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유사상 풍류정신을 찾자

고유사상 풍류정신을 찾자

  • 기자명 김삼웅 논설고문
  • 입력 2022.01.13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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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민족의 고유사상인 풍류(風流)는 신라말에 불교와 유교가 들어와 토착화되면서 점차 퇴화하여 고려의 국교가 된 불교와 조선조의 역시 국교처럼 굳어진 주자학체제, 이어서 일제 식민지배와 해방 후 전쟁과 냉전을 거치는 과정에서 거의 소멸되다시피하였다.
남한의 자본주의체제나 북한의 공산주의체제는 풍류사상과 풍류인물이 ‘등장’하기에는 대단히 척박한 풍토가 되었다. 특히 19세기말 이래 서양문물이 들어오면서 정신보다는 물질, 인격보다는 능력이 우선시되고, 예스러운 것이나 심미적 취향보다 실용성과 획일성이 강조되면서 우리 전통적인 풍류사상과 풍류인물은 시대에 뒤떨어진 낙오자나 열외자로 취급되었다. 
단재 신채호 선생이 개탄했듯이 우리가 잃어버린 가장 소중한 가치가 풍류정신이다. 현대인들에게 풍류라면 마치 멋 부리고 술 잘 마시고 돈 잘 쓰고 바람기 있는 사람으로 인식될 만큼 그 본질과 정신이 함께 훼손 멸절되었다. 단재의 주장처럼 풍류는 낭가사상(郎家思想)의 원류이기도 하다.
바람 ‘풍(風)’자와 물흐를 ‘유(流)’자가 합쳐져서 명명된 풍류라는 말은 단순한 바람과 물 흐름과 같은 자연현상의 수준이 아니라, 일체의 삿(邪) 됨과 속(俗) 됨이 없는 품격 있는 생각과 행동의 인격체를 말한다. 기인ㆍ이단자ㆍ한량ㆍ건달ㆍ열외자ㆍ방랑객 등의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다. 
우리의 전통적인 풍류인물들에는 멋이 풍겼다. 궁하면서도 흐트러지지 않고, 가득 차 있지만 마치 비어 있는 것 같고, 부어도 차지 않고, 떼어내도 줄어들지 않는다. 대직약굴(大直若屈), 최고의 곧음은 마치 굽은 것 같고, 상선약수(上善若水), 최고의 선은 물과 같은 처신이었다.
기교를 모르고 어리숙하지만 진정성이 있고, 신분을 뛰어 세상과 만나고, 광견(狂狷)처럼 거침없이 사고하고 행동하는 사람이다. 이 땅의 풍류인물 대부분이 문ㆍ사ㆍ철에 능했지만 이보다는 시ㆍ서ㆍ화에 더 조예가 깊고 거문고ㆍ민요가락을 즐겼다.
그들은 정한이 깊고, 고뇌는 넓고, 사유의 세계는 광대하여 끝이 없다. 때로 방자하고 무례한 면이 있으나 의협심이 강하고 약자의 편에 선다. 가진 것이라고는 꿈뿐이지만 역이불역(易而不易), 변하면서도 변하지 않는 삶을 실천한다. 오상고절의 지절을 지키고 산중에서도 가슴속에는 항상 대평원의 로망을 간직한다. 바람과 같은 사람들이다.
“바람(風)은 동서남북 상하좌우 광대무변한 공간을 차지하고 있으면서 때로는 광풍노도를 몰아치다가도 때로는 추풍낙엽으로 변신한다. 흐름(流)이란 유수같은 세월이니 영원무궁한 역사의 유전인 것이다. 현묘한지고 풍류도의 무한하고도(風) 영원함이여(流).” (이을호 ‘한국풍류의 멋’)
풍류인 또는 풍류객은 세속에 살면서도 때 묻지 않고, 그렇다고 유토피아 세계에 사는 신선도 아니다. 가장 인간적이면서 권력ㆍ물욕ㆍ명예욕ㆍ색욕 따위에 관심을 두지 않고 무위자연(無爲自然)의 삶을 한 점 구김 없이, 일체의 제도와 규범과 속박을 뛰어넘은 사람을 일컫는다. 그렇다고 니체가 말하는 초인이거나 동양적인 도사는 아니다.
그들은 도덕적이지만 도덕의 굴레를 벗어나도 부도덕하지 않고, 원칙적이지만 다원적인 포용력을 보이고, 인문학에 능하지만 세사(世事)에는 서툴고, 궁핍하지만 궁상스럽지 않고, 고독해도 외롭지 않은 비범한 범인이다. 그런가 하면 시문을 즐기지만 음풍농월에 빠지지 않고, 탈속이지만 국사(國事)에도 발언을 멈추지 않고, 특히 소외되고 학대받은 민초들의 편에 서서 사유하고 글을 쓰고 행동한다.
현실을 뛰어넘되 공허한 이상주의자가 아니다. 유교의 선비와 비슷하지만 가는 길이 다르고, 도교의 선승과 이웃하지만 처신하는 결이 다르고, 불교의 방랑승과 유사하면서도 결이 다른다. 슬픔을 간직해도 비통에 빠지지 않고(哀而不悲), 낙을 즐기되 음탐에 빠지지 않는다(樂而不淫), 술을 좋아해도 주사(酒邪)하지 않은 주객이다. 
풍류는 우리의 옛 사상인 ‘부루’의 한자 표기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언제부터 부루를 풍류라 부르게 되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부루는 붉ㆍ밝ㆍ환ㆍ하늘을 가르키는 말로, 광명이세(光明理世)하는 하늘 숭배 신앙에서 기원한다. 우리의 풍류사상의 기원을 여기서 찾을 수 있다. 
풍류라는 말은 김부식의 ‘삼국사기’ 제4권 진흥왕 37년 기사에 처음으로 등장한다. 최치원의 ‘난랑비문’의 서문에서 기술한 내용이다.
“우리 나라에 현묘한 도가 있으니, 풍류라고 하였다. 이런 가르침을 창설한 내력은 ‘선사(仙史)’에 자세히 밝혀져 있다. 실상인 즉, 세 가지 가르침을 포함하여 인간을 교화하는 것이다. 첫째, 집에 들어오면 부모에게 효도하고 나가면 나라에 충성하는 것은 공자의 뜻이요, 둘째, 자연스럽게 일에 처하여 말하지 않고도 실천하는 것은 노자의 종지요, 셋째, 모든 악행을 행하지 않고 모든 선생을 실천한는 것은 석가의 교화이다.”
‘현묘(玄妙)한 도’ 즉 유ㆍ불ㆍ선 3교를 접화군생(接化群生)한 것이 풍류도라는 해석이다. 풀어 말하면 풍류도 속에 삼교가 포함되어 있으며, 삼교가 풍류도에 접함으로 해서 더불어 산다고 하는 것이다. 관건은 ‘현묘’라는 용어에 있다. 
천자문(千字文)이 시작되는 하늘 천(天)ㆍ가물 현(玄)ㆍ누루 황(黃)으로 읽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현’은 “가물거리다”의 의미를 갖는다. 풍류를 ‘현묘지도’로 풀이하는 옛사람들의 정신은 유별나다. 한 연구가의 조언이다.
“봄날에 피어나는 아지랑이를 생각해 보라. 가물거리지만, 가까이 가면 저 멀리 물러나 있고, 손에 잡히지 않는다. 하지만 분명히 존재한다. 또 늘 움직이며 출렁이는 바다를 보라. 검푸르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가 바닷물을 손으로 퍼 보라. 투명한 무색이다. 바로 이러한 것이 현(玄)의 상태이다.
파란색인 줄 알았는데, 무색, 그러나 바닷물 자체는 그대로일 뿐이다. 또한 우리는 어릴 때 무지개를 잡으러 산 넘어 저 먼 곳까지 간 경험이 있다. 결국 무지개는 잡지 못했다. 그러나 무지개는 여전히 저기 산을 걸쳐 걸려 있었다. 그것이 현이다. 즉 알 수 없는 영역이지만 구체성을 띠고 나타나는 신비와 오묘.”(신창호 ‘풍류와 화랑도’)
풍류도 또는 풍류정신이 이와 같고 ‘투명한 무색’과 같은 것, 그래서 풍류교라 말하지 않고 풍류도라 불린다. 풍류도ㆍ풍류정신을 실천하는 사람이 범상하지 않은 이유를 설명하는 대목이다. 
유교의 본질은 이욕을 버리고 인간본성을 살리는 것, 불교의 본질은 아집에서 벗어나 불심을 찾는 것, 도교의 본질은 인간의 허위를 버리고 무위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풍류(객)는 이와 같은 삼교를 접화군생하여 인간의 가장 원초적이고 본질적인 사고, 이에 따른 삶을 살고자 하는 사람이다.
우리 고전 문헌상에 나오는 풍류인물들은 시(詩)ㆍ서(書)ㆍ화(畵)ㆍ금(琴)ㆍ주(酒)에 두루 일가를 이루고, 자연의 경관을 유람하여, 때로는 기녀를 동반하여 뱃놀이를 즐기는 경우가 많았다. 당시는 비교적 유산계층이 누릴 수 있는 호사였다. 하지만 다수의 풍류인들은 이런 호사와는 거리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풍류는 시문의 영역에만 한정되지 않았다. 음악ㆍ그림 등 장르를 가리지 않았다. 명창들이 시조를 거문고로 연주하는가 하면, 신윤복과 같은 화가는 약사와 기생을 대동하고 들놀이를 나온 선비들의 모습을 그렸다. 풍류음악ㆍ풍류화이다.

김삼웅(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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