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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국 소임을 다하려면
  • 김삼웅 논설고문 ysk@dailysportshankook.com
  • 승인 2021.10.14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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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라시아 대륙의 동쪽 끝이고 태평양의 서쪽 끝자락에 자리잡은 우리나라는 해양세력 대 대륙세력, 유교문화권 대 기독교문화권, 자본주의세력 대 공산주의세력의 대척지대가 되었다. 그래서 늘 주변 열강으로부터 침략과 분단의 위협을 받아야 했다.
중국은 한반도가 자국의 ‘뒤통수를 내리치는 망치로’, 일본은 ‘자신들의 심장을 겨누는 비수로’, 미국은 ‘동북아의 전진 기지로’, 러시아는 ‘자국의 팽창에 분리될 수 없는 행동반경으로’ 각각 인식하면서 결코 영향력은 내려놓으려 하지 않았다. 이 같은 상황은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주변 열강은 힘이 강하거나 국제정세가 유리하다 싶으면 단독으로 집어삼키려 들고,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쪼개어 반쪽이라도 야욕을 채우고자 했다. 이른바 ‘지리적 숙명론’이 아니더라도 동북아의 한반도와 유럽의 폴란드는 지리적 유사성을 떨치기 어렵다. 
16세기 일본이 임진왜란의 전후처리 협상과정에서 명나라에 조선을 양분하여 남반부를 일본에 넘기라는 제의를 한 이래 주변 열강은 틈만 나면 한반도를 독점적으로 지배하거나 분할지배 그것도 여의치 않으면 중립화를 제기하였다.
1882년 일본과 청국이 조선에서 패권을 다툴 때 일본이 미ㆍ영ㆍ불ㆍ독 4개국 협정을 통한 한반도 중립화론을 제기한 것이나, 일본이 청국과 전쟁(청일전쟁)을 하면서 조선중립화를 제의한 것은 모두 전통적인 한ㆍ청 관계를 끊고 일본의 지배권을 강화하려는 술책이었다. 이 같은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의 대치는 계속되됐고, 지금 극한점에 이르고 있다. 
세계사적으로도 우리 민족만큼 빈번한 외세침략을 겪고, 이를 극복하면서 민족국가를 꿋꿋이 지켜온 나라도 흔치 않을 것이다. 폴란드, 베트남, 아프가니스탄 등을 꼽을 뿐이다. 1000년을 넘게 이민족의 영향 하에서도 민족을 온전히 보전한 집단은 한국뿐이다. 그것은 한민족의 문화적 우수성과 그 문화를 바탕으로 하는 강한 동질성에 기인한다.  
세계의 민족분포를 종족ㆍ지리ㆍ경제 집단개념으로 분류하면 590개 정도이고, 이를 다시 언어학ㆍ민속학적으로 크게 나누면 80개 정도인데, 이중 반만년의 역사를 가진 민족(종족)은 16개 정도에 불과하다. 이 16개 민족이 역사적으로나 현재적으로 세계를 이끌어온 중심 국가의 역할을 하여 왔다. 오랜 세계사적인 흥망성쇠의 과정에서 이들 민족(국가)들의 문명과 역량이 세계사의 중심 부문을 구성하고 역할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는 더이상 민족내부끼리 낡은 이념싸움과 이해다툼과 지역갈등을 벌일 여유가 없다. 국제화 시대에 민족공동체의 생존과 발전에 눈을 돌려야 한다. 코로나19사태와 제4차 산업혁명기를 맞아 향후 30년이면 바닥날 석유자원과 대체에너지개발, 식량무기화에 따른 양곡수급, 물 부족, 자원고갈, 지구온난화, 오존층파괴, 인구노령화, 불균형한 남녀성비, 국제공용어와 민족언어 보호, 군축문제, 이질화된 문화, 사이버세계의 팽창, 생명공학의 궤도이탈, 인간게놈 프로젝트, 가족해체, 이익집단화 등 민족적 차원에서 해결해야할 과제가 산적해 있다.
지난 세기가 그나마 ‘예측가능’ 의 시대였다면 향후 세기는 밀레니엄 버그에서 보듯이 그야말로 예기치 못한 한계와 재앙에 부닥치는 경우가 적지 않을 것이다. 상당 부문 이미 현실로 닥치고 있다. 남북이 대립하고 적대화 하고서는 민족공동체의 발전은 기대하기 어렵다.
한민족은 현재 중국에 150만 명, 일본에 110만 명, 미국에 250만 명, 러시아 연방에 100만 명을 포함해 150개국에 750만 명에 이르는 교민을 갖고 있다. 본국 인구와 비율로 따질 때 유태인 다음이고 절대다수에서는 중국인, 이탈리아인 다음가는 세계 3위에 해당한다. 특히 미ㆍ중ㆍ일ㆍ러 4대 강국에 집중적으로 많은 교민이 거주하고 있는 것도 특색이다.
과거 제국주의 시대에는 영토가 곧 국력이고 인구가 국제적인 파워의 상징이 되었지만, 지금은 인터넷을 통한 가상공간이 영토와 인구에 못지않은 국력이고 힘의 상징인 시대가 되었다. 따라서 세계 최첨단을 달리고 있는 우리의 인터넷, IT기술을 통해 4대 강국을 포함해 세계 곳곳에 산재한 한민족을 외교력과 정보통신으로 엮는다면 상품 수출은 물론 한민족의 문화를 범세계적으로, 국제적으로 확산시키는 인적 ‘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촛불혁명으로 나타난 대한민국의 이미지상승이 문화와 상품수출로 이어지고 교민들의 지위향상으로 연결되면 한민족의 문명권은 세계사의 변방에서 중심권으로 이동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마침내 선진국 대열에 들어섰지 않은가.
그런데 잠시 눈을 돌려 주변을 살펴보자. 한반도는 지구상에서 마지막 남은 유일한 냉전지대다. 유엔가입 200여개 국가 중 유일한 분단국이다. 분단 이후 열전ㆍ냉전ㆍ신냉전ㆍ탈냉전을 모두 겪은 유일한 민족이다. 
지금 중국은 시황제를 꿈꾸는 시진핑의 대국주의, 자국우월주의를 고집하는 조 바이든의 미국, 21세기 차르의 길을 걷고 있는 푸틴의 러시아, 한반도 화해 분위기에 어깃장을 놓으면서 극우노선을 고집하는 기시다 일본, 동서남북 어디에도 우리 운명이 평탄해 보이질 않는다.  
결국 남북화해와 협력을 통해 민족적인 구심력으로 강고한 외세의 원심력에 대응하면서 평화공존, 촛불정신을 세계화하는 길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대한민국은 지금 엄중한 역사의 전환기에 처해있다. 3ㆍ1혁명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넘기고 새로운 100년이 시작되는 현시점은 명실상부한 선진국으로서 남북협력과 민주공화정의 방향으로 발전하느냐, 식민지 잔재와 남북대결, 각종 적폐를 미봉한 채 다시 후진국으로 퇴행하느냐의 갈림길이다. 
국가도 하나의 유기체에 속한다. 창업→수성→경장→쇠퇴의 과정을 걷게 된다. 자주독립과  반봉건 민주공화제를 기치로 봉기한 3ㆍ1혁명과 이를 바탕으로 수립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창업이라면, 대한민국 정부수립과 6ㆍ25공산침략 분쇄 그리고 산업화와 민주화는 수성에 해당한다. 지금은 경장(更張)의 시기다. 다른 용어로 말하면 개혁이다. 조선왕조가 병자ㆍ정묘 양란을 겪고도 경장을 하지 못한 채 낡은 봉건체제를 유지하다가 결국 왜적에게 국치를 당하고 말았다. 
1884년의 갑신정변, 1894년의 동학혁명이나 갑오경장 중에서 하나만이라도 성공했다면 나라가 망하는 비극을 겪지 않았을 것이다. 1884년 갑신정변은 1868년 일본 메이지유신에 불과 16년 차이다. 메이지유신으로 일본이 근대적 국가개혁을 실천할 때 조선왕조는 기껏 왕권이나 강화시키는 칭제건원 따위로 미봉하고 말았다. 경장의 시기에 제대로 개혁을 하지 못하면 나라의 운명이 어떻게 된다는 것을 똑똑히 보여주는 사례이다. 
단재 신채호는 ‘혁명적 정화’를 주장하였다. 우리 역사가 창업ㆍ혁명ㆍ쿠데타ㆍ반정ㆍ반란 등을 모두 겪었으나, 한번도 ‘혁명적 정화’를 단행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해방 후만 해도, 친일매국노를 처리하는 반민특위 활동을 이승만이 분쇄시키고, 4ㆍ19혁명 후 자유당  12년 폭정을 심판할 때 박정희가 5ㆍ16 쿠데타로 뒤엎었다. 박정희 18년 독재의 처리는 전두환의 쿠데타로 덮어지고, 6월항쟁 후 전두환의 폭정은 3당야합으로 물 건너 갔다. ‘이명박근혜’의 헌정유린과 비리ㆍ적폐청산이 제대로 안 되고, 무엇보다 시급한 검찰개혁과 언론개혁은 거대한 저항에 부딪히고 있다.
 현대사는 여러 차례 적폐청산과 신생의 기회를 놓치고 수구사대세력에 다시 권력이 돌아갔다. 동학혁명은 좀 더 빨리 남북접이 한 덩어리가 되어 전주성에서 지체하지 말고 상경하여 무능한 왕조를 타도했어야 했다. 3ㆍ1혁명 당시 좀 더 세차게 밀어부쳤으면 어땠을까. 4ㆍ19혁명 때 시민ㆍ학생들이 경무대에서 이승만을 끌어내어 법정에 세웠어야 했고, 6월항쟁 당시 적어도 전두환과 노태우를 타도했으면, 이후의 현대사는 크게 바뀌었을 것이다. 
 세계문명사의 성장과 소멸과정을 연구한 아놀드 토인비는 명저 ‘역사의 연구’에서 “창조적인 엘리트 집단이 부패하면 그 문명권은 몰락한다”고 분석한 바 있다. 힘 있는 자들의 부패카르텔 등 나라의 근간이 흔들리고 우리 공동체를 위협하고 있다. 선진국으로서의 국격과 국제적인 소임을 다해야 할 때이다.

김삼웅(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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