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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권만 있고 의무ㆍ책임 없는 귀족들
  • 김삼웅 논설고문 ysk@dailysportshankook.com
  • 승인 2021.08.05 0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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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어로 ‘귀족의 의무’를 뜻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지위가 높은 사람일수록 사회적 책임과 의무를 더 많이 해야 한다는 말이다.

일본 작가 시오노 나나미는 ‘로마인 이야기’에서 2000년을 지탱한 로마제국의 저력은 노블레스 오블리주라고 분석한다. 로마의 귀족은 전쟁이 나면 자신의 재산을 내놓고 가장 앞장서서 외적과 싸웠다. 로마 건국 이후 500년간 원로원에서 귀족이 차지하는 비중이 15분의 1로 급속히 줄어든 것은 계속되는 전쟁에서 귀족들이 많이 희생된 까닭이라는 것이다.

한국사회의 귀족은 특권만 있고 책임과 의무는 없었다. 조선시대 왕족ㆍ양반층은 납세와 군역의무를 지지 않았다. 조선후기 3정(三政)이 극도로 문란해지면서 양반의 숫자가 급격히 늘게되고 국가재정과 국방인구가 크게 줄었다.

왕조와 관리들의 부패 탐학이 극심해지고 심지어 임진왜란이 발생하자 수많은 노비ㆍ천민들이 일본군에 투신하여 침략군의 일원이 되었다. 선조가 궁궐을 떠나면서 “왜병 중에 조선인이 많다는데 그 숫자가 얼마나 되느냐?”고 물었을 정도였다.

1905년 을사늑약 이후 우리 관군이 한 번도 제대로 일본군과 싸워본 적이 없다. 나라가 망하는 과정에서 관군은 있으나마나한 존재가 되고, 그 대신 의병이 궐기하여 국권수호와 독립전쟁의 전위가 되었다. 삼한갑족이던 이회영 일가가 모든 재산을 팔아 만주에 신흥무관학교를 세우는 등의 경우가 있었으나 극소수에 불과했다.

우리 역사는 깨어 있는 민중의 힘을 바탕으로 발전해왔다. 한국사를 민족사와 왕조사의 이분법으로 분류할 때, 민족사는 바로 민중에 의해 엮여온 것이다. 한국의 왕조사는 사대주의, 쇄국정책, 정권안보 제일주의에서 굴욕적인 사대와 망국의 경우가 있었지만, 민중이 주체인 민족사는 민족의 형성과 발전, 통합과 저항의 입장에서 볼 때 결코 위축되거나 쇠퇴하지 않고 항상 건강한 한민족을 지켜왔다. 우리의 정통 민족사는 바로 왕조사가 아닌 민중사인 것이다. 한국은 미국 다음으로 세계 2위의 빈부 양극화의 위기에 놓여있다. 상위 1%가 개인 소유의 땅 50% 이상, 주식부자 1%가 싯가 총액 63%를 점유하고, 10대 재벌의 전체 매출은 우리나라 GDP의 80%가 넘는다. 남녀임금 차별 세계최고 등 비정상의 극치를 이룬다.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노동자가 300~400만 명에 이르고, 대학을 졸업하고도 취업을 못한 채 방황하는 청년은 수 백 만 명에 달한다. 반면에 특정 재벌그룹은 탈세ㆍ박근혜ㆍ최순실 게이트에서 보듯이 권력과 유착ㆍ해외재산도피ㆍ족벌체제 3~4대 세습ㆍ갑질ㆍ각종 스캔들 등 반사회적 행태를 계속한다.

독일의 저명한 주간지〈슈테른〉이 1995년을 빛낸 ‘세계의 8대 사기꾼’ 특집을 꾸미면서 전두환 2위, 노태우 3위로 기록한 바 있다. 이명박의 4대강 비리와 자원외교에 수십 조 원의 국고가 낭비된 과정과 이것을 밝히지 않는 배경 속에는 얼마나 많은 권력형 사기꾼들이 숨어있는 지 모른다. 박근혜는 500억 상당의 뇌물죄로 구속되고, 그 전임자는 거액의 뇌물수수 등 각종 비리가 드러났다. 1789년 프랑스혁명 당시 인구가 2600만 명이었다. 전체 인구의 1%인 귀족과 성직자 6~10%인 비생산직 두 계급이 국가 전체 토지의 3분의 2를 점유했다. 이들에게는 세금과 병역이 면제되었다. 납세ㆍ병역의무는 제3계급인 평민(농민)에게만 부여되었다. 혁명이 발발하는 사회경제적 요인이었다.

국가보훈처 조사(2015년)에 따르면 독립운동가 7940명의 후손 중 무직 60%, 중졸 이하 학력 55%, 봉급생활자 10%, 50%가 중병환자, 50%가 독립유공자 후손의 자부심이 없다고 했다.

“독립운동가는 도배장이를 낳고, 도배장이는 미장이를 낳고… 친일파는 의사를 낳고 의사는 사업가를 낳고….” 어느 시인의 절절한 지적이 부끄러운 우리 현대사의 진행형이다.

6ㆍ25한국전쟁 당시 중국 권력자 모택동의 장남은 팽덕회사령관의 중국어통역으로 근무 중 유엔군의 폭격으로 사망했다. 유엔군사령부 벤플리트 8군사령관의 아들은 공군조종사로 출격했다가 적탄에 맞아 사망했다. 영국의 왕자는 포클랜드 전쟁에 참전했다가 부상당했다.

한국전쟁 당시 최일선은 가난한 농민의 자식들로 채워지고 베트남전, 천안함 침몰 때도 만만한 서민 자식들만 희생되었다. 어디에서도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찾기 어렵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인가, 특권층 전제국인가 의심할 때가 없지 않다.

지배층이 국가안보를 잘못하거나 외침을 당할 때이면 피지배층이 전투에 나가 희생되는 잘못된 역사는 청산해야할 시대적 과제이다.

높은 자리는 그 위치에 걸맞는 책임과 도덕성이 요구된다. 절대군주 시대에도 가뭄이 들면 임금이 근신하면서 하늘에 부덕함을 빌면서 기우제를 지냈다. 전통적으로 우리나라의 위정자들은 권력만 행사했지 책임감과 도덕성은 외면했다. 결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조선시대 선조는 왜군이 쳐들어오자 한양을 버리고 의주로 도망쳤다. 이를 지켜본 백성들이 몰려가 임금의 거처였던 경복궁에 불을 질렀다. 뒤를 이은 인조는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가족은 강화도로 피난 보내고 자신도 뒤따라가려다 청군에 길이 막히자 남한산성으로 도망쳤다가 결국 항복하는 수모를 당했다. 백성들은 안중에 없고 자신들의 안위에만 급급하였다.

1910년 경술국치로 수많은 의열사들이 순국하고 의병전에 나설 때에 고종과 순종은 멀쩡히 살아남았고, 황족ㆍ고관대신 75명이 일본정부가 준 작위와 거액의 은사금 챙기기에 혈안이 되었다. 이를 지켜본 관리들과 지도층 인사들이 너도나도 친일파가 되고, 해방 후 지금까지도 그들의 자손들이 기득세력이 되었다.

6ㆍ25전쟁이 터지자 이승만은 “서울시민은 안심하라”는 녹음 방송을 틀어놓고 서울역에 대기한 기차로 남쪽으로 도망갔다. 서울을 떠난 30분 후 한강철교를 폭파시켜 600여 명을 수장시키고 서울 시민들의 피난길을 막았다. 그 판에도 백범 김구 암살범 안두희를 챙겨서 떠났다. 그리고 유엔군의 도움으로 서울로 돌아와서는 인민군에 부역했다는 누명을 씌워 수천 명을 감옥에 보냈다.

망국시절, 애국자들이 풍찬노숙을 하며 독립운동을 할 때에 일본군에 들어가 독립군에 총질을 한 일본군 출신들과 총독부 관리들이 4ㆍ19혁명으로 쟁취한 민주주의를 뒤엎은 5ㆍ16쿠데타세력의 주역이 되고 긴 세월 이 나라의 지배층이 되었다. 독립운동가, 민주화운동가들은 걸핏하면 종북으로 몰리거나 대를 이은 궁핍의 세월을 보낸다.

명목상이지만 1인당 국민소득이 3만 달러가 넘고, 해마다 수출은 늘어간다는데, 절대다수 국민의 생계는 갈수록 핍박해지고, 빈부 양극화는 더욱 심화되며, 각종 세계1위의 아름답지 못한 금메달은 좀처럼 바톤을 넘길 줄을 모른다.

경제협력개발기구 (OECD, 32개국가) 가입 국가 중에 한국은 GDP 상으로는 상위권이지만 실제 국민생활은 밑바닥 수준이다. 국민행복지수는 100위권 밖이고, 이혼율ㆍ출산율ㆍ낙태율ㆍ청년불행지수ㆍ노인빈곤율ㆍ노인자살율ㆍ존속살인율ㆍ고소율ㆍ사기죄율ㆍ부패지수ㆍ군사비율ㆍ반인륜 반생명 범죄율ㆍ대기오염율에서 세계기록이고, 두 번째 과로국가에 속하고 삶의 만족도는 꼴찌에 이른다.

청년실업ㆍ비정규직ㆍ저출산ㆍ초고령화ㆍ공교육위기ㆍ청소년폭력ㆍ빈부양극화ㆍ무주택ㆍ초빈곤층 증가ㆍ환경파괴ㆍ사회지도층 인사들의 도덕적 탈선 등 사회공동체가 위기에 처해있다. 자본주의 말기현상이고 천민자본주의적 요소가 가득차 있는 현실이다.

‘99 대 1’의 빈부격차, 가난이 대물림되는 신판 반상제 현상은 한국사회의 위기증세를 집약한다. 세계 억만장자 중 한국은 74%가 상속자로서 세계1위를 차지한다. 미국 28.9%, 일본 18.5%, 영국 6.4%다. 중산층이 무너지고 극소수의 초호화세력과 절대다수 서민층의 양극화는 코로나 역병으로 더욱 악화되고 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요구된다.

김삼웅(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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