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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5에 일제의 한반도분단 책략을 캔다
  • 김삼웅 논설고문 ysk@dailysportshankook.com
  • 승인 2021.08.12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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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의 날을 보지 못한 채 ‘그날이 오기만을’ 애타게 그리다가 젊어서 숨진 소설 ‘상록수’의 작가이자 독립운동가인 심훈의 ‘그날이 오면’에는 모든 항일운동가와 민중의 염원이 오롯이 담겨 있었다.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며는
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날이
이 목숨이 끊기기 전에 와주기만 할 양이면 
나는 밤하늘에 나는 까마귀와 같이
종로의 인경을 머리로 들이받아 올리오리다

두개골은 깨어져 산산조각이 나도
기뻐서 죽사오매 오히려 무슨 한이 남으오리까.

마침내 그날이 왔다. 1910년 8월 29일 국치로부터 만 34년 11개월 보름만이고, 1876년 2월 2일 병자수호조약(강화도조약)으로부터는 69년, 사실상 국권을 빼앗긴 1905년 11월 17일의 을사늑약부터치면 40년만이다. 
임시정부는 1941년 10월 김구주석과 외교부장 조소앙의 명으로 일제에 선전을 포고하였다. “우리는 3천만 한인과 정부를 대표하여 중국ㆍ영국ㆍ미국ㆍ캐나다ㆍ네덜란드ㆍ오스트리아 및 기타 여러 나라가 일본에 대해 선전을 선포한 것이 일본을 격패시키고 동아시아를 재건하는 가장 유효한 수단이 되므로 이를 축하하면서 특히 다음과 같이 성명한다.”
1. 한국의 전체 인민은 현재 이미 반침략전선에 참가해 오고 있으며, 이제 하나의 전투단위로서 축심국(軸心國)에 전쟁을 선언한다.
2. 1910년의 합방조약과 일체의 불평등조약이 무효이며, 아울러 반침략국가가 한국에서 합리적으로 얻은 기득권익이 존중될 것임을 선포한다.
3.한국과 중국 및 서태평양에서 왜구를 완전히 구축하기 위하여 최후의 승리를 거둘 때까지 항전한다.
4. 일본세력 아래 조성된 장춘과 남경 정권을 절대로 승인하지 않는다.  
5. 루스벨트ㆍ처칠 선언의 각 항이 한국독립을 실현하는 데 적용되기를 견결히 주장하며 특히 민주진영의 최후승리를 미리 축원한다.
목메이게 기다렸던 8ㆍ15는 그러나 우리 민족에게 진정한 해방이 아니었다. 미국과 소련이 한반도를 두 쪽으로 나누고, 미국은 27년 동안 중원천지를 돌며 일제와 싸운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인정하지 않고 그 요인들을 개인자격으로 들어오도록 하였다. 그리고 국내에서 여운형 등이 조직한 건국준비위원회도 해체시켰다. 
역사에서 가정이 부질없다지만, 임시정부가 정부의 자격으로 환국하였다면 분단도, 이로 인한 6ㆍ25한국전쟁도 없었을지 모른다. 임시정부는 그때 좌우합작을 통해 한민족의 대표기관이었다. 또한 중국 연안에 있던 김두봉 등 이른바 ‘연안파’도 임시정부를 지지한 상태여서 해방 후 좌익세력이 별도로 북한에 정부를 세울 이유도 명분도 없었을 것이다. 
일제가 항복한 지 5일 만인 8월 20일 미군의 B29기가 서울 상공에 나타나 미군의 진주를 예고하는 웨드마이어장군 명의의 삐라를 시내에 살포했다. 9월 2일에는 다시 미24군단사령관 하지중장이 점령군사령관 명의의 포고 삐라를 살포했다.‘남한 민중 각위에 고함’이란 제목의 포고령에는 해방군이라기보다 점령군적인 내용이 담겼다. “주민의 경솔하고 무분별한 행동은 의미 없는 인민을 잃고 아름다운 국토가 황폐화되어 재건이 지연되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각자가 보통 때와 같이 생업에 전념해 주기 바란다. 이기주의로 날뛴다든가 일본인 및 미상륙군에 대한 반란행위, 재산 및 기설 기관의 파괴 등의 경거망동을 하는……” 따위의 협박적인 내용이 담겼다. 그리고 한반도는 분단되고 남한에는 3년 동안 미군정이 실시되었다.
꿈에도 그리던 8ㆍ15가 우리 민족에게 진정한 의미의 해방과 광복이 되지 못하고 분단과 외국군에 의한 군정이 실시된 데는 미국과 소련의 책임이 크지만, 원초적인 원인과 책임은 일본에게 있다.
8월 6일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투하되고 8일 나가사키에도 투하되어 16만 명이 사망하였다. 그런데도 일제는 항복하지 않았다. 9일 소련이 일본에 선전포고를 하자 10일에야 스웨덴 대사관을 통해 미국에 항복의사를 전하였다. 
포츠담선언에서 소련이 이미 참전하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에, 일본은 16만 명의 희생을 치르고도 며칠간 버티면서 소련의 참전을 기다렸다. 소련의 참전을 계기로 한반도가 분단될 것으로 내다본 것이다. 원폭이 처음 히로시마에 떨어졌을 때 일본이 항복했으면 소련이 참전할 이유가 없었다. 일본은 이 점을 노렸고 예상은 그대로 적중했다. 
다수 국민의 희생을 치르더라도 며칠만 버티면 소련이 참전하고 그리되면 전후에 반드시 소련이 자신들의 몫을 챙기려들어 한반도가 당연히 쪼개질 것으로 확신한 것이다. 불행하게도 이 예측은 적중했다. 
일본정부 수뇌부는 손 놓고 기다린 것만도 아니었다. 중국 동북3성에 주둔하고 있는 관동군에게 남하하는 소련군에 일체 저항하지 말도록 명령하고, 길을 터줬다. 이로써 소련군은 거침없이 며칠 만에 두만강을 건너 평양에 이르렀다. 
제2차세계대전말 미국이 가장 두려워했던 상대는 중국에 있는 100만이 넘는다는 일본 관동군이었다. 미국은 오키나와 등을 결국 점령하기는 했지만, 점령 과정에서 많은 희생을 치렀다. 그러다 보니 중국에 있는 관동군의 엄청난 병력이 두려웠던 것이다. 그래서 미국은 한반도를 자기들의 군사력으로 다 점령하기 어려워 소련에 참전을 요청한 것이다. 
한민족의 장래에 대해서는 국제열강 어느 나라도 관심이 없었다. 미국은 한국의 역사적 맥락 등은 전혀 감안하지 않고 단지 일본군 무장 해제와 전후처리 일환으로 한반도를, 그것도 미국 육군대령 두 사람이 낡은 지도를 구해서 30분 만에 확정한 38도선으로 허리를 가른 것이다.  
북위 38도선을 기준으로 남북을 가르자 소련 측에서는 깜짝 놀랐다. 자기들은 별로 한 일이 없으니 북위40도 이북만 나눠줘도 감지덕지라고 생각했는데 38도선으로 가르니 놀랄 수밖에 없었다. 놀라기는 미국도 마찬가지였다. 소련이 이토록 쉽게 승낙한다는 말인가? 소련의 역량으로 봐서는 더 내놓으라고 할 수도 있었던 상황이다. 
결국 우리 민족은 산채로 도마 위에 오른 물고기 신세가 되고, 열강의 패권 경쟁의 희생양이 되고 말았다. 민족분단이라는 비극은 이처럼 어이없게도 미ㆍ소의 이해 다툼과, 일제의 교활하기 그지없는 책략에서 비롯되었다. 일제수뇌부의 책략을 살펴보면 지금도 소름이 돋는다. 진정 ‘과거사’일 뿐일까. 
일제는 기회만 있으면 한반도의 침략(점령)과, 힘이 달리면 분단을 통해서라도 날로 먹으려 들었다. 임진왜란기에 명나라를 상대로 남쪽 4개도는 자신들이, 북쪽 4개도는 명나라가 차지하자는 협상을 벌였다. 뜻을 이루지 못하자 20세기 전반 35년간 식민지배에 이어 패전 후에는 다시 ‘못 먹는 밥에 재 뿌리는’ 심보로 한반도 분단을 획책한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최대 전범국가인 독일은 서독과 동독으로, 이에 동조한 오스트리아도 4쪽으로 분할되었는데, 전범 주축국 일본은 멀쩡하고, 외려 연합국의 일원으로 일제에 선전포고를 하면서 줄기차게 싸운 한국이 엉뚱하게 분단된 것이다.
8ㆍ15가 참다운 해방이나 광복이 되지 못한 채 동족상쟁, 냉전ㆍ신냉전을 두루 겪고 분단 76년의 오늘에 이르렀다. 일본은 여전히 신군국주의를 꿈꾸며 독도영유권을 주장하고, 한반도의 평화체제노력에 훼방꾼 노릇을 한다.
상황이 이런데도 우리 정치권 일각에서는 8ㆍ15의 의미와 분단의 배경(원인)보다 ‘점령군이냐’ ‘해방군이냐’라는 용어를 둘러싸고 수준 낮은 논쟁을 벌인다. 새롭게 전개되는 미ㆍ중의 각축, 그 틈새를 노리는 일본의 야욕과 음모론을 꿰뚫고 대처하는 지도자의 등장이 요구된다.

김삼웅(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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