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언 칼럼> 현수막에 ‘내로남불’도 쓰지 못하게 하는 선거법

<김주언 칼럼> 현수막에 ‘내로남불’도 쓰지 못하게 하는 선거법

  • 기자명 김주언 논설주간
  • 입력 2021.04.08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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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장과 부산시장 보선이 마무리됐다. 코로나19 방역수칙을 엄수하며 치러낸 투개표는 무리없이 진행됐다. 하지만 유권자들의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선관위 과잉단속은 이번 선거에도 어김없이 논란이 됐다. 선거때마다 논란이 돼온 선거법 90조와 93조가 아직도 버젓이 살아 있기 때문이다. 선관위는 이 조항을 적용해 야권단일화를 촉구하는 지면광고에 대해 조사에 나섰다. ‘보궐선거 왜 하죠?’라는 현수막과 ‘성평등’ ‘봄날’이라는 단어사용까지 금지시켰다. 선관위가 선거법을 과잉 적용해 유권자를 위축시키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이다.  
선거과정에서 암호문구가 적힌 현수막이 나붙였다. ‘ㅂㄱㅅㄱ 왜 하죠?’ 한 여성단체가 서울시내 곳곳에 붙인 현수막에 적힌 문구였다. ‘ㅂㄱㅅㄱ’은 보궐선거를 뜻한다. 서울시 선관위가 ‘보궐선거 왜 하죠?’를 담은 현수막을 걸면 선거법 위반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에 암호문을 쓴 것이다. 선관위는 ‘보궐선거 왜 하죠?’라는 문구는 선거에 영향을 미치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단체는 ‘우리는 성평등한 서울을 원한다’ 등를 내세워 캠페인을 진행할 계획이었으나 선관위는 선거법 제90조(시설물설치 등의 금지) 위반소지가 있다며 금지통보를 내렸다.
선관위는 또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위선’ ‘무능’이 들어가는 표현은 투표독려 문구로 사용할 수 없도록 했다. 국민의힘은 ‘투표가 위선을 이깁니다, 투표가 무능을 이깁니다, 투표가 내로남불을 이깁니다’라는 문구를 현수막에 사용할 수 있는지 선관위에 문의했다. 선관위는 “특정정당을 쉽게 유추할 수 있거나 반대하는 것으로 보이는 표현이어서 사용 불가능하다”고 통보했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이 내로남불 정당임을 선관위가 인정한 것”이라며 선관위를 항의방문하기도 했다.
선관위의 설명은 이렇다. 선거법상 선거운동과 투표독려 문구는 적용받는 규정이 다르다. 선거운동은 비방이나 허위사실을 제외하면 다양한 표현을 폭넓게 사용할 수 있다. 그러나 선거법 제58조2는 투표참여를 권유할 경우 특정정당을 지지하거나 반대하는 내용을 사용할 수 없도록 했다. ‘내로남불’은 민주당을 반대하는 표현으로 볼 수 있기 때문에 투표독려 문구로 쓸 수 없다는 게 선관위의 판단이다. 다만 일반선거운동에서는 내로남불이라는 표현을 쓸 수 있다는 게 선관위의 설명이다.
‘정직한 후보’라는 말은 ‘거짓말’ 공세를 받는 오세훈후보를 떠올리게 하므로 불허됐다. ‘낡은 정치 청산’은 민주당이 오후보를 ‘낡은 시장’이라고 비판한 적이 있어 오후보를 연상시킨다는 이유로 금지됐다. ‘미래를 위해 투표하자’는 문구는 ‘미래당’이 떠오르기 때문에, ‘지킨다’는 표현은 ‘정권 수호’로 해석돼 민주당 찍을 것을 권유하는 표현으로 허가되지 않았다. ‘땅투기 정치인 투표로 심판하자’ ‘다시 촛불시민의 저력을 보여주는 날’도 허용되지 않았다.
선관위의 과잉대응은 유독 이번 선거에만 두드러진 것은 아니다. 선거때마다 반복해서 지적됐다. 2017년 대선을 앞두고 시민단체가 ‘촛불이 만든 대선! 미래를 위해 꼭 투표합시다!’ ‘촛불이 앞당긴 선거, 투표참여로 꽃피우자!’라는 펼침막을 게시하려 했으나 선관위는 불허했다. “촛불이라는 단어가 특정정당에 유리하게 작용한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그러나 ‘투표로 70년적폐 청산! 투표로 새나라!’는 “사회의 일반적 가치 표현에 해당한다”며 허용했다. 선관위 기준이 자의적이며 과잉규제라는 비판이 끊이지 않은 이유이다.
선관위는 “선거법은 특정정당의 명칭이나 후보자의 성명 사진 또는 그 명칭 성명을 유추할 수 있는 내용이 포함된 시설물 인쇄물 등을 설치 게시하는 행위를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로 보아 제한하고 있다”고 밝혔다. 특정 정당이나 후보자를 ‘유추’할 수 있는 내용까지 불허돼  주관이 개입될 수밖에 없다. 논란이 끊이지 않는 이유이다. 선관위는 지난해 전체회의에서 ‘순수한 투표참여 권유 내용이 아닌 것은 전부 법 위반으로 본다’고 의결했다. 편파시비에 휘말리더라도 과잉규제를 택할 수밖에 없었던 셈이다.
참여연대는 “선관위의 자의적 선거법 적용으로 애꿎은 유권자만 피해를 입고 있는 실정”이라며 “선관위의 과잉단속이 즉각 중단되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참여연대는 선관위도 선거법 규제조항(제90조와 제93조)이 과도하니 폐지돼야 한다는 의견을 국회에 제출한 바 있고, 헌법재판소는 온라인 선거운동의 상시 허용결정을 두차례 내린 바 있다고 밝혔다. 오프라인이든 온라인이든 헌법에 보장된 유권자의 표현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는 것이 선관위의 책무라는 지적이다.
선관위의 과도한 법 해석도 문제이지만, 포괄적이고 모호한 선거법이 편파시비를 불러오는 근본원인이다. 선거운동을 규정한 제58조는 선거운동을 ‘당선되거나 되게 하거나 되지 못하게 하기 위한 행위’로 규정돼 있다. 유권자의 의도를 미루어 짐작하도록 한 모호한 규정이다. 광고금지 조항도 문제이다. 제93조는 ‘지지 추천하거나 반대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거나 정당의 명칭 또는 후보자의 성명을 나타내는 광고’를 금지한다. 단순히 정당이나 후보자 이름이 있다는 이유로 금지할 수 있는 것이다.
선관위도 할 말이 있다. 선관위는 “일부 지역에서 선관위가 국민의 정치적 의사 표현의 자유를 제한한다는 비판과 함께 공정성 중립성 논란이 일어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선관위는 선거법 제90조와 93조가 선거운동과 표현의 자유를 지나치게 제한하고 있다는 지적에 공감한다며 보선이후 법개정 의견을 제출하며 법안 개선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선관위는 2013년과 2016년에도 선거법 개정과 해당조항 폐지 의견을 국회에 제출한 바 있다.
선관위는 2013년 제출한 개정의견에서 ”유권자와 후보자 모두에게 충분한 정치적 표현의 기회가 주어지는 가운데 상호간의 활발한 의사의 소통을 통해 유권자가 합리적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현 정치·선거제도의 변화를 모색할 시기가 됐다“고 밝혔다. 그러나 정치권은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선관위의 과도한 법 해석과 과잉단속이 유권자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여지가 큰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근본적으로는 포괄적이고 모호한 조항으로 가득한 선거법을 방치하고 있는 국회에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다. 일부 허용된 방식을 제외하고 ‘누구든지 선거일로부터 180일 전부터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가 금지되는 선거법 조항은 표현의 자유를 포괄적으로 제약하는 독소조항들이다. 정치권은 선관위의 편파성을 지적하기에 앞서 선거법 개정에 적극 나서야 한다.
선거법이 헌법 위에 있다는 비판은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그동안 소통방식의 변화에 따라 인터넷 SNS 문자메시지를 이용한 선거운동은 언제든지 할 수 있도록 허용돼왔다. 하지만 선거법은 꼼꼼한 금지사항들로 규정돼 있다. 헌법은 국민의 알 권리와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폭넓게 인정하고 있지만, 선거법은 정치적 침묵을 강요할 만큼 과도한 규제로 가득차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너무 복잡해 민주선거를 저해하고 있다는 지적마저 나온다.
시민사회와 학계는 여러차례 선거법 개정을 요구해왔다. 특히 선거법 제90조와 제93조는 선거운동 및 유권자의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여 국민의 법 감정과 눈높이에 부합하지 못하기 때문에 개정 우선순위로 꼽혔다. 지나치게 규제위주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성숙한 시민의식으로 선거문화도 많이 개선됐다. 따라서 새로운 시대에 맞춰 선거운동과 표현의 자유를 최대한 확대하고 보장하는 방향으로 선거법을 개정해야 한다.

김주언(전 한국기자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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