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언 칼럼> 문대통령 모욕죄 고소취하… 차제에 폐지해야

<김주언 칼럼> 문대통령 모욕죄 고소취하… 차제에 폐지해야

  • 기자명 김주언
  • 입력 2021.05.12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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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은 전단지를 통해 자신을 모욕한 청년에 대한 모욕죄 처벌의사를 철회했다. 모욕죄는 친고죄이기 때문이다. 박경미 청와대 대변인은 “대통령은 본인과 가족에 대해 차마 입에 담기 어려운 혐오표현도 표현의 자유를 존중하는 차원에서 용인해왔다”고 밝혔다. 대통령은 주권자인 국민의 위임을 받아 국가를 운영하므로 모욕적 표현을 감내하는 것도 필요하다는 지적을 수용해 처벌의사 철회를 지시했다는 것이다. 이를 계기로 표현의 자유를 옥죄는 모욕죄를 아예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다시 높아지고 있다. 
김정식 터닝포인트 대표는 2019년 7월 여의도 국회의사당 분수대 근처에서 문대통령을 비방하는 전단을 배포했다. 전단에는 ‘북조선의 개’, ‘문재인의 새빨간 정체’ 등 비방문구가 쓰여 있었다. 경찰은 김대표를 모욕죄로 수사를 진행해 최근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일부 언론은 그동안 문대통령의 말과 배치된다고 지적하고 나섰다. 문대통령은 “대통령을 모욕하는 정도는 표현의 범주로 허용해도 된다. 대통령 욕해서 기분이 풀리면 그것도 좋은 일”이라고 말해왔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김대표의 발언을 모두 용납하기는 어렵다. 박경미 대변인의 지적처럼 “대통령 개인에 대한 혐오와 조롱을 떠나 일본 극우 주간지 표현을 무차별적으로 인용”했기 때문이다. 김대표는 “대한민국 정부에서 정상적 이웃국가의 기업을 ‘극우’ 등 표현을 빌어 규정짓는 행위는 국격훼손 및 외교적 마찰의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게다가 “복잡한 근대사를 진영의 이익을 위해 멋대로 재단하며 국가의 미래에 악영향을 미치는 정치적 행위”로 규정하는 왜곡된 역사인식을 보여주었다고 꼬집었다.
김씨를 일부 언론의 주장처럼 일반시민 ‘30대 청년’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당시 그는 전대협 대변인이었다. 그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탈원전 공수처 연동형비례제 국민연금장악 주한미군철수 고려연방제 등을 자행하는 문재인정권”을 비판하면서 “대한민국이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유지한 평화통일을 이룰 때까지 노력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국민의힘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원 청년정책 자문위원으로도 활동했다. 2020년 4.16총선에서는 미래통합당 위성정당인 미래한국당 비례대표로 공천을 신청하기도 했다.
하지만 언론은 김씨를 ‘30대 청년’으로만 지칭해 문대통령이 시민이자 청년을 모욕죄로 고소한 것처럼 호도했다. 그는 보수정치인 지망생으로 전단살포 등은 고도의 정치행위였던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김씨가 누구였든 간에 대통령이 모욕죄로 고소한 것은 문제라는 의견은 제기할 만하다. 고소취하 대상도 정치지망생이거나 일반 시민을 가려서도 안된다. 다만 그가 일본잡지를 인용했다고 밝힌 ‘북조선의 개, 한국 대통령 문재인의 새빨간 정체’라는 문구는 조롱이나 모욕으로 받아들이지 않을 수는 없다. 
시민사회는 그동안 형법상의 모욕죄를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고위공직자나 정부에 대한 비판은 내용이 부적절하더라도 폭넓게 보장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참여연대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대통령을 포함한 고위공직자는 국민의 감시와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은 판례로 정립되어 있다”며 “모욕죄가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등 공직자를 비판하는 시민을 처벌하는 데 악용되었던 것도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처벌받을 수 있다는 가능성만으로 정치적 비판과 의사 표현을 위축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명박근혜정권에서 대통령 모욕행위에 대한 처벌이 남발돼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켰다. 특히 대통령이나 정부에 대한 비판여론을 잠재우기 위해 모욕행위에 대해 주거침입죄 등 다른 죄목을 들어 재판에 넘기기 일쑤였다. 언론에 대해서는 명예훼손죄로 고발하는 사례가 급증했다. 이른바 ‘전략적 봉쇄소송’이 그것이다. 국민의 입을 틀어막기 위해 풍자화를 그리거나 전단지를 살포하는 행위를 막기 위해 주거침입죄 등을 적용하여 탄압했다. 시민에게 겁을 줘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키는 ‘위축효과(chilling effect)를 노린 것이다.
인권단체연석회의 등 인권사회단체들은 2010년 ‘이명박정권 2년 한국 표현의 자유 실태보고서’에서 “한국의 의사표현자유는 아무도 상상할 수 없었던 수준으로 급격히 후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2007년 17대 대선 당시 ‘대통령 이명박 괜찮은가’라는 UCC 5편을 인터넷에 올린 이용자가 기소돼 벌금 80만원에 선고유예 판결을 받았다. 또 이후보를 ‘땅박이’로 불렀다는 이유로 1심에서 100만원 벌금형을 받았다. 2011년에는 트위터에 이 전대통령을 ‘가카새끼’로 비난한 군인이 상관모욕죄로 징역6월에 집행유예1년을 선고받았다.
박근혜정권 들어서도 대통령 등에 대한 모욕행위에 대한 고발과 처벌이 이어졌다. 세월호참사 당일 박전대통령 행적에 의혹을 제기한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을 비롯한 언론을 상대로 한 고발이 많았다. 특히 “정윤회 염문을 덮으려고 공안정국 조성하는가”라는 전단지를 만들어 배포한 박아무개씨나 세월호참사 당일 행적 의혹을 제기한 인권운동가 박래군씨도 대통령 명예훼손혐의 등으로 기소됐다. 특히 (이명박 풍자) ‘G20 쥐그림’이나 (박근혜 풍자) 이하 작가의 전단, 원주시보 ‘이명박 욕설’ 만평 등을 재물손괴죄나 주거침입죄 등으로 처벌했다.
당시 검찰은 대통령 모욕행위를 명예훼손혐의 등으로 알아서 수사했다. 경찰은 전단지 살포 행위자 대응요령까지 만들어 단속했다. 서울경찰청은 2015년 건물옥상에서 전단지를 뿌리거나 건물에 낙서를 하면 건조물 침입이나 재물손괴혐의를 걸어 현행범으로 체포하고, 길거리에서 전단지를 배포하면 명예훼손이나 모욕혐의로 임의동행을 요구할 수 있다고 밝혔다.
한국에서 모욕죄는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와 함께 강자에 대해 비판적 언사를 하지 못하도록 약자의 입을 막는 도구로 남용돼왔다. 인터넷시대에는 모든 표현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어 고소와 처벌이 더욱 쉬워졌다. 사이버 명예훼손죄와 모욕죄 발생건수가 늘어나고 있는 이유이다. 이중 다수는 국회의원과 공무원 등 공인과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기업 전문직 연예인 등에 대한 비판이 차지한다. 나경원 전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나베’ ‘매국노’ 등 악성댓글을 게시한 170개 아이디를 모욕혐의로 고소하기도 했다.
시민사회는 모욕죄 위헌소송을 제기했으나 헌재는 2020년 6 : 3으로 합헌결정을 내렸다.  다수의견은 모욕죄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아 합헌으로 보았다. 반면 소수의견은 “모욕죄의 형사처벌은 자유로운 토론과 비판을 통해 문제를 제기하고 해소할 가능성을 제한하고, 표현의 허용여부를 국가가 재단하면 언론과 사상의 자유시장이 왜곡되고 정치적으로 악용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단순한 모욕행위는 자기교정기능에 맡기거나 민사책임을 지우는 것으로 규제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합헌이라고 해서 반드시 모욕죄가 존속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모욕죄 폐지는 세계적 흐름이기도 하다. UN 인권위원회는 2011년 사실적 주장이 아닌 단순한 견해나 감정표현에 대한 형사처벌은 폐지할 것을 권고했다. 국가형벌권이 개입할만한 중대한 해악이나 권리침해가 발생한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게다가 모욕적이거나 비하적 견해나 표현도 때로는 정당한 분노를 드러내어 사회정의에 기여한다. 잉글랜드 웨일스 아일랜드 몰도바 루마니아 등은 모욕죄에 대한 형사처벌 조항을 폐지했다.
국내에서도 모욕죄를 없애는 법안이 발의됐다. 열린민주당 최강욱의원은 “모욕의 범위는 광범위하여 헌법상 보호받아야 할 표현의 자유까지 규제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최의원은 “모욕이라는 광범위한 개념을 잣대로 표현의 허용여부를 국가가 재단하지 못하도록 모욕죄를 삭제하여 형사처벌을 받지 않게 하려는 것”이라고 밝혔다. 참여연대는 “국회에는 모욕죄 폐지 형법개정안이 계류중”이라며 “하루속히 국회가 모욕죄 폐지를 서두를 것”을 촉구했다.
김주언(전 한국기자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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