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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운 영혼, 풍류인물들
  • 김삼웅 논설고문 ysk@dailysportshankook.com
  • 승인 2022.01.19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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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제와 규제, 인습과 관습, 법률과 도덕률, 타성과 습성…. 이런 것들에서 벗어나 살 수는 없을까. 루소는 자유롭게 태어난 인간이 도처에서 압제와 사슬에 묶여있다고 주장했다. 루소가 말한 압제는 정치적인 내용이 중심을 이룬다. 하지만 인간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은 정치적인 압제가 전부는 아니었다. 오히려 인습이나 전통에 의해 더욱 심한 규제를 당하는 경우도 많은 것이다. 
선천적으로 자유롭게 태어난 인간이 후천적으로 규제에 묶인다는 것은 인간의 자기모순이다. 반인간의 올가미에 묶인 것이다. 그러나 압제와 인습에도 불구하고 자유롭게 사는 영혼들이 있다. 천의무봉, 자유분방하게 살다간 풍류객들이 있다.

“하늘 이불, 땅 자리, 산 베게하고/ 달 촛불, 구름 병풍, 바다로 술 빚었네/ 거연히 크게 취해 일어나 춤추나니/ 긴 소매 곤륜산에 왜이리 걸리는가.”
장자(莊子)만큼 자유롭게 산 사람도 흔치 않다. 그는 누구보다 자유롭게 산 대표적인 풍류인물이다.
“한 벌 옷에 바리때 하나/ 조주 문을 드나들다/ 천산의 눈을 밟고 돌아다니다/ 돌아와 흰 구름에 누워있노라.”
사유와 행동이 하나가 되어 천하를 주유하며 산 장자의 삶이 어찌 제왕의 권력이나 영화보다 못하다 할까. 장자와는 다소 다른 유형이지만 매월당 김시습도 대단히 자유롭게 산 풍류인이었다.
“시습은 명수(明水)를 떠놓고 예불하고/ 예불이 끝나면 곡하고/ 곡이 끝나면 노래하고/ 노래가 끝나면 시를 읊고/시가 끝나면 또 곡을 하고/ 그 시를 태워버렸다.”
시대의 불의에 온 몸을 던져 저항하면서, 그 저항을 자유와 풍류로 승화시켜 산 매월당 김시습의 세계는 장자에 못지 않다.
비학문적인 ‘범죄석사’의 칭호를 받은 프랑소와 비용은 소르본느 대학을 마치고 메트로(석사학위)를 받은 지식인. 헨리 드 토머스의 표현처럼 “모든 시인 중에서도 가장 이상한 시인” 비용은 하루를 3등분하여 오후는 창작, 밤은 방랑과 의적활동, 오전은 잠자는 데 보냈다. 그리하여 짧은 생애를 ‘시인과 범죄자’란 좀체 어울리지 않는 생활로 일관하면서 많은 명작을 남기고, 눈이 펑펑 쏟아지는 어느 날 파리에서 추방되어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32세의 젊디 젊은 날의 일이다.
도스토예프스키는 톨스토이가 자신의 문학서적까지 포함해서 모두 불살라 버려도 무방하지만 그의 작품만은 인류를 위해 남겨두어야 한다고 평가할 만큼 위대한 작가란 것은 다 아는 일이다. 그런데 그의 위대한 작품 못지않게 생애 또한 자유분방한, 풍류인의 전형을 이룬다.
나는 여러 해 전 HㆍDㆍ소로우가 손수 오두막집을 짓고 살았던 월든 호수를 찾은 적이 있다. 직접 곡식을 심고 물고기를 잡아먹으면서 여행과 자연을 즐긴 소로우의 분방한 영혼과 체취를 만날 수 있었던 기쁨은 감동적이었다.
또 몇 해 전에는 러시아의 작가 고리끼가 망명하여 여러 작품을 쓴 이탈리아 남부 카프리 섬을 찾았다. 혁명과 문학과 방랑의 작가 고리끼는 이 섬에서 혁명가 레닌의 방문을 받고, 둘은 며칠간 장기만 두다가 헤어졌다는 전설(?)이 남아있었다. 실패한 혁명, 미래의 계획따윈 이들의 술 안주꺼리도 되지 않았다. 구차스런 대화가 없어도 서로의 심금을 나눌 수 있었던 쾌남아들의 ‘대국장면’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생활인으로 살아가면서도 더께 더께 긴 세속의 때를 씻어내고, 케케묵은 관념의 타성에서 벗어난 자유인들의 삶은 무척 소중하다. 화이부동(和而不同), 물신주의와 획일주의가 난무하는 세속의 황무지에 오아시스와 같은 존재들이 있다. 황량한 사막 저쪽에 걸린 무지개와 같은 풍류 인물들이 있다.
아웃사이더, 어느 사회 어떤 집단 어느 패거리를 막론하고 그 사이에서 ‘원만히’ 지내기 어려운 사람을 말한다. (읽는 이는 ‘원만히’에 대해 유념해주기 바란다) 문자 그대로 국외자(局外者) 또는 열외자(列外者)다. 소수자이고 이단자, 기인이다. 유우객자(流寓客子)이다. 유우객자란, 여기저기 떠돌며 아무 데서나 묵곤하는 나그네란 뜻이지만 이들은 정신적ㆍ사상적ㆍ철학적ㆍ신앙적으로 자유주의자들이다.
이들은 체제보다 반체제, 정통보다 이단, 합리보다 파격, 안일보다 고뇌, 안주보다 방랑, 관습보다 탈속이 주특기다. 신념을 위해 생명을 초개처럼 여기고, 권력의 유혹에는 허유(許由)나 소부(巢父)처럼 귀를 씻으며, 결단코 재물이나 체면에 급급하지 않는다. 고루한 인습이나 관습에 얽매이지 않고, 예속의 끈을 잘라 버리며, 정해진 틀이나 규격에 끼워 넣으려고 하는 획일주의를 거부한다. 거부할 뿐만 아니라 틀을 바꾸고자 한다.
유별난 꿈과 정열의 소유자이고, 출중한 능력을 가진 자들이며, 무엇과도 바꾸기 어려운 낭만과 정서를 간직한 사람들이다. 세속의 금줄(禁制)을 벗어 던진 탈선자(脫線者)들이고, 고린내 나는 상투 속의 권위에 단발령을 내리는 자이고, 사대주의적 학문에 찌든 먹통들을 깨부수는 의병이고, 곡필과 궤변으로 이름을 날리는 논객을 무찌르는 촌철(寸鐵)의 게릴라 전사이다.
세상의 유혹과 채찍, 당근과 잿밥에는 무연한 채 오로지 자기의 길을 걷고자 한다. 고독자이고 야인이고 집시다. 군중 속의 고독자이고 민중 속의 단독자다. 역사의 변방에 선 진리의 파수꾼이요, 왜곡된 역사보다 민중의 숨결이 담긴 야사(野史)를 만들고 쓰는 기록자이다.
그러나 이들은 꿈꾸는 족속이다. 속인들이 재물과 감투와 색욕의 ‘돼지꿈’을 꿀 때, 이들은 하늘과 별과 바람을 꿈꾸고 ‘지나간 미래’와 ‘미래의 과거’에 날개와 꼬리를 다는 ‘무지개’  꿈을 꾼다.
어느 측면에서는 영웅호걸, 성현군자, 절세가인보다 이들 아웃사이더가 더 빛나고 행복할지 모른다. 권력이 한 세대를 지배하기 어렵고 금력이 한 세기(3대)를 지키기 어려운 반면에 풍류객은 능히 천년의 세월을 뛰어넘는다. 그리고 무량의 세월을 낚는다.
알렉산더의 권력은 사라져도 디오게네스의 위력은 남아 있고, 당태종의 권세는 없어져도 두보와 이백의 성망은 존재한다. 프랑스와 비용의 고뇌와 랭보의 방황은 여전히 연구의 대상이 되고, 김시습과 김삿갓의 방랑은 군왕의 구중궁궐보다 훨씬 매력적이다.
중앙에서 변방으로, 주류에서 사이드로, 주체에서 워크 아웃으로, 그러나 역사와 시대와 미래를 넘나드는 초인(超人)으로 살아가는 아웃사이더들의 불꽃같은 삶과 좌절의 잿더미에 남는 불씨는 인간사에 여유와 온기를 안겨 준다. 토인비의 입을 빌리면 ‘창조적인 소수’이지만, 오히려 ‘선지자적 소수’로 불리는 아웃사이더들이다. 홀로 깨어도 혼돈을 직시하고, 홀로 일어나 캄캄한 밤 길을 걷는, 그리하여 시대의 여명을 불러온 선구자들이다. 그 천의무봉의 옷소매 자락을 붙잡아 보면 어떨까.
세속의 권력보다 높은 가치가 있고 출세의 감투보다 높은 권위가 있다. 또한 재벌보다 정신적 부자가 있고 세상의 명예보다 자랑스러운 자존이 있다.
돌에 채이더라도 당당한 걸음걸이가 있고 거부당하더라도 떳떳한 명분이 있다. 속인의 손가락질에도 꿋꿋한 대의가 있고 따돌림에도 굽히지 않는 절개가 있다. 아첨보다는 비판이 정신 건강에 편하고, 잔재주보다 우둔함이 돋보일 때가 있다. 기계적 합리주의자들, 출세지상주의자들, 대세영합주의자들, 기회주의자들, 만년 양지족(陽地族)의 눈에는 패배자ㆍ낙오자ㆍ한심한 놈ㆍ덜떨어진 놈ㆍ심지어는 미친놈으로밖에 비치지 않을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비록 현실의 생활에서는 패배자이고 낙오자이고, 모자란 사람이나 우둔한 사람으로 분류되고 따돌림을 당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들의 영혼은 자유롭고 심장은 따뜻했으며 걸음걸이는 가벼웠다. 누가 진정 승리자일까.
‘노자(老子)’에 유수부쟁선(流水不爭先)이란 말이 있다. 흐르는 물은 결코 선두를 다투지 않는다는 것, 치열한 경쟁체제와 약육강식 구조에서 조금 느리더라도 인간본연의 삶을 찾고, 정도를 당당하게 걸으며 사는 것, 이것이 현대인의 풍류가 아닐까.

김삼웅(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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