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역사용어 바로잡기

일제강점기 역사용어 바로잡기

  • 기자명 김삼웅 논설고문
  • 입력 2022.03.10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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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에서는 오래 전부터 ‘이름을 바르게’하는 정명사상(正名思想)이 전한다. 공자가 자로(子路)에게 밝힌, “이름을 바르게 한다”(必也正名乎)는 정명사상의 본질은 “이름이 바르지 않으면 말씀이 옳지 않고, 말씀이 옳지 않으면 일이 이루어지지 않으며, 일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예악이 흥하지 않고, 예악이 흥하지 않으면 형벌이 정당함을 잃으며, 형벌이 정당함을 잃으면 백성이 어찌할지를 모른다.”는 것이다.
해방 77주년이 되는 지금까지 여전히 상당수의 역사용어가 분별없이 사용되고 있다. 일제가 한국침략과 지배를 정당화하고자 관학자들을 동원하여 각종 식민지용어를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일제의 ‘침략과 통치용어’는 한민족을 멸시하고 하대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졌다. 한국을 영원히 식민지로 지배하고자 하는 일제의 침략주의 야만성이 깔려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일제가 만든 침략과 통치용어를 습관적으로, 부지불식간에 그대로 답습하는 비주체, 몰가치성을 보여주고 있다. 일본이 독도영유권 주장과 국정교과서 왜곡으로 새로운 침략의 야욕을 드러내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 내부에서는 아직도 일제지배용어의 잔재가 고스란히 남아 사용되고 있다.
가장 주체적이며 독립적이고 민족자존의 용어를 써야하는 역사학계, 특히 근현대사학계와 언론계에서 일제침략과 통치용어를 그대로 쓰고 있는 것은 부끄럽고 개탄스러운 노릇이다. 일반국민은 용어의 의미와 유래를 잘 모르니까 그렇다 치더라도 전문학자ㆍ연구가ㆍ언론인ㆍ 작가들이 오히려 앞장서서 일제 역사용어를 스스럼없이 쓰고 있는 현실이다. 잘못 쓰이고 있는 일제침략과 통치용어의 대표적인 사례를 살펴보자.
‘대동아전쟁, 대동아공영권’. 요즘은 역사 전문서적에서는 많이 쓰지 않고 있지만 아직도 태평양전쟁을 ‘대동아전쟁’으로 부르는 경우를 본다. 일제는 아시아 여러 나라를 침략, 지배하면서 ‘대동아공영권’이란 구호를 내걸었다. 서양의 침략으로부터 아시아를 지키고 일본이 맹주가 되어 아시아공영권을 형성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을 도발하면서 ‘대동아전쟁’이라 불렀다. 아시아가 한 몸이 되어 미영과 싸우겠다는 제국주의적 침략전쟁을 호도하는 명칭이므로 이 용어를 쓰지 않아야 한다. ‘태평양전쟁’이나 ‘2차세계대전’으로 써야한다. 
‘정한론(征韓論)’. 중ㆍ고등학교 국사책이나 역사학자들의 저서에 ‘정한론’이란 용어가 수록돼 있다. 1860년대 이후부터 일본 정부내에서는 “조선을 정벌하여 식민지로 만들어야 일본이 대륙에 진출할 수 있고 아시아의 패권을 누리게 된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일본은 이미 강호(江戶) 시대의 해방론(海防論)에 이어 막부(幕府) 말기의 정한론, 다시 명치 이후에는 일선동조론(日鮮同祖論)ㆍ일한일역론(日韓一域論) 따위로 한국침략의 당위성을 내세웠다. ‘정한론’의 정(征) 자의 의미를 살펴보면, 두 인변과 바를 정(正) 자가 합쳐서 생긴 회의문자다. 아버지와 아들 관계 또는 스승과 제자 관계 즉 올바른 웃어른이 어린아이의 잘못을 꾸짖어 훈계한다는 뜻이다. 
우리가 ‘여진정벌’이나 ‘대마도정벌’의 경우, 도발하는 외적을 응징할 때 주체적 의미로 쓴다. 그런데 일본이 우리를 침략하는 의미의 ‘정한론’을 그대로 사용하는 것은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 마땅히 ‘일제침략론’으로 써야 한다.
‘이조(李朝)’. 무의식적으로 조선을 지칭하는 말로 이조라고 부르는 경우가 있다. 우리 역사에 ‘이조’라는 나라는 없었다. 일본이 조선을 침략ㆍ병탄하면서 한국민에게 조선왕조를 격하시켜 한 씨족사회를 합방했다는 점을 인식시키고자 하여 만든 용어다. 조선이 만백성을 위한 체제가 아닌, 이씨(李) 성을 가진 한 가문 또는 혈연집단이었다는 사실을 부각시키고자 제조한 호칭이다. 일본은 ‘조선’이란 국가의 존재를 부정하면서 씨족 대표가 지배하는 사회를 해체하고 대신 자기들이 다스리게 되었으니 독립운동이나 애국심 따위를 갖지 말도록 용어를 조작하였다. 이런 사정도 모르고 우리는 ‘이조 500년’ ‘이조백자’ ‘이조시대’ 어쩌고 하면서 역사를 말한다. 조선후기의 정식 국호는 ‘대조선왕국’(1894), ‘대조선제국’(1895), ‘대한제국’(1897)이었다. 통칭 ‘조선왕조’ 또는 ‘조선’ 이라 써야 옳다.
‘의병토벌’. 일제의 침략에 맞서 전국 각지에서 일어난 의병 봉기와 관련하여, “일본군이 한국의병을 토벌했다”라고 하면서 ‘토벌’이라는 용어를 거침없이 쓰고 있다. ‘토벌’은 관군이 반란군을 진압하는 용어인데, 그렇다면 왜군은 관군이고 우리 의병은 반란군이란 말인가? ‘의병학살’로 써야 한다. 
‘당쟁’. 흔히 조선왕조가 ‘당쟁’으로 망했다고 말한다. 당쟁이란 용어는 일인들이 만들었다. 대한제국의 학정참여관을 지낸 폐원단(幣原担)이 1907년에 쓴 ‘한국정쟁지(韓國政爭志)’에서 처음으로 ‘당쟁(黨爭)’이란 용어를 쓰면서 조선시대를 당쟁시대로 부정적으로 규정했다. 또 세정필(細井筆)은 “조선사람의 혈액에 특이한 검푸른 피가 섞여 있어서” 당쟁이 여러 대에 걸쳐 계속되고, 결국 고칠 수 없는 것이라고 체질론을 폈다. 조선시대에 파쟁이 심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일본을 비롯 어느 나라든 정도의 차이일 뿐 정치적 파쟁은 있기 마련이다. 조선시대에는 ‘붕당’이란 용어가 사용되었다. 
‘모의(謀議)’. 항일독립운동가들의 회의를 ‘모의’라고 표기하는 경우가 흔하다. 모의는 “옳지 않은 일을 하기 위한 음모”를 말하는데 독립운동이 옳지 않은 일이란 말인가. 일본 경찰이나 헌병이 쓴 용어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협의’나 ‘논의’로 써야 한다. ‘독립운동가 체포’라는 용어도 일제를 주체로 하는 잘못 쓰이는 용어다. ‘피체’라 해야 하고 검거는 ‘피검’이 옳다. 독립운동사 용어에서 침략자적 입장의 용어를 지양해야 한다. 
‘징용(徵用)’. 일제강점기 많은 한국인이 전장이나 탄광으로 강제로 끌려가 노역에 시달렸다. 이를 ‘징용’이라 부르는데, 원래 징용은 국가가 사람을 불러 일을 시키는 것을 말한다.  우리는 ‘징용’ 당한 것이 아니라 ‘강제노역’ 당한 것이다. ‘징병’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정신대’. 정신대란 몸을 던져 나라를 위해 일하는 사람이다. 정신대에는 근로정신대로서 군수산업 등에 노동력으로 동원된 것도 있다. 일제에 끌려가 성노예 노릇을 한 여성들을 정신대나 위안부라고 부르는 것은 정명이 아니며, 침략주의를 미화하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다. ‘일본군 성노예’ 라 써야 한다.
‘한일합방, 한일병합’. 일제의 불법적이고 강제침략 성격이 나타나지 않는 이들 용어는 최근 일본 일부 인사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한민족이 자발적으로 ‘병합’에 응해 왔다는 것으로 이용ㆍ왜곡될 우려가 있다. 따라서 ‘경술국치’ 또는 ‘병탄’이라 써야 한다.
‘사변(事變)’. 역사의 평가가 부재하고 주체적 의미가 결여되며 명확한 가치가 부여되지 못한 평면적 용어로서 역사용어로서는 부적합하다. 명확하고 주체적 용어를 사용해야 한다. ‘을미사변’은 사건의 성격과 내용이 은폐되고 모호함으로 ‘명성황후살해사건’ ‘만주사변’은 일제의 침략성을 은폐한 것임으로 ‘만주침략’이라 써야 한다.
‘간도출병ㆍ시베리아출병’. 일제의 침략적 성격을 은폐하려는 용어이다. 마땅히 ‘간도침략’  ‘시베리아 침략’이라 써야 한다.
‘부락(部落)’. 일본의 천민집단 명칭이다. 한민족을 일본의 천민, 노예로 인식하고자 하여 쓴 용어이다. ‘마을’이라 해야 옳다.
 일제가 남긴 왜곡된 역사용어를 바로잡아야 한다. 저들이 한국을 침략하면서 민족혼을 말살하고 국민정신을 ‘황민화’ 하고자 관학자들을 동원하여 만들었던 왜색 역사용어를 우리가 언제까지나 관행적으로 사용한다는 것은 몰역사ㆍ몰가치적인 현상인 것이다. 우리의 주체적인 ‘정명’을 바로 써야 한다.

김삼웅(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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