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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요와 참요에 담긴 민중의 소리
  • 김삼웅 논설고문 ysk@dailysportshankook.com
  • 승인 2021.09.09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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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시대 국난기이거나 혁명기 또는 정치적 변혁기이면 어김없이 각종 민요와 참요 그리고 판소리 등 ‘민중의 소리’가 나타났다. 그것이 대부분 노래가사의 형태를 띠고 있지만 그 가사와 의미에는 각별한 뜻이 담긴다. 명확한 작사자ㆍ작곡자도 없이 민중의 입을 통해 불려지고 전파되는 이들 민요ㆍ참요ㆍ판소리 등은 시대상황의 이유로 파자나 위서의 형태로 나타나기 마련이다. 가사의 내용과는 전혀 다른 뜻이 들어있는가 하면 비유나 은어ㆍ은유 등을 섞어 당대 지배세력의 감시와 탄압을 피하고자 하였다.  
동학농민혁명기에도 어김없이 각종 민요와 참요, 판소리가 나돌았다. 반봉건ㆍ반외세를 표방하며 봉기한 한국사상 최초의 민중운동인 동학농민혁명은 비록 좌절되었지만 근대적 민중의식을 일깨우는 데는 크게 기여하였다. 1894년 초부터 1년 여 동안 전개된 동학농민혁명은 일본군의 공격으로 20~30만 명의 희생자를 낸 채 끝나고 말았다. 

대외적으로는 청ㆍ일전쟁의 계기가 되고, 대내적으로는 갑오경쟁을 불러왔다. 비록 동학농민혁명군의 지도자들은 붙잡혀서 참수되었지만 하부구조는 상당수가 뒤이어 일어난 의병운동에 참여하여 반외세ㆍ민족해방운동의 구심역할을 하였다. 
동학농민혁명 전개과정에서 민중들 사이에서는 여러 가지 민요가 불려졌다. 혁명기에는  으레껏 따르는 각종 참요도 나타났다. 당시 지배세력은 백성들이 동학농민혁명에 가담하는 것을 두려워하였다. 봉건지배 체제에서도 민중은 여전히 두려운 존재였던 것이다. 그래서 자연발생적인 민요가 불려지고, 이들 민요가 참요의 성격을 띠게 된 것을 두려워하였다. 
동학농민혁명은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화산폭발’이 아니었다. 화산이 오랜 세월 동안 마그마의 치열한 작용을 거쳐 폭발하듯이, 동학농민혁명은 1860년대에 진주민란을 비롯하여  전국 여러 곳에서 발생한 민란의 연장선상에서 일어난 민중운동의 집합이었다. 따라서 수많은 민중의 희생이 따랐지만 근대적 시민의식으로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동학농민혁명 과정에서 나타난 민요는 대부분 혁명의 지도자 전봉준을 중심테마로 하여 엮어졌다. 동학농민군은 전라도와 충청도 여러 곳에서 일본군을 크게 무찔렀다. 5월에는 전라도를 중심으로 충청도ㆍ경상도 일부를 포함하는 53개 고을에 최초의 지방자치인 집강소를 설치하여 동학농민군이 직접 폐정개혁에 나서기도 하였다. 
이 무렵에 민중들 사이에는 ‘파랑새 노래’가 널리 소개되고 입으로 입으로 전해졌다.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녹두밭에 앉지 마라/ 녹두꽃이 떨어지면/ 청포장수 울고 간다.
이 노래는 누가 짓고 누가 가사를 붙였는지 알 수 없는, 그야말로 민요이고 참요의 하나이다. 예전부터 참요는 정치적인 징후를 암시하는 민요로서 은유ㆍ파자ㆍ동음이의 등을 사용하고 있었다. 때문에 그 상징적 의미로 인해 여러 가지로 해석이 가능하게 되었다. 대체로 ‘파랑새’는 전봉준과 그를 따르는 민중을 의미하는 것으로 분석되어 왔다. ‘파랑’은 ‘팔왕(八王)’ 즉 전(全)의 파자로서 전봉준을 의미하며 ‘새’는 그를 따르는 민중 즉 동학농민혁명군을 뜻한다.
동학혁명기에 전봉준을 녹두장군이라 불렀다. ‘녹두’는 크기가 작고 딴딴하여 전봉준의 상징처럼 인식되었다. 전봉준의 키가 단신으로 녹두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이러한 전제에서 해석할 때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녹두밭에 앉지 마라” 는 부문이 이해하기 힘들게 된다. 그래서 파랑새는 파란군복을 입은 일본군사, 녹두는 전봉준, 청포장수는 민중을 뜻한다는 해석도 나오게 되었다. 즉 파랑은 ‘청군(靑軍)’ 또는 동학농민혁명을 진압하기 위해 조선에 온 파란군복을 입은 일본군사라는 풀이다. ‘청포장수’는 녹말묵을 파는 행상으로 당시 천대받던 일반 민중을 일컫는다는 것이다.
이 노랫말의 뜻을 풀이하면 “일본 군사야, 동학농민군을 짓밟지 말라, 녹두장군이 쓰러지면 민중이 슬피운다” 라는 의미가 되는 것이다. ‘파랑새 노래’는 시기와 지역에 따라 구전되면서 여러 형태로 불렸다.
새야 새야 파랑새야/ 너 뭣하러 나왔느냐/ 솔잎 댓잎 푸릇푸릇/ 하절인 줄 알았더니/ 백설이 펑펑/ 엄동설한이 되었구나. (정읍지방)
새야 새야 파랑새야/ 깝죽깝죽 잘 논다만/ 녹두꽃을 떨구고서/ 청포장수 부지깽이/ 맛이 좋다 어서 가라. (원주지방)
새야 새야 파랑새야/ 네 굽을랑 엇다 두고/ 조선굽에 나왔느냐/ 솔잎 댓잎이 파릇파릇하길래/ 하절인 줄만 알고 왔더니/ 백설이 휘날린다.(홍성지방)
웃녘새는 우로 가고/ 아랫녘새는 아래로 가고/ 전주 고부 녹두새야/ 두룸박딱딱 우여 ….(전주지방)
새야 새야 녹두새야/ 웃녘 새야 아랫녘 새야/ 전주 고부 녹두 새야/ 함박 쪽박 열나무 딱 딱 휘여.(완주지방)
여기서 ‘웃녘 새’는 청나라, ‘아랫녘 새’ 는 일본을 의미한다. 동학혁명기에 조선에 군대를 파병하고 청ㆍ일전쟁을 벌인 두 나라 군대를 비난하는 민중의 의지가 배인 노랫말이다. 
삼남지방에 집강소를 설치하고 폐정개혁을 전개하던 동학농민군은 정부와 맺은 전주화약이 깨지면서 재차 기의(起義)하여 서울로 북진을 시도한다. 이 무렵에 불린 것이 ‘가보세’의 참요이다. 
가보세 가보세/ 을미적 을미적/ 병신되면 못 가보리.
동학농민혁명기의 대표적 참요인 이 노랫말의 뜻은 “갑오세(甲午歲: 1894년, 갑오년)에 일어난 동학농민혁명이 을미(乙未: 1895년, 을미년)적 거리면, 병신년(丙申年: 1896년)이 되어 실패하니 그 때까지 끌지 말고 지금 성공해야 한다” 는 의미를 담고 있다. 더 지체하다가는 실패할지 모르니 모든 민중이 일어나 동학농민혁명군에 가담할 것을 권려하는 내용이다. 그러나 농민군의 총궐기를 호소하는 ‘가보세’의 노래에도 동학농민혁명군은 충청도 지방에서 잇따라 일본군에 크게 패하여 혁명은 위기에 봉착하였다. 다음은 이를 안타깝게 여긴 민중들의 노래이다. 
봉준아 봉준아 전봉준아/ 양헤야 양철을 짊어지고/ 놀미 갱갱이 패전했네.
여기서 놀미는 논산, 갱갱이는 강경의 사투리이다. 한결같이 혁명군 지도자의 패배를 아쉬워하는 노랫말이다.
개남아 개남아 진개남아/ 수많은 군사를 어디다 두고/ 전주야 숱애는 유시했노.
여기서 ‘개남’은 동학농민혁명의 한 축이었던 김개남 장군을 뜻한다. 전주지역으로 후퇴한 김개남의 패전을 안타깝게 노래하고 있다.

김삼웅(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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