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팬이 있을 때 비로소 스포츠는 완성된다

[기자수첩] 팬이 있을 때 비로소 스포츠는 완성된다

  • 기자명 우봉철 기자
  • 입력 2021.10.28 09:00
  • 수정 2021.10.28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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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를 구성하는 필수 요소라 하면 열에 아홉은 선수를 꼽는다. 그러나 선수만큼 중요한 존재가 또 있다. 바로 선수들과 함께 희로애락을 느끼고 함성을 지르며 박수를 보내는 팬들이다. 지난 몇 달은 팬들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는 기간이었다.

얼마 전 울산 현대와 포항 스틸러스 간 2021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ACL) 4강 경기 취재를 위해 전주월드컵경기장을 방문했다. 경기가 열린 전주는 비수도권 지역으로 코로나19에 따른 사회적 거리두기 3단계를 적용, 관중 입장이 가능했다.

결승 진출을 다투는 동시에 전통의 라이벌 매치였기에 많은 팬들이 몰렸다. 양 팀의 응원가가 울려 퍼졌고, 팬들의 얼굴에는 곧 시작될 경기를 향한 기대감이 가득했다. 슈팅 한 번, 선방 한 번에 일희일비하며 그라운드에 몰입하는 그들을 보고 있자니 그동안 무관중으로 진행된 수도권 경기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감정이 느껴졌다. 환호와 탄성은 물론, 야유마저도 오랜만에 만난 친구처럼 반가웠다. 선수들도 경기 후 팬들에게 고개 숙여 인사하며 열성적인 응원에 답했다.

승부차기까지 가는 혈투가 끝난 뒤 서울로 올라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택시에 탑승했다. 기사님께 인사를 건네니 “늦은 시간까지 응원하시느라 고생 많으셨어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원정 응원 온 팬으로 착각한 터였다. 기자라고 밝힌 뒤 서울에서 왔다고 말하자 기사님은 “방금도 익산에서 온 팬을 역까지 태웠어요. 여학생인데 먼 길을 혼자 왔더라고요. 팬이라는 게 참 대단합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선수들이 고마운 줄 알아야 해요. 어딜 가던 따라와서 응원해 주는 게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라고 덧붙였다.

그 말대로 선수들이 가는 곳에는 항상 팬들이 있다. 자신들에게 돌아오는 특별한 이득이 없음에도 연고지를 대표하는 팀과 그 팀의 선수라는 이유로 돈을 내고, 먼 길을 찾아 응원하고, 박수를 보낸다. 선수들이 경기에 졌다고 해서 팬 서비스까지 져서는 안 될 이유다.

2019년 11월부터 전 세계를 괴롭힌 코로나19로 축구와 농구, 야구, 배구 등 4대 프로스포츠는 꽤 오랜 기간 팬들과 얼굴을 마주하지 못했었다. 절묘한 발리슛에도, 담장을 넘기는 큰 홈런에도 환호성은 없었다. 고요함 가득한 경기장에서 텅 빈 관중석을 보던 선수들은 그동안 어떤 감정을 느꼈을까.

정부는 지난 18일 코로나19 수도권 거리두기 4단계 2주 유지 및 기준 완화를 발표했다. 이로 인해 수도권 스포츠 경기장 역시 관중 입장이 가능해졌다. 실외 경기장은 총 수용인원의 30%, 실내 경기장은 20%까지 관중을 허용한다. 드디어 전국에 있는 모든 구단들이 적지만 홈팬들과 함께 호흡할 수 있게 된 셈이다.

항상 곁에 있던 존재가 사라졌을 때, 비로소 소중함을 느끼는 순간이 많다. 이젠 선수들에게 소중함을 느끼게 해준 존재들이 곁으로 돌아왔다. 보는 사람이 없다면 세계 최고 선수가 펼치는 화려한 플레이도 그저 공놀이일 뿐이다.

끝으로 과거 울산 모비스, 인천 전자랜드(現 대구 한국가스공사) 감독을 역임했던 최희암 전 감독이 남긴 격언을 적어본다. “너희들이 볼펜 한 자루라도 만들어 봤나. 생산성 없는 공놀이를 하는 데에도 대접받는 것은 팬들이 있기 때문이다. 팬들한테 잘해야 한다.”

우봉철 기자 wbcmail@dailysports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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