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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의 개혁인물, 그 꿈과 좌절 그리고…
  • 김삼웅 논설고문 ysk@dailysportshankook.com
  • 승인 2022.02.17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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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역사에는 시대마다 걸출한 개혁주도 인물이 나타났다. 단 한 번만이라도 이 개혁주도 인물이 성공하였다면 우리 역사의 전개는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이들 개혁주도자들은 그때마다 부패무능한 국정의 개혁과 만민평등을 주창하고 대외적인 민족자주성의 확립과 혁신정치를 시도하였다.
그러나 개혁주도 인물들은 대부분이 보수기득세력의 두꺼운 장벽을 넘지 못하거나 외세의 개입으로 그 시도가 좌절되고 말았다. 우리 국민성 역시 전통적으로 보수와 개혁의 두 흐름으로 교직된다. 기마민족과 농경민족의 혈통을 갖고 있는 한민족은 원시 고대사회의 기마민족적 진보성이 토착농경 사회로 정착되면서부터 보수성이 강한 민족성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이로 인해 현실안주의 보수성이 국민 일반의 의식과 행동을 규제하게 되고, 압제와 수탈, 외부의 침략에 과감히 항거하다가도 금방 주저앉게 되는 경우가 허다했다. 전통사회로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한국사에서 대표적인 개혁주도 인물에는 신라 말기의 장보고, 고려 중기의 묘청과 만적, 말기의 신돈, 조선 초기의 정도전, 중기의 조광조, 말기의 홍경래, 최제우, 전봉준 그리고 대한제국 시기의 김옥균과 서재필을 들 수 있다.
이들 11명의 ‘개혁인물’ 선정에는 입장에 따라서 얼마든지 다른 평가가 가능할 것이다. 개중에는 순수한 개혁주의자라기보다는 반역자, 종교적인 이상주의자, 외세지향자 등으로 불릴 수 있는 인물도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들 중에는 왕권의 보호 속에서, 즉 체제 내에서 개혁을 시도한 사람도 있고, 왕권을 뒤엎고서 개혁하고자 한 혁명론자도 포함된다. 그리고 외세를 끌어들여서 국정의 개혁을 도모하고자 한 사람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보편적으로 이들이 시도했던 목표가 국정의 개혁에 있었던 만큼 ‘개혁인물’로 선정하는 데는 큰 무리가 없을 것이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우리 민족성은 보수적인 측면이 강해 개혁을 꺼리고 두려워한다. 따라서 11명의 개혁인물은 모두 실패하기에 이르렀으며 서재필을 제외한 10명은 살해되었다. 서재필의 경우, 자신은 해외망명과 미국 국적을 가져서 겨우 생명을 부지했지만 대신 전가족이 참혹한 죽임을 당했다.
서재필 외에 10명의 개혁인물은 약속이나 한 듯이 처참하게 죽어갔다. 장보고는 조정에서 보낸 자객 염장에게 살해됐으며, 묘청은 김부식의 토벌과정에서 부하에 의해 살해 당했다. 만적은 관군에 체포돼 강물에 던져졌고, 신돈은 왕명으로 참형을 당했다. 정도전은 이방원의 습격으로 살해됐고, 조광조는 훈구파의 반격으로 능주 귀양길에서 사약을 받고 죽었다. 홍경래는 싸움터에서 전사했고, 최제우는 혹세무민의 죄로 처형됐으며, 전봉준은 효수당했다. 김옥균은 이역에서 자객 홍종우에 의해 암살당했다.
개혁주도 인물 11명을 유형별로 분류하면 장보고, 묘청,신돈, 정도전, 조광조와 같이 체제 내에서 개혁을 도모하고자 한 부류가 있다. 이들은 체제를 유지하면서 국정을 개혁하고 자신들이 개혁의 주체가 되고자 하였다. 초기에는 왕의 도움으로 비교적 순조롭게 개혁을 수행하게 되지만 지나친 권력독점 또는 과격한 변화 때문에 수구세력에 밀려서 일패도지하거나 궁여지책으로 반역을 도모하다가 비참한 종말을 고했다.
두 번째 유형은 만적, 홍경래, 전봉준과 같이 반체제적인 개혁주의자들이다. 이들은 기존체제를 부정하면서 민중을 동원하여 혁명 또는 반란을 일으켜 개혁을 이루고자 한다. 이 경우 역시 관권 또는 외세에 의해 진압되고 반역죄로 몰려서 처형된다.
세 번째 유형은 신돈, 최제우와 같이 종교의 힘에 의해서 사회개혁을 도모하고자 하는 경우가 있다. 이들은 민심을 끌어모으고 새로운 종교를 창시하기는 했어도 충분한 물리력을 갖지 못한 관계로 정치개혁에는 실패하게 되고 자신들 역시 이단으로 몰려 처형당한다.
마지막으로 김옥균, 서재필처럼 외세를 이용하거나 체제와 반체제를 넘나들면서 개혁을 추구하는 경우이다. 당초 이들은 체제 내에서 개화와 개혁을 도모하다가 나중에는 정변을 일으켜 공화제를 지향할 만큼 반체제적으로 바뀌었다. 이들 역시 수구세력과 외세의 농간으로 개혁이 실패하고 망명과 암살의 비극적인 생애를 마쳐야 했다.
다음은 이념 또는 이데올로기의 유형에 따른 분류이다. 신분, 지역차별에 반발해서 반란과 쿠테타를 시도한 개혁인물이 이에 해당된다고 하겠다. 장보고는 극심한 신라의 골품제도로 자신의 딸이 왕비로 들어가지 못하고 차별대우를 받게 되자 조정에 반기를 들었다. 묘청은 서경천도를 통해 자주국가 건설을 주창하다가 거부당하자 반역을 시도했으며, 홍경래는 평안도 출신의 차별대우를 타파한다는 명분으로 반란을 일으켰다.
만적은 그야말로 신분해방을 위한 민중투쟁에 나섰고, 최제우의 동학사상은 인간평등을 본질로 하는 인내천정신이었다. 김옥균, 서재필의 개화사상은 계급타파와 만민평등의 근대적인 인권사상이었다. 전통시대의 개혁인물들이 지역차별 타파와 인간평등사상을 혁명과 개혁의 기치로 삼았다는 점은 특기할 만하다.
그리고 또 하나 특이한 점은 개혁주도 인물의 상당수가 출생연대와 어릴적 행적이 제대로 밝혀지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절대왕권체제에서 반란이나 혁명을 기도한 지도자의 기록이 철저하게 은폐되거나 조작되는 것은 어쩔수 없는 일이라고 치더라도 일세를 풍미하고 역사의 물굽이를 바꾼(또는 바꾸고자 한) 인물들의 출생연대가 제대로 밝혀지지 않고 있다는 것은 우리 역사가 실패한 개혁인물을 얼마만큼 홀대하였는가, 우리 역사가 얼마나 보수적인가를 반증한다고 하겠다.
장보고는 출생연대는 물론 출신지역도 잘 밝혀지지 않고 있다. 여러 가지 정황으로 보아 전남 완도 지역일 것으로 추정될 뿐이다. 묘청 역시 그렇고 신돈과 만적, 심지어 조선의 개국공신인 정도전의 생출연도가 불확실한 상태이다. 반대세력에 의해 완벽하게 은폐됐거나 미천한 계층의 출신들인 관계로 기록이 제대로 남아 있지 못한 이유일 수도 있을 것이다.
백암 박은식 선생은 우리 민족의 두 가지 병통을 너무 겁을 먹고 유약해서 감히 산을 옮길 생각조차 하지 않은 태도 즉 ‘패배주의’와 너무 조급하고 들떠서 하루 아침에 해치우려는 태도 즉 ‘모험주의’를 들었다.
백암은 ‘한국통사’에서 갑신정변과 독립협회 등의 실패원인을 “혁명이랑 천시와 인사에 순응하여 바뀜에 접근성이 있어야 하고, 나아감에 단계가 있는 법인데, 이를 무시하고 과격하게 손은 쓰다가 사면에 적을 만들고 말았다.”고 지적하였다. 
단재 신채호 선생이 오늘 우리에게 중대한 가르침을 준다. 한국사는 창업ㆍ쿠데타ㆍ역성혁명ㆍ반란ㆍ반정 등을 모두 겪었으나 한번도 ‘혁명적 정화’ 즉 제대로 된 개혁을 거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수구사대세력은 시대가 바뀌어도 항상 지배세력으로 군림해왔다.
여기에는 국민성의 문제도 따른다. 동학혁명, 3·1혁명, 4·19혁명, 6월항쟁 등 반봉건ㆍ반외세ㆍ반독재 저항의 에너지가 임계점에 이르렀을 때 이를 넘지 못하고 그때마다 ‘미완성혁명’으로 주저앉고 만 것이다. 동학혁명 당시 남북접이 좀 더 일찍 힘을 모아 경성으로 진격했다면, 3·1혁명 때 더 힘차게 일제와 대결했으면, 4·19와 6월 항쟁 당시 독재자를 시민들의 손으로 처벌했으면, 이후의 정치상황은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개혁의 진정한 목적은 구시대의 적폐청산과 함께 새 시대를 개창하는 데 있을 것이다.

김삼웅(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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