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언 칼럼> MB 국정원의 ‘불법사찰 존안자료’ 공개가 정치공작?

<김주언 칼럼> MB 국정원의 ‘불법사찰 존안자료’ 공개가 정치공작?

  • 기자명 김주언 논설주간
  • 입력 2021.03.02 10:48
  • 수정 2021.03.02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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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명박정부 때 국정원이 작성한 의원 전원과 법조계 언론계 시민사회 인사 등 1,000여명의 신상정보가 담긴 사찰문건의 공개를 놓고 파문이 일고 있다. 민주당은 사찰문건 작성을 위해 검찰 경찰 국세청 등이 총동원됐다는 정황이 드러났다며 사찰문건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민의힘은 불법사찰 의혹 제기를 4월 서울 부산시장 재보선용이라고 반발한다. 정진석의원은 “국정원의 정치공작 망령이 되살아나고 있다”고 주장했다. 선거를 앞두고 야권에 불리한 사안을 이슈로 내세우는 의도라는 것이다. 민주당은 불법사찰만행을 밝히는 일이 재보선과 무슨 관련이 있느냐고 맞받아친다.

사찰문건에는 당사자의 치부가 담긴 내밀한 정보는 물론, 부동산 거래내역과 탈세여부 등 자금내역도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명박 전대통령의 형인 이상득 전의원을 비판한 의원의 지인, 이름없는 산부인과 병원도 사찰대상이었다. 사찰정보는 미행 도청 등 방식으로 수집됐을 가능성도 있다. 국정원은 2009년 12월 청와대 지시로 18대 의원 등에 대한 사적 정보가 담긴 개별문건을 작성했다. 이른바 ‘존안자료’가 국정원에 보관돼 있는 셈이다. 그러나 사찰정보 수집 대상과 규모는 국정원조차 명확히 확인하지 못하고 있다.

국회 정보위는 여당위원들을 중심으로 사찰문건을 제출하라고 국정원을 압박하고 있다. 하지만 국정원은 목록공개조차도 개인정보보호법에 저촉될 수 있다며 난색을 표하고 있다. 여당 정보위원들은 자료열람을 위해 상임위의 의결를 추진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국회는 국정원 자체 조사결과를 지켜보며 재발방지를 촉구하는 결의문 채택을 추진하고 있다. 이낙연 민주당대표는 “오래전 일이라도 덮어놓고 갈 수 없는 중대범죄”라며 “불법사찰은 민주주의에 대한 중대한 도전으로 정치적 유불리를 떠나 반드시 진상을 밝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정원에 보관돼 있는 사찰문건은 ‘존안자료’로 불린다. 존안(存案)은 ‘없애지 않고 보존한다’는 뜻이다. 비밀기록이나 비밀에서 해제되거나 재분류된 일반기록 가운데 특별히 보존하는 기록을 일컫는 행정용어이다. 조선왕조실록에도 등장할 정도로 쓰임새가 보편적이고 오래됐다. 공공기록물관리법 등 법률에는 명시돼 있지 않지만 보안업무규정 등 하위규정에 비밀의 존안과 관련한 사항을 다루고 있다.

존안자료는 과거 정권이 인사와 관련해 중요한 참고자료로 활용했다. 인사 존안자료는 1998년 2월 김대중대통령 당선인의 비서실장이던 김중권씨가 실체를 확인해 화제가 된 바 있다. 당시 김씨는 “여자관계가 깨끗해야 하겠더라”며 존안자료가 사생활의 내밀한 부분까지 다루고 있음을 밝혔다. 존안자료는 5.16쿠데타 직후 육군방첩부대가 만든 것이 시초로 알려져 있다. 대상은 공직자뿐 아니라 교수 기업인 언론인 재야인사에까지 이르러 논란을 빚기도 했다. 이러한 존안자료가 이명박근혜 정부에서도 작성돼 보관되고 있는 것이다.

국정원이 보관하고 있던 존안자료의 봉인이 풀렸다. 대법원이 지난해 11월 존안자료를 공개하도록 확정 판결했기 때문이다. 2017년 박재동화백과 곽노현 전서울시 교육감 등이 결성한 ‘내놔라 내파일 시민행동’의 캠페인이 발단이 됐다. 사회운동가와 종교인 문화예술인 지자체장 등 500여명이 호응해 국정원에 본인에 대한 사찰정보공개를 신청했다. 그러나 국정원은 일괄 기각통지를 보냈다. 이들중 박재동화백과 곽노현 전교육감이 시범적으로 행정소송을 제기해 1심과 2심에서 승소한 뒤 대법원이 심리불속행 결정을 내려 승소가 확정됐다.

재판과정에서 국정원은 자신들이 수집 작성한 정보는 정보공개법을 적용받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정보공개법에 따르더라도 국정원이 정보중 “국가안전보장과 관련된 정보의 분석을 목적으로 수집하거나 작성한 정보”만 법적용이 제외된다. 국정원이 수집 작성한 정보를 통째로 법적용에서 제외하면 “정보기관의 불법적 정보수집을 용인해주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국정원의 직무권한은 “제한적 한정적 열거로 해석함이 타당하다” 1심 법원은 이런 이유를 들어 “내용에 따라서는” 정보공개청구대상이 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특히 원고들에 대한 정보수집이 국정원의 권한밖 불법사찰이었음을 명백히 밝혔다. “국정원은 … ‘대공 대정부전복 방첩 대테러 및 국제범죄조직’에 한해서만 정보를 수집 작성 배포할 수 있는데 특정 공직자의 비위첩보 정치적 활동 등 동향 파악 등을 위한 정보의 수집은 국정홍보나 정부정책에 비판적인 반대세력(야권, 시민단체 등)의 동태를 조사하고 관찰하는 정치사찰에 해당할 뿐, 국가정보원법에서 정한 국정원의 직무 중 어느 것에도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국정원의 민간인 불법사찰은 이명박정부 때 시작해 박근혜정부를 거쳐 문재인정부 출범이후 국내정보조직을 개편하기 전까지 진행됐다. 사찰대상은 2만명으로 추정되고 수집된 문건은 20만건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불법사찰문건의 보고처는 청와대 민정수석과 정무수석, 대통령 비서실장 국무총리 등이었다. 김경협 국회 정보위원장은 “김대중정부 때는 과거 관행탓에 일부사찰이 이뤄졌지만 노무현정부 때는 사찰이 없었다”고 밝혔다. 김대중정부 때는 불법도청으로 국정원 직원 등이 대거 처벌됐고, 도청장비는 용광로에 넣어 폐기했다.

이낙연 민주당대표는 “당시 국정원은 야당 소속 지방자치단체장들에 대해 사찰을 벌이고 종북 이념오염 등 색깔론 딱지를 붙인 사실이 새롭게 드러났으며 약점이 될 만한 부분을 세세하게 파악해 표를 만들고 일일이 기록한 것은 물론, 그들을 압박하기 위한 정부부처 별 액션 플랜까지 짜서 내려 보냈다고 한다”고 설명했다. 이대표는 선거를 염두에 둔 정치공세라는 야당의 비난에 대해 “마치 달도 해도 선거에 맞춰서 뜨고 진다는 얘기와 마찬가지”라고 혹평했다.

정보기관의 불법사찰은 선거나 여야의 문제가 아닌 민주와 독재의 경계에서 민주주의를 바로 세우는 문제이다. 국정원은 과거의 흑역사를 종결하고 진정한 국민의 정보기관으로 거듭나야 한다. 국정원은 불법사찰 문건에 대한 정보공개 청구가 잇따르자 민간인사찰정보 공개를 위한 TF를 구성했다. 이재명 경기도지사를 비롯해 배우 문성근씨 등의 정보공개청구가 본격화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법사찰의 대상과 범위 등은 아직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았다. 개인정보가 아닌 청와대 지시사항이나 보고서 등 행정자료고 공개되지 않고 있다.

국정원은 국회 정보위 의원들이 의결할 경우 불법사찰문건 목록 등을 비공개로 보고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단순히 문건공개로 끝내서는 안된다. 불법사찰 과정을 철저히 조사해 가담자를 처벌하고 재발방지책을 마련해야 한다. 특히 ‘존안자료’로 일컬어지는 불법사찰문건의 처리방안도 마련해야 한다. 봉인조치만으론 피해를 바로잡을 수 없다. 산더미 같은 존안자료가 국정원에 남아있는 이상 악용될 가능성이 있다. 국정원이 수집한 첩보가 편견과 억측으로 작성돼 사실과 다른 경우가 많지만, 바로잡을 방법도 없다. 존안자료를 본인에게 공개하는 것만으로는 문제가 해소되지 않는 이유이다.

문재인정부는 국정원의 정치사찰 금지를 선언하고 국정원개혁을 핵심과제로 설정했다. 서훈 전 국정원장은 국내정보수집부서 폐지와 과거 불법사찰기록의 봉인, 국내정보담당관(IO)의 기관출입 금지와 인력재배치를 실천했다. 국정원 개혁위 활동과 검찰수사로 국정원의 선거운동과 정치개입, 예산오남용과 불법사찰 실태가 드러나 전직 국정원장 3명이 줄줄이 구속되기도 했다. 지난해말에는 국정원법이 개정돼 정치관여가 우려되는 정보의 수집과 분석을 금지했다. 국정원이 개혁의 진정성을 확보하려면 이번에 제기된 불법사찰 과정에 대한 조사는 물론, 사찰문건의 처리방안도 마련해야 한다.

김주언(전 한국기자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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