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언 칼럼> 트럼프 없는 세상, 언론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

<김주언 칼럼> 트럼프 없는 세상, 언론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

  • 기자명 김주언 논설주간
  • 입력 2021.05.06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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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럼프 없는 세상, 언론은 어떻게 살아가나?”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재선실패가 확실해진 무렵 터져나온 언론계의 하소연이었다. 뉴욕타임스 등 주류매체들은 “나라가 정상으로 돌아올 첫단추가 끼워졌다”고 안도했다. 하지만 한편으론 이러한 우려를 쏟아냈다. 트럼프로부터 가짜뉴스, 국민의 적이라는 공격을 받아가며 민주주의를 지키던 최후의 전사처럼 싸우던 언론으로서는 아이러니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자조 섞인 농담으로 치부하기에는 언론계의 위기감은 매우 컸다. 이러한 우려는 사실로 드러나 언론계에 경각심을 주고 있다.
집권 4년동안 거의 매일 나라를 뒤집다시피 하며 끊임없이 뉴스를 공급해온 트럼프 대통령. 그가 사라지면 그의 발언을 브레이킹 뉴스로 쏘아대며 해설 및 논평 기사를 쏟아내던 언론매체들은 무얼 먹고 살아야 할까.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공격을 받은 매체와 기자들은 대통령 지지자들로부터 비판과 조롱 세례를 받고 소송을 당했다. 반면 취재진과의 즉석문답과 하루에도 수십건씩 올리는 트윗으로 수많은 발언을 쏟아낸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속보는 뉴스 소비량을 대폭 증가시켰다. 둘 사이에 ‘적대적 공생’이라는 기묘한 관계가 형성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첫해인 2017년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내가 재선해서 4년 더 집권해야 하는 이유가 뭔지 아느냐. 내가 없으면 당신들도 망하기 때문이다.” NYT는 이 발언을 모욕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트럼프라는 언론의 적이 안겨준 언론의 효용에 대한 수요폭발, ‘트럼프 범프(Trump Bump)’ 효과 때문이다. NYT는 2016년 대선전후 한달 여만에 유료구독자가 평소보다 10배이상 많은 13만명이나 늘었다. 2019년 온라인매출이 신문매출을 처음 넘어선 이유로 이러한 엘리트 독자의 위기감을 꼽는 분석도 나온다.
미국 방송 중 가장 진보성향이 강한 MSNBC는 2017년 프라임타임 시청자가 전년보다 55만 명 늘었다. 2018년 트럼프와 성관계를 했다는 포르노배우 스토미 대니얼스를 인터뷰한 CBS의 ‘60분’은 2200만명이 동시 시청하며 10년만에 최고 시청률을 회복했다. CBS사장은 “트럼프의 존재는 민주주의의 암이지만, CBS엔 빌어먹을 축복”이라고  말했다. 폭스뉴스와 CNN도 창사이래 최고의 호황을 누렸다. 넷플릭스와 소셜미디어 시대에 저물어가던 신문과 방송이라는 전통미디어를 되살려놓은 건 트럼프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트럼프 퇴장이후 언론과의 ‘적대적 공생관계’는 해체되고 미국 미디어는 독자와 시청자의 외면으로 위기를 겪고 있다. 트럼프시대의 불가해성을 이해하기 위해 주류언론이나 진보매체에 몰려들던 수용자들이 이제는 언론의 해설을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언론보도에 관심을 가지지 않아도 지장이 없을 만큼 조용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바이든 대통령은 언론과의 인터뷰는 물론, 트위터 등 SNS 활동도 활발히 하지 않는다. 그만큼 언론매체에 등장하는 횟수도 대폭 줄어들 수밖에 없다. 언론의 ‘대통령 팔이’도 어려워진 셈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 퇴임 이후 미국 TV뉴스의 시청률과 온라인 트래픽은 크게 떨어졌다. 워싱턴 포스트는 2017년 NYT와의 인터뷰에서 말한 것처럼 “트럼프가 틀리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WP는 “포스트 트럼프시대로 들어선 지 두달 만에 언론들이 혼돈의 트럼프 임기 동안 얻은 시청자와 독자를 잃고 있다”고 분석했다. WP는 바이든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 1~2월 WP 온라인 방문자가 26% 줄었다고 밝혔다. NYT도 같은 기간 동안 월 방문자가 17% 줄었다. 특히 프라임타임대의 CNN 45%, MSNBC는 26%의 시청자들이 빠져나갔다. FOX는 6%만 줄어 가장 타격이 적었다. 바이든정부를 비판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미국에서 대통령이 주류언론과 충돌하는 것은 드문 현상은 아니다.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낙마한 리처드 닉슨은 적대적 언론인 명단을 관리했다. 성추문으로 탄핵될 뻔했던 빌 클린턴은 성추문 보도를 통제했다. 버락 오바마는 정보공개에 인색했고 언론에 정보를 누설한 취재원 고발을 남발했다. 언론과 권력자 사이에 불편한 관계가 형성되지 않는 것이 오히려 비정상적일 수 있다. 그럼에도 트럼프 전 대통령과 언론의 전쟁은 유례없을 정도로 광범위하고 격렬했다. 어쩌면 좋은 돈벌이수단이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트럼프 전대통령의 혐오표현이 섞인 발언은 언론에게는 좋은 먹잇감이었다. 트럼프의 언설을 비판하는 기사를 내보내면 돈이 되었기 때문이다.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언론매체들은 신이 날 수밖에 없었다. 트럼프가 대통령후보로 지명됐을 때 미디어산업의 경영진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CBS 전회장 레슬리 문베스는 “트럼프는 미국을 위해서는 좋지 않을지 몰라도 CBS에는 엄청 도움이 된다”고 엉겁결에 내뱉었다. “돈이 굴러 들어오니까”라는 말까지 덧붙였다.
실제로 트럼프 관련 기사는 수익성이 좋았다. 사람들은 프로레슬링 경기를 보듯이 트럼프 관련 기사를 미친듯이 클릭했다. 반면 기자들은 심층취재에 나설 필요도 없다. 심층 취재는 들어가는 품에 비해 수익이 나지 않을 뿐더러 커다란 손실을 입힐 위험도 높다. 언론사 경영진이 싫어하는 이유이다. 반면 트럼프 관련 기사는 그의 트윗을 정리하거나 비판하기만 하면 된다. 취재노력은 물론, 취재비가 들어갈 일이 없다. 트럼프가 소송을 걸 일도 없다. 대중이 트럼프의 헛소리를 클릭하고 독자들이 서로 싸우는 동안 언론사는 돈을 번다.
트럼프대통령 만큼 언론의 덕을 본 정치인도 드물다. 트럼프는 스스로 “나는 언드 미디어(Earned Media) 대통령”이라고 불러왔다. ‘언드 미디어’는 미디어를 소유하거나 대가를 치르지 않고도 홍보효과를 누리는 현상을 말한다. 쉽게 말해 ‘공짜 홍보성 보도의 수혜’를 의미한다. 트럼프는 2016년 대선에서 선거자금 모금액이 민주당에 비해 턱없이 적었다. 정치 아웃사이더가 대선에서 승리한 것은 개인기와 ‘언드 미디어’의 합작품이나 다름없다. 미디어분석 회사 미디어퀀트는 당시 ‘언드 미디어’효과를 50억달러(5조5000억원)이상으로 추산했다. 
미국 저널리스트 맷 타이비는 저서 ‘헤이트(HATE INC.)’에서 트럼프가 노출된 볼썽사나운 언론기사는 수십억달러에 이르는 공짜 홍보기회였다고 비꼬았다. 트럼프는 무료홍보를 발판으로 백악관에 입성할 수 있었다. 언론사도 엄청난 수익을 거두었다. 결국 국민만 손해볼 뿐이었다. 혐오를 내뱉는 극우정치인과 언론의 결탁은 최소비용으로 최대효과를 거두는 어뷰징 구조로 완성됐다. 아직도 연예인 가십이 관심을 끌지만, 대중의 분노를 자극하는 혐오와 증오가 새로운 상품으로 등장했다. 
맷 타이비는 미국 언론의 현실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트럼프 이전부터 언론은 우스꽝스러운 프로레슬링 쇼를 연상시키는 콘텐츠로 진영논리에 편승해 돈을 벌었다. 폭스와 MSNBC, 보수나 진보를 가릴 것 없이 상대를 증오하게 만드는 내용을 담아낸다. 진영논리에 갇혀 상대를 증오하는 데 주력할 뿐이다. 미국 언론은 ‘진실함’을 잃어버린 채 시청자의 분노를 이끌어내는 데 치중할 뿐이다. 필요이상으로 과장하고 왜곡해서 증오를 부추긴다. 독자들을 진보와 보수, 남자와 여자, 청년과 노인으로 나누어 패싸움을 붙이는 데 골몰한다. 타이비는 “뉴스는 오락성 사업의 뒤틀린 버전에 불과하다”고 일갈한다.
파이낸셜 타임스의 칼럼니스트 에드워드 루스는 “워싱턴 포스트가 트럼프 전 대통령 시절  4년동안 구독자가 3배나 늘었지만, 트럼프시대 이후에는 새로운 모습이 펼쳐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루스는 “이러한 현상에 답이 있을까”라고 자문했다. “대중이 저널리즘에 진지하게 관심을 가져주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그런 일은 영화관이 프랑스 아트하우스가 되는 일처럼 드물다.” 그는 언론사의 수익악화를 해결하기 위해 “페이스북 등  플랫폼 사업자들이 미디어사들과 수익을 공평하게 나누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주언(전 한국기자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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