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언 칼럼> ‘14년 표류’ 차별금지법, 국회 문턱 넘어서나

<김주언 칼럼> ‘14년 표류’ 차별금지법, 국회 문턱 넘어서나

  • 기자명 김주언 논설주간
  • 입력 2021.06.24 09:34
  • 수정 2021.06.24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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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동안 표류해온 차별금지법이 국회 문턱을 넘어설 수 있을까. 정치권이 외면했지만 10만명의 시민이 뜻을 모아 국회 법사위에 회부됐다. 청원 시작 22일만에 10만명의 국민이 참여했다. 국민동의 청원은 30일내에 10만명 동의를 얻은 청원을 국회에서 심사하는 제도이다. 민주당 일부 의원들은 차별금지법과 비슷한 평등법을 공동 발의했다. 국민청원과 연계된 법안을 발의한 장혜영의원이 속한 정의당은 제정을 강력 촉구했다. 반면 국민의힘은 아직 시기상조라는 입장이다. 이준석 대표는 취지에 동의하는 태도를 취했다가 하룻만에 번복했다. 
정의당은 “평등을 향한 국민의 열망에 더 이상 ‘사회적 합의’를 핑계삼아 논의조차 시작하지 않는 것은 공당으로서 최소한의 책임도 지지 않겠다는 것”이라며 민주당과 국민의힘에 자세변화를 촉구했다. 민주당은 차별금지법 제정을 추진했다가 보수기독교계의 반발로 공동발의를 철회하는 사례가 많았다. 국민의힘은 법안제정에 대한 입장이 없었다. 이준석 대표는 “숙성된 논의가 있었다”며 제정 취지에는 동의하는 태도를 취했다가 “사회적 합의가 충분치 않고 국민 상당수가 우려하고 있다면 서두를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차별금지법 제정은 14년동안 여러 차례 시도됐지만 보수기독교 단체들의 반대로 번번이 좌초됐다. 2007년 노무현정부 법무부는 차별금지법을 발의했으나 국회 임기만료로 폐기됐다. 2013년엔 민주당의원 등이 차별금지법안을 발의했다가 자진 철회했다. 보수 기독교단체들이 ‘성적 지향’과 ‘성 정체성’ 등을 강력하게 반대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21대 국회 들어서는 지난해 6월 장혜영 의원 등이 차별금지법안을 발의했지만 1년동안 단 한차례도 심사하지 않았다. 이제 청원이 성사돼 법사위에 회부됐다. 
입법까지는 갈 길이 멀다. 요건을 충족한 국민동의 청원이라도 국회가 무기한 미룰 수 있기 때문이다. 21대 국회에서 10만명 이상 동의를 받은 청원은 16건에 달하지만 13건은 기약없이 상임위에 계류돼 있다. 국회는 ‘사회적 참사 진상규명에 관한 청원’ 등 3건만 심의했을 뿐이다. 일부 청원은 21대 국회 만료일인 2024년 5월29일까지 연장됐다. ‘낙태죄 전면 폐지’ 청원이 그것이다. 차별금지법 제정은 찬반이 갈리기 때문에 국회가 쉽게 나설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지난해 7월 법사위에 회부된 차별금지법 반대청원도 논의되지 않고 있다. 
국가인권위가 지난해 국회에 제정을 촉구한 평등법 안에는 성별 나이 장애 국적 종교 학력 성적지향 외모 고용형태 등 21가지 사유로 직간접적 차별을 하지 못하도록 규정했다. 헌법 제11조1항은 “누구든지 성별 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고 규정돼 있다. 차별금지 근거는 헌법에 있지만 차별의 정의와 예방 및 구제 방안은 정해져 있지 않다. 피해자는 차별을 설명할 법적 제도적 장치가 없다. 차별금지법은 이를 해결해주는 제도이다. 차별금지법은 존재 자체로도 ‘차별하면 안된다’ 메시지를 사회에 던져준다. 
이번 청원은 석달전 동아제약에서 성차별 면접을 받은 여성이 제안해 성사됐다. 최초 청원자 99인에 심종혁 서강대 총장신부가 참여했고 종교 인권 사회단체들의 지지가 이어졌다. 14년 동안 차별금지법이 표류하면서 차별에 시달린 이들의 간절한 염원이 만들어낸 것이다. 군인으로 남길 간절히 원했던 트랜스젠더 군인은 강제전역 이후 극단적 선택을 하기도 했다. 고용시장에선 많은 이들이 성별 학력 나이 사회적신분 성적지향 등을 이유로 차별을 겪는다. 학교현장에선 ‘스쿨미투’ 목소리가 터져 나왔지만 성차별 환경은 환경은 변함이 없다. 
차별금지법은 인권과 국가발전에 기여한다. 한국보다 일찌감치 차별금지법을 제정한 국가들의 사례를 보더라도 그렇다. 주한 외국대사들이 국가인권위에 밝힌 차별금지법의 체험과 평가는 되새길만하다. 1993년 인권법을 제정한 뉴질랜드 대사는 “소수자와 소수민족에 대한 인식 자체가 달라졌고 법적 구제수단도 생겼다” 전했다. 핀란드 대사는 “모두 차별없이 참여하자 경제도 발전했다”고 짚었다. 2006년 종교단체와 산업계의 반대로 평등법 제정에 18개월 걸린 영국도 “반대론자들이 우려했던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고 했다. 
국민동의 청원이 성사된 뒤 이틀만에 민주당 의원들이 화답했다. 이상민의원 등 의원 24명이  ‘평등에 관한 법률안’을 발의했다. 법안은 모든 영역에서 차별을 금지하고, 차별로 인한 피해를 효과적으로 구제하며, 차별을 예방하고 실질적 평등을 구현해 인간의 존엄과 평등을 실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규정한다. 차별금지 사유로는 성별 장애 병력 나이 출신국가 출신 민족 인종 피부색 신체조건 혼인여부 종교 성적지향 성별정체성 등이 명시됐다. ‘직접차별’외에 ‘간접차별’도 금지하고 차별한 사람에게는 징벌적 손해배상을 할 수 있게 했다. 
특히 눈에 띄는 부분은 적용대상에 디지털영역을 포함시켰다는 점이다. 인공지능(AI) 챗봇 ‘이루다’에서 성희롱과 혐오 차별발언 논란이 일었던 사례를 고려한 방안이다. 형사처벌 조항은 빠졌다. 국가인권위 평등법에는 차별인사를 단행한 사업주에게 사법책임을 물을 수 있었지만 제외했다. 대신 정부나 지자체에서 받는 복지혜택에 차별이 발생하지 않도록 손해배상이나 진정에 의한 조사 등으로 사후구제에 주안점을 뒀다. 이를 위해 정부와 국회 사법부는 5년마다 기본계획을, 매년 시행계획을 세워 점검 평가하게 했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는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라는 시민의 요구에 민주당에서 응답이 시작됐다”고 환영했다. 민주당의 발의는 시작일 뿐으로 앞으로 국회 논의를 적극 이끌어 연내 법제정에 이르기를 희망했다. 특히 법제정을 위한 토론은 차별받는 사람의 위치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는 국회에 차별금지법/평등법에 대한 공감대 위에서 연내 법제정에 이를 수 있도록 행동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민주주의 사회의 기본이자 인권의 상식이 한국사회에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과제이다.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도 “더이상 평등을 기다릴 수 없다”며 “한국이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제정한다면 국제인권법과 국제인권기준에 따른 국가의무를 다할 뿐만 아니라 아시아국가 중 차별금지 입법화를 개척하는 선도자로 자리매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추미애 전법무부장관은 평등법을 민주당 당론으로 채택할 것을 강조했다. “민주당의 진보적 개혁 정체성을 바로 세우는 길이자, 법안통과 과정에 가해질 고질적 반대와 외압을 함께 이겨내는 길”이기 때문이다. 
차별금지법 법제화에 대한 국민여론은 찬성이 압도적이다. 국가인권위의 지난해 6월 조사에서는 응답자 10명중 9명가량(88.5%)이 찬성했다. 찬성의견은 1년전보다 15%포인트나 높아졌다. 반대는 11.5%에 불과했다. 유엔사회권위원회가 한국에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도록 권고한 지도 4년이 지났다. 유엔사회권위원회는 사회권 규약(1966년 제정, 1976년 발효)에 가입한 국가들의 규약이행사항을 점검하는 전문가그룹이다. 사회권규약은 국제인권협약으로 차별금지와 성평등보장 노동권 사회보장권 건강권 교육권 등을 포함한다.
일부 기독교단체들이 ‘성적지향이 정상가족을 해체한다’며 의원들을 압박해 17~19대 국회에서 6차례나 입법이 좌절됐다. 그러나 모든 기독교인이 차별금지법 제정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이 지난해 10월 시행한 인식조사를 보면, 개신교인 42%가 차별금지법 제정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대는 38%에 불과했다. 이제 공은 국회로 넘어갔다. 국회는 인간의 존엄과 다양성을 존중하는 차별금지법/평등법을 서둘러 제정해야 한다.

김주언(전 한국기자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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