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현대사와 정의

한국현대사와 정의

  • 기자명 김삼웅 논설고문
  • 입력 2021.12.23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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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자리는 그 위치에 걸맞는 책임과 도덕성 그리고 정의의 실현이 요구된다. 절대군주 시대에도 가뭄이 들면 임금이 하늘에 부덕함을 빌면서 기우제를 지냈다. 전통적으로 우리나라의 위정자와 특권층은 권력만 행사했지 책임감과 도덕성ㆍ정의구현을 외면했다. 결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조선시대 선조는 왜군이 쳐들어오자 한양을 버리고 의주로 도망쳤다. 이를 지켜본 백성들이 몰려가 임금의 거처 경복궁을 불질렀다. 한양으로 돌아와서는 왜적과 싸운 장수들은 제쳐두고 자신의 측근들에게 관직과 훈작을 나눠주었다. 뒤를 이은 인조는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가족은 강화도로 피난보내고 자신도 뒤따르려다 청군에 길이 막히자 남한산성으로 도망쳤다가 결국 항복하는 수모를 당했다. 백성들은 안중에 없고 자신들의 안위에만 급급했다.
1910년 경술국치로 수 많은 의열사들이 순국하고 의병에 나설 때에 고종과 순종은 멀쩡히 살아남고, 황족ㆍ고관대신 72명이 일본정부가 준 작위와 거액의 은사금을 받기에 혈안이 되었다. 이를 지켜본 관리들과 상류층 인사들이 너도나도 친일파가 되고, 해방 후에도 그들과 그들의 자손들이 세습하면서 기득세력이 되었다.  
6ㆍ25전쟁이 터지자 이승만은 “서울시민은 안심하라”는 녹구리음방송을 틀어놓고 서울역에 대기한 기차로 남쪽으로 도망갔다. 서울을 떠난 30분 후 한강철교를 폭파시켜 600여 명을 수장시키고 서울시민들의 피난길을 막았다. 그리고 돌아와서는 인민군에 부역했다는 누명을 씌워 수만 명을 감옥에 집어넣었다. 그 판에도 백범 김구 암살범 안두희를 챙겨서 떠났다.  
망국시절, 애국자들이 풍찬노숙을 하며 독립운동을 할 때 일본군에 들어가 독립군에 총질을 한 일본군 출신들, 4ㆍ19혁명으로 쟁취한 민주주의를 뒤엎은 5ㆍ16쿠데타세력이 긴 세월 이 나라의 주역이 되었다. 독립운동가, 민주화운동가들은 걸핏하면 종북으로 몰리거나 대를 이은 궁핍의 세월을 보낸다. 언론계나 문화계도 양상이 다르지 않았다.
우리는 언필칭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압축적으로 성취한 나라”라고 자부한다. 국제사회도 인정한다. 그런데 실상은 어떤가. 산업화의 역군인 노동자들과 천하지대본이라던 농민들은 천덕꾸러기가 되고, 소수 재벌과 기득세력만이 단군 이래의 호사를 누린다. 국난이 닥치면 가장 먼저 내빼고, 외세에는 제일 먼저 추파를 던지면서 부와 권력을 세습한다. 
명목상이지만 1인당 국민소득이 4만 달러가 넘고, 해마다 수출은 늘어나는데, 절대다수 국민의 생계는 갈수록 어려워지고, 빈부 양극화는 더욱 심화되며, 자살률 세계 1위의 아름답지 못한 금메달은 좀처럼 배턴을 넘길 줄을 모른다. ‘99 대 1’의 빈부격차 현상은 한국사회의 위기 증세를 집약한다. 중산층이 무너지고 극소수의 초호화세력과 절대다수 서민층의 양극 구조화는 여전하다.  
우리나라는 민주공화국이다. 국민이 주인이고 대통령을 포함한 공직자들은 머슴이다. 우리의 굴곡진 근현대사는 민주공화제는 채택하고도 정의롭지 못한 정치인ㆍ법률가ㆍ지식인ㆍ언론인들의 손으로 역사가 역행되고 국민정신이 크게 망가졌다. 일제강점기→내선일체ㆍ동조동근론자, 이승만 시기→만송족, 박정희시대→유신족, 전두환시대→땡전족, 이명박시대→뉴라이트족, 박근혜시대→종박족, 문재인시대→내로남불족으로 이어지고 있다.
조선시대 실학자 성호 이익은 “역사를 쓸 때는 착한 일을 드러내더라도 악한 것을 감추어선 안 되며, 권선만 하고 징악을 하지 않는다면, 마치 새의 날개 하나를 떨어뜨리고 수레바퀴 하나를 빠뜨리는 것과 같다”고 일렀다. 
중국의 사가 유지기(劉知幾)는 ‘사통(史通)’에서 당대 사가들의 오실(五失)을 지적했다. 빈말과 허설을 함부로 쓰는 사람(虛說), 얼굴이 두꺼워서 수치스러움을 모르는 사람(厚顔), 가짜와 거짓의 글을 함부로 쓰는 사람(假手), 남을 속이고자 거짓 눈물을 흘리는 사람(自淚), 수많은 개념보다 독단ㆍ독선을 주장하는 사람(一槪). 우리 주변에 이런 정치인,  지식인들이 너무 많아서 불안과 비극의 싹이 자라고 있다. 
잘못은 오늘날 역사를 왜곡하는 ‘현역’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멀리는 일제잔재, 가까이는 유신ㆍ군사독재에 아부하여 출세한 언론ㆍ지식인들을 청산하지 못한 데에 있다.
병자호란 때 왕명으로 청태종의 공덕비문을 썼던 오준(吳竣)은 뒷날 스스로 부끄러워 붓을 들었던 손을 돌멩이로 쳐서 불구가 되고, 프랑스 나치 협력자 드리유라 로셀은 ‘역사에 대한’ 책임을 느껴 자살로 죄를 면했다. 하지만 이땅에서는 친일언론ㆍ학자, 독재협력자 중에 목숨은커녕 손가락 하나 자른 사람이 없고, 그들의 후예들이 대대손손 전성기를 누린다.
나폴레옹의 조카 루이가 큰아버지의 후광을 업고 1848년 정계에 입문하여 사회적 혼란기를 틈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그리고 1859년 쿠데타로 의회를 해산하고 황제에 취임했다. 이를 지켜보던 카를 마르크스가 런던에서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루메르 18일’을 쓰면서 “첫 번째는 비극으로, 두 번째는 소극으로”란 명구를 남겼다. 이어서 예언자적인 말, “마침내 황제의 망토가 루이 나폴레옹의 어깨에 걸쳐지는 순간, 나폴레옹의 동상이 방돔의 원기둥 꼭대기에서 굴러떨어지게 될 것이다.”
많이 늦었지만 이제라도 준비하자. 10년 장병에 7년 묵은 쑥이 특효라면 이제라도 쑥을 묵히는 일이 중요하다. 이승만 이래 민주주의를 짓밟은 반민주 행위자들의 인명사전을 만들자. 민주주의를 유린하고 인권을 탄압하는 데 앞장선 권력자, 정상배, 언론의 탈을 쓰고 독재를 비호하는 사이비 언론인, 곡필 지식인, 강자의 충견이 된 ‘검·판사’, 경찰, 교육자, 종교인 등의 죄상을 찾아서 역사의 필주(筆誅)를 가하자.
해방 후 친일파를 척결하지 못하고, 4월혁명 후 이승만 독재를 청산하지 못하고, 10·26 후 박정희 쿠데타와 유신을 청소하지 못하고, 6월항쟁 후 전두환 군부를 제대로 정리하지 못한 결과가 친일세력과 반민주세력의 온존·창궐·득세를 가져왔다. 그래서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4·19 시민혁명에 성공하고도 민주혁명의 가치와 체제를 지키지 못하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우리는 국치와 유례없는 독재를 겪고도 심판을 제대로 하지 못함으로써 악의 뿌리가 번성하고, 이들이 기득층이 되는 세상을 만들었다. 그들의 권력과 재력이 유지됨으로써 정치적·법적 심판의 기회를 갖지 못한 까닭이다.
그래서 깨어 있는 국민이 선거를 통해 ‘역사심판’이라도 해야 한다. 이것은 과거청산에만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건강한 미래를 위한 작업이다. 민주주의 상도를 짓밟고도 심판받지 않고 권력과 부만 가지면 이것이 재생산되는 악순환을 언제까지 방치할 것인가.
독립운동을 하다가 순국하신 선열들, 반독재 투쟁을 하다가 희생당한 민주열사들, 이로 인해 가난과 질병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후손과 가족을 지켜본다. 해방과 민주화에 무임승차한 사람들이 주역이 되고 세습을 하는 것을 지켜본다. 대통령 선거를 통해 정(正)과 사(邪), 진(眞)과 위(僞), 선과 악을 가리고 정의와 진실이 살아있음을 보여주었으면 한다.  
일본은 북한을 빌미로 삼아 역사왜곡과 군사대국화를 추진하고, 미국은 중국의 봉쇄를 위해 한국을 대중국 전진기지화를 서두르고, 북한의 천연자원은 중국으로 넘어가고, 남북 지도자들은 미국과 중국에 매달리는, 탈냉전과 냉전질서가 공존하는 한반도의 이중성을 타개하는 지도력은 없는 것인가.   
반란단체를 만들지 못하게 정당이 있고 쿠데타를 막기 위해 선거가 있다. 정당이 제 구실을 못하고, 선거가 제 기능을 못하면 인재와 관재는 되풀이된다. 국민소득 4만 달러는 소수 1%가 독식하고 노동주권은 세계 꼴찌에서 허덕인다. 정의롭지 못한 자들이 국정을 전횡하게 되면 나라의 운명은 다시 암담해진다. 이런 의미에서 제20대 대통령 선거는 선진국다운 나라를 만들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아닐까 싶다.

김삼웅(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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