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코 잘못 쓰이는 용어 바로잡자

무심코 잘못 쓰이는 용어 바로잡자

  • 기자명 김삼웅 논설고문
  • 입력 2022.06.30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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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일상적으로 쓰는 용어 중에는 시대의 변화에 따라 바꾸거나 쓰지 말아야 할 말이 적지 않다. 애초부터 일제가 의도적으로 만들거나 독재정권의 하수인들이 쓴 용어들이다.

속담도 마찬가지다. “모로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말은 변칙을 정당화한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 아프다”는 가까워야 할 친척을 갈라치기하는 속언이다.

가끔 TV나 신문에 보면 사회명사나 고위공직자들이 “나 며칠 후에 일본(또는 기타 외국)에 들어간다”고 한다. 특히 TV 연속극에서 자주 쓰인다. 한국인이 외국을 가면서 ‘들어간다’는 표현은 어의에도 맞지 않거니와 ‘아’와 ‘비아’를 구분치 못하는 무지의 소치라 하겠다. 사대주의 잔재이기도 하다.

전문학자는 물론 언론에서 공공연히 쓰는 ‘정치범’이란 말이 있다. 독재정권과 싸우다 투옥된 민주인사ㆍ학생들을 일컫는데, 죄를 저지른 의미의 범(犯) 자를 쓰는 것은 이들에 대한 모독이다. 재판도 받기 전에 ‘범인’으로 낙인하는 것이다. ‘양심수’라 써야 옳다.

이승만 초대 대통령을 ‘건국대통령’이라 쓰는 경우가 적지 않다. 또 1948년 8월 15일을 ‘건국’이라 표기하고 일부 세력은 이를 공식화하고 있다. 현행헌법은 대한민국의 건국을 1919년 4월 11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일을 명시하고, 이것은 역사적인 진실이기도 하다.

‘권위주의 정권’이란 말은 이승만ㆍ박정희ㆍ전두환 정권을 에둘러 표현한 용어이다. 독재정권이란 표현을 피하기 위한 수법인 것이다. ‘권위’는 좋은 의미에 속한다. 부모의 권위, 스승의 권위, 지도자의 권위는 중요하고 필요하다. 그런데 여기에 ‘주의’가 따라붙으면 부정적 의미로 바뀐다. 사대(事大)가 본뜻은 약자가 강자에게 복종하고 섬기며 강자는 약자를 돌봄을 일컫는데, 여기에 주의(主義)가 불으면 자주성이 없어 강자를 추종하는 의미가 되는 것과 같다. ‘권위주의 정권’은 마땅히 독재정권이라 써야 한다.

‘양민(良民)’은 일제가 대한제국을 무력통치하면서 생산한 식민용어다. 자신들을 거부하는 애국자들을 ‘불령선인(不逞鮮人)’이라 하고 친일파나 지지자들을 ‘양민’이라 감싸주었다. 사례가 이런 데도 ‘제주양민학살사건’, ‘거창양민학살사건’ 등 관권에 의한 민간인 학살사건과 관련하여 오용되고 있다.

‘정치공학’이란 말이 정가와 언론에서 가끔 쓰인다. 공학(工學)이란 공업 생산 기술을 창조ㆍ개발하기 위하여 체계화된 학문이다. 곧 기계공학ㆍ화학공학ㆍ건설공학ㆍ정밀공학 등이다. 그런데 정치에 공학을 붙혀 ‘정치공학’이 되면, 비합리적인 술수로 변질되고 만다. 이 분야 연구가들에게는 모독적인 발언(용어)이 아닐 수 없다.

‘소설 쓰네’ 역시 비슷하다. 정치인들이 상대의 발언을 헐뜯는 말로 쓰인다. 소설은 작가의 상상력에 의해 구상하거나 또는 사실을 각색한, 주로 산문체의 이야기를 말한다. 그런데 ‘소설 쓰네’라는 표현은 황당한, 근거 없는, 무지막지한 등의 어의를 내포함으로써 순수한 소설가들을 욕 먹힌다.

법조계의 용어로 ‘언도(言渡)’가 있다. 아무개 징역 몇 년 언도 등으로 쓰인다. 이 역시 일제 용어로서 구형법과 민법에서 분별없이 사용해왔다. 선고(宣告)가 바른 용어이다.

‘사변(事變)’이란 말이 쓰인다. 사람의 힘으로 피할 수 없는 천재나 그 밖의 변고를 의미한다. 또한 전쟁까지에는 이르지 않았으나 경찰의 힘으로는 막을 수 없어 병력을 사용하는 내란의 뜻이 담긴다.

이 역시 일제의 식민지 용어이다. 명성황후를 죽인 사건을 ‘을미사변’이라 호도하고, 만주를 침략하면서 ‘만주사변’, 상하이를 점령할 때는 ‘상하이사변’이라 했다. 자기들이 일으킨 침략전쟁을 은폐하고자 사변이란 용어를 생산하고, 우리나라도 한때 6.25전쟁을 ‘6.25사변’이라 불렀다.

‘시해(弑害)’의 본뜻은 신하가 군주를 살해함을 의미한다. 일제의 ‘명성황후 시해’나, 김재규의 ‘박정희 시해’는 바른 표기가 아니다. 양자는 군신 관계가 아닐뿐더러, 지금은 군주시대도 아니기 때문이다. ‘000 암살 (또는〇〇〇살해사건)’이 맞다.

‘독도분쟁’이다. 일본은 기회만 있으면 독도영유권을 주장한다. 저들의 각급 교과서는 ‘일본령’이라 쓰고 한국이 강제로 점거하고 있다고 강변한다. 그리고 이를 ‘분쟁화’시켜서 국제기관에 제소하고자 벼른다. 따라서 분쟁이란 용어는 일본이 노리는 책략임을 알아야 한다.

‘모의(謀議)’란 여럿이 범죄의 계획이나 실행 수단을 의논한다는 뜻이다. 독립운동사에서 자주 쓰인다. 독립운동가들이 범죄를 계획했다는 것인가. 일제경찰ㆍ헌병ㆍ밀정들이 자기네 상급기관에 보고할 때 쓰인 용어를 분별없이 지금도 쓰고 있다.

‘인적자원(人的資員)’은 사람을 물질로 폄하하는 말이다. 정부나 각급 기관 또는 정치인ㆍ관료들이 무심코 쓰고 있지만, 인간을 ‘자원’으로 인식해서는 안 될 것이다.

‘3.1운동’의 경우다. 헌법 전문에까지 ‘운동’이라 표기함으로써 쉽게 바로잡기 어렵겠지만, 정명은 ‘3ㆍ1혁명’이다. 운동이란 표기는 일제로부터 기원한다. 1919년 3~4월의 거족적인 항일투쟁을 일제는 조선폭동ㆍ조선소우ㆍ내란ㆍ폭거 등으로 쓰고 한 지방신문이 ‘3.1운동’이라 표기했다.

중국의 언론은 대부분 ‘조선혁명’, ‘3.1혁명’, ‘조선의 3.1대혁명’이라 쓰고 우리 독립운동가들도 그렇게 불렀다. 해방 후 정부가 수립되면서 유진오가 헌법초안에 ‘3.1혁명’이라 표기한 것을 친일세력의 집단인 한민당 의원들이 이승만에게 갓 출발하는 정부에서 혁명이란 과격한 용어는 불가하다는 의견을 말하고 이승만은 이를 수용하여 혁명 대신 운동이란 용어가 쓰이게 되었다. 이승만 자신도 미국 망명기에 ‘3.1혁명’이라 썼다.

‘단군신화’는 일제가 우리 역사를 뿌리부터 왜곡하면서 만든 용어다. 단군이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단군 사화(史話)’ 또는 ‘단군 실화’로 표기해야 한다.

김삼웅(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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