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취임사의 어제 오늘

대통령 취임사의 어제 오늘

  • 기자명 김삼웅 논설고문
  • 입력 2022.05.12 09:08
  • 수정 2022.05.12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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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5월 10일 제20대 대통령에 취임했다. 대통령의 취임사는 임기동안 국정의 비전과 당면과제 그리고 자신의 철학이 담기기 때문에 내외의 관심이 모아진다. 윤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반지성주의를 비판하고 서로의 입장을 조정하는 합리주의와 지성주의를 강조 했다. 자유ㆍ인권ㆍ공정ㆍ연대를 통해 국민이 주인이 되는 사회를 다짐, 북한이 핵개발을 중단하면 주민의 삶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담대한 계획을 준비하겠다고 밝혔다.

대통령의 취임사는 당선인 주변의 내노라하는 글쟁이들을 모으고, 또 사계의 명사들의 자문을 거쳐 초고가 마련되고 당선인과 실세들의 토론과정을 거쳐 완성된다. 몇 단계를 거치면서 때로는 맥락이 끊기거나 영혼이 없는 미사여구로 시종하는 경우도 없지 않았다.

우리는 온 국민의 힘을 모아 선진국으로 도약했으나 여전히 무거운 과제를 떠안고 있다. 첫째는 점점 더 가열화되고 있는 북핵위기, 둘째는 세계 최악 상태의 빈부격차, 셋째는 역시 최선두에 선 온난화와 생태위기다. 이와 함께 대선결과에서 보여주듯이 양극단으로 갈라진 국민의 마음을 모으는 통합과 협치, 코로나19로 많은 피해를 입은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의 손실보상, 청년실업, 최악 수준으로 치닫고 있는 저출산 고령화문제 등 산적한 현안을 수습하고 해결하는 비전이 취임사에 담겼어야 하는데 다소 추상적이란 평가다.

굴곡진 헌정사에서 역대 대통령의 취임사는 시기마다 또 당사자의 개성에 따라 곡절이 배인다. 초대 이승만은 1948년 7월 24일 중앙청광장에서 거행된 취임식의 취임사에서 “여러 번 죽었던 이 몸이 하나님 은혜와 동포의 애호로 지금까지 살아 있다가 오늘에 이와 같이 영광스러운 추대를 받은 나로서는 일편 감격한 마음과 일편 감당키 어려운 책임을 지고 두려운 생각을 금하기 어렵습니다.” 이승만은 이어서 “새로운 정신과 새로운 행동으로 구습을 버리고 새 길을 찾아서 날로 분발정진하자”는 등 추상적인 언사로 시종할 뿐 민생ㆍ통일ㆍ외국군 철수ㆍ친일파 척결ㆍ국가 비전 등에 관해서는 거의 언급이 없었다.

1963년 12월 17일 제5대 대통령에 취임한 박정희는 쿠데타로 집권하고 선거의 과정을 거쳤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정통성의 문제를 안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취임사는 경제발전에 모아졌다. 이후 유신헌법을 만들고 체육관 선거를 통해 3선ㆍ4선의 취임사는 대부분 ‘국민의 의무’를 강조하면서 미사연구로 가득찬 내용이었다.

5.17 군사반란을 통해 집권한 전두환은 1980년 9월 1일 제11대 대통령 취임사에서 엉뚱하게 ‘정의사회구현’을 강조하고 나섰다. 이어서 “과거처럼 선동ㆍ비리ㆍ파쟁ㆍ권모ㆍ사술ㆍ부정부패 등이 판을 치던 풍토 속에서는 민주주의가 제대로 성장할 수 없다”고 지적하고, “이런 폐습에 물든 정치인들에게 앞으로의 정치를 맡길 수 없다는 것이 본인의 소신” 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 “정계개편과 정치인의 세대교체는 불가피하다고 본다” 라고 강조했다. 자신의 행적과 전혀 걸맞지 않는 취임사였다.

전두환의 후계자 노태우는 1988년 2월 25일 제13대 대통령 취임사에서 ‘보통 사람들의 위대한 시대’를 열겠다면서 “사회정의의 실현을 가로막고 갈등을 심화시키는 어떠한 형태의 특권이나 부정부패도 단호하게 배격하겠다.”고 말했다. 이어서 “부의 부당한 축적이나 편재가 사라지고 누구든지 성실하게 일한만큼 보람과 결실을 거두면서 희망을 갖고 장래를 설계할 수 있는 사회가 바로 ‘보통 사람들의 위대한 시대’입니다.”고 역설했다. 그와 전두환은 재임 중 수천억대의 부당한 치부로 퇴임 후 무기형과 장기형을 선고 받았다.

김영삼은 1993년 2월 25일 제14대 대통령 취임사에서 세 가지 당면과제로 첫째, 부정부패 척결. 둘째, 경제 살리기, 셋째, 국가기강 확립을 제시했다. 특히 김일성 북한 주석에게 대결이 아니라 평화와 협력의 시대로 나아가자고 제의하면서 “어느 동맹국도 민족보다 더 나을 수 없다. 어떤 이념이나 어떤 사상도 민족보다 더 큰 행복을 가져다주지 못 한다.”고 역설, 내외의 관심과 이념논쟁을 불러왔다.

김대중은 1998년 2월 25일 제14대 대통령 취임사에서 IMF 국난을 맞은 상황을 설명하고 “물가는 오르고 실업은 늘어날 것이다. 소득은 떨어지고 기업의 도산은 속출할 것이다. 잘못은 지도층이 저질러놓고 고통은 죄없는 국민이 당하는 것을 생각할 때 한 없는 아픔과 울분을 금할 수 없다.” 면서 정보강국의 소신을 밝혔다. “세계에서 컴퓨터를 가장 잘 쓰는 나라를 만들어 정보대국의 토대를 튼튼히 닦아나가겠다.”고 다짐했다.

노무현은 2003년 2월 25일 제16대 대통령 취임사 ‘번영과 도약의 시대로’에서 “새 정부는 개혁과 통합으로 국민과 함께하는 민주주의, 더불어 사는 균형발전사회, 평화와 번영의 동북아 시대를 열어갈 것”을 다짐하고, “반칙과 특권이 용납되는 시대는 이제 끝나야 하며, 정의가 패배하고 기회주의가 득세하는 굴절된 풍토는 청산되어야 한다.”고 천명하였다. “원칙을 바로 세워 신뢰 사회를 만들자”는 제안을 덧붙혔다.

이후 이명박은 취임사에서 “실용주의와 녹색성장”을, 박근혜는 ‘통일대박’ ‘우주의 기운’ 등 엉뚱한 내용 외에 특별한 내용이 담기지 않았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5월 9일 제19대 대통령에 취임하면서 “권위적 대통령 문화를 청산하고, 국민과 수시로 소통하는 대통령이자 깨끗한 대통령, 약속을 지키는 솔직한 대통령, 따뜻하고 친구같은 대통령이 되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이어서 “기회는 공평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겠다.”고 덧붙혔다.

대통령의 취임사가 국민들에 오래 기억되기는 여간해서 쉽지 않다. 내용이 알차고 문장이 빼어나야 하며, 무엇보다 말한 사람의 행적이 내용과 다르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와 같이 대통령중심제 국가인 미국의 경우를 보자. 1865년 에이브러햄 링컨이 남북전쟁 후 국민통합을 호소하며 “적의 대신 관용의 마음으로 의로운 편에 굳건히 서서 우리가 처해 있는 일을 끝내도록 합시다.” 1933년 프랭클린 루즈벨트는 대공황의 극복을 독려하여 “두려워할 것은 두려움 그 자체입니다.” 1961년 존 F 케네디는 국민의 애국심을 호소하며 “조국이 당신을 위해 무엇을 해줄 것인가 묻지 말고 당신이 조국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물으십시오.”

김삼웅(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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