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도시에서 벗어나 바다에서 삶의 쉼표를 찍다

그렇게 도시에서 벗어나 바다에서 삶의 쉼표를 찍다

  • 기자명 박상건 소장
  • 입력 2021.03.09 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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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건 시인의 섬과 등대 여행] <125> 경기도 시흥시 오이도・월곶포구

[박상건 섬문화연구소 소장] 요즈음처럼 방방곡곡으로 도로가 잘 뚫린 적이 있었을까. 길은 삼면이 바다인 해안선으로 연결된다. 이런 길들은 우리 국민들의 낙천적인 기질을 풀어주기에 충분하다. 주5일제가 일만하던 시대에서 일상의 여가시대를 열었고, 코로나19는 어려울수록 자연을 벗 삼아 심신을 치유하고 자연친화적인 공동체문화를 향유케 해주고 있다.

긴 코로나시대에 지친 사람들은 사회적 거리를 지키면서 나름대로 나를 단련하고 음미하는 긍정의 삶을 구가하고 있다. 그 시절 농사철이 끝나면 수고한 이웃끼리 곡식을 추렴해 화전놀이와 길놀이, 들놀이를 즐겼던 풍경이 작은 행복 만들기 여행으로 재현되는 것은 아닐까.

노을무렵 선착장 여행객들
노을무렵 선착장 여행객들

그런 건강한 사람은 주말이면 혈맥처럼 뻗은 길 위로 떠난다. 서울에서 지하철로 갈 수 있는 가장 가까운 섬과 바다가 오이도다. 인근에 월곶포구도 있다. 도시에서 잠시 벗어났을 뿐인데 삶의 쉼표를 찍을 수 있다. 일상을 탈출해 훌쩍 떠나 자연과 호흡할 수 있는 거이여서 주말 여행지로 각광받는다.

시흥시 서남쪽에 위치한 오이도 해변의 길이는 1.5km이다. 바닷가 쪽을 매립해 쌓은 제방길을 주민들은 ‘뚝방길’이라고 부르고 있는데 생명의 나무 전망대, 빨강등대 전망대, 함상 전망대, 황새바윗길, 옥구공원, 역사공원, 시화방조제가 펼쳐진다. 오이도는 본디 시흥시에서 4km 떨어진 섬이었다. 일제강점기인 1922년 일본이 염전을 만들고자 시흥과 안산 사이에 제방을 쌓으면서 육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오이도는 세종실록과 동국여지승람에 ‘오질이도(吾叱耳島)’로 표기돼 있다. 1789년(정조 13년) 호구총수에서 ‘오이도리’, ‘조선지지자료’에서 ‘오이리’로 표시한 후 현재 오이도에 이르렀다.

등대
등대

오이도 대표 상징물이 빨강등대다. 일본은 1895년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이후 인천항에 군수물자를 원활하게 운송하려고 1903년 6월 처음으로 우리나라 팔미도에 최초의 근대식 등대를 설치됐다. 이 등대가 설치되기 전에는 봉수대가 그 역할을 했다. 오이도에도 봉수대가 있었는데 아래로는 수원, 남양의 해운산과 위로는 인천 문학산으로 불빛 신호를 이어주는 역할을 했다.

당시 오이도 위에 옥구도라는 섬도 있었다. 임금이 배를 타고 가다가 표류한 섬이었는데 한 어부가 옥으로 만든 그릇에 물을 바쳐 임금이 이를 귀히 여겨 ‘옥귀도’라고 불렀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섬이다. 그렇게 오이도 선착장을 출발한 배들은 옥구도 항로를 지나, 월곶, 소래포구를 거쳐 인천으로 이어졌다.

오이도 사람들의 어제와 오늘을 이야기하듯 서있는 상징물이 빨강등대다. 뚝방길 가장자리에 우뚝 서 있다. 해양수산부가 2005년에 어촌체험 관광마을 조성사업으로 세웠다. 방문객들이 갯벌체험, 낚시어선체험, 해양경관 감상 등을 통해 어촌과 어항관광 활성화를 촉진시키자는 취지였다. 등대는 전망대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높이가 21m에 이르고 둘레가 8.3m이다. 등대는 2006년에 방영된 TV 드라마 ‘여유야 뭐하니’ 촬영 장소로 유명세를 탔다.

굴까는 어민
굴까는 어민

시흥9경 중 제1경이 오이도 낙조다. 낙조는 등대와 등대 아래로 이어진 선착장이 포인트다. 등대에서 선착장으로 이어지는 곳에는 마지막 겨울을 보내고 초봄을 맞는 휴일 여행객들로 붐볐다. 대부분 연인과 가족들이다. 수산물을 파는 어민들과 여행자들의 왁자지껄 소리가 서서히 저물어가는 노을 파노라마로 전환되는 순간은 영화의 한 편 같았다.

전형적 어촌마을인 오이도 원주민들은 아직도 이 포구를 이용해 굴 등 어패류 채취와 어업에 종사한다. 1년에 한 번씩 선착장 주변에서 오이도조가비 축제를 연다. 굴 구이, 싱싱한 해산물 등을 맛보며 오이도의 맛과 멋, 정겨운 어촌마을 체험을 생생하게 즐길 수 있다.

축제 때는 이곳을 찾는 여행객들을 위해 맨손장어잡기, 망둥어 낚시체험, 후리그물을 이용한 고기잡기체험, 갯벌조개잡이, 조개까지 체험, 수산물 경매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상설행사장과 어시장에서는 대표음식 시식, 특산물 할인판매 행사도 연다. 해변으로는 풍부한 해산물 맛집거리가 형성돼 있다.

선착장 가는 길
선착장 가는 길

오이도는 1980년대 말 시화공단 조성으로 완전히 육지가 됐다. 개발 과정에서 주민들이 거주했던 가장 큰 마을인 안말 등에서 신석기 시대부터 통일신라시대까지 주거지이며 집터 온돌유구, 토기편, 서기, 어망추 등이 출토돼 서해안지역 주민의 생활상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수천 년 전 패총의 흔적 등 당시의 삶을 보여주는 선사유적공원이 조성돼 있고 오이도 박물관도 있다. 오이도 선사유적공원에는 서해안 낙조를 감상할 수 있는 전망대와 오이도 유적을 돌아보고 선사인들의 생활상을 배울 수 있는 패총전시관이 있다. 선사체험마당과 야영마을에서는 당시 삶을 체험할 수 있고 물 발원지에서는 오이도 원주민 안말마을 사람들의 우물터와 당제를 지냈던 당산나무도 만날 수 있다.

월곶포구
월곶포구

시흥9경에 월곶 귀항선이 있다. 만선의 기쁨을 안고 월항으로 줄지어 들어오는 어선 풍경이 장관이었다고 한다.

월곶포구는 현재 시흥의 대표적인 신도시가 조성돼 있는데 월곶 앞바다는 지금도 어선들이 오가며 그 때의 추억을 파도와 갈매기소리로 되새김질해준다. 선착장 주변에 어패류를 판매하는 수산물상가와 다양한 맛집이 조성돼 있다. 데이트 코스와 가족나들이 장소로 인기다.

월곶은 조선시대 월곶진이 있었다. 마을은 월동리와 월서리가 있었는데 모두 ‘달월이’라고 불렀다. 월곶에 첨사가 있었다가 강화도로 옮겼다. 조선시대 해안방어체계를 수립하면서 내륙으로 통하는 물길이 드나들던 길목인 월곶에 진을 설치한 후 청나라 침략 등으로 강화도 방비에 힘을 기울이면서 숙종, 영조 때 강화도로 진을 옮긴 것으로 추정된다.

소래염전 지역은 1934부터 2년 동안 조성됐으며 갯골을 중심으로 145만평 정도가 펼쳐져 있다. 당시 이곳 소래염전에서 생산되는 대부분의 소금은 수인선과 경부선 열차로 부산항에 옮겨진 후 일본으로 반출되었던 아픈 역사가 아로새겨진 포구다.

2012년 국가습지보호구역으로 지정된 시흥갯골생태공원은 내만 갯골과 옛 염전의 정취를 느낄 수 있다. 칠면초, 나문재, 퉁퉁마디 등 염생식물과 붉은발 농게, 방게 등 각종어류와 양서류가 서식한다. 이곳에서는 매년 ‘시흥갯골축제’가 열린다.

바다에서 돌아온 어민
바다에서 돌아온 어민

갯골생태공원은 2018년에 열린관광지로 조성됐다. 흔들전망대은 22m의 목조 고층전망대에서 갯골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다. 소금을 만들고 거래했던 소금창고도 있는데 아이들과 함께 체험학습장으로 좋다. 소금을 생산할 수 있는 모든 과정을 체험하는 염전체험장에서 소금 만들기를 배워볼 수 있다. 사구식물원은 바닷가에서 자라는 사구식물을 관찰하고 농게, 망둥어 모양의 조형물이 설치돼 기념사진 포인트로 좋다.

계속 바다와 섬 여행을 이어가고 싶다면 인근에 대부도, 탄도, 제부도, 선재도, 선재도, 영흥도가 있다. 이들 섬들은 다양한 프로그램과 식당, 숙박시설들도 잘 갖춰져 있다. 다만 연계 여행 때는 이 지역이 차량이 많이 몰린다는 점을 감안해 넉넉한 여행일정을 잡아야 한다.

오이도로 가는 길은 대중교통의 경우 오이도역에서 30-2번 버스, 안산역에 350번 버스 탑승 후에 오이도종합어시장 정류장에서 하차하여 도보로 4분 정도 걸으면 된다. 승용차는 수도권순환도로의 경우 시흥 IC~시흥스마트허브(시화신도시)~시화방조제 입구 우측방향~오이도 코스다. 제3경인고속도로는 정왕IC~시흥스마트허브(시화신도시)~시화방조제 입구 우측방향~오이도 코스다. 문의: 시흥시 관광과(031-310-2900)

박상건(시인. 섬문화연구소 소장)
박상건(시인. 섬문화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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