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채호가 제시한 ‘지옥 갈 사람들’

신채호가 제시한 ‘지옥 갈 사람들’

  • 기자명 김삼웅 논설고문
  • 입력 2021.10.07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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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재 신채호는 언론인, 민족사학자, 독립운동가, 문학가ㆍ전기 작가, 아나키스트지도자 등 여러 분야에서 활동하고, 그 분야의 정상급에 이르렀다. ‘조선상고사’, ‘조선사연구초’, ‘조선혁명선언’, ‘탈환’과 ‘천고’발행, ‘전후삼한고’ ‘조선역사상 1천년 래 제1대사건’등 많은 저서와 선언문, 논문, 시론, 사론 등을 집필했다. 
그런데 워낙 독립운동사와 역사, 민족사에 관련한 저서와 시론, 사론이 빚을 발하다보니 소설가 단재의 위상은 소수의 전문가들 외에는 비교적 덜 알려진 편이다.
단재는 1916년 3월 망명지 북경에서 ‘꿈하늘(夢天)’이란 소설을 썼다. 1910년 청도를 거쳐 해삼위로 망명하여 ‘해조신문’의 주필을 지내다가 1914년 남북 만주를 방랑하면서 고구려 고적을 답사했다. 1915년 북경으로 옮겨 ‘조선상고사’집필을 준비하고, 신규식 등과 신한청년회를 조직하는 등 독립운동을 하면서 ‘꿈하늘’이란 소설을 썼다.  
이 소설은 중편에 속한다. 신채호는 나라가 망하고 망명지사가 되어 해외를 떠돌면서 “자유 못하는 몸이니 붓이나 자유하자”라고 작가 자신이 말한 것처럼 현실에서 실현할 수 없었던 이상을 창작의 세계에서 실현시키는 염원을 담았다. 
소설에서는 역사적 인물로 을지문덕, 강감찬 등을 내세워 이들이 주민을 깨우쳐주고 옳은 길로 인도하고, 악인으로는 임진왜란의 원흉인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적수로 나온다. 또한 의인화된 형상도 나온다. 여기서는 주인공 ‘한놈이’ 강감찬에게 질문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는 단재의 소설 중 ‘지옥이야기’다. ‘찔리는’ 부류가 없었으면 좋겠다.  
 한놈이 
“나라에 대한 큰 죄가 몇입니까?”
물은대, 강감찬이
“네가 앉아 들으라!”
하시더니, 하나 씩 세신다.
 첫째는 나라의 적을 두는 지옥이 일곱이니,
(ㄱ) 국민의 부탁을 받아 임금이나 대신이 되어, 나라의 흥망을 어깨에 멘 사람으로 금전이나 사리사욕만 알다가, 적국에 이용된 바가 되어 나라를 들어 남에게 내어주어, 조상의 역사를 더럽히고 동포의 생명을 끊나니, 백제의 임자(任子)며, 고구려의 남생(男生)이며, 발해의 마지막 임금인 인찬이며, 대한(大韓) 말일의 민영휘, 이완용 같은 무리가 이것이다. 이 무리들은 살릴 수 없고 죽이기도 아까우므로, 혀를 빼며 눈을 까고, 쇠비로 그 살을 썰어 뼈만 남거든 또 살리고 또 이렇게 죽이되, 하루 열두 번을 이대로 죽이고 열두 번을 이대로 살리어, 죽으면 살리고 살면 죽이나니, 이는 곧 매국 역적을 처치하는 ‘겹겹지옥’이니라. 
(ㄴ) 백성의 피를 빨아 제 몸과 처자를 살찌우던 놈이니, 이놈들은 독 속에 넣고 빈대와  뱀 같은 벌레로 피를 빨게 하나니 이는 ‘줄줄지옥’이니라.
(ㄷ) 혓바닥이나 붓끝으로 적국의 정책을 초래하고 어리석은 백성을 몰아 그물 속에 들도록 한 연설장이나 신문기자들은 혀를 빼고 개의 혀를 주어, 날마다 컹컹 짓게 하나니 이는 ‘강아지 지옥’이니라. 
(ㄹ)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해먹을 것 없으니 정탐질이나 하리라 하여, 뜻 있는 사람을 잡아 적국에게 주는 놈은 돗(돼지) 껍질을 씌워 꿀꿀 소리가 나게 하나니, 이는 ‘돼지지옥’이니라. 
(ㅁ) 겉으로 지사인 체하고 속으로 적 심부름하던 놈은 그 소행이 더욱 밉다. 이는 머리에 박쥐감투를 씌우고 똥집을 빼어 소리개를 주나니 이는 ‘야릇지옥’이니라.
(ㅂ) 딸각딸깍 나막신을 끌고 걸음걸음 적국 놈의 본을 뜨며, 옷 입고 밥 먹는 것도 모두  닮으려 하며, 자식이 나가던 내 말을 버리고 적국 말을 가르치는 놈은 목을 잘라 불에 넣으며 다리를 끊어 물에 던지고, 가운데 토막은 주물러 나나리를 만드나니 이는 ‘나나리지옥’이니라.
(ㅅ) 적국 놈에게 시집가는 년들이며, 적국 년에게 장가가는 놈들은 불칼로 그 몸을 절반으로 끊나니 이는 ‘반신지옥’이니라.
둘째는 망국노를 두는 지옥이니,
(ㄱ) 나라야 망하였건 말았건 예수나 잘 믿으면 천당에 간다 하며, 공자의 글이나 잘 읽고 산림 속에서 독선기신(獨善其身)한다 하여 조상의 역사가 결단남도 모르며, 부모나 처자는 모두 남의 종이 된 지는 생각지도 않고, 오직 선과 천당을 찾는 놈들은 똥물에 튀기어 쇠가죽을 씌우나니 이는 ‘똥물지옥’이니라.
(ㄴ) 정견을 가진 당파는 있어야 하지만 오직 지방색으로 가르며, 종교로 가르며, 개인적 감정으로 가르며, 한 나라를 열쪽으로 내어 서로 해외로 다니며 싸우고 이것을 일로 아는 놈들은 맷돌에 갈아 없애야 새 싹이 날지니 이는 ‘맷돌지옥’이니라.
(ㄷ) 말도 남의 말만 알고 풍속도 남의 풍속만 쫓고 종교나 학문이나 역사 같은 것도 남의 것을 제것으로 알아 러시아에 가면 러시아인이 되고, 미국에 가면 미국인이 되는 놈들은 밸을 빼어 게같이 만드나니 이는 ‘엉금지옥’이니라. 
(ㄹ) 동양의 아무 나라가 잘되어야 우리의 독립을 찾으리라 하며, 서양의 아무 나라가 우리 일을 보아 주어야 무엇을 하여 볼 수 있다 하여, 외교에 의뢰하여 국민의 사상을 약하게 하는 놈들은 그 몸을 주물러 댕댕이를 만들어 큰 나무에 감아두나니, 이는 ‘댕댕이 지옥’이니라.
(ㅁ) 의병도 아니요, 암살도 아니요, 오직 할 일은 교육이나 실업 같은 것으로 차차 백성을 깨우치자 하여, 점점 더운 피를 차게 하고 산 넋을 죽게 하나니, 이 놈들의 갈 곳은  ‘어둥지옥’이니라.
(ㅂ) 황금이나 여색 같은 데에 빠져, 있던 뜻을 버리는 놈은 그 갈 곳이 ‘단지지옥’이니라.
(ㅅ) 지식이 없어도 아는 체하고, 열성이 없어도 있는 체하며, 죽기는 싫으나 명예는 차지하려 하여 거짓말로 남 속이고 다니는 놈들은 불로 지져 뜨거움을 보여야 하나니, 이는 ‘지짐지옥’이니라.
(ㅇ) 머리 앓고 피 토하여 가며 나라 일을 연구하지 않고, 오직 남의 입내만 내어 마찌니의 ‘소년 이태리’를 본떠 회(會)의 규칙을 만들며, 손문의 ‘군정부 약법(約法)’을 번역하여 자가의 주의로 삼아 특유한 국민성이 없이 인쇄된 책으로나 일을 하려는 놈들의 갈 지옥은 ‘잔나비지옥’이니라.
(ㅈ) 잔꾀만 가득하여 일 없는 때는 칼등에서 춤이라도 출 듯이 나서다가 일 있을 때는 싹 돌아서 누울 곳을 보는 놈은 그 기름을 빼어야 될지라. 고로 가마에 넣고 삶나니 이는 ‘가마지옥’이니라. 
(ㅊ) “아무래도 쓸 데 없다. 왼손으로 총을 맏으며 빈 입으로 군함 깰까, 망한 판이니 망한대로 놀자” 하는 놈은 무쇠 두 명을 씌워 다시 하늘을 못 보게 하나니 이는 ‘쇠솥지옥’이니라.
(ㅋ) 돈 한 푼만 있는 학생이면 요리집에 데리고 가며, 어수룩한 사람이면 영웅으로 치켜세워 저의 이용물을 만들고 이를 수단이라 하여 도덕 없는 사회를 만드는 놈의 살 곳은 ‘아귀지옥’이니라. 
(ㅌ) 공자가 어떠하다, 예수가 어떠하다, 나폴레옹이 어떠하다, 워싱턴이 어떠하다 하며, 내 나라의 성현 영웅을 하나도 모르는 놈은 글을 다시 배워야 하나니, 이 놈들의 갈 곳은 ‘종아리지옥’이니라.
이 밖에도 지옥이 몇몇이 더 되나, 너희들이 알아 둘 지옥은 이만하여도 넉넉하니라.

김삼웅(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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