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스 비어드의 네 마디

찰스 비어드의 네 마디

  • 기자명 김삼웅 논설고문
  • 입력 2021.11.04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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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의 볼테르’라 불리는 찰스 비어드(1874~1948)는 역사학자로서 사학협회 회장 등을 지낸 미국의 대표급 지성이었다. ‘아메리카 문명발흥’ 등의 책을 썼다.
어느날 강의시간에 한 학생으로부터 인생경험에서 배운 모든 것을 5분 안에 요약해 달라는 좀 까탈스러운 질문을 받았다. 비어드는 한참 생각한 후에 5분도 필요 없고 단 네 줄이면 된다면서 다음과 같이 피력했다. 
첫째, 신은 파멸시키려는 자에게 먼저 권력에 눈이 어둡게 만든다. 둘째, 역사의 물레방아는 천천히 돈다. 그러나 그 방아는 잘게 갈아나간다. 셋째, 벌들은 꽃에 먼저 거름을 준 다음에 약탈한다. 넷째, 하늘이 어두워지면 별을 볼 수 있게 된다.
한 역사학자가 신의 섭리, 역사의 원리, 자연의 순리, 인간의 도리를 간단명료하게 밝힌 생의 아포리즘이다. 이렇게 짧은 글에서 긴 여운을 남긴 경우도 찾기 어려울 것이다. 
한국사회처럼 권력추구욕이 강한 나라도 별로 없지 싶다. 지금은 인식이 많이 바뀌었지만, 권력만 잡으면 못 할 짓이 없다고 믿었다. 공권력을 사유화로 착각한다. 전두환ㆍ노태우ㆍ이명박ㆍ박근혜의 천문학적 치부는 권력에 눈이 멀어 파멸한 두목급의 행태이다. 두목급이 아니더라도 많은 인재들이 권세에 눈이 멀어 파멸되는 과정을 본다. 
이런 역사의 교훈에도 불구하고 공직을 통해 부당한 뒷거래를 일삼는 무리가 줄을 섰다. 언론인ㆍ기업인ㆍ정치인ㆍ법조인들이 얽히고설킨 화천대유사건은 한 사례일 뿐이다. 최근에는 거대 비리사건에는 어김없이 변호사ㆍ검사ㆍ판사 등 법조인들이 중심에 선다.
화천대유의 경우 권순일 전 대법관, 박영수 전 박근혜ㆍ최순실 국정농단사건 특별검사, 이창재 전 법무차관, 박근혜 국정농단사건 변호인 이경재 변호사, 강찬우 전 수원지검장, 김기동 전 부산고검장 등이 자문ㆍ고문 변호사로 활동하면서 거액의 고문료를 챙긴 것으로 보도되었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나 최재형 전 감사원장은 정치 중립성이 요구되는 국가사정기관의 수장으로서 임기 중에 사임하고 정치판에 뛰어들었다. 권력의 욕망이 법 정신이나 관행 따위를 우습게 만든 것이다.
‘역사의 물레방아’는 출세주의자들에게 별로 두려움의 대상이 못 되는 것 같다. 당대에 출세하여 호기부리며 잘 먹고 잘살면 되는 것이지, 중뿔나게 역사가 무엇이냐고 비아냥거릴지 모른다. 역사 대신 하늘이래도 무방하다. 인간이 동물과 다른 것은 도덕성과 윤리의식 그리고 기록이 아닐까 싶다. 이런 규제가 없다면 그야말로 ‘밀림의 법칙’에 따라 사는 동물세계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다윈의 적자생존설을 맨 처음 비판한 사람은 상호부조론을 제시한 러시아의 사상가 크로포트킨이다. 그는 자연계는 양육강식 뿐 아니라 서로 돕고 부조하면서 살아간다는 주장을 편다. 실제로 벌이나 나비들은 일방적인 꽃가루를 약탈한 것이 아니라 다른 꽃에 옮겨 씨앗을 맺게 하는 역할을 한다. 자연계는 악어와 악어새 등 서로 돕고 의지해 사는 경우가 숱하게 많다. 
양지쪽만 찾는 사람들은 음지의 다른 세계를 알지 못한다. 지구의 회전은 쉴 새 없이 돌아서   낮에는 밝음을, 밤에는 어둠을 준다. 영국이 한때 “태양이 지지않은 나라”라고 자만에 빠지기도 했지만, 그 같은 제국주의는 오래 가지 못했다. 
동양에서는 음양을 우주만물의 이원(二元) 대립적 관계를 상징하는 철학의 기조로 삼았다. 즉 태양ㆍ남성ㆍ남(南)은 양이고, 달ㆍ여성ㆍ북(北)은 음이라는 것이다.
고대 중국에서는 음양오행설이 그들의 세계관이었다. 우주나 인간 사회의 모든 현상을 음양의 두 원리의 소장(消長)으로부터 설명했다. 만물의 생성소멸을 목(木)ㆍ화(火)ㆍ토(土)ㆍ금(金)ㆍ수(水)의 변전으로부터 이해하였다. 
이 같은 철학이나 세계관이 아니더라도 밤과 낮은 순환하는 자연계의 법칙이다. 인간의 운명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 영원한 양지는 존재하지 않는다. 더구나 부당한 권력이나 비리ㆍ부정을 통한 양지쪽은 반드시 심판을 받는다. 그리고 그 죄업을 역사의 물레방아가 잘게  갈아버린다. 
자본주의는 지금 중대한 시련기에 처해있다. ‘현실사회주의’ 국가들이 망하고, 견제와 상대성을 상실하면서 힘센 자들이 연대하거나 합법과 불법을 넘나들면서 거대한 이권을 차지한다. 그리고 세습이 이루어진다. 자본주의의 종주국이라는 미국이 빈부격차가 가장 심하고, 그 모범생이라는 우리나라는 둘째 또는 셋째 가는 양극화 현상을 보이고 있다.
많이 가진 자들은 그리스신화 속의 인물 에릭스톤처럼, 먹어도 먹어도 허기를 느끼는 파충류의 식성을 내보인다. 그들은 노동자들의 최저임금 1만 원을 인상하는 데는 온갖 반대와 비난을 일삼으면서 6년 근무한 30대 초반의 청년에게 ‘퇴직금’으로 50억 원을 준다. 정치인ㆍ언론인ㆍ검사ㆍ판사ㆍ변호사들의 카르텔은 50억 원은 푼돈 수준이다.
벌도 꽃에 먼저 거름을 준다는데 곤충보다 못한 인충(人蟲)들이다. 약한 나라를 약탈하는 제국주의국가, 힘없는 노동자들을 착취하는 악덕 기업주가 다르지 않다.
한민족은 고대로부터 별을 무척 좋아했다. 무슨 벼슬을 뜻하는 별이 아니라 하늘이 어두워 나타나는 별 말이다. 

저렇게 많은 별 중에서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 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

밤이 깊을수록

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

나는 어둠 속에 사라진다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김광섭, ‘저녁에’

 

한국인에게 하늘의 별을 연상하면 가장 많이 떠오르는 시는 윤동주의 ‘별 헤는 밤’이 아닐까.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헬 듯합니다.

  

가슴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詩)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이 많은 별빛이 내린 언덕 우에
내 이름자를 써 보고, 흙으로 덮어 버리었습니다. 

……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우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우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거외다.

하늘이 어두워져야 별을 볼 수 있는 자연의 섭리가 얼마나 오묘한가. 이런 자연계의 별은 외면한 채 자질도 없는 자들이 헛되이 권력ㆍ부ㆍ명예의 별을 좇다가 낙마하는 경우를 너무 자주 보게 된다. 
자신만 낙마하면 그만이지만 문제는 사회공동체의 질서와 도덕성을 무너뜨리고 국가의 공공재를 낭비한다는 데 있다. 찰스 비어드의 짧은 네 마디가 생각나는 계절이다.
김삼웅(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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