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언 칼럼> 오늘의 미얀마에서 어제의 광주를 본다

<김주언 칼럼> 오늘의 미얀마에서 어제의 광주를 본다

  • 기자명 김주언 논설주간
  • 입력 2021.05.26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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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41주년을 맞은 5.18광주민주화운동은 예년과는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5.18을 폄하하던 정치인들이 나타나지 않은 데다, 처음으로 국민의힘 의원 2명이 공식초청을 받아 기념식에 참석했다. 여야 의원들은 앞다퉈 5.18국립묘지를 찾았고, 이명박근혜정권 시절 금지곡이었던 ‘님을 위한 행진곡’을 목청껏 불렀다. 무엇보다도 군부에 저항하며 100일이상 싸우고 있는 미얀마 시민과의 연대선언이 눈길을 끌었다. 41년전 광주의 정신은 2021년 미얀마 시민의 세손가락 항쟁에 배어들어 숨을 쉬고 있는 것이다.
올해 기념식 주제는 ‘우리들의 5월’이었다. ‘우리들의 오월’은 그동안 왜곡당하는 등 굴곡의 시간을 지나기도 했지만 이제는 세계로 나아가는 오월로 거듭나고 있다. 군부의 탄압에 신음하는 미얀마를 비롯해 민주화를 열망하는 세계와 연대하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기념사에서 “오늘 미얀마에서 어제의 광주를 본다”고 말했다. “민주와 인권, 평화의 오월은 어제의 광주에 머물지 않고 내일로 세계로 한 걸음 한 걸음 힘차게 나아갈 것”이라는 다짐이다.
5.18기념재단등이 참여하는 미얀마 광주연대는 3월부터 미얀마 민주화운동을 지원하기 위해 1억9000만원을 모금했다. 미얀마 광주연대는 지난달 이중 5000만원을 미얀마 시위단체와 언론인 의료진 등에 전달했다. 시민군 마지막 항쟁지였던 옛 전남도청 앞 5.18민주광장에서는 미얀마 미술가들의 작품을 모은 미얀마 저항미술전이 열린다. 별관 앞에는 미얀마 민주화운동 희생자들의 사진을 게시하고 추모의 의미로 빨간 리본을 매달아 둔다. 미얀마 유학생과 노동자들이 여는 미얀마 민주화를 위한 촛불집회에는 광주시민도 동참하고 있다.
41년 전 광주 5월항쟁 당시 부처님 오신날이 끼어 있었다. 올해도 기념일 다음날인 5월19일이 부처님 오신날이었다. 마침 미얀마는 불교국가이다. 조계종 총무원장 원행스님은 이날 봉축사에서 미얀마 당국의 적대행위 중단을 촉구했다. 원행스님은 “오늘도 세계적으로 갈등과 대립의 불길이 타오르고 있는데 그중에서 오랜 불교전통을 유지해온 미얀마사태는 우리 마음을 아프게 한다”고 말했다. 그는 미얀마 당국에 북방의 부처님 오신 날인 음력 4월초파일(5월 19일)부터 남방의 부처님 오신 날인 4월보름(5월26일)까지 모든 적대행위의 중단을 선언해 달라고 요청했다.
미얀마의 오늘에서 1980년 5월 광주를 떠올리며 내 일처럼 진심을 다해 연대하려는 한국 시민의 노력은 미얀마 시민에게 큰 힘이 되고 있다. 미얀마 시민은 광주시민이 그랬던 것처럼 민주주의를 이룰 날이 올 때까지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한다. 그들에게는 국제사회의 적극적 연대와 실질적 도움이 절실하다. 군의 탄압으로 인권이 끊임없이 위협받고 있기 때문이다. 연일 벌어지는 시위를 군과 경찰이 과도한 폭력으로 진압하면서 수백명의 사망자와 부상자가 발생하고 있다.
미얀마 사태는 올해 갑자기 발생한 것은 아니다. 미얀마 군은 오랫동안 정치와 경제에 직접 관여하면서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했다. 이 과정에서 반인도범죄를 저질렀으나 국제사회는 명확한 행동을 취하지 않은 채 책임자를 처벌하지 않았다. 각국의 기업은 미얀마 군 소유 기업들과 사업관계를 유지해왔다. 2016년에는 로힝야족 탄압에 나서 수천명이 살해되고 여성들이 강간당했다. 수십만명이 난민이 되어 피난길에 올라야 했다. 유엔진상조사단은 2018년 미얀마 군이 일으킨 범죄가 집단학살 반인도범죄 전쟁범죄라고 결론 내렸다.
유엔은 책임자 민 아웅 흘라잉 군 최고사령관을 조사하고 기소할 것을 촉구했다. 하지만 아웅산 수치 국가고문은 침묵했다. 2019년 국제사법재판소에 출석해서도 로힝야족에 대한 인권 침해 및 범죄 행위의 심각성을 축소했다. 결국 미얀마 군의 인권침해에 대한 정의구현은  이뤄지지 못했다. 미얀마 군은 소유기업 미얀마이코노믹홀딩스(MEHL)를 통해 다국적 기업과 사업관계를 맺으며 재정을 확충해나갔다. MEHL은 한국의 포스코, 일본의 기린 등과 파트너십을 맺어 막대한 수익을 벌어들이고 있다.
2020년 11월8일 미얀마 총선에서 당시 집권당인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은 미얀마 군부와 관련된 정당 통합단결발전당(USDP)을 상대로 압승을 거뒀다. 아웅산 수치와 NLD가 국회 양원을 합쳐 498석중 396석을 차지했다. USDP와 미얀마 군은 선관위가 부정과 위법행위를 저질렀다고 주장했다. 2021년 2월1일 미얀마 군이 쿠데타를 일으켰다. 이날 아웅산 수치 국가고문과 NLD 고위관계자들, 인권활동가들이 체포됐다. 군 최고사령관 민 아웅 훌라잉은 1년간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유엔 안보리는 구금자들을 석방하고 인권과 법치, 자유의 온전한 보장을 촉구하는 성명을 냈다. 국제앰네스티와 12개 인권단체는 유엔인권이사회에 공동성명을 보냈다. 이들은 표현의 자유와 집회시위의 자유를 탄압하는 미얀마 군 당국에 대해 유엔인권이사회가 조치를 취하라고 촉구했다. 앰네스티와 200여개의 NGO는 유엔안보리에 성명을 발표했다. 이들은 미얀마에 대한 포괄적 국제 무기금수 조치를 포함한 실질적 조치를 취할 것을 촉구했다. 그러나 유엔 안보리는  절박한 외침에 응답하지 못하고 있다.
미얀마 시민은 쿠데타 직후 연일 항의시위를 벌였다. 미얀마 군과 경찰은 총을 쏘는 등 폭력진압에 나섰다. 쿠데타 발생 100일이 훌쩍 지나면서 군에 의해 사망한 사람은 어린이 포함 800명을 넘는다. 언론인 의사 학생 활동가 지역사회 지도자 군부비판자 등 4000명 이상이 구금됐다. 이들은 가혹한 고문을 받고, 국영방송은 이를 그대로 방송한다. 불복종운동을 포기하게 하려는 충격과 공포의 만행이다. 수십년간 특권층으로 군림해온 군부가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쿠데타를 일으키고 시민을 짓밟고 있는 것이다.
군부의 무자비한 탄압에 맞선 시민의 불복종운동은 이어진다. 총에 맞아 죽어간 동료를 생각하며 “군부를 몰아내고 민주주의를 회복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싸우고 있는 것이다. 학교 공장 병원 정부청사 열차 은행 등에서 쿠데타에 맞선다. 철도청 공무원들은 기차를 멈춰세웠다. 대학 교직원 2만4000명의 40%인 1만1100명이 불복종운동 참여로 정직당했다. 유엔주재 대사부터 세계미인대회에 참가한 대학생까지 민주정부를 염원하며 온힘을 다한다. 
군부가 호락호락한 것만은 아니다. 군부의 협박으로 일자리로 복귀하는 이들도 있다. 4월 결성된 국민통합정부(NUG)는 연방민주주의헌장을 발표하고 소수민족 무장단체들과 연대한 군대를 창설했다. 하지만 차별과 탄압을 받아온 소수민족의 적극 참여를 이끌어내지 못하고 있다. 주변국의 도움도 별다른 효과가 없다. 4월 아세안 특별정상회의는 미얀마 군 최고사령관에게 즉각 폭력중단을 다짐받았다. 그러나 약속은 휴짓조각으로 변했고 군부에 면죄부만 준 꼴이 됐다.
중국은 국경을 접한 미얀마에서 경제적 영향력 유지를 우선하며 유엔안보리의 역할을 막고 있다. 미얀마 군부는 중국을 보호막삼아 시민이 항복하는 순간을 기다리고 있다. 유엔 안보리가 제역할을 하지 못한다면 많은 나라들이 미얀마에 무기수출을 중단하고 미얀마 군부 소유 대기업과의 합작을 중단해야 한다. 미얀마 국영회사에 매년 수천억원의 배당금을 지급해온 포스코인터내셔널과 미얀마 가스전사업을 해온 한국가스공사도 군부의 돈줄이 되지 않도록 조처를 취해야 한다.
“미얀마 시민으로서 미얀마의 민주주의 운동을 응원해주고 지지해주는 한국에도 감사하다는 이야기를 전하고 싶습니다. 한국 사랑합니다. 고맙습니다.” 국제 미인대회에 참여한 한 레이 미얀마 대표의 말이다. 그는 대회에 참가했다가 귀국을 포기했다. 41년전 광주의 5월을 기억하며 미얀마 시민과의 연대가 어느때보다도 절실하게 가슴을 파고든다. 
김주언(전 한국기자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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