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헌절에 살피는 헌법정신과 개헌

제헌절에 살피는 헌법정신과 개헌

  • 기자명 김삼웅 논설고문
  • 입력 2022.07.14 0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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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이른바 ‘87년체제’를 골격으로 운영된다. 1987년 6월항쟁으로 군부독재세력과 민주화세력의 타협으로 1987년 제9차 개헌인 현행헌법이 마련되었다. 이로부터 35년이 지났다. 그동안 정치적으로는 8명의 직선대통령, 네 차례의 여야정권교체가 이뤄지고, 경제적으로는 개발도상국가에서 선진국 대열에 진입했다.

과도기적으로 마련된 헌법을 개정해야한다는 여론이 제기되고 있다. 그동안 변화된 국가적 위상에 걸맞지 않은 조항도 적지 않다. 우선 헌법 전문의 ‘3.1운동’을 ‘3.1혁명’으로 바로잡고 광주민주화운동과 6월항쟁, 촛불정신을 포함시켜야 한다.

권력구조에 있어서 대통령의 과대한 권한을 분산하고, 대선ㆍ총선ㆍ지선 등 국가 단위의 선거를 두 차례로 통합실시함으로써 예산을 줄이고, 비효율적인 국회의 구조를 대폭 고쳤으면 한다.

아울러 ‘잠재적 화약고’인 세계 최악화 상태의 빈부양극화, 낡은 교육제도, 중앙집중의 지역분권, 검찰독립, 초ㆍ중등교원의 정당가입허용, 성소수자문제, 장애인처우, 저출산 고령화의 인구문제 등의 헌법적 조처가 마련되어야 한다.

윤석열대통령이 취임사에서 ‘자유’를 35회나 외쳤으나 대한민국의 헌법적 가치는 ‘민주’와 ‘공화’의 가치에 주어진다. 엄청난 변동성과 불확실성이 내다보이는 4차산업혁명 시기에 낙오되지 않기 위해서는 국가의 기본법인 헌법을 시대와 상황에 맞도록 손질하여 민족적 구심점을 바탕으로 격변하는 국제환경에 대처해야 할 것이다.

제헌절을 맞아 우리 헌법의 발자취를 살피면서 개헌에 대한 준비를 갖췄으면 싶다. 우리 나라의 헌정은 민주와 공화의 두 바퀴로 출범하였다. 1919년 3ㆍ1혁명 정신과 그 결실로 태어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약헌’ 등을 바탕으로 제정되었다.

1948년 5월 10일 초대 민의원 선거가 실시되어 당선된 의원들은 6월 1일 국회 본회의에서 헌법기초위원 선임을 위한 전형위원을 각 도별로 1명씩 10명을 선출하였다. 그 전형위원들이 30명의 헌법기초위원을 선출하였으며, 사법부ㆍ법조계ㆍ학계 등 각계에서 권위 있는 10명을 전문위원으로 위촉하였다.

헌법기초위원장에는 서상일이 선출되고 기초위원은 유성갑ㆍ윤석구ㆍ김상덕ㆍ허정ㆍ조헌영ㆍ조봉암ㆍ이청천 등, 전문위원에는 유진오ㆍ권승렬ㆍ윤길중 등이 선임되었다. 헌법기초위원회는 유진오의 초안을 중심으로 전문 10장 102조의 헌법안을 마련하여, 국회본회의에 제출하였다.

헌법초안은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대한민국임시약헌’ 그리고 미군정시대 남조선대한국민대표민주의원(민주의원)에서 마련한 헌법안, 1919년에 제정된 독일 바이마르공화국의 헌법 등을 모델로 삼았다. 바이마르 헌법은 그 당시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세계적으로 가장 앞선 민주헌법이었다.

제헌헌법은 심의 과정에서부터 정치세력 간의 알력을 겪게 되었다. 이승만은 대통령제를 고집하고, 한민당 측은 내각제를 선호하였다. 이승만은 자신의 집권이 예상되면서 강력한 대통령제를 원하고, 한민당 측은 대통령은 이승만을 선출하되 실권은 자신들이 갖는 내각제를 바랐다. 헌법은 이승만의 권력욕에 따라 내각책임제에서 대통령중심제로 권력구조가 탈바꿈되어 헌법기초위원회에서 채택되었다. 초장부터 ‘위인설관’의 비극적 운명을 타고 태어난 셈이다.

국회본회의 헌법심의 과정에서 국호를 둘러싸고 치열한 논쟁이 일었다. ‘조선’이라는 국호와, 고종이 1897년 건원칭제를 단행하면서 채택한 대한제국의 ‘대한(大韓)’을 회복하여 광복하자는 이름으로 다시 찾아 써야 한다는 주장이 맞섰다. 헌법기초위원 30명 중 26명이 참가한 투표 결과 대한민국 17표, 고려공화국 7표, 조선공화국 2표로 ‘대한민국’ 이 국호로 채택되었다.

유진오의 헌법초안 전문(前文)에는 “3.1혁명의 위대한 독립정신을 계승하여”라고 되어 있는 부분을 한민당 소속 일부 의원들이 이승만에게 혁명이란 용어가 과격하다는 등의 이유로 “기미 3.1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라고 고칠 것을 주장했다. 이리하여 ‘3.1혁명’ 이 ‘3.1운동’으로 표기하게 되었다.

제헌헌법은 이승만의 권력 야망으로 권력구조 문제에서 변질되기는 했으나 국민주권주의와 3권분립 정신을 바탕으로 하는 진보적인 내용을 많이 담고 있었다.

헌법전문은 대한민국이 지향하는 방략을 제시하였다. 여기서 “민주독립국가를 재건”이란 대목은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승계한다는 뜻이 담겼다.

헌법전문에 나타나는 대한민국 국가건설의 기본정신은 ①민족의 단결을 공고히 하고 ②사회적 폐습을 타파하고 ③민주주의 제도를 세우고 ④모든 영역에서 개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여 능력을 발휘케하고 ⑤국민의 책임과 의무를 완수해야 한다고 선언했다. 세계선진 민주국가 어느 나라의 헌법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내용이었다.

특히 본문 제2조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조항은 임시정부의 헌장을 그대로 계승한 것이며, 제1조의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국호와 정체의 규정에서 단순한 ‘공화국’이 아닌 ‘민주공화국’이라고 표현한 것은 바이마르공화국의 헌법에도 없는 매우 독창적인 내용이다.

훗날 박정희ㆍ전두환의 군사독재 정권과 그 아류들이 ‘자유민주주의’라는 용어를 남용하고, 최근 집권세력이 이 용어를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하고 있지만, 우리나라 제헌헌법 정신은 일체의 관사를 허용하지 않은 ‘민주공화국’ 즉 ‘민주주의’ 공화국을 지향한다. 민주주의에 관용사를 붙이면 정치적 불순성이 담보되기 마련이다. ‘행정적 민주주의’, ‘민족적민주주의’, ‘인민민주주의’ 따위가 그렇다고 할 수 있다.

제헌헌법은 이승만의 발췌개헌, 사사오입개헌, 3선개헌 등으로 장기집권의 장식품이 되었다가 박정희에 의해 헌정중단과 몇 차례의 변칙적인 개헌에 이어 유신헌법으로 송두리째 유린되는 과정을 겪었다. 그리고 전두환에 의해 또 한 번 짓밟혔다. 다시 준비해야 하는 제10차 개헌은 정파의 이익이 아닌 국민의 권익을 위해 국민총의로 시대발전에 맞게 논의되었으면 한다.

김삼웅(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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