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공 신익희선생이 제시한 ‘정치가의 조건’

해공 신익희선생이 제시한 ‘정치가의 조건’

  • 기자명 김삼웅 논설고문
  • 입력 2021.09.16 09:43
  • 수정 2021.09.23 10:43
  • 0
  • 본문 글씨 키우기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내년 3월의 제20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정치권이 뜨겁다. 거대 여야와 군소정당의 예비후보까지 20여 명에 이른다. 후보 중에는 그동안 정견과 정책을 갈고 닦은 분도 없지 않지만, 누가 봐도 대통령 감으로는 걸맞지 않는 수준 이하의 인물도 보인다. 
해공 신익희 선생은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세워질 때 의정원의원으로서 약헌(헌법) 기초에 참여한 이래 독립운동으로 일관하고, 해방 후에는 초대와 2대 국회의장 그리고 이승만 독재에 맞서 민주당을 창당하여 대통령후보가 되었으나, 투표 직전 뇌일혈로 서거하였다. 
해공 신익희 선생은 1953년 국회의장의 신분으로 어중이떠중이 날뛰는 정계에 ‘정치가의 조건’을 제시하였다. 70여년이 지난 지금 들어도 공감이 가는 대목이 적지 않고, 내년의 청와대를 향하여 할거하는 후보들에게 귀감이 되는 내용이 많아서 소개한다.  
해공은 먼저 정치인으로 지켜야 할 도리와 갖추어야 할 조건을 제시한다. 
자고(自古)로 동서고금을 통하여 교묘하게 사람을 속이기 위한 음모나 모략하는 술책을  항용 권모술수라고 하고, 사실이 아닌 못된 말을 퍼뜨려서 남을 헐뜯는 일, 남이 모르게 가만히 있는 사람을 못된 사람으로 만들기 위하여 꾸미는 잔꾀를 중상모략이라 한다. 
우리나라 역사를 들추어 보면 이러한 권모술수, 중상모략으로 상대를 쓰러뜨리고 혼자만 잘 살겠다고 하던 사람들, 결국은 조상에게 득죄하고 나라에 불충하고 소인 간신배로 낙인 찍혀 자손들에게까지 얼굴 들고 살지 못하게 한 사람이 얼마나 많았느냐, 예전이나 지금이나 정도를 걷는 사람만이 후세까지 칭송과 추앙을 받게 되는 법이다.
봉건사회에 있어서는 ‘사랑방 정치’라 하여 몇몇 사람들만 모여 소곤소곤 일을 꾸미던 때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민주정치제도 아래에서는 대중과 같이 호흡하고, 대중과 더불어 기쁨과 슬픔을 나누는 정치인이라야 하지, 그렇지 못하면 도태당하고 마는 법이다. 그러하니 유치한 장난으로는 통하지 않는다.
해공은 이 같은 대원칙에 이어 구체적인 방법론을 제시한다. 
첫째, 구족적(具足的) 덕성 곧 사람으로서 마땅히 행해야 할 바른 도리와 어진 덕을 갖춘   올곧은 의식을 충분히 지녀야 한다. 이 덕성을 지니기 위해서는  1) 극기용인(克己容人) 곧 제 욕심을 스스로 이지(理智)로써 억눌러 가며 너그러운 마음으로 남의 말을 인정하며 받아들여야 한다. 이것을 실천하려면 갖춰야 할 것이 있다. 수예절(守禮節) 곧 예의와 범절을 지켜야 한다. 거사욕(去私慾) 곧 제 욕심만을 차리는 염치없는 욕심은 버려야 한다. 무교긍(毋驕矜) 곧 건방지고 방자하고 거만하며 제 스스로를 높이고 자랑하는 것은 하지 말아야 한다. 선양기(善養氣) 곧 정신수양으로 타고난 심신의 정력 기르기를 즐겨해야 한다.
2)명성종선(明誠從善) 곧 착하고 좋은 일은 마음과 힘을 다하여 정성껏 좇으며 분명해야 한다. 3)거청거간(去聽祛間) 곧 반간(反間), 사이를 멀어지게 만들고 이간하는 말은 물리치고 귀담아 듣지 말아야 한다. 4) 공심공념(公心公念) 곧 사심 없는 떳떳하고 분명한 마음씨와 공평하고 치우침 없는 생각으로 처사에 임해야 한다.
해공은 한서(漢書) ‘동중서전(董仲舒傳)’을 인용하여 “어떤 일을 함에 있어 이해관계는 묻지 말고 마땅하고 떳떳한 옳은 일이면 실행하고, 이치에 맞고 사람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인 것이 분명하면 그 공을 계산하지 말고 착수할 것을 말한다.
둘째, 성취적 역량 곧 일을 생각한 대로 목적한 대로 해낼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망설이고   머뭇거리는 것 없이 추진력이 있어야 한다. 1)행위독실 곧 몸의 온갖 동작과 몸가짐은 진실성 있고 믿음직스럽고 인정 있고 친절하게 행동해야 한다. 2)충실열성 곧 마음가짐은 안팎없이 성실하게 하고 뜨거운 정성으로 일을 처리해야 한다. 3)청찰민정 곧 백성들의 안녕과 질서와 행복의 형편이 어떤가를 살피고 들어보고 물어보고 해야 한다. 4)개인생활의 평실 곧 국민 개개인의 먹고 입고 살아가는 실속을 골고루 옹골지고 탄탄하고 공평ㆍ균등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셋째로 탁월적 재식(才識)을 들지 않을 수 없다. 곧 사물을 분별할 수 있는 학식ㆍ견문ㆍ  재주는 남보다 뛰어나야 한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1)박학(博學) 곧 학문을 널리 배우고 꾸준하게 학습하며 식견을 넓혀 아는 것이 많아야 할 것이다. 2)광문(廣聞) 곧 여러 사람에게서 여러 가지를 널리 들어보고 알아보고 물어보아야 한다. 3)지인(知人) 곧 사람의 됨됨이를 알아보는 식견이 있어야 하는데 처음 만나는 사람일지라도 간교한지 우둔한지, 미련한지 교활한지, 유순한지 광폭한지, 총명한지, 경망한지, 음흉한지를 한눈에 알아보는 지인지감(知人之鑑)을 가져야 하는데 이것은 정치하는 사람으로서는 절대적인 조건이다. 4)선언(善言) 곧 말은 모나지 않고 경박하지 않고 수다스럽지 않고 부드러워야 하고 말솜씨가 좋아야 한다. 5)원식(遠識) 곧 앞 일까지 헤아려 내다볼 수 있는 식견을 갖추어야 한다. 6)이정(理政) 곧 정치적인 정견으로 시정 방책을 고치고 정리하고 바로잡고 하는 일은  이치와 도리에 합당하게 분별할 줄 알아야 한다.
넷째, 공평적 제재(諸才) 곧 공정 무사하게 재주와 재량과 식견과 학식이 뛰어난 인재를   골고루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고 모아들여 때와 장소에 따라 그 기량을 십분유용하게 활용하고 이러한 인사에게는 1)치경진례(致敬盡禮) 곧 경의를 표하고 예의를 다하여 대접해야 한다. 2)분류배육(分類培育) 곧 종류에 따라 분류하여 인재를 길러 앞날을 기약해야 함을 소홀히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그밖에도 ‘장기경험(長其經驗)’ 곧 몸소 실제 겪고 다루어 얻은 경험을 존중하고 높이 사야 하며 ‘노기재간(老其才幹)’ 곧 재주와 능력의 숙달을 인증하고 우대하여 중용해야 한다.
이상의 모든 조건을 겸비하기는 극히 어렵지만 여기에 가깝도록 마음에 두고 잊어버리지 않도록 수양하고 노력한다면 정경대도(正逕大道)에서 비뚤어져 나갈 리는 없을 것이다.
해공은 공사생활이 매우 검소했다. 어느날 지인이 점심에 막걸리 한 잔에 빈대떡 한 접시인 것을 보고 “앞으로 대통령 하실 분이….”라며 안타까워하자 이렇게 말한다. “날더러 대통령 될 사람이 점심을 이렇게 할 수야 있느냐고 한 이 말은 임 동지의 농담이겠지만, 옛 사람들의 전해 내려오는 말에 정승 지위에 오를 사람이면 좁쌀죽 맛을 알아야 한다고 했다오. 몇 끼니를 굶어 허기졌을 때의 그 조당수 맛이라니 참으로 기가 막히오. 위정자 될 사람은 민생의 궁핍을 체험해 속속들이 꿰뚫고 알아야 한다는 뜻이라오. 나는 대통령 해 보겠다는 생각 아직 해 본 적도 없을뿐더러 대통령 하려고 조당수 먹는 것도 아니고, 장관까지 지낸 아버지 밑에서 자랐건만 원래가 가난해서 먹는 것이오.”(신창균, ‘해공 신익희’ 참조)

김삼웅(논설고문)

저작권자 © 데일리스포츠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