입자를 위해 제사를 치르자고 제안한다. 진아는 선뜻 안으로 들어서지 못하고 먼저 떠난 이를 기리는 이웃들을 본다. 1인분의 삶들이 모여 더 나은 일상을 도모하는 순간을 목격한 것이다.

수진은 진아와 콜센터를 견디지 못하고 사라진다. 진아는 수진에게 전화를 걸어 사실 “혼자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 것 같다”고 말한다. 밥을 먹고, 집에서 잠들 때까지 백색소음을 필요로 하는 ‘혼자 사는 삶’에 대해 돌아본 진아는 자신처럼 외로웠을 수진에게 사과를 건넨다.

 

영화 '스틸라이프' 스틸컷 (사진=(주)드림웨스트픽쳐스 제공)
영화 '스틸라이프' 스틸컷 (사진=(주)드림웨스트픽쳐스 제공)

영화 ‘스틸 라이프’

무채색 정장을 입은 사내가 차가운 철제 책상과 허연 불빛 밑에서 서류를 들여다본다. 무미건조하게 작성된 서류는 고독사한 무연고자들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영화의 주인공 존 메이는 무연고자의 시신을 수습하고 장례까지 책임지는 런던 케닝턴의 22년차 공무원이다. 그는 시신을 거둔 후에 그 사람의 장례식을 치러주고, 공들여 묘비까지 제작해 마지막을 배웅하는 인물이다.

가족도, 친구도 없이 혼자 죽은 사람들의 마지막을 정리해주는 일이 업인 존은 한 남성의 시신을 발견한다. 그의 이름은 ‘빌리 스토크’. 아무도 찾아오지 않은 것 같은 텅 빈 집안과 달리 윌리엄은 두꺼운 사진첩을 두고 떠났다. 영화는 존이 빌리의 인생을 돌아보며 주변인들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다뤘다.

영화 '스틸라이프' 스틸컷 (사진=(주)드림웨스트픽쳐스 제공)
영화 '스틸라이프' 스틸컷 (사진=(주)드림웨스트픽쳐스 제공)

존이 이토록 빌리의 주변인을 찾아다니는 이유는 그의 장례식에 누군가 함께 해줬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다. 죽은 사람의 삶을 파헤치는 존의 모습은 마치 생과 사의 경계에 놓인 것처럼 보인다. 존은 무연고자의 죽음에서 자신을 본다. 그 또한 동반자 없이 혼자 살아가고 있기에 더욱 그렇다. 영화는 빌리의 삶을 적극적으로 보여주지 않는다. 철저히 존의 시선과 발걸음을 쫓을 뿐이다. 즉, 이 영화가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혼자 죽음을 맞이한 이가 아니라 아무도 들추지 않은 누군가의 삶을 들춰보는 인물이다.

존의 상사는 “어차피 장례식은 산 사람들의 것”이라고 말한다. 존은 무연고자의 장례를 치러주기 위해 너무 많은 비용을 허비했다. 효율성이 없는 인력인 존은 직장에서 해고 통보를 받지만, 빌리를 포기하지 않는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지만 존이 일하는 태도는 무척 엄숙하다. 정갈하고 심플한 화면 구성과 건조하고 차가운 색감의 오브제는 그의 태도를 극대화시킨다. 관객은 존을 통해 단순한 직업 정신 그 이상의 인간적 존엄을 마주한다.

영화 '스틸 라이프' 스틸컷 (사진=(주)드림웨스트픽쳐스 제공)
영화 '스틸 라이프' 스틸컷 (사진=(주)드림웨스트픽쳐스 제공)

조직의 반대를 무릎 쓰고 빌리의 장례를 돕는 존은 융통성 없는 사람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작품은 존의 타고난 책임감과 휴머니즘을 조명했다. ‘삶’이 아닌 ‘죽음’을 대하는 태도, 죽음으로서 완성되는 삶이기에 누군가의 죽음까지 존엄한 태도로 대하는 인물 ‘존’. 영화는 주인공을 통해 진정으로 타인을 존중하는 한 인물을 보여주며 주변을 둘러보게 한다. 존이 빌리의 인생을 곱씹으며 자신의 고독을 돌아보는 것처럼, 관객 또한 존을 통해 일상 속에서 종종 느껴본 고독을 곱씹어 보게 했다.

영화 ‘스틸라이프’는 뛰어난 작품성을 인정 받으며 많은 이들의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개봉한 지 10년 가까이 지난 지금 꾸준히 국내에서도 리메이크 여부가 논의됐다. 현실적이지만 따뜻함을 잃지 않는 시선을 가진 우베르토 파솔리니 감독은 2021년 신작 ‘노웨어 스페셜’을 선보이며 다시 한번 관객의 감동을 자아냈다.

편집자의 말

‘혼자 사는 사람들’의 진아는 ‘엄마’로 저장되어 있던 아버지의 번호를 다시 고친다. 그는 스스로 세운 담장을 허물고 세상으로 나아갈 힘을 얻는다. ‘스틸 라이프’는 존이 일평생 살핀 망자들이 모여들었을 때 영화는 비로소 완성된다. 두 인물의 운명은 완전히 갈리지만, 결국 비로소 함께 하는 삶을 이뤘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지닌다. 혼자였지만 혼자이지 않은 인물들의 이야기가 두 작품을 관통한다.

두 작품에는 1인분의 고독을 혼자 짊어지도록 방치하지 않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작품은 이 인물들을 통해 궁극적으로 전하고자 하는 바를 끌어올린다. 혼자 사는 삶의 불완전함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닌, 혼전하고자 하는 바가 혼자 사는 삶의 불완전함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영화의 톤은 차분하고 잔잔하다. 주인공들은 미니멀한 잿빛 사무실, 푸석하게 가라앉은 겨울의 콜센터에 머물지만, 끝에 이르러 환한 순간을 마주한다. 개봉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많은 이들의 마음을 어루만진 두 작품이 갖는 의의다.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는 이웃의 집을 한 번쯤 들여다보고, 밥 한 끼를 나누며, 한마음으로 모여 누군가의 평안을 빌어주는 일에 대해 말하면서, 함께 사는 세상을 향해 가는 과정을 담았다.

박영선 기자 djane7106@dailysports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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